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당신은 위대한 지도자

    도야지꿀 2010. 5. 24. 19:52

    호남의 위대한 애국애족정신은 무죄다!
    - 이순신 장군,"호남이 없으면 국가(조선)도 없다"
    윤복현 객원논설위원, 2010-05-16 오전 01:44:35  
     
    가슴 가르는
    저들의 붉은 눈빛을 보라!
    온 몸 조이는
    저들의 검은 그림자를 보라!
    이 넓은 바다가
    파도로 뿜어낸 보라!
    지켜가야 할 우리의 조국
    끝이 없는 절망 속에서도
    당신 모습 내게 다가 오네

    나의 이 한 목숨
    죽어 흙이 되도
    사랑하는 나의 조국
    이 땅을 지키리라!
    끝이 없는 절망 속에서도
    당신 모습 내게 다가 오네
    파도처럼 세상변했지만
    불멸의 영웅 살아 숨쉬네

    국민적 사극이였던 KBS'불멸의 이순신'의 주제가 가사내용이다.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승전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명랑대첩비가 경술국치 100년을 맞은 올해 원래 위치로 돌아 온다. 전남 해남군은 명량대첩의 승전을 기록한 명량대첩비(보물 503호)를 해남군 문내면 우수영 학동 충무사에서 원 설립지인 문내면 우수영 동외리로 옮겨 역사적 가치를 되새기고 우리 해군의 자존심도 함께 세울 것이라고 밝혔다.



    해남군에 따르면 명량대첩비(사진)는 1597년(선조30년) 9월 임진왜란(정유재란) 당시 명량 앞바다에서 왜군을 상대로 승리를 이끈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1688년(숙종 14년) 전라우수영성 동문 밖에 세워졌다. 하지만 명량대첩비는 일제강점기인 1942년 일제에 의해 강제 철거돼 서울 로 옮겨지는 아픔을 겪었다. 이에 해남지역 주민들은 1950년 ‘명량대첩비 이전 추진위원회’를 조직, 현재의 위치인 학동 충무사에 비각을 만들고 경복궁 근정전 뒤뜰에 방치돼 있던 비를 다시 옮겨 세웠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밝혀진 원래 위치와 직선거리로 700m 떨어져 있어 정통성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비를 옮길 당시 우수영 원 터에 노인당이 들어서 원 위치에 세우지 못했던 것.이에 해남군은 2008년 원 설립지로의 이전에 대한 타당성 용역 조사를 벌여 이를 바탕으로 지난해 8월 문화재청으로부터 이전 허가를 받아냈다. 현재 해남군은 토지매입과 이전설계가 끝나는 올 10월중 명량대첩비와 비각을 원 설립지로 이전한다는 방침이다.

    해남군은 명량대첩비 이전을 기념해 국가적인 경축행사도 개최할 계획이다.해남군 관계자는 “올해는 경술국치 100년과 명량대첩비가 일제에 의해 수난을 당한 후 다시 우수영으로 돌아온 지 60년 되는 해”라면서 “명량대첩비 이전은 국가적으로 명량대첩의 승전을 다시 되새겨 봄과 동시에 역사적 정통성을 회복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명량대첩비는 1688년 3월 전라우도 수군절도사인 박신주에 의해 세워졌으며 김만중이 전서로 ‘통제사충무이공명량대첩비’ 12자를 썼고 이민서가 문장을 짓고, 이정영이 글씨를 썼다. 이 비는 국란 시에 땀을 흘린다고 전해져 오는 등 호국의 비로 여겨지고 있다.

    인류문명사적으로도 유구한 호남의 애국애족 정신은 무죄다.호남.호남정치인하면 경끼부터 일으키고 혐오하면서 빨갱이 지역이니 하면서 음해매도하며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자들은 입에 칼을 물고 죽기를 바란다.외세에 기대어 분단 고착화와 분열주의로 동족을 못 잡아 먹어서 안달하는 자들은 한민족이라 할 수 없고 대한민국 국민이라 할 수도 없다.

    호남의 위대한 애국애족정신

    1980년 5월 당시 미국의 승인을 받은 전두환깡패군대의 헌정질서를 유린하는 군사쿠테타에 맞서 <전두환 찢어 죽이자!>라는 구호로 분연히 떨쳐 일어난 광주민중들의 민족적 항쟁은 당시 전두환깡패군대의 총칼과 위협에 침묵을 지키던 전국적 상황에서 홀로 고독한 싸움이기도 했다.

    이러한 광주민중항쟁은 권력을 장악한 전두환깡패들에 의해서 북한과 빨갱이 폭도들의 반란행위로 왜곡시켰고 아직까지 주장하는 전두환 똘마니들이 많다. 당시 광주민중들이 <북한은 오판하지 말라!>는 구호까지 내 세웠던 상황에서 말이 되지 않는 왜곡날조였던 것이다.

