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광주의 비극

    도야지꿀 2010. 5. 21. 09:45

    [추모] 5.18 마지막 수배자 윤한봉에 대한 기억


    2010.5.19.수요일

    정치불패 데니

     

     

     


     

    하이 횽들 하루종일 날이 흐릿하더니 광주는 오늘 비가 내리네. 오늘은 5.18최후의 수배자로 알려진 윤한봉선생 이야길 해볼까해. 선생과 나의 인연(?)은 선생이 귀국후 모교에서 첫 강연을 하게되었을 무렵이었어.

     

    당시 나는 좀 정신없고 바쁠 때였는데 한 선배가 나를 찾아왔었어. 이 횽도 독특한 운동이력이있는데 속칭 NL중 '반미구국의 철옹성'이라 불리던 대학교의 그 유명한 '오월대' 중대장 출신인데 재밌는것은 이 횽이 나중에 PD운동하던 선배횽의 속칭 프락션으로 PD로 전향하게된 특이케이스야.

     

    암튼 그 횽의 요지는 윤한봉 선생 강연회를 하게 되었으니 함께 준비하자 쉽게 말해 도와달라는 거였지. 당시 내가 워낙 바빠서 후배들만 몇명 보내고 강연 또한 못갔던 적이 있었지.

     

    그 뒤로도 그분에 대한 소식은 이러저러한 사람들을 통해 말 그대로 풍문으로 들었는데 걔중엔 좋은 평도 있었지만 악평 또한 상당했었지 왠고허니(호남에서 3대 금기가 있는데 선생은 그것을 다 언급하며 정면돌파 시도를 했기때문이야) 그 중에 가장 큰 것은 역시 김대중 전대통령에 대해서도 서슴 없이 비판을 가했기 때문인데...호남에서 당시(90년대까지만해도...) 디제이를 대놓고 정면으로 비판한다는것 자체가 운동세력이나 시민단체에서도 감히 엄두를 못낼 분위기였더랬어.

     

    지금와 생각해보면 선생이 옳았어. 민주당을 지역에서 견제 못한 결과는 지금 지역 민주당의 모습을 보면 알 수 있을 거야. 역시 견제 받지 않은 권력은 크든 작든 반드시 부패한다는 걸 호남의 민주당이 보여주고있지.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비판은 당대 지식인의 책무이자 존재이유인 게지.

     

    그리고 또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 5월투쟁기간쯤에 윤한봉선생의 강연을 듣게 되었지. 암튼 그전에도 위에 그 선배는 선생에 대한 이야길 자주하며 나와 학번동기들(일명 우끈클럽)에게 만나러갈것을 권하곤했지. 근데 난 왠지 꺼려지더라고 사실 윤한봉 선생이 꺼름직한게 아니라 그 선배가 당시 기든스의 제3의길 어쩌구하며 당시의 내 기준으로 봤을때 지극히 개량적인 관점으로 맛탱이가 살살 가고 있어보였걸랑...

     

    암튼 10여년전쯤 당시가 5월투쟁(당시엔 5월달 내내 이리 불렀지비) 즉 5.18을 앞두고 모두의 관심이 도청 전야제로 쏠릴 당시 나와 일군의 무리(?)들은 조금 다른 형식의 추모를 기획했었어. 아마 예전 93년이전 5월을 기억하는 횽들은 알텐데 당시엔 도청까지 갈람 그냥 가는게 아니었지 으쌰으쌰 한바탕하고 물론 그날만은 경찰쪽도 못이기는척하며 적당히 하다 밀리는척 빠져주고 그람 최루탄연기 뚫고 그때서야 무대 맹글고 공연하고 암튼 그때가 좋았단 사람들도 많지. 게중엔 고향냄새(?) 최루탄향이 안나서 5월같지가 않단 선배도 있지..

     

    93년 즉 문민정부부터 도청행사를 허가를 내줬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도청행사를 자유롭게 하지. 근데 그게 점점 지나니까 해를 거듭할수록 머랄까 자꾸 형식적이고 관행적인 기분이 들더라구.

     

    지금이야 마지막휴가란 영화도 700만 이상이 보고 윤상원 이란 이름도 대중에게 어느정도 알려졌지만 (요새는 영화탓인지 윤상원열사 무덤을 찾는 이가 가장 많다 들었어) 90년대까지도 윤상원 박기순 등.. 이른바 들불야학출신 열사들은 그야말로 운동하는 사람이나 아는 정도랄까...대중적으로 알려지지 못한 편이었어.

