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당신은 위대한 지도자

    도야지꿀 2010. 5. 24. 19:33

    칼럼] 내가 김대중이오
    - 평화외친 김대중 사라진곳에 공허한 ‘노무현 정신’만 대책없이 메아리쳐
    공희준 칼럼, 2010-05-24 오전 09:08:47  
     
    1. “정치가 실패한 곳에서 전쟁이 시작된다.” 프러시아의 위대한 군사사상가 클라우제비츠가 말한 “전쟁은 정치의 연장이다.”란 이야기를 누군가 재치 있게 받아친 것이다. 그렇다. 무능한 정치가들이 남긴 자리는 군인들로 대신 채워지기 마련이다. 군인의 임무는 전쟁에 승리하는 것이다. 전쟁에서 이기려면 아군보다 단 한 명이라도 많은 적이 죽어줘야 한다. 전쟁의 목적은 아군의 생명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적군의 목숨을 빼앗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복잡하기 짝이 없는 천안함 사건의 구체적 진상을 알지 못한다. 솔직히 별로 알고 싶지도 않다. 배수량이 1천 톤이 넘는 초계함의 돌연한 침몰로 촉발된 사태가 평면적 진실게임의 단계를 이미 벗어났기 때문이다. 북한 잠수정의 계획된 테러공격이니, 암초와의 충돌이 낳은 단순한 해난사고니 하는 엇갈린 주장의 공방은 이제는 신발 신고 발등 긁는 격이 되었다.

    본질은 남북관계의 파탄이다. 그리고 100여 년 전과 똑같이 외세가 우리겨레의 운명을 결정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한미 동맹이든 북한과 중국의 유착이든 결과는 다른 나라와 손잡고 동족과 일전을 불사하는 것이 될 게다.

    이명박 대통령은 아카시아꽃 향기와 함께 화약 냄새마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현재의 한반도 정세가 정치의 실패에서 비롯되었음을 인정하고 이에 대해 겸허히 반성해야 옳다. 헌법은 대통령에게는 국가를 보위해야 할 임무가 있음을 규정하고 있다. 이는 전쟁의 참화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야 함을, 즉 평화를 유지해야 함을 명령하고 있다고 해석할 수가 있겠다.

    남북관계의 파탄은 전쟁으로 이어질 위험성이 크다. 근대화도, 민주화도 비록 불안전한 정전체제 아래에서일지언정 남북한 사이에 본격적 열전이 장기간 없었던 것에 힘입었다. 고대의 아시리아에서부터 20세기의 나치 독일에 이르기까지 전쟁을 통해 지속가능한 발전과 번영을 이룩한 나라는 역사상 단 한 국가도 존재하지 않았다.

    한국전쟁이 끝난 다음 남한에 침투한 무장공비를 제외한다면 가장 많은 북한군 병사를 살해한 대한민국의 통치권자는 역설적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이었다. 그럼에도 국민의 정부에서 한반도 평화는 깨지지 않았다. 왜일까? ‘정치’가 남북한 사이에서, 우리나라 안에서 원활하게 작동한 까닭이었다. 그 덕분에 북한군 수십 명을 몰살시켜놓고서도 우리 국민은 안심하고 금강산 관광을 유유히 떠날 수 있었다.

    나는 이명박 대통령이 북에 대해서 엄중한 경고를 하는 걸, 천안함 침몰이 북한의 소행임을 가정할 때 적절한 응징조치를 강구하는 것을 반대하지 않는다. 관건은 그러한 경고와 조치에 관계없이 제2, 제3의 천안함 사태가 언제라도 일어날 수 있다는 점에 있다. 얼어붙은 남북관계의 해빙에 필요한, 한반도 문제에 대한 한국 스스로의 주도적 관리 능력을 회복하는 데 필수적인, 남북통일은 물론이고 우리나라 내부의 국론통일에도 기본적 전제조건이 되는 정치의 정상화를 그가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2. 정치, 특히 (남북관계를 포함한) 국제정치는 선악이 아닌 득실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득실이 부당한 절차와 불공평한 방법으로 배분될 적에 비로소 선악의 잣대가 요구되는 것이다. 이게 바로 참다운 마키아벨리즘의 요체다.

