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광주의 비극

    도야지꿀 2010. 5. 21. 09:48

    [생활] 광주와 관계 없는 두가지 이야기


     

    2010.05.20. 목요일

    아이아스

     

     

    - 이야기 하나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필자 요즘 선을 참 많이 본다.

     

    대부분 처참하게 채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로 선이란 참 재미 없는 자리라고 생각한다. 이전 검도할 때 했던 약속 대련 같다고나 할까? 필자는 검도 대련할 때 상단의 자세를 잡고 몸통 박치기를 하는 식으로 상대를 강하게 압박하는 것을 좋아함에도 약속 대련은 그런 개성 따위는 무시되고 그저 정해진 바대로 막고 치는 일만 반복되기에 그다지 좋아하지 않은 수련 방법이었다.

     

    마찬가지로 필자의 내면이나 개성은 거의 표현할 기회도 없이 품위있게 앉아서 영화, 드라마 얘기나 풀고 있다보면 '장가가기 참 힘들 구나.'하는 마음이 절로 든다.

     

    하지만 그 날 선은 좀 특별했다. 일단 아가씨(이하 A)가 어마 어마한 부잣집의 외동딸이라고 했다. 오옷 이것은 말로만 듣던 혼테크! 드디어 인생 역전이구나 ㅠㅠ

     

    그렇게 레스토랑에서 만난 A는 조건이 아닌 인간적으로도 매우 매력적이었다. 170이 넘는 큰 키에 날씬몸매. 절세미인은 아니었지만 충분히 호감가는 시원스럽게 생긴 얼굴. 무엇 보다도 그녀와의 만남이 즐거웠던 것은 여태까지 봤던 선과는 다르게 내숭 없이 편하게 이야기가 풀려가는 분위기 였다.

    부잣집 딸이지만 된장녀도 아니었고 필자와 마찬가지로 여행을 무척 좋아하는데다가 필자의 재미 없는 이야기도 재미있게 들어주는 대화 매너 역시 너무 마음에 들었다.

     

    그 동안 재미 없는 선 때문에 지쳐있었기에 그녀의 가볍고 경쾌한 템포는 더욱 필자의 마음을 흔들었다. 단지 유일하게 마음에 걸리는 것은 그녀의 집이 '합천'이라는 점 뿐이었다.

     

    첫 만남이 아니라 마치 연인과의 즐거운 데이트 같았던 분위기는 결국 북악스카이웨이로의 드라이브까지 이뤄졌고 누군가 한 사람이 '오늘 집에 들어가기 싫어요.'라는 말이라도 나올 듯 분위기는 한껏 부풀어 올랐다. 데이트가 끝나고 그녀의 집에 필자의 차가 당도할 무렵 그 얘기를 꺼낸 것은 굳이 어려운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완벽해 보이는 그녀에게 마음에 걸리는 단 하나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A씨 집이 합천이라면 집안이 아무래도 한나라 계열이시겠어요?"

    "저희는 우파에요."

     

    엥? 우파? 왠지 마음 한구석에 먹구름이 쌓여가는 듯한 느낌이었다.

     

    "저는 김대중빠인데 정치 성향은 좀 다른가봐요? ^^"

    "어머나, 그래요? 아이아스씨 극좌시네요?"

     

    헉. 솔직히 고백하면 필자 소위 말하는 빨갱이 집안 자식이다. 따라서 좌익에대한 편견은 없다. 하지만 DJ는 중도우파이지 좌익이 아니지 않나?

     

    "아, 뭐..... DJ를 좌파라고 할 수는 없지 않겠어요? 진보성향의 정책을 많이 낸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도 DJ가 좌파 누명을 쓴건 5 18이후 부터 인데 광주의 피를 좌파의 음모로 모는 것은 진실을 은폐하는 것입니다."

     

    물론 선 보러 나와서 이런 얘기까지 하는 필자도 정상은 아님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좋은 아내의 요건 중에는 올바른 가치관 역시 포함되어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그건 아이아스씨가 정치를 몰라서 그래요.  DJ나 노무현때 알게 모르게 죽어간 사람이 광주에서 죽은 사람 보다 더 많거든요?"

     

    그녀의 경쾌한 가벼움이 경박스러움을 넘어 천박함으로 보인 것은 그 때 부터였다.솔직히 '뭐야, 이년아!'라고 호통을 치지 않은 것만 해도 필자 입장에서는 많이 참은 것이다.

