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광주의 비극

    도야지꿀 2010. 5. 21. 09:43

    [문득] 애기 우는 분숫가에


    2010.05.19.수요일

    산하

     

     

     

    5월의 노래"라는 제목이 붙은 노래는 여러 곡입니다. 그래서 그 뒤에 일련번호를 붙여서 구분을 하지요. "꽃잎처럼 금남로에 뿌려진 너의 붉은 피"와 "두부처럼 잘리워진 어여쁜 너의 젖가슴"을 들이대면서 왜 쏘았니 왜 찔렀니 트럭에 싣고 어딜 갔니를 통곡하듯 묻는 노래는 "5월의 노래 2"입니다. 

     

     

     

     

    대개 5월 그 날이 다시 오면 술자리에서는 그 노래가 먼서 사람들의 결기를 세우며 울려퍼졌고, 밤이 깊어지고 마음들이 가라앉으면 "5월의 노래 1"이 나지막하게 흘러나와서 사람들의 콧날을 시큰하게 만들곤 했습니다.  

    어느 해인가의 5월 18일 종로 바닥을 열심히 뛰어다닌 뒤 최루탄 가루 잔뜩 묻힌 채 무사생환하여 가진 술자리에서 5월의 노래 1을 함께 불렀습니다. 그런데 한 선배가 매우 감상적인 어투로 자신이 이 노래의 가사 한 구절 때문에 지하철에서 체면도 창피함도 없이 펑펑 울었노라는 얘기를 꺼내더군요.  


    덩치는 까치 친구 백두산만하고, 감성 제로지대에 사는 인간으로서 몇 번인가 연애를 할 뻔 하다가도 그 무덤덤함에 기가 질린 여자들이 초저녁에 뿌리침으로서, 돈 없고 빽 없고 여자 없는 청년들의 비밀결사(?) "불우청년학우동지회"(약칭 불청학) 간부급 조직원이던 그가 전철 안에서 노래 가사 때문에 엉엉 울어댔다는 사실은 일동의 아유를 자아내기에 충분했습니다. "형 감성적인 데도 있는 거 인정할 테니까 거짓말하지 말아요."라는 무시섞인 호소나 그날 지숙이한테 차인 날이지?" 라는 비웃음이 사방에서 쏟아졌으니까요. 그러나 선배는 꿋꿋했습니다.  

     

    "아냐 정말 울었어.  근데 그 가사가 틀린 가사였어. "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요. 좌중은 조용해져서 모처럼 진지한 빛으로 상기된 불청학 간부의 얼굴을 쳐다보았습니다. 

    "우리가 1학년 때 받았던 찌라시는 인쇄 상태가 영 안좋고 가사도 띄어쓰기 하나도 안되어 있고 오탈자도 많았거든. 근데 2절의 한 대목이 잘못 적혀 있었어. "해 기우는 분숫가에 스몄던 넋이 살아"인데 "애기우는 분숫가에"로 되어 있었던 거야. 그 대목에 왜 그리 가슴이 턱 막히고 눈물이 쏟아지는지..... 나는 그 뒤 1년 동안 애기 우는 분숫가에로 계속 불렀었어." 


    "푸하 아니 근데 애기 우는 데 왜 형이 울어요?" 

    "광주 애기들이 물밀듯이 떠오르는 거야. 저수지에서 물놀이하다가 계엄군 총에 맞아죽은 꼬마, 그리고..... 아버지 영정 든 꼬마..... 근데 울음이 터지게 만든 건 세상 그 누구도 얼굴도 모를 애기 때문이었는데......  너희들 그 묘비명 본 적 있지? '여보 당신은 천사였소. 천국에서 다시 만납시다.'라고 남편이 쓴...... 그 돌아간 아내가 임신 8개월이었다는 거 알지. 그 태어나지도 못한 애가 광주도청 앞 분숫가에서 엉엉 울고 있는 거야 갑자기 내 눈 앞에서" 