     

    내 경운 그래도 신입생 시절부터 선배들로부터 망월동 가면 젤 먼저 윤상원열사 묘 앞에 서서 묵념후 님을 위한 행진곡 일발 장전 제끼고 투쟁구호 외쳐주고 마이크 줄 잡고 한명이 블라블라.... 그 담에 찬찬히 주변 다른 열사분들 묘를 돌고 그랬걸랑. 아마 윤상원열사가 최후까지 도청에서 남아 항쟁했던 상징적 인물이라 그랬던것같어.

     

    그리고 우리과 같은 경우엔 꼭 박기순 열사 묘를 그 담으로 갔었어. 박기순열사 묘는 구묘역에 묻히신 다른 민주열사분들과 달리 당시엔 맞은편 구석에 따로 묻혀계셨지(지금은 두분 모두 신묘역으로)

     

    당시 5월이 다가오자 매년 반복되듯 똑같은 형식에서 좀 벗어나 윤상원 열사의 삶을 알리며 `진정한 5월정신계승의 의미는 전야제도 망월동도 아닌 오직 당면한 현실문제 앞에 투쟁하는 것만이 참으로 5월정신을 계승하는 것 아닌가`하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도청 전야제에 참석치않고 독자적으로 가칭 `윤상원 문화제`를 하기로 맘 먹고 준비에 들어갔었어.

     

    장소는 전남대에서 개최하기로 하고 착착 준비를 하던중 윤한봉선생쪽에서 한번 만나자연락이 온기야. 나보다 쪼매 더 시뻘갷던 뽈갱이 친구가 선생을 뵙구 돌아와서는 타이틀을 바꾸는게 어떠냐고 권하시더래 이러저러한 설명하신 후 윤상원열사 한분이 아닌 들불야학 7인열사의 이름을 모두 내걸고 추모하는게 더 옳치않겠냐는 말씀이신게지. 사실 난 썩 내키진 않았어(개인적으론 rhyme 을 중요시한달까 입에 딱 붙지도 않고윤상원 열사 한분 알리기도 버거운데 사람들이 들불야학 7인열사 이러면...누구누군데?? 이럴거 같기에.. 윤상원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들불야학이라니..제목에서부터 먼가 설명이 길어지는 상황에..)

     

    그래서 다른이들의 의사를 물으니 선생 의견에 동감을 표하길래..그래 어차피 이게 단발성 1회로 끝나면 상관없지만.. 멀리봐서는 들불야학 이름으로 가는게 방향이 옳겠다싶어 서둘러 타이틀을 '들불야학7인열사 추모문화제'로 바꾸었어. 그리고 열사분들의 가족들을 무대로 모시었고 당시 최초의 들불야학열사분들을 위한 추모문화제를 나름 성공리에 치뤘지. 후에 나도 학교를 떠나고 세상 살다보니 잊고 살았으나 그 날 그 문화제를 계기로 들불야학열사분들을 기리자는 참석한 분들의 중지가 모아져 지금은 동명의 기념사업회도 있든만 (근데 얼마전 보니 동상문제로 내부적으로 시끄럽던데 그러지마 아자씨들이 그때까정 한게 뭐있다구 그러시나들 나 화낸다 웅)

     

    어제오늘 5.18에 대한 글들을 보며 오늘 윤한봉선생이 떠올랐어. 선생이람 뭐라 하셨을까. 5월 광주 그 정신을 바르게 계승하기 위해선 5월을 개인적 경험으로 사유화하려는 일부 5월단체나 그 어떠한 정치세력과도 단호히 맞서야한다고 일갈하시던 선생. 그 스스로 5월의 부채를 갚기 위해 망명 12년동안 스스로에게 엄정히 강제하며 지켰었던 원칙들. 

     

    이 원칙들을 떠올리다보니 한 선배가 또 떠올라. 수배가 걸려 도피중 머리맡에 식칼 한자루를 두고 잠자리에 들 때마다 되새겼데.

     

    "내가 이 고난을 스스로 극복하지 못한다면 형사가 나를 잡으러 올 때 그에게 휘두르는것이 아니라 내 스스로 배를 가르고 말겠다"

     

    그런 결의로 살았다며 그 시절을 회상하던 그 선배의 표정... 그 빛나던 눈빛을 나는 잊을 수가없어. 아마 그 선배는 윤한봉선생의 망명생활 당시 처신을 듣고 아마 저런 결심을 했었겠지.