     

    물론 어떤 정치 신념을 가지고 살아갈 지는 누구도 강요할 수 없는 개개인의 권리이기에 필자의 가치관을 상대에게 강제할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그저 그녀의 정치관이 궁금했을 뿐이었다. 그리고 차라리 '저는 정치는 잘 몰라요.'라는 대답이나 'DJ는 대통령병 환자에 북한에다가 돈 퍼주고 그 돈으로 노벨상 산 사기꾼이잖아요.'라는 식의 자기 감정에 대한 논리적인 방패막이라도 있었다면 다시 한번 재론의 여지는 있었을 지도 모른다.

     

    애초에 합천 지역 부자집 자제 임을 알고 만났을 때 어느 정도는 각오했던 바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 어떤 회의감이나 의심도 없이 '우리에게 게기는 놈들은 다 빨갱이.'라는 집안의 정치관에 세뇌되어있는 꼭두각시 인형과 같았다.

     

    처음 합천에 일해 공원을 짓는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필자는 '나이 든 사람이야 어쩔 수 없겠지만 그래도 함천의 젊은 세대들은 그게 잘못된 일임을 잘 알고 있을거야.'라고 생각했다. 그런 필자의 생각이 얼마나 무지 했고 순진한 것이었는지를 대학교육까지 받은 그녀가 확인 시켜 준 것이다. 조금 과장해서 얘기하면 인간의 이성과 정의로움에대한 필자의 믿음이 무너졌다고나 할까?

     

    무엇 보다도 용서 할 수 없었던 것은 그녀가 어려운 이웃에게 봉사하는 직업군에 속해 있다는 점이었다.

     

    그 날 밤에 두가지 꿈을 꾸었다.

     

    턱시도 차림의 필자가 파티초대를 받았다. 우아한 클래식 음악과 화려한 내부 장식의 홀에서 품격있는 사람들이 춤도 추고 담소도 나누는 영화에서 흔히 보던 상류층 사람들의 디너 파티. 하지만 그들이 먹고 마시는 것은 검은 뿔테 안경을 쓴 대학생으로 보이는 청년들의 피와 살이었다.

     

    화사한 미소를 띈 매력적인 A가 나에게 붉은 액체가 든 잔을 권한다.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실 것 없어요. 한번 마셔 보세요. 세상 어떤 와인 보다 달콤하고 싱그럽답니다."

     

    와인잔이 너무 가까이 다가와 쏟아질 무렵 눈 앞이 캄캄해졌다.

     

    갑자기 장면이 바뀌었다. 멋들어진 흰색 리무진 차량 안에 A가 타고 있다.

    그 앞에는 작고 귀여운 강아지가 안겨있다. 강아지는 뼈다귀를 씹고 있다.

    뼈다귀를 씹던 강아지는 배가 부른 듯 이내 먹는 것을 중단하고 A에게 재롱을 떤다.뼈다귀를 집어든 A는 차창문을 열고 밖으로 뼈다귀를 내민다. 서너명의 사람들이 다가와 감사를 표하고는 그 뼈다귀를 게걸스럽게 먹는다.

     

    A는 자비로운 표정을 지으려고 애쓰고는 있지만 그들의 몸에 자신의 손이 닿을 때는 자신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린다. 그녀의 다른 한 손은 계속해서 강아지를 쓰다듬고 있다.

     

    다음날 A양에게 전화가 왔다.

    드물게도 여자 쪽에서 먼저 온 에프터 신청이었지만 완곡하게 거절했다. 만약 그때 에프터를 받아들였다면 지금 쯤 강남 테헤란로 부근에서 빌딩의 오너로써 초대형 치과경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그들의 대한민국'에서 살고 싶은 마음은 없다.나의 자녀에게 '세상이란 다 그런 거란다.'라고 가르쳐야 하는 값으로 빌딩 한채는 너무 싼 것이 아닐까.

     

     

     

    - 이야기 둘

     

      

     

     

    "넌 뭐가 모자라서 매사가 그렇게 삐딱하냐?"

     

    선 보고 온 이야기를 들은 친구가 아이아스에게 한 말이다.비교적 여유있고 화목한 가정에서 자란 탓에 어려서 부터 단 한번도 경제적인 어려움 없이 공부만 하면 되는 환경에서 자랐고 현재도 취업 때문에 고생 한 것도 아닌 어찌 보면 쉽게 쉽게 풀려보이는 인생.

     

    귀공자 분위기 까지는 아니라도 적어도 여유있는 중산층 이미지는 되어야할 필자가 늘 불만에 차있고 '쓸데 없는' 일에 관심이 많은데 대해서 주변 사람들은 늘 궁금해한다.

     

    사실 필자 역시 세상 물정 모르는 '재수 없는 강남 도련님'이었다.  그 사건이 있기 전까지만 해도.