    광주민주화항쟁과 관련해서 8.15이후에는 몽양 여운형 선생이 주도한 인민위원회에서도 활동했고 평생 민주화에 헌신해 온 김대중을 호남출신 정치인이라는 빨갱이로 매도했다. 오죽 했으면 유시민이라는 자는 책까지 써서 김대중을 비토하고 한나라당의 창당멤버인 조순이라는 자를 대안으로 내 세웠겠는가! 유시민이라는 자의 김대중 혐오는 국민의 정부 말기에 김대중 하야하라는 주장과 노무현정부 당시 한나라당과의 대연정 제안으로 절정을 이룬다.

    전라좌수사.조선수군통제사 이순신은 호남이 없이는 7년간의 조.일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없었다.거북선도 호남사람 나대용이 설계하고 제작하였고 조선수군의 참모들이 대부분 호남출신들이었다.조.일 전쟁 당시 호남출신의 의병장들은 단순히 호남지역에 국한되지 않고 진주성 싸움 등 전국 각지에서 활동하였다. 이순신장군이 <난중일기>에서 말하기를 "호남이 없으면 국가(조선)도 없다"고 기록한 배경이다.

    이순신과 조선수군이 호남을 보루로 일본군이 한강을 통하여 한양과 연결되는 서해진입을 완전히 차단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이런 이순신 장군도 결국 선조와 조선조정에 의해서 음해를 당하여 죄인취급을 당하고 감옥에 갇혔다가 죽음직전에서 살아 나지 않았던가!이순신이 당시 살아 나지 못했다면 이미 일본은 조선을 삼키고 식민지 통치를 앞당겼을 것이다.김대중도 박정희가 현해탄에 빠트려 죽이려는 순간 살아 나지 않았던가! 당시 죽음을 당했다면 민족통일의 기반을 다진 6.15남북공동선언도 없었다.

    호남은 세계적으로나 한반도지역에서도 1만년에 가까운 고인돌들이 최대로 밀집분포된 지역이다.그것은 호남지역이 역사나 문명사적으로 유구한 땅이라는 의미가 된다. 고인돌은 마고전설로 가득하다.마고는 12한국연방을 건국한 환인들의 선조 유인씨와 유인씨의 선조 황궁씨가 떠난 마고성의 통치자로서 한민족의 시왕모다(신라 박제상-부도지).마고성의 위치는 제주도의 창조신이 마고이고 세계 개들의 조상이 유전학적으로 진도인 만큼 진도부근을 중심으로 하는 서해지역이라고 보아야 한다. 마고성이 바다가 되면서 가까운 호남지역으로 많이 이주하여 고인돌들을 만들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호남의 남방식고인돌 양식은 석관을 만들어 시신을 땅에 묻고 주변에 돌을 쌓는 양식으로 북방 한민족의 피라미드와 적석목곽분의 원형이다.

    호남은 지형적으로 농산물과 해산물 등 먹거리가 풍부하여 음식문화가 발달하였고 배를 곪지는 않아 일찌기 문화가 발전한 지역이다.서해로 이어진 영산강지역은 고대 해양무역항이다. 또한 단군조선연방의 붕괴이후, 위만조선을 삼킨 한나라의 동방진출이 본격화되자,요서.만주지역의 진.번조선세력이 한반도지역으로 이주하여 리틀3한을 형성했을 때, 한반도남부지역을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통치했던 마한(마조선)세력의 최후 거점지역이 영산강지역이었다.백제이전의 시기로 영산강지역에서 출토된 왕관과 마한의 무덤양식인 옹관묘 등이 유적유물들이 이를 고고학적으로 입증하고 있다.






    [영산강지역에서 출토된 금동관] 외관은 나뭇가지 모양의 입식(立飾) 3개를 테두리에 꽃아 세웠으며 내관은 반원형동판 2장을 맞붙여 만들어 기본형태는 신라금관과 같으나 입식이 신라관의 출자형(出字形)이 아닌 복잡한 초화형(草花形)이어사 양식상 고식(古式)으로 보인다. 더욱이 내관인 모(帽)는 전북 익산 입점리와 일본 웅본현 국수정 강전선산고분(日本 熊本縣 菊水町 江田船山古墳)에서도 비슷한 예가 출토된바 있어 백제와 일본과의 문화교류를 살피는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또한 영산강유역에서 독특하게 꽃피웠던 옹관고분문화를 연구하는데 모두(冒頭)를 장식하는 유물일 뿐만 아니라 당시의 영산강유역 토착세력과 문화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역사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서남해 지역에 위치한 마한은 한반도3한의 실질적인 지배세력으로 위만에게 나라를 빼앗긴 번조선의 마지막 왕 기준의 세력이 바다(서해)를 건너 "마한을 파하고 왕에 오르니 '한왕'이라 칭했다..후대가 끊어져 다시 마한출신이 왕을 이었다"는 [후한서-한전][삼국지 위지-동이전]의 기록으로 보아 단군조선의 붕괴이후 번조선유민세력과 한반도(마조선)세력이 통합하여 서남해 지역에 개국한 나라가 마한이라 할 수 있고, 부여왕 구태의 세력이 한강지역의 온조세력을 통합하여 백제세력력이 강성해지자, 밀려서 영산강지역까지 이주해 왔다고 봐야 한다.

