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우상 최동원

    도야지꿀 2010. 12. 10. 18:00

    [스포츠] 해태 타이거즈의 몰락 그리고........


    2010. 12. 10. 금요일

    체육불패 백골프

     

     

    편집자 주

     

    게시판의 글이 3회 이상 메인 기사로 채택된 '백골프'님께는 가카의 귓구녕을 뚫어 드리기 위한 본지의 소수정예 이비인후과 블로그인 '300'의 개설권한이 생성되었습니다. 조만간 필진 전용 삼겹살 테러식장에서 뵙도록 하겠습니다.  

     

     

    필독님의 축구 이야기 참 재밌게 보았다. 축구를 단순히 축구만 가지고 지지고 볶는게 아니라 그나라 역사와 문화, 정치 사회경제적 배경과 맥락, 결들과 함께 이야기했다는 점이 흥미와 감동을 주었는데 사실 야구도 그렇다, 한국야구와 한국프로야구를 이야기할 때도 그런 배경들과 함께 이야기할 수 있고 또 때론 그렇게 해야만 한다.

     

     


    광고아님

     

    일단 한국이 프로야구를 한다는 것부터가 적지않게 우리의 정치사회적 배경을 말해준다. 야구가 가장 인기 있고 프로야구를 하는 나라!! 이것은 단적으로 한국이 자본주의 사회고 또 미국따까리이며, 체제가 비교적 안정된 나라라는 것을 말해준다.

     

    가장 길게 시즌 운영하는 프로야구는 체제불안한 나라라면 할 수가 없고 야구란 전형적인 자본주의 스포츠고 한국과 대만, 일본, 카리브해안 연안 중남미 국가들 대부분 미국 위성국이다, 쿠바라는 예외를 말할 수 있지만 사실 쿠바도 혁명 전까지 미국따까리였고. 그리고 쿠바는 야구를 가장 좋아하지만 사회주의 국가답게 프로야구를 운영하지는 않는다.

     

    WBC에서 보였던 한국야구의 괴물 같은 능력, 단기전에서의 집요함과 투지뒤에는 우리 근현대사적인 배경도 진하게 묻어난다. 한국야구는 사실상 감독 김파이브가 이끌어왔다. 실향민 출신에 김응룡, 재일교포 출신의 김영덕과 김성근, 그리고 김인식과 김재박.

     

    김응룡

     

    다들 사연 많은 사람들이고 설움과 배고픔, 차별을 먹고 자란 사람들이다. 어머니 두고 월남해와 한국사회에서 끈하나 없었던 김응룡, 재일교포로서 산 김영덕과 김성근은 말할 것도 없다 그들이 살았던 시대의 아픔은 우리 한국사회 모두가 온몸으로 겪었던 아픔이고.

     

     김인식은 철저히 비주류였고 김재박은 야구 못한다고 고교 진학할 무렵 고향 대구에서 쫒겨나다시피해서 서울로 왔다, 또 공교롭게도 고교졸업후 야구 못해서 갈 데가 없어서 창단되는 영남대 야구부입단을 위해 고향에 내려갔는데 그 때 본인이 느꼈던 참담함을 스스로 이야기할 때 항상 눈물 그렁그렁한 상태에서 이야기하더라. 김파이브가 살았던 세월과 시대는 단순히 사연 없는 사람이 어딨어하고 넘어갈 정도가 아니다.

     

    김재박


    그렇게 살아왔고 항상 생존이라는 두 글자만을 머리에 아로 새기고 살았던 사람들, 물불 안가리고 언제든 벽에 똥칠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이 한국야구를 만들어왔다. WBC에서 우리가 보였던 투지와 괴물 같은 집요함 뒤에는 그런 우리의 근현대사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일이 어딨어 당장 오늘 죽기 살기로 싸워야지. 투수 혹사고 나발이고 무조건 이겨야지, 항상 이렇게 싸우는 습관이 몸에 밴 사람들, 혹자는 한국프로야구에서 포스트시즌이 가외적인 의미는 없고 지나치게 비중이 높아서 단기전에 단련된 게 아닌가 하는 의견도 내밀었는데 국제대회는 단기전 맞다. 하지만  단순히 한국프로야구에서 포스트시즌 비중이 높아서?? 그 양반들은 정규시즌도 한 경기 한경기 한국시리즈처럼 하는 분들이었다.

