늘 잠만 자는 삼손

sam朴俊珪son 2020. 9. 19. 13:08

[역사소설 수양대군28] 결행의 순간이 다가왔다-(결단은 짧고 굵게, 결행은 중단 없이)

[역사소설 수양대군29] 상대를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공포의 달' 10월, 피가 튀는 살육의 계절)

[역사소설 수양대군30] 부당한 권력 앞에 당당하라-(수양대군, 전두환의 언론 이용방식 거의 '흡사')

[역사소설 수양대군31] 호랑이도 꼬리를 내리는 장군-(뒤쫓아 오는 저들이 수상하다)

[역사소설 수양대군32] 변방의 호랑이 이징옥의 분노-(나라를 도적질한 그놈이 바로 역적이다)

[역사소설 수양대군33] 줄서기를 확실히 하라-(인간 백정, 전하의 아들이라는 게 부끄럽다)

[역사소설 수양대군34] 무식을 들추려다 되치기 당하다-(두만강 푸른물에 피어난 황제의 꿈)

[역사소설 수양대군35] 쪼잔하게 동족을 죽이느니 대국과 한판 붙겠다-(중국을 지렛대삼아 목적을 이루겠다)

[역사소설 수양대군36] 여진족 황제-(굴러온 황제 자리, 받을까? 물리칠까?)

[역사소설 수양대군37] 이징옥의 최후-(황제의 꿈, 두만강에 꽃잎처럼 지다)

 

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653953

 

 

하극상 '전두환'이 긴 직함을 가졌던 이유는?

[역사소설 수양대군 38] 5백년 후에도 닮은 사람은 태어난다

www.ohmynews.com

조선팔도의 제1로는 의주대로다.

영남대로와 호남대로는 제4, 제5 순위로 한참 밀려있다.

세상의 중심 중국으로 가는 길이 의주대로이기 때문이다.

오가는 사신도 많지만 보내고 받아야 하는 문건도 많다.

사신들의 출발과 종착지는 홍제원이지만 문서의 수발기지는 연서역이다.

연서역에는 보발(步撥)도 있지만 일곱 필의 파발마(擺撥馬)가 항상 대기하고 있다.

긴급을 요하는 문건이 평양과 의주를 오가기 때문이다. 

이징옥 사건이 발발하면서 의주대로는 제1로의 영예를 경흥대로에 내주었다.

평소 다섯 필의 말이 대기하고 있던 노원역에 삼남대로의 기착지 청파역에서 차출한 다섯 필의 말이 합류하여 열 필이 되었다.

조선 개국 이래 한 역에 열 필의 말이 있게 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노원역 대기 마(馬)들의 발바닥에 불이 붙었다.

 

이징옥이 죽었다는 보고를 받은 수양은 스스로 중외병마도통사(中外兵馬都統使)에 올랐다.

영의정과 집현전 예문춘추관, 이조와 병조판서에 이어 병권(兵權)까지 틀어쥔 것이다.

그의 공식 직함은

영의정부사 영집현전 경연 예문춘추관 서운관사 겸 판이병조사 중외병마도통사

(領議政府事 領集賢殿 經筵 藝文春秋館 書雲觀事 兼 判吏兵曹事 中外兵馬都統使)라는 유례없이 긴 직함이었다.

 

-(중략)-

 

두만강 넘어 야인들에게 '경거망동 하지 말라'는 통지문을 보낸 수양은 양계에 포진한 군 절제사들에게도 '부화뇌동'하지 말라는 경고를 보냈다.

사건 조사 특명을 부여받은 선위별감(宣慰別監)에 박대손(당시 북평절도사(절제사), 박호문의 당질)이 임명되었다.

왕명에 의한 특별 조사반이다.

사건 진상과 사후처리를 위하여 현장으로 떠나는 박대손을 수양이 대군청으로 불렀다.

"신임 절제사 박호문을 살해한 자, 이징옥의 위칙을 쓴 자, 야인을 청한 통사(通事)는 용서할 수 없다."
"예. 알아 모시겠습니다."
"이징옥을 거열하여 3일 동안 효수한 뒤 머리를 한성으로 보내고 그의 자식과 동모자는 효수하여 널리 보여라."
"예, 명대로 거행하겠습니다."
"이징옥이 왕명을 거역하고 박호문을 살해한 사실을 알면서도 이행검과 정포(鄭圃)가 종성에 따라간 이유와 정종이 관대(冠帶)를 갖추고 이징옥을 출영한 연유를 추문하라."
"예, 명 받들어 모시겠습니다."

 

-(중략)-

 

선위별감 박대손이 이끄는 조사단이 한성을 떠났다는 소식이 함길도에 알려지자 길주에 찬바람이 불고 종성에 삭풍이 몰아쳤다.

한 때는 육진의 최전방 기지로 활기가 넘쳤던 고을에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중략)-

 

특명을 받고 길주에 도착한 박대손이 올린 장계가 도착했다.