     

    일의 시작은 흔하디 흔한 것이었다. 같은 지역 국민학교를 나오지 않고 사립 국민학교를 나온데다가 집 좀 살고 공부 좀 한다고 평소에 잘난 척해서 재수 없는 필자를 친구 몇몇이서 손을 좀 본 것이다.

     

    당시 순진하기 짝이 없는 필자는 단 한번의 반격도 하지 않고 그 몰매를 고스란히 다 맞았고 가만히 맞고 있는 모습에 재미를 들이자 별 감정 없던 구경꾼들까지 가세하여 9명 가까운 놈들이 필자를 가격했다.

     

    교과서에서 배운 '사회 정의'라는 것을 있는 그대로 믿었던 필자의 생각은 이것이었다.

     

    '나는 잘못한 것이 없다. 저 놈들이 나쁜 것이다. 그러므로 반격해서는 안된다. 폭행을 당한 것이 아니라 싸운 것이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지금만 참으면 교칙과 선생님이 저들을 응징할 것이다.  나는 아무 잘못 없이 폭행 당했기 때문이다.'

     

    예상대로 얼마안가서 학생부 선생님이 달려왔고 사건 관련자는 전부 교무실로 끌려갔다. 하지만 사건의 진행은 처음 필자가 예상했던 것과는 영 딴판으로 흘러갔다. 다행히 필자가 크게 다치지 않은데 안도교사들은 관련자 전원에게 반성문을 쓰게 하는 것으로 사건을 마무리 지었다.그리고 그 관련자 전원에는 필자 역시 포함되어 있었다.

     

    아니? 내가 왜 반성문을?

     

    이건 내가 당했던 린치에 교사들 역시 가담한 것과 마찬가지인 상황이다. 필자는 잘못한 것이 없었다. 교칙을 어긴 것은 상대방이다. 교칙 어디에도 '재수 없는 녀석은 몰매를 때려도 된다.'라는 말은 없지 않나? 더욱이 때린 놈들이야 자신이 한 행위에 대해서만 반성문을 쓰면 그만이다.

     

    하지만 자신이 평소에 친구들에게 잘못한 것에 대해 반성문을 써야하는 것은 그야말로 '내가 맞을 짓을 했으니까 맞았습니다.'라는 것을 인정하라고 강요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항의를 해 봤지만 돌아 온 것은 '쓰라면 써!' '이 따위 태도로 생활을 하니까 친구들이 너를 싫어하지." 따위의 인격 모독 뿐이었다.

     

    그 사건 이후로 필자의 사춘기가 시작되었다.

     

    세상은 이상적인 것 처럼 보일 뿐 결코 이상적이지 않다는 것. 법이니 사회 정의니 하는 것이 자신을 지켜주길 바라는 것은 허황된 뜬구름 잡는 소리라는 깨달음. 결국 자신의 인권을 지킬 수 있는 것은 일차적으로 자신의 몫인 것이다. 방법의 잘못을 일일히 따지는 것은 바보짓이다. 어차피 잘잘못은 후에 가려질 일. 누군가 부당하게 내 인권을 침해 한다면 당연히 수단 방법가리지 말고 싸워야만 한다.

     

    개인적으로 5 18때 광주에서 싸우신 분들은 일제시대 독립투사들 보다 더 훌륭한 분들이라 생각한다.민족의 독립이라는 것 물론 숭고하고 중요한 것이다. 하지만 21세기인 현재에 민족주의는 오히려 사회 발전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지 않나(독립 투사들을 폄하하는 의도는 절대 아니다).

     

    김구 선생이 백범일지에서 꿈꿨던 사회는 우리 민족이 잘 사는 사회가 아니다. 바로 모든 사람이 자신의 기본적인 인권을 누리면서 인간적인 존엄성을 가지고 사는데 부족함이 없는 사회이다.


    국가가 공권력이라는 이름으로 부당하게 자신의 인권을 탄압할때는 목숨을 걸고 이에 항거해야만 한다. 국가도 민족도 인간의 인권을 지켜주기 위해 존재하는 것. 광주에서 싸우셨던 분들은 독립투사들이 꿈꾸던 그 이상 사회를 완성하기 위해 용감하게 일어나신 분들인 것이다.

     

    불법으로 무기고를 털었네, 계엄령 하에서의 집회는 불법이었네 지껄이지 말라. 적어도 그들은 현행법을 위반하는 한이 있더라고 정원에 메인 개가 되기를 거부한 위대한 분들이니까.

     

    첫 월급을 받은 날. 가장 먼저 한 것은 국제엠네스티에 정회원 신청이었다.

    오늘도 세계 어딘가에서 자신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목숨걸고 싸우고 있는 얼굴도 모르는 그 누군가를 돕고 싶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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