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재단의 라디오 광고

    도야지꿀 2010. 5. 21. 20:43

    2009년 5월23일. 원창호씨(29)는 지인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강릉에 가는 길이었다. 박건웅씨(38)는 홍대 앞에 있었다. 이정수씨(34)는 만화 마감을 앞두고 있었다.

    평범한 일상이었다. 봄날 평온한 일상은 순식간에 깨졌다. 원씨는 강릉으로 가는 휴게소에서, 박씨는 홍대 앞에서, 출판사도 그날만큼은 마감 독촉을 하지 않았던 이씨는 작업실에서 믿기지 못할 전직 대통령의 부음을 들었다. 김한조씨(36)를 포함한 네 명의 만화가는 뭔가를 해야 할 것 같았다. 답답했다. 이심전심, 이들은 특기인 그림으로 의기투합을 했다.

    서울 덕수궁 대한문에 차려진 시민 장례식장에 내걸린 함박웃음을 짓고 있는 노무현 걸개그림은 그렇게 만들어져다. 1년 전 거리를 작업실 삼았던 이들은 현재 부천만화정보센터 작업실에서 여전히 그림을 그린다. ‘네모'라는 작업 공간을 함께 쓰고 있다. 

       
    ⓒ시사IN 윤무영 지난해 걸개그림을 그릴 당싱 이정수, 박건웅, 김한조, 원창호(왼쪽부터)
    “해가 저물어서 그만 두려고 했는데 시민 분들이 주변에 초를 놔 주셔서 결국 밤 열시까지 작업을 했다.” 맏형 박건웅씨가 그날의 기억을 떠올렸다. 대형 붓에 아크릴 물감을 찍어 현장에서 노 전 대통령의 함박웃음을 그렸다. 지켜보던 시민들은 응원의 성금과 먹을거리를 놓고 갔다. 덕수궁에 걸릴 때도 시민 분들이 나서서 척척 걸개그림을 걸어주었다. 그림은 시민들이 놓아준 촛불 빛으로 완성됐다. 시간이 정확히 얼마나 걸렸는지 네 명의 기억이 엇갈렸지만, 모두 빚진 마음으로 그 자리에 섰다는 기억만큼은 일치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행적이 마음에 들 때도 있었고 FTA 정책에 원망스러울 때도 있었지만 전직 대통령을 죽음으로 내몬 세태에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검찰의 표적 수사가 있기 전까진 몰랐다. 그의 죽음을 이대로 지나가 버리면 마음의 빚이 될 것 같았다. 그래서 잘 할 수 있는 그림을 그렸다. 마지막 가는 길, 활짝 웃는 얼굴을 그리고 싶었다. 영정 그림은 시민 영결식에 쓰인 뒤 봉하마을로 내려갔다. 최근엔 1주년 추모 전시회에 다시 쓰이고 있다. 고마운 마음이다.
      
    1년 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그들 스스로 사회를 보는 눈이 달라졌고 그게 작품 활동에 영향을 미쳤다고 말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말대로 그들은 깨어있는 시민이 되었다. 민주주의는 그냥 주어지는 게 아니란 걸 깨달았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장례식 때와 노무현 전 대통령의 49제 때도 걸개그림을 그렸다. 지난해 7월엔 만화가들이 시국 선언을 했다. ‘2009년 여름,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라는 웹툰을 제작해 만화인 236명이 시국 선언을 했다. 네 명도 함께 했다. 이들은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만화가들까지 뭉치게 한 이명박 정부에 혀를 내둘렀다. 김씨는 “학교 다닐 때 학생운동 한번 해본 적 없다. 2년 새 사회의 퇴보 현상이 너무 뚜렷하고 이슈가 많았다. 앞장서서 나서본 적 없는 사람들이 전선 앞에 나갈 수밖에 없는 세상이다”라고 말했다. 

    박씨는 최근엔 비전향 장기수의 일대기를 그린 ‘나는 공산주의자다’라는 만화를 펴냈다. 일찍이 ‘노근리 이야기’ 등 르포 만화 작가로 명성을 얻었던 그는 시대와 개인의 삶에 더욱더 천착할 작정이다. 원씨는 다음 작품을 준비 중이다. 1년이 지나 추모의 열기는 사그라졌지만 당시 시청 앞에 모인 사람들에 희망을 가지고 있다. 그때의 열망이 다시 타오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고 있다고 한다. 

       
    ⓒ시사IN 백승기 1년뒤 여전히 그림을 그리고 있는 이정수, 김한조, 박건웅, 원창호(왼쪽부터)
    네 명이 작업하는 부천 작업실에는 노무현 대통령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학습 만화를 그리는 이정수씨의 책상 위엔 손녀를 자전거 뒤에 태우고 달리는 노 전 대통령의 뒷모습이 걸려있었다. 이씨는 얼마 전 노무현 자서전을 읽었다. 그는 노 전 대통령을 ‘사람’이라고 정의했다.

    노무현이 떠난 1년. 인간 노무현을 추모하며 시청 앞을 메웠던 사람들 틈에 있었던 만화가 4총사는 또다시 일상을 흔든 그날을 맞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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