     

    더구나 WBC의 투구수 제한 규정은 한국에 더 큰 호재였다. 김응룡과 김성근, 김인식이 잘하는게 뭐냐 한박자 빠른 투수교체!!, 쏟아붓기식 마운드 운영!!이다. 투수 교체해야할 시점 읽는 데에는 세계최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고 투수 바꾸고 어쩌고 할 시점에서 조금도 망설이지 않는 승부사들. 그런데 투구수 제한하고 교체를 자주 해야하는 WBC 규정은 한국야구에 날개를 달아줬다.

      

    자 이제 제목에 쓴대로 해태이야기를 해보자.

     

    해태 타이거즈 우승 아홉번이나 했던 한국야구의 지배자들.

     


    그들이 우승 아홉번 한 거 그리고 또 몰락한거.

     

    왜 그들이 강했고 한국야구를 지배했고 몰락했는지등을 두루 살펴보고자하면 역시 길게 서론에서 말한대로 우리 사회의 역사와 정치사회적 배경을 이야기 하지 않을 수 없다.

     

    해태가 왜 강했고 야구 잘했는가??

     

    일단 우수한 선수들이 많았다. 괴물 선동렬에 선동렬보다도 더 충격적인 구위를 보이기도 했었던 김정수, 그리고 문희수와 조계현, 이강철, 신동수 거기에 송신영과 더불어 한국야구 최고의 미들맨 고흥출신 장사 송유석까지 이런 괴물투수진에 끝내주는 놈 터미네이터 김성한과 야구천재 이순철, 해결사 한대화, 김종모, 김봉연등 당시 선수 하나 하나가 너무나 우수했다, 이런 투수들을 잘 꽨 괴물 감독 응룡할배도 역시 무시 못하고.

     

    해태야구의 양대 젖줄인 광주와 군산 이야기도 안할 수가 없는데 광주의 따뜻한 기후는 당시 전지훈련 개념이 없었던 아마야구에서 타지역보다 충실한 겨울나기와 훈련이 가능하게 했고 또 이 따뜻한 기후는 유연하고 좋은 어깨를 가진 대형투수들을 나오게했다. 곽원치와 곽태원, 왕첸밍, 장치지아, 첸웨인 끊임 없이 대형투수들이 나오는 대만 야구의 저력 뒤에는 따뜻한 기후가 있다고 보는데 야구는 따뜻해야 여러가지 유리한 법. 광주의 그런 기후들을 무시 못한다.

     

    과거의 군산항


    그리고 군산이라는 도시. 왜색이 진하게 남았고 항구 도시 특유의 양아치문화와 야성적인 냄새가 나는 곳, 그리고 많은 실향민들.

     

    야구하면 아시아에선 그래도 일본이고 항구도시 특유의 야성미는 물러서지 않는 투지를 주었던 것같고 조계현등 적지 않은 군산출신 선수들이 실향민집안에서 나온걸로 아는데 그들의 좋은 신체조건과 정신적인 강인함은 분명 그런 것들과 연관이 될 것이다.

     

    그리고 가슴 아픈 이야기지만 5.18이 있었다.

     

     


    사실 단적으로 말해 과거 해태와 같은 팀은 다시 나올 수도 없다고 생각하지만 다시 나와서도 안된다고 생각한다. 피와 한이 맺힌 곳을 연고로 하던 팀, 선수들은 죽을 수는 있어도 질 수는 없다는 각오로 항상 임했고 야구를 통해 호남인들의 한을 풀어주고 달래줘야 한다는 것을 너무도 잘알고 뛰었다. 그것이 특히 가을잔치에서 그들을 괴물로 변하게 했고.

     

    역수를 건너는 형가의 마음가짐도 그들보다 비장하지 않았을 것이다. 해태 선수들은 그렇게 싸웠다.

     

    80년대에서 90년대까지 한번도 5.18에 광주 경기가 없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날 광주에서 왜 경기를 하지 않았는지는 따로 말이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해태라는 팀, 그들이 왜 강했는지를 말하는데 있어서 5.18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광주와 군산에서 나오는 우수한 선수들, 그리고 그런 현대사적인 배경등이 해태를 만들었는데 이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어쩌면 가장 중요한 요소일 수도 있는데 당시 한국프로야구는 사실상 프로라기보다는 세미프로에 가까웠고 실업야구의 떼를 벗지 못했다는 것.