    진조선과 번조선이 붕괴된 후 요서.만주지역에서 한반도로 이주해 온 진.번조선유민들(진.번한)이나 부여유민들(백제.사로국)은 모두 마한의 진왕(마조선의 단군)에게 거주지를 얻어서 살았다.같은 단군민족이였으니까 마한은 땅을 거저 내 주었던 것이다.그런데 오늘날 이러한 민족공동체 정신을 망가뜨리고 오로지 자신들만 독점하겠다는 자들이 존재하니 민족분열세력이요, 침략수탈하는 본성을 가진 제국주의적인 오랑캐들이라 할 것이다.이들의 유전인자들은 필자가 <우리가남이가 유전인자 추적>에서 밝힌 바와 같이 4-5세기 고구려와의 전쟁과정에서 이탈한 전연(모용선비족의 나라)의 기마부대가 동해안을 따라 경주지역으로 들어와 사로국을 무너뜨리고 신라를 개국한 초원세력 흉노-선비족이다.

    초원세력은 기원전 1200년경에 단군조선에서 이탈하여 단군조선의 통치구조를 모방(선우아래 좌.우현왕을 두고 통치/단군조선도 단군천황아래 좌.우현왕을 두고 통치)하여 초원을 지배했다. 유라시아 지역을 지배한 초원세력은 전쟁을 통한 약탈로 생존을 유지해 간 세력으로 유전인자의 형질자체가 정착하지 못하고 이주성이 강하고 호전적이고 폭력적이라 할 수 있다.이런 소수의 초원세력이 한반도로 들어와 패거리문화를 형성함으로써 민족분열의 주범이 되어 왔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유전인자들의 망동을 바로 잡기 위해서는 단호한 결단성이 필요하다 할 것이다.

    이렇게 세계적으로나 한반도지역적으로나 호남은 역사문명사적 위상이나,민족.민주화의 위상이나 한민족에게 있어서는 위대한 애국애족정신과 인류공영정신이 투철한 지역이라 할 것이다.

    동족인 북한과는 6.15/10.4남북공동합의에 기반하여 평화적으로 통일하고, 일본도 과거사에 사죄하고 피해배상을 하고 독도영유권 주장포기와 역사왜곡을 중지한다면 얼마든지 사이좋게 지낼 수가 있고, 미국도 한반도에서 군대를 철수하고 핵폐기를 통하여 남한을 볼모로 핵전쟁터로 만들지 않고 북한을 인정하고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경제협력관계로 나선다면 얼마든지 미국과 잘 지낼 수가 있으며, 지나국도 우리 민족사를 왜곡하지 않고 100년 전에 일본제국주의가 국제법을 위반하여 지나국에 넘겨버린 한국의 땅 간도를 반환한다면 얼마든지 사이좋게 지낼 수가 있으며, 러시아도 100년전 한국영토인 연해주를 반환한다면 얼마든지 사이좋게 지낼 수 있다는 공존공생하자는 홍익인간-대동세계이념을 가지고 있는 지역이 또한 호남의 애국애족정신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나라와 민족을 침략.수탈하는 외세와, 그
    외세에 비굴하게 기생하여
    권력과 기득권을 유지하면서 동족을 주적으로 삼고 나라와 민족을 분열시키고, 나라를 망치고 있는 내부의 적들을 충무공 이순신의 정신으로 모조리 소탕해야 한다!



    13척으로 130여척의 일본수군을 궤멸시킨 세계 해전사에 길이 빛날 명량대첩



    전투란 숫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지형지물을 최대한 이용해도 승리한다. 절망하지 않는 지휘관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명랑해전을 앞두고 장군께서는 이러한 말씀으로 13척으로 전투에 임하는 조선수군의 기운을 높이지 않았을까 싶다.
    "하늘이 우리에게 준 다시 없는 기회다!강한 물살에 쇠줄을 확실히 걸어라!
    수백척의 적이라도 절대 넘어 오지 못한다. 그러나 물살이 우리에게 유리하게 흐르기 때문에 비록 13척이지만 한데 모아진 적의 수군을 얼마든지 궤멸시킬 수 있다.다만 용기가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다. 나와 생사고락을 함께 했던 사랑하는 동지들에게 말한다."죽고자 하는 자들은 반드시 살고, 살고자 몸부림치는 자들은 반드시 죽을 것이다. 하늘과 나를 믿고 각자 위치에서 이번 전투에 용맹하게 임하라"



     

    [음악자료:불멸의 이순신 OST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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