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전 대통령마지막 해외 출장지는 중국이었다. 지난해 5월5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 부주석을 만난 김 전 대통령은 중국이 6자회담 재개를 위해 더 적극적인 역할을 해줄 것을 호소했고, 시진핑으로부터 긍정적인 답변을 얻었다. 그로부터 정확히 일 년 뒤인 지난 5월5일, 같은 장소에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이 마주앉았다. 교착에 빠진 남북관계를 되살리고 한반도의 운명을 어떻게든 우리 스스로 개척해보고자 생애 마지막 혼을 불살랐던 DJ의 노력이 일 년 만에 수포로 돌아간 셈이었다. 북·중 정상회담 등으로 한반도 정세가 다시 요동치는 이즈음, 김대중 자서전 탈고를 목전에 둔 김택근 편집위원(경향신문 논설위원)을 만나보았다.

자서전은 언제 나오나?
5월 말이면 최종 원고가 출판사로 넘어간다. 책은 7월께 나올 것 같다. 이와나미 출판사와 계약이 돼 있어 일본어판도 함께 나올 것이다.

김 전 대통령이 자서전 필자로 김 위원을 직접 ‘낙점’했다고 들었다. 본래 친분이 있었나?
전혀. 1987년 대선에 출마한 DJ가 언론사를 돌며 인사를 하고 다녔는데, 그때 나와 악수하는 사진이 경향신문에 실린 일이 있다. 인연이라면 그게 유일한 인연이다(웃음). 2004년 4월 최경환·김한정 비서관이 찾아와 “대통령이 만나보고 싶어하신다” 하기에 깜짝 놀랐다. 아마 내가 썼던 칼럼들을 챙겨 보셨던 것 같다.

   
ⓒXinhua
지난해 5월 김 전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국가 부주석(오른쪽)을 만났다. 이것이 마지막 해외 방문이었다.
자서전을 남기고 싶어한 건 대통령의 뜻이었나? 김 전 대통령은 생전에도 40권이 넘는 책을 직접 집필하지 않았나?

그 책들과 이번 자서전은 확연히 다르다. 대통령의 출생부터 대통령 퇴임 후까지 85년 전(全) 생애를 기록한 책이다. 내용도 매우 방대해서 200자 원고지로 5600장 분량이다. 대통령은 자서전에 강한 애착을 보이셨다. 공정하게 기술해 역사에 남겨야 한다고 누누이 강조하면서 읽기에 편하고 재미도 있어야 한다고 주문하셨다. 대통령이 서거하신 뒤 우연히 2006년·2008년·2009년 일기장을 찾았는데 여기에도 자서전 얘기가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신년 초마다 “자서전을 잘 만들어야겠다”라고 다짐하곤 하셨다(세상에 아직 공개되지 않은 이들 일기는 이번 자서전에 수록될 예정이다-편집자).

김 전 대통령은 자서전 작업에 어떻게 결합했나?
2006년 7월~2007년 10월 1년3개월간 총 41회에 걸쳐 대통령의 구술을 녹음하고 녹화했다. 내가 미리 질문지를 드리면 DJ가 거기 답변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대통령은 질문의 핵심을 비껴가는 법이 없었다. 깊이 생각하고 답변하셨다. 어느 때 무엇을 얘기해도 흐트러짐이 없었다. 그것은 진실을 얘기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늘 감동을 받곤 했다. 당신의 치부라 할 만한 것들도 구술에서 솔직히 밝혔다. DJ가 서자(庶子)였다는 건 이번 자서전에서 처음 공개되는 얘기다. 재임 말기 아들들의 구속에 대한 소회도 담겨 있다. 사후 발견된 일기에 이런 대목이 있어서 가슴 아팠다. “큰아들은 아프고, 둘째는 선거 나갔다 떨어지고, 막내는 일자리가 없다.” 

생전에 DJ는 ‘준비된 대통령’이라는 찬사와 ‘대통령병 환자’라는 비난을 동시에 받았다.
구술 과정에서 DJ는 1987년 후보 단일화 실패의 책임을 자기 혼자 뒤집어쓴 것에 대한 섭섭함을 내비쳤다. 잘못은 인정하지만 자신에게만 비난이 집중되는 것은 좀 부당하다는 거다. 자서전에는 YS를 언급한 대목도 나오는데 3당 합당 이후에는 DJ의 관심사에서 YS가 사실상 완전히 사라진다. 어찌 보면 DJ는 이 일로 YS에게 일종의 연민의 정을 느꼈던 듯하다. 한때의 민주화 투사가 사실상 무덤으로 제 발로 걸어들어간 셈이니까. DJ가 병상에 있을 때 YS가 “화해했다”라는 표현을 썼는데, 내 생각이지만 DJ에게 YS는 화해의 대상은 아니었으리라 본다. 용서의 대상이라면 몰라도.