     

    구단의 투자 개념이 사실상 없었고 용병도 없고 FA도 없고 지역고교유망주들 사실상 독점이 가능한 상태, 그런 것들이 없었으면 해태라는 괴물팀이 만들어졌어도 우승 아홉번까지는 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사실상 제일 가난하고 돈 안쓰는 팀이 우승을 독식한다는 것 자체가 프로스포츠에서는 거의 없는 일이다, 어느 정도 프로스포츠가 자리 잡으면 결국 돈과 팀전력, 성적은 거의 정비례하게 마련. 그런데 당시 한국프로야구는 사실 프로야구 아니었다.

     

    그럼 지금은 프로야구냐 이 새끼야하고 반문할 지 모른다, 사실 지금도 100% 프로야구라고 하기는 어렵다, 구단 자체가 이익을 낼 수 있는 경영단위가 되는 것이 아직도 요원한 현실에선.

     

    그런데 한국프로야구는 태동하면서 스물아홉이라는 나이를 먹으면서 프로스포츠라는 방향으로 성장을 하고 발전을 해왔던건 사실이다.

     

    그걸 단적으로 보여주거나 그런 발전과 변화의 전환점을 들어보자면  91년 쌍방울의 창단과 94년 엘지야구의 대박, 98년 FA와 용병도입등을 말해볼 수 있겠다.

     

     

    쌍방울 레이더스를 살리려는 팬들

     

     

    홀수팀 꼴랑 7개팀끼리 치고 박고 하던 리그에 8번째 구단이 들어왔다. 이제 어느 정도 덩치를 갖추게 되었다(내실은 차치하고) 94, 95년 한국프로야구가 인기에서 최고호황기를 달린 시절이 있었는데 쌍방울의 창단으로 멍석이 깔린 일이었다.

     

    그리고 공격적인 투자와 적극적인 홍보마인드를 가진 프런트 주인공인 엘지가 야구판에 들어왔고 94년에 인기의 정점을 달렸다.

     

    사실 해태의 한국야구 지배는 한국야구 발전을 적지 않게 저해해왔다. 돈 안쓰고도 잘하는데 누구 야구단에 투자할려고 하겠는가 그리고 구단은 연봉협상에 니들이 해태선수들보다 야구 잘해? 라고 연봉인상을 원하는 선수들을 찍소리 못하게 해왔는데 공격적인 투자와 제자리 걸음인 선수들 연봉,  이건 한국야구 발전을 적지 않게 방해했다.

     

    프로라면 공격적인 투자를 해야하고 프로라면 주전선수들이 버는 돈은 분명 일반인들에게 선망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데 제일 가난한 팀 해태, 연봉을 무슨 만원단위까지 끊어주는 쇼핑 채널스러운 모습에, 모자라는 부분을 과자 선물세트로 메꾸기도 하고 술먹여 놓고 연봉계약등을 하는 해태가 매번 우승해왔다.

     

     

    와, 연봉이다~!

     


    그런 한국 프로 야구판에 엘지가 들어왔고 그들은 공격적으로 투자하고 홍보하고 인프라를 만들어 한국야구 최고 인기팀으로 떠올랐다.

     

    그리고 98년즈음해서의 이야기를 안할 수가 없다.

     

    용병 그리고 FA제도가 도입되었다. 그리고 고교우선지명제도가 폐지되는 방향으로 드래프트가 개선되었다. 용병은 철저히 돈싸움이다 그리고 FA제도 도입!! 입단해 거의 한구단에 노예상태로 종속되었던 선수들이 더 돈을 많이 주는 팀으로 갈 수 있게 되었다.

     

    사실 한구단에서 은퇴할 때까지 뛰어왔다는 것 자체가 우리 실업야구요~라고 했던 것인데 그것이 바뀌었다. 그리고 고교 우선 지명제도 폐지!!!. 지역연고 고졸선수들은 프로야구 출범 이래 90년대 초반까지 무제한으로 영입이 가능했다.

     

    또 그 범위가 축소되었지만 97년까지 1차지명 이외에 3명을 연고 고교내에서 지명해서 수혈할 수 있었는데 무슨 유스팀을 만들어서 직접 일구고 투자해 키운 선수들이 아닌데도 독점적으로 소유해왔다는 것 부터가 프로의 논리와는 모순되는 일이었는데 그것이 시정된 것이다.