     

    오늘 우린 이들에게 부끄럽지않게 살고 있던가... 몇마디로 말로 자신의 부족함과 나태함을 덮으려하지 않았던가. 세상이 많이 바뀌었어. 그래 마저 난 예전처럼 비장함을 바라는게 아니야. 그냥... 최소한 우리 스스로 부끄러움을 아는 인간이었으면 할뿐이야. 그것이 저들과 우리가 다른 점이 아니던가. 전대가리가 떵떵거리며 사는 이 지랄맞은 현실 앞에 하루에 10분 아니 1분 만이라도 자신을 되돌아볼줄 아는 사람이 되자는거야. 난 그저 우리가 좀 부끄러움도 알고 완벽하지 않다는 걸 서로 인정도 좀 해가며 나와 다른 상대일지라도 늘 언제나 배우려는 마음열린 자세를 지니고 있던 분들의 삶 속에서 우리가 잊고 있는것들에 대해 5월 광주 라는 이름 앞에서 떠올려보길 바랄뿐이야.

     

    스스로에게 가장 엄정했던 이들처럼 오늘 이 더러운 세상 더러운 현실 앞에 비록 하루하루 깡쏘주로 쓰린 속을 달랠지라도 결코 마른 무릎을 꺽지않았던 선배들의 지난했던 투쟁이 그 중단없는 투쟁이 오늘의 5월 광주를 잊혀지지 않게 했고 그 힘이 오늘날 이나라 민주주의를 이만큼까지 밀어올린 힘이었음을 우리 잊지 말자구.

     

    조영변호사께서 폐암으로 돌아가시기 전에,

     

    "내가 쓴 전태일평전을 읽고 노동운동에 뛰어들거나 돌아가신 분들의 넋을 달래기 위해서 천도제를 지내고 싶다"

     

    하셨다니 이 얼마나 처절하며 아름다운 자기성찰이던가 머리가 절로 숙여진다는 건 이런 경우에 적절하지 싶어 이 정도는 안되더라도... 나의 주장과 외침이 그 강경함이 나와 다른 곁에 선 이들을 공박하고 짓누를만큼 글케 대단한것인가. 오월광주 앞에 오월영령 앞에 횽들 다들 오늘날 이 모습 떳떳하다고 자부할 수있는지 진심 생각해 볼 일이야.

     

    난 성찰 하는 사람은 진영을 떠나 존중해. 이세상에 그 어떤 집단도 무오류의 가치집단은 없어. 지나 온 길엔 누구든 빛이 있으면 어두운 그림자도 있기 마련이야. 우리가 진정 경계 할것은 한나라당도 조중동도 가카도 아니야. 반대를 용인 못하는 그리하여 철저히 그 반대 세력을 핍박하고 배제하며 압살했던 피와 눈물로 얼룩진 지난세기 역사가 우리에게 웅변하고 있잖아. 우리가 경계해야할 것은 바로 그 유혹이야. 난 그걸 '패권의 유혹'이라 생각해.

    진정한 힘이란 존중받을 권위란 참 용기란 힘이 갖는 파괴력의 두려움을 알고 자제하며 또 자제하며 약자와 소수자를 배려하고 존중하는것. 그것이 진정 진영을 뛰어넘어 우리가 항상 잊지 말아야할 오월정신의 참뜻일 게야.

     


     

    우린 잊지말아야해 횽들. 그 날 금남로 거리 도청 앞 최후까지 폭압적 독재권력에 분연히 맞섰던 의로운 광주시민 대다수가 바로 당대 가장 취약계층이던 가난한자 없는자 그러나 나누고 함께한 자들이었다는 것을... 다른 건 다 잊어도 그것만은 우리 절대 잊지말자 횽들.

     

    윤한봉선생은 2007년에 돌아가셨어. 10년 전에도 몸이 안좋으셔서 오래 못사실거란 생각은 했지만 끝내 만나뵙지않고 멀리서만 뵜던 게 이제는 아쉬운 맘을 넘어 송구함마저 들어. 늦었지만 이제라도 윤한봉선생에게 인사드리려해.

     

    "윤한봉선생 아니... 한봉이형 죄송해요 더 열심히 살께요. 오월영령이 되어 지켜봐주세요"

     

    금년엔 소주 한병 들고 한봉형에게 늦은 인사드리러 갈 참이야. 근데 주책없이 자꾸 눈에 땀이 나서 더는 못 쓰겠다............................................

     

     


     

     

    * 노래는 블랙홀 횽들이 오월광주를 위해 만든 노래(실제 도청에서 마지막까지 싸운 사람의 일기를 가지고 만든 노래지) 블랙홀은 진쫘 횽들이 애호해줘야혀 암.

     

     블랙홀 - 마지막 일기

     

     

    정치불패 데니
    이 기자의 다른 기사 기자의 300 이 기자의 기사 구독
    사업자 정보 표시
    | | | 사업자 등록번호 : -- | TEL : -- | 사이버몰의 이용약관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