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하는 봉하마을

    도야지꿀 2011. 8. 3. 14:31

    주영훈 경호본부장이 봉하에서 보내온 편지
    조회수 : 89
    등록일 : 2011.08.03 10:30

    주영훈 경호본부장이 봉하에서 보내온 편지
    - 칠순 노파의 마음 담긴 야생화...“대통령님은 봉하를 찾은 분들에게 늘…”



    대통령 재직시절은 물론 퇴임과 서거 이후까지 지난 10여 년을 대통령님 가장 가까이에서 보좌해온 주영훈 경호본부장이 얼마 전 정년퇴임을 했습니다. 반가운 것은 앞으로의 시간 역시 대통령님이 계신 봉하, 그리고 여사님 곁에서 비서실장으로 일하며 우리와 계속해서 함께하게 된 것입니다.

    요즘은 봉하캠프나 대통령의 길 걷기 등 봉하에서 열리는 각종 재단행사나 일상에서 주영훈 비서실장을 자주 만날 수 있습니다. ‘대통령 경호’라는 직무 때문에 선입견을 갖는 분들이 많지만 실은 문학적인 감수성과 인간미가 물씬하고 굉장히 큰 이야기보따리를 가지고 있는 재담가입니다.

    오늘은 그가 서울과 봉하의 재단 직원들에게 보낸 편지를 여러분과 함께 나눠보려고 합니다.


    대통령님과 봉하를 사랑하시는 여러분께


    8월이 시작되었습니다. 장마와 무더위에 잘들 지내시는지요. 휴가는 다녀오셨습니까. 새달 인사 삼아 제 주변에서 일어난 작은 에피소드를 전하겠습니다.

    지난주 초 10시 무렵이었습니다. “어느 할머니가 꽃다발과 윷을 갖고 와서, 초소 전경이 받아 대문 앞에 보관하고 있다”라는 인터폰을 받았습니다. 전 그냥 그런가 보다하고 일상에 매달려 오전을 보냈습니다.

    서울에서 오시는 손님을 읍내에서 만나기 위해 대문을 나서다 초소 옆에 놓여 있는 노란 야생화 다발과 쪽지를 보았습니다. 꽃줄기는 손 때 묻은 듯 반들반들했고 꽃은 조금 시들고 있었지요. 쪽지에는 야생화 다발을 주신 분의 지역과 이름, 전화번호, 주민번호(38년생) 등이 쓰여 있었습니다.

    전 ‘어떤 분이 꽃을 보내셨구나’ 정도로만 생각하고 읍내에 다녀왔습니다. 그러다 사무실로 들어오는 길에 그 꽃을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저렇게 놔두면 완전히 시들어 버릴 텐데…’하며 미안하고 불쌍한 마음에 사저로 들고 왔지요. 빈 그릇을 찾아 꽃을 담자 꽃도 새로워지고 그 향기가 너무 좋았습니다.

    빼앗긴 듯이 맡겨 놓고 돌아섰을 할머니가 마음에 걸려 쪽지에 적힌 번호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73세 할머니와 별 볼품없는 꽃다발, 그리고 주머니칼로 깎은 듯 조악해 보이는 윷 등을 보고나서 솔직히 처음엔 속으로 ‘이 할머니가 조금은 정신이 온전치 않거나 무속적인 분이 아닐까’ 생각도 했었습니다.

    그런데 인사말을 나누자 금세 할머니의 기품과 총기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발품으로 야생화를 하나하나 꺾어 꽃다발을 만든 정성이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싸리나무로 만든 아주 자그마한 윷도 정성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냥 버리기에는 아깝고 보낸 분의 정성도 고맙고 해서 봉하재단 가족들에게 꽃과 거기에 담긴 사연을 들려주었습니다. 그리고 시들지 않고 오래 보존토록 좋은 자리를 찾아 놓아두었지요.

    꽃이 참 예쁘고 향기가 그윽해서 무슨 꽃이냐고 묻는 분들이 있었는데, 저 역시 알 수가 없어 답변을 못했습니다. 생각 끝에 쪽지에 적힌 이름이 꽃 이름일 수도 있겠다 싶어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보았더랍니다.

    놀랍게도 “70줄 황혼기에 문학상 신인상에 당선되어 첫 시집을 출판한 시인”이란 내용이 화면에 나타났습니다. 비로소 그 할머니와 꽃에 대해서 그림이 그려졌지요.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그 꽃은 철로 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미국미역취’였습니다.


    ▲ 2008년 8월 3일 오늘, 봉하를 찾은 수많은 방문객들 앞에 선 노무현 대통령

    시간이 지나 화병에 담겼던 꽃은 그 아름다움의 절정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처음에 그랬던 것처럼 조용히 자연의 후생(後生)으로 돌아갔습니다. 뒤늦게 사진으로 담아두지 않았다는 걸 알고 조금 후회를 했지만, 어쩌면 사진이 없어서 더 오래 마음에 담아둘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봉하에 온지 여러 해가 지났습니다. 어느덧 봉하를 찾는 사람들이 제 삶 속에 너무 익숙해져서 이제는 손님으로 보이질 않고 그저 일상의 한 부분으로 지나치고 있었습니다. 대통령님은 “집에 찾아 온 손님인데…” 하며 그냥 돌려보내는 것을 몹시 미안해 하셨지요.

    이제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손님맞이의 마음을 갖추겠습니다. 제가 여기에 왜 있는지를 생각하게 한 사건이었습니다.

    대통령님과 봉하를 사랑하시는 사람사는 세상 여러분. 8월에도 다들 건강하시고 행복하십시오. 아직 휴가 못 가신 분들은 잘 다녀오시고요. 이렇게 인사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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