     

    해태가 잘나가던 때 용병제도가 있었더라면 타팀과 전력차가 쉽게 유지 될 수 있었을까? 그리고 매년 연봉협상으로 얼굴 붉히던 선수들이 FA때도 가난한 팀에 남아 있고? 그리고 해당연고 내에 선수를 독점적으로 소유하지 못하게 되면 광주와 군산의 우수한 선수들이 타지역 팀으로 가게 되는데 그럼 애초 최강팀 해태가 등장할 수가 있었을까?

     

    사실 98년은 여러가지 한국사회에서 전환점이 되는 해이다. 사실 미래의 후손들과 력사에서 그 시기을 어떻게 평가할 지 무섭기도 하고 빨갱이 소리 듣던 김대중이 당선되어서 국정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김대중의 대통령 당선 사실, 해태를 응원하던 많은 사람들의 한이 어느 정도 풀리게 하지 않았는가? 공교롭게도 해태는 98년부터 우승을 하지 못하다가 김대중이 죽던 작년에 우승했다.

     


    그리고 IMF 논리대로 사회가 개조되기 시작했다. 러시아와 북한, 만주국 냄새 물씬 풍기던, 국가 사회주의 비슷하던  나라 모습이 변했다. 이제 철저히 정글자본주의, 승자독식의 자본주의로 가게 되었고 공공영역, 공공재의 범위가 많이 줄었다.

     

    사실 밑에 글에서도 한국인들이 자신의 구매력에 비하면 과분하게 프로스포츠를 누려왔다고 했는데 어쩌면 야구를 비롯한 프로스포츠가 공공재의 성격도 띄고 있었던게 사실이다. 하지만 세상이 변하게 되었고 야구에서 공공재적인 성격을 찾아보긴 힘들게 되었다.

     

    이렇게 변해버린 세상. 어디든 철저한 자본의 논리를 피해갈 수 없게 되었고 야구계도 예외가 아니게 된 상황.

     

    이제 가난한 팀이 연이어 우승하는 모습 볼 수 없게 된 것이다.

     

    해태가 한국야구를 지배했던 시기가 아직 실업야구 냄새가 많이 나고 프로라기 하기 힘들었다고 했는데 그렇다고 그들과 그들의 업적을 폄하한다고 곡해하지는 마라.

     

    스포츠를 꼭 프로의 형태로 즐겨야한다고 생각치 않고 아마스포츠도 현장에서 많이 즐기는 사람이며 또 프로가 내세우는 흥행논리가 필연적으로 가져오는 갖가지 야바위스러운 작태와 순수한 땀의 의미를 갈수록 찾기 힘들어지는 것에 대한 문제의식 많은 사람이니까.

     

    약물천국인 메이저리그는 중남미 야구자원을 노략질해서 굴리고 있고 올림픽 정신은 개나 줘버린 IOC. 심판을 매수하고 경기를 조작하고 마피아가 끼어 들었는데도 사실상 별 징계 없이 넘어간 세리에A 도박파문으로 팀이 해체된 대만의 사례를 보면 그들은 최소한의 부끄러움이란 게 있는가 싶기도 하다. 세리에 A구단이 벌어들이는 돈이 얼만데 그러냐고? 그런 생각 자체가 썪었다는 거다. 돈 많이 벌어들이고 중계권료 많이 벌 수 있는 리그라고 저런 개짓거리들이 묵인되어야 한다는 것인가?

     

    98년이 한국야구에서 프로로서 성숙해지는 전환점이 되는 해였다고 말했는데 용병이 들어올 때 용병만 들어왔나, 약물도 들어왔다. 또 약물의 도입도 프로로서 성숙해지기 위해 딛고 일어서야 할 단면이라고 할 수도 있고.

     

    흥행논리로 돌아가고 판돈이 커지는 스포츠시장이란 게 원래 그런것이다. 더 재밌게 되고 더 많은 사람들이 취직되고 더 많이 즐기게 되지만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울 수밖에 없는. 스포츠가 가지는 본질과 존재의의 자체가 없어질 수 있는.

     

    이제 정리 좀 해보자.

     

    아니 그냥 이런 말 덧붙이면서 글을 매듭 짓고 싶다.

     

    어쩌면 해태의 전성기는 이렇게 기억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그들은 호남인의 한을 노래했고 또 깡패자본주의 논리에 물들지 않은 시대의 모습을 노래했다고. 그래서 그들은 최고였고 스포츠팬들의 영원한 로망일 수 있다고.

     


    체육불패
    사업자 정보 표시
    | | | 사업자 등록번호 : -- | TEL : -- | 사이버몰의 이용약관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