"통사(通事) 김죽과 유세는 도망 중에 있고, 강막동은 이징옥의 말을 듣고 야인들에게 군사를 청하는 연락꾼 노릇을 하였습니다.

 군관 김석산은 이징옥의 종성 입성을 쉽게 하기 위하여 동문을 파절(把截)했고

진무 황숙저·김치명·김안·전득미·최성발·김득순은 이징옥이 인신(印信)과 병부(兵符)를 박호문에게 주고 한성으로 떠났다가 중도에 돌아가서 박호문을 죽일 때 합세하였습니다.
 지인(知印) 최성달·이흥배는 이징옥의 관문(關文)을 가지고 회령부와 보화·무산·부령 등지에서 군사를 징발하였습니다.

 패두(牌頭) 한위와 갑사(甲士) 맹의는 속임수에 빠졌다고 하나 이징옥이 박호문을 죽여 모반의 형상이 명백하였는데도 잠자코 있었고 종성까지 따라갔습니다.
 황유는 이징옥이 '대금 황제(大金皇帝)'를 자칭하고 교도 이선문을 불러 칙서(勅書)를 쓰게 하니 이선문이 병고를 칭탁하여 쓰지 않았는데 황유는 망설이지 않고 바로 썼습니다.

 회령 절제사 남우량, 판관 김경신은 지인(知印) 최성달이 군사를 징발하는 관문(關文)을 가지고 회령부에 도착하여 이징옥이 박호문을 죽인 사실을 말하였으나 판관으로 하여금 관문(關文)에 서명하게 하였습니다.
 이징옥이 박호문과 작별하고 한성으로 가다가 중도에서 돌아갔으니 그 정상이 의심할 만하였는데 도진무 이행검은 모른채 하였을 뿐만 아니라 이징옥 군사들이 새 도절제사 박호문을 포위하고 칼로 내리쳤는데도 도진무로서 응급 구호조치도 하지 않고 우물쭈물하면서 사태를 관망하였습니다."

피비린내를 부르는 보고서였다.
 

 

[역사소설 수양대군39] 공황에 빠진 국경 마을-('네 탓', '내 탓'에 박 터진 변방 무사)

[역사소설 수양대군40] 목을 두고 올 각오로 고개를 넘었다-(현장에 그가 있었다)

 

 

 

http://www.god-walk.pe.kr/ 朴 俊珪



31화에서 이징옥이 한양으로 돌아오는 중 김종서와 황보인이 죽은 사실을 알게되는 과정과 돌아가는 과정이 엉성하고..
40화에서 한명회가 석동과 함께 밀파되어 종성판관(절제사) 정종과 도진무 이행검을 설득하여 이징옥을 척살하는 과정과 그 책략이 한명회가 내고 실행한 사실로 그린 것이 매우 의아하다는 내 생각.
http://cafe.daum.net/_c21_/bbs_search_read?grpid=qEmt&fldid=BU5z&datanum=14886&q=%EC%9D%B4%EC%A7%95%EC%98%A5%EC%9D%98%20%EB%82%9C&_referer=V7kfJwkeLEGMZxGlgqZEmR6S.hVgiztnrBPD_2o_5U_4RvCwn.N_hesZTwnQmtjzlTZh2Xp.JUkf.P1c2UMskA00
이징옥이 반란을 일으켰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조정에서는 수양대군을 중외병마도통사(中外兵馬都統使)로 삼아 토벌군을 꾸렸다. 그리고 각지에 이징옥을 제거하는 데 공을 세우면 크게 포상하겠다고 알리고, 6진 인근의 여진족에게도 반란군에 동조하면 함께 토벌하겠다는 내용의 포고문을 전했다. 하지만 토벌군이 출정하기 전에 종성에 주둔하던 이징옥은 이행검과 정종의 계책에 넘어가 주변의 경계를 느슨히 했다가 이행검과 정종 등에게 기습을 당해 세 아들과 함께 살해되었다. 이징옥의 시신은 거열(車裂)로 찢겨졌으며, 그의 머리는 3일 동안 효수되었다가 한양으로 보내졌다.
-중략-
이징옥을 살해하는 데 공을 세운 인물들을 3등급으로 나누어 포상했는데, 최초로 모의에 참여한 대호군(大護軍) 이행검(李行儉)·종성 절제사(鍾城節制使) 정종(鄭種)·종성 판관(判官) 정포(鄭圃)·전 수만호(守萬戶) 장영(張永) 등 10인이 1등, 이들을 도운 사직(司直) 김익맹(金益孟) 등 43인이 2등, 이들이 이징옥을 기습하여 죽일 때 군사들을 이끌고 성 밖을 지킨 삼휘(三麾) 진무(鎭撫) 전유지(全有之) 등 5인이 3등으로 포상되었다. 이징옥을 죽여 당상관(堂上官)으로 승진된 정종은 이듬해 종성도호부사(鍾城都護府使)로 임명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