    언제 생각해도,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억울함이 가실 리 없는 죽음들인데 이제는 이따금 생각하기도 어려울만큼의 거리로 멀어진 듯 합니다. 그 죽음들을 처음으로 세상에 알려 낸 작가의 입에서 실수일망정, 잘못 전달되었을망정 "그런 사태는 우리에게만 있었던 것도 아니며 큰 틀에서 봐야 한다"는 표현이 튀어나오는 세상이 됐고, 그가 지지하겠노라 한 실용의 큰 이름 앞에서 저 작은 죽음들은 박제가 되어 박물관의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을 뿐이랄까요.   

     

     



    항쟁이 발생하고 학살이 있은 후 30년이 된 지금도  대한민국 인구의 상당수가 "총 들고 설치니 총 맞았지."라고 말하고 싶어 입술을 들썩거리고 대관절 왜 쏘았는지 왜 찔렀는지 트럭에 싣고 어딜 갔는지 속시원히 밝혀진 것은 없고,  전 재산 29만원 짜리 학살자의 둘째 아들은 전직 탤런트와 오손도손 살아가겠다며 30억짜리 빌라를 구입해서 이사를 했습니다.  


    총을 들고 싸웠던 사람들, 계엄군을 향해 총이라도 쏘고 악이라도 쓰면서 저항이라도 했던 사람들은 그래도 자신들의 최후가 어떤 의미인지, 자신들이 왜 죽어가야 하는지를 알고서 이승을 떠났을 것입니다만, 교사인 남편이 돌아오지 않아 대문 앞에서 이제나 저제나 목을 늘이던 새댁은, 그리고 그 뱃속에서 힘차게 뛰놀던 생명 된 지 8개월이 된 아이는, 저수지에서 멱 감다가 계엄군의 조준 사격으로 오리보다 못한 목숨으로 짧은 삶을 마감해야 했던 아이들은, 그리고 아무것도 모르는 눈과 손으로 세상에 없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부여잡아야 했던 아이들의 울음은 누가 달래 줄 수 있었을까요. 하늘 위 천사들인들 내가 도대체 왜 죽었나요 울부짖는 아이들의 울음을 그치게 할 수 있었을까요.  


    광주 망월동 묘역을 막 다녀와서, 등사기로 밀어댄 5월의 노래 가사를 전철 안에서 외우던 한 대학생의 눈에 들어왔던 잘못된 가사, 엉뚱하게 실려온 아이들의 울음이 떠도는 분숫가의 풍경은 무뚝뚝한 장정의 마른 눈물샘에 홍수를 일으켰습니다. 그리고 그 얘기를 들은 뒤 누구도 1년 동안이나 가사를 잘못 알고 있었다는 사실로 그를 구박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저마다 가사를 바꿔 부른 다음 술 한 잔씩을 더 위장에 퍼부어야 했지요. 그리고 누구도 5월의 노래 2절을 끝까지 부르지 못했습니다.

    이렇듯 봄이 가고 꽃 피고 지도록.... 멀리 오월의 하늘 끝에 꽃바람 다하도록.....

    애기 우는 분숫가에...... 스몄던 넋이 살아..... 애기 우는  분숫가에..... 애기 우는 분숫가에....  

    참극이 있은지 30년입니다. 그때 엄마 뱃속에 있던 엄마와 함께 천사가 되지 않고 지상에서 발딛고 살수 있었다면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를 부르며 하루 하루 젊음과 멀어져가는 자신을 노래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그 기나긴 세월을 지나서 우리가 마주하는 세상은 과연 어떤 세상일지 모르겠습니다.  이제는 광주 도청 앞 분숫가에는 애기들의 울음이 스며들지 않게 되었을까요.

     

    작년에 올린 글을 좀 수정하여.... 임을 위한 행진곡 대신 방아타령 흩날리는 5월 18일에..... 올림

    딴지사회부장 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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