    이명박 정부가 선하고 정의로운 정부라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게다. 이 정부는 철저하게 득실을 기준으로 삼는 유권자들의 압도적 지지로 탄생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유독 남북관계에만 선악의 잣대를 고집스럽게 들이대고 있다.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노릇이다.

    맞다. 북한의 김정일 정권은 분명 악의 화신이다. 공화국을 표방하며 3대가 정치권력을 세습한다. 수백만 명의 인민을 아사시켰다. 게다가 악착같이 핵무기를 개발하고 남한을 겨냥한 무력도발을 일삼는다.

    - 링크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남북관계는 선악 아닌 득실로 따져야”

    하지만 북한에게 정의를 맛보여주기 위해 회복하기가 불가능한 치명적인 전쟁의 참화를 자초한다면 이는 그 어떤 악과도 비교하기 힘든 절대악이다. 암을 치료한답시고 무리한 수술을 강행했다가 환자를 죽인 의사를 명의로 생각하기 어려운 것과 마찬가지다. 북한이란 암을 치유하려면 장기간의 고통스러운 치료과정을 감수할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3. 이명박 정권의 정치가 실패해 초래한 남북관계의 위기를 극복하려는 노력에 유감스럽게도 민주당은 등장하지 않는다. 민주당이 펼치는 행태는 10년을 집권한 정당이라고는 도저히 믿기가 곤란할 만큼 협애하고 근시안적이다. 민주당을 대표한다는 정치인들이 기껏해야 하는 짓은 어뢰가 이러니, 폭약의 성분이 저리니 하는 정도의 진실게임에 지나지 않는다. 천안함 침몰 사태의 궁극적 원인으로 작용한 한반도의 분단 상황을 어떻게 풀어갈지에 관한 비전과 대안이 좀처럼 눈에 띄지 않는 것이다.

    무기 전문가와 선박 기술자는 넘쳐나도 한반도 문제의 뇌관이라 할 북한의 핵을 안전하게 처리할 안목과, 북녘땅이 중국의 세력권에 편입되지 못하도록 북한 정권의 ‘한국친화적’ 연착륙을 유도할 청사진과, 휴전선의 긴장고조가 북한에도 결코 이롭지 않다고 김정일을 설득시킬 권위를 가진 신뢰할 만한 정치지도자는 보이지 않는 것이 지금의 민주당의 모습이다.

    상대적으로 제일 나은 부류가 이명박 정부의 안보 공백을 따지는 수준이다. 수권에의 의지와 역량에 기초해 바라볼 때 민주당이 감당할 수 있는 최대치는 해양경찰청장이나 국방부 장관인 셈이다. 정부당국의 오락가락하는 발표에 발맞춰 민주당의 대응 역시 일관성 없이 춤을 추는 것도 하등 이상하지 않은 이유다. 뿌리가 얕거나 아예 없는 탓에 바람에 흔들리는 거다.

    김대중은 두 개의 상반된 얼굴을 지니고 있다. 첫 번째의 김대중은 “어떤 일이 있더라도 평화만은 지켜야 합니다.”라고 역설하는 민족지도자 김대중이다. 두 번째의 김대중은 “민주당을 중심으로 무조건 뭉쳐야 합니다.”라고 읊조리는 정당정치인 김대중이다. 민주당, 범위를 넓혀 한국사회에서 이른바 진보의 급선무는 첫 번째 DJ로 빙의하는 것이다. 허나 첫 번째 DJ를 상기하면서 “내가 김대중이오!”를 우렁차게 외쳐야 할 진보개혁 진영의 주류세력은 오직 두 번째 DJ를 기억하고서 “내가 김대중인데….”만을 힘없이 되뇌고 있을 뿐이다. 첫 번째 김대중이 사라진 곳에는 공허한 ‘노무현 정신’만이 대책 없이 메아리친다.

    “노무현 정신 계승”이 허망하게 윙윙거리는 정반대편에서는 “한국판 9ㆍ11테러 主犯 김정일을 골로 보내자!”는 따위의 불길한 주술이 더 큰 소리로 울려 퍼지고 있다. 정치가 실패하면 늘 전쟁이 일어났고, 전쟁이 터지기 전에는 피로 물들 창과 칼을 축복하는 원시적 제례가 항시 벌어졌다. 이제 우리는 정치의 실패를 거쳐 죽음의 굿판을 지나 바야흐로 사망의 골짜기에 접어들려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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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05-24 오전 09:08:47   © kookmi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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