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19대 대통령 안희정

    도야지꿀 2011. 6. 14. 17:04

    문재인의 운명] Ⅱ. 수사 전후



    ■ 한 번도 화내지 않고 달관한 것처럼 끌어안아

    그 시기 대통령은 좀 이상했다. 당시 대통령도 사실관계를 정확하게 모르다가, 사실관계 파악을 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우리와 같이 사실관계를 알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럴 때 평소 같으면 굉장히 야단을 치고 화를 내실만도 한데, 단 한 번도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끝내 우리 앞에서는 큰 소리 한번 안 치셨다. 나는 그게 이상하게 보였다. 도저히 달관할 수 없는 일을 달관한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결국은 다 내 책임이다. 내가 오랫동안 경제적으로 무능했고, 장래에 대해 아무런 믿음을 못주니 집사람과 정상문 비서관이 그렇게 한 게 아니겠는가. 다 내 잘못이다”라고 우리에게 말했다. “나는 오래 정치를 하면서 단련이 됐지만, 가족들은 단련시키지 못했다”는 말도 했다.

    대통령은 여사님뿐 아니라 정상문 비서관에 대해서도, 비록 당신 모르게 벌어진 일이지만 모두 끌어안으려 했다. 정상문 비서관에게는 당신이 시켜서 한 일로 진술하라고 시켰다. 정 비서관은 대통령 말을 듣지 않았다. 그러자 글을 써서 당신이 한 일이라고 밝히기까지 했다. 얼마 후에는 다시 글을 올려 “여러분은 저를 버리셔야 한다”고 말했다.

    그 말은 진심이었다. 대통령은 우리를 보는 일조차 민망해 하고 면목 없어 하셨다. 내게 그런 심정을 직접 토로하기도 했다. 결벽증이라고 할 정도로 자신에게 가혹했던 분이 당시 상황을 얼마나 받아들이기 힘들었는지 나는 너무 잘 알고 있었다.

    ■ 인내로 일관한 검찰수사 대응, 적절했는지 회한

    대통령과 우리는 그때 엄청나게 인내하면서 대응했다. 그 일을 겪고 보니 적절한 대응이었는지 후회가 많이 남는다. 너무 조심스럽게만 대응한 게 아닌가, 대통령이 정말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속 시원하게 대변해 드리지 못한 게 아닌가…. 정면으로 ‘전직 대통령을 표적으로 삼은 비열한 정치적 수사다!’라고 하면서 문제를 제기하고, 때로는 수사를 아예 전면 거부한다든지 맞대응을 했어야 되지 않았나 하는 회한이 있다.

    물론 그랬으면 더 나았을지, 대통령이 더 후련해하고 더 힘을 내게 됐을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어쨌든 ‘당신의 마음이 그런 줄 알았으면 우리라도 몸부림을 쳐봤어야 했는데’라는 생각이 지워지지 않는다.

    ■ 오만한 검찰, 아무 증거도 없이 소환…대통령 놀라운 자제력

    이인규 중수부장이 대통령을 맞이하고 차를 한잔 내놓았다. 그는 대단히 건방졌다. 말투는 공손했지만 태도엔 오만함과 거만함이 가득 묻어 있었다. 중수1과장이 조사를 시작했다. 대통령은 차분하게 최선을 다해 꼬박꼬박 답변을 했다. 대통령의 절제력이 놀라웠다. 검찰의 조사를 지켜보면서 검찰이 아무 증거가 없다는 걸 거듭 확인할 수 있었다. 박연차 회장의 진술 말고는 증거가 없었다. 대통령과 박 회장 말이 서로 다른데, 박 회장 말이 진실이라고 뒷받침할 증거를 전혀 갖고 있지 않았다. 심지어 통화기록조차 없었다. 통화기록이 없다는 것은 통화한 사실이 없다는 것이었다.

    대통령의 절제력은 조사가 끝난 후 박 회장을 만났을 때 더욱 놀라웠다. 대통령은 따뜻하게 인사를 건넸고, 그 상황에서도 그를 위로했다.

    대통령은 돌아가시기 전까지도 박연차 회장에 대해 원망이나 서운한 말씀을 한 번도 안 하셨다. 박 회장도 버티다가 도저히 어쩔 수 없는 궁지에 빠진 것으로 이해를 했다. 박 회장이 언젠가 자유로워지면 모든 진실을 털어놓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 변호인단 모두 무죄 확신…그래서 서거 더 충격

    그 날까지의 과정이 견디기 힘들어서 그렇지, 막상 검찰이 기소를 하고 나면 법원에서의 승부는 자신을 했다. 검찰과 언론이 아무리 ‘여론재판’ ‘정치재판’을 해도, 법은 법이다. 수사기록의 부실함을 덮을 수는 없는 법이다. ‘사실’이 갖고 있는 힘이 있기 때문에 무리한 수사나 조작은 한계가 있다. 그 사건이 그랬다. 이길 수 있었다.

    검찰의 대통령 소환 조사는 마지막 수순이었다. 그러면 곧바로 신병처리를 하든가, 불구속 기소라도 하든가, 아니면 무혐의 처리하는 게 정상이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 검찰 조사가 끝난 이후에도 아무 처리를 못한 채 질질 끌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검찰도 공소유지가 될 지에 대한 판단을 해 봤을 것이다. 그 상태에서 영장을 청구하는 것은 물론 어렵다. 영장이 기각되면 검찰이 그 동안 해왔던 모든 수사가 무너져버리는 셈이 된다. 불구속기소를 하더라도 공소유지가 쉽지 않다고 판단한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아무 처리도 못하고 끌기만 한 것이다. 언론을 통한 모욕주기와 압박 외엔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대통령이나 변호사들 모두, 검찰이 기소하더라도 무죄를 받는 것엔 문제없을 것으로 확신하고 있을 때였다. 대통령이 그렇게 자신을 모두 던져 버릴 결심을 하고 계신 줄은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 가난하게 떠난 대통령

    대통령은 어쩌다 그런 곤경에 처하게 됐을까. 나는 대통령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는 가난했다. 가난이 그를 공부에 매달리게 했고, 가난이 그를 인권변호사의 길로 이끌었다. 그가 가난하지 않았다면, 자신처럼 힘들었던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지 않았을지 모른다. 가난하고 억눌린 사람들을 돕겠다고 소박하게 시작한 일이 인권변호사였고, 민주화운동이었다. 정치는 그 연장선상에 있었다. 정치에 대한 그의 진정성이 그를 대통령까지 만들었다.

    그래도 여전히 그 자신은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처음에 변호사 하면서 가난에서 겨우 벗어났지만, 다른 가난하고 억울한 사람을 돕는 삶으로 빠져들면서 자신은 도로 가난해졌다. 봉하마을은 외진 곳이어서 땅값이 엄청 싼데도 사저 건축비용이 없어 은행 대출을 받았다. 박연차 회장으로부터 돈도 빌리게 됐다. 대통령은 나에게 “내 자신만 정치적으로 단련되었지, 가족들을 정치적으로 단련시키지 못한 것을 후회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결국은 대통령에게 퇴임 이후의 대책이 따로 마련돼 있지 않았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노 대통령 서거 후 상속신고를 하면서 보니 부채가 재산보다 4억 원 가량 더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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