   
ⓒ시사IN 백승기
김택근 편집위원(위)은 DJ가 직접 ‘낙점’한 자서전 필자이다.
DJ 스스로는 어떤 대통령으로 평가받기를 원했던 것인가.

대통령은 당신의 정치적 삶과 재임기 활동 내용이 네 가지에 집중된다고 하셨다. △민주주의 완성 △관치경제·정경유착을 근절하고 투명한 시장경제 확립 △생산적 복지를 통한 서민생활 안정 △대북 화해협력과 평화통일 정책(햇볕정책) 실시가 그것이다. 대통령은 이런 철학과 정책, 신념이 일관되게 드러나기를 바랐다. 개인적으로 DJ가 정말 대단한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한 예로 DJ가 IT 혁명을 구상한 것이 1983년이다. 감방에서 앨빈 토플러의 <제3의 물결>을 읽고 ‘내가 대통령이 되면 한국을 정보통신 강국으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는 거다. 이런 오랜 꿈이 있었기에 대통령 취임 직후 외환위기라는 악조건 속에서도 IT 혁명을 밀어붙였다. 대통령은 전봉준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 중 하나로 꼽곤 했다. 시골 훈장이 백성을 위해 세상을 바꿔보겠다고 나섰다는 거다. DJ도 세상을 바꾸려는 의지가 대단했던 사람이다.

북한 미사일 위기, 천안함 사고 등이 터지면 보수 측은 DJ 때부터 시작된 ‘대북 퍼주기 정책’ 때문에 이런 일이 생겼다고 비난한다.
한반도 문제에 관한 DJ의 메시지는 일관되고도 명확하다. 북한을 포용해 국제사회로 이끌어내는 것이 평화와 국익에 도움이 된다는 거다. 북한이 핵을 완전히 포기하는 대신 미국은 북한의 안전을 보장하고 경제 제재를 해제할 것, 이것이 동시에 이루어질 것, 6자회담은 이에 보증을 설 것. 이것이 DJ가 제시한 해법이다. 그런 의미에서 DJ는 참여정부 시절 대북 송금 특검에 대해서도 비판적이었다. 평화와 국익을 위한 통치권자의 행위는 사법부의 심판 대상이 되지 않는다며, 대북 송금 특검은 하지 말았어야 한다고 했다. 수에즈운하 주식을 내각 몰래 사들여 영국에 막대한 국익을 안긴 디즈레일리 총리를 언급하기도 했다. 이런 게 사법 처리 대상이 되면 다른 나라들이 한국 정부를 어떻게 신뢰하겠느냐는 거다.

DJ가 자서전 초고를 보았나? 출판계 얘기를 들어보면 DJ가 꼼꼼하기로 유명한 필자였다던데 초고를 본 반응은 어떠했나?
자서전이 크게 출생~대통령 취임 직전까지를 다룬 1부와 대통령 재임기~퇴임 이후까지를 다룬 2부로 나뉘는데, 대통령이 1부 원고는 전부 보셨다. 나도 소문을 들어 좀 긴장했는데 의외로 크게 고치신 부분은 없었다. 나중에 발견된 일기에 보니 “김 사장(김택근 편집위원이 한때 ‘미디어칸’ 대표이사를 지낸 것을 지칭-편집자) 글솜씨가 좋은 것 같다”라는 대목이 있어서 가슴을 쓸어내렸다(웃음). 당신과 비슷하게 내 문체가 간결한 편이라 동질감을 느끼셨던 것 같다. 지난해 7월, 2부 집필에 들어가기 전 DJ가 무슨 맘을 먹었는지 휴가 중이던 나를 불러 자서전 편집위원 임명장과 만년필을 주셨는데, 그로부터 나흘 만에 병원에 입원해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나셨다(곁에 있던 최경환 비서관은 “그것이 대통령이 생애 마지막으로 수여한 임명장이었다”라고 거들었다-편집자). 자서전 작업을 마치고 나면 김대중 평전을 한번 써보고 싶다. 객관성의 압박에서 벗어나 내가 보고 느낀 인간 김대중, 대통령 김대중을 한번 표현해보고 싶다. 대통령을 보고 있자면 ‘한 인간이 어떻게 저렇게까지 살 수 있나’ 감탄스럽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했다. 쓰러지는 마지막 순간까지 국가와 민족을 위해, 정말이지 죽도록 일했다. 사실, 자서전을 처음 쓸 때는 너무 막막하고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럴 때면 ‘저렇게 산 사람도 있는데 그걸 옮겨 쓰는 걸 못하겠나’ 스스로를 채찍질하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