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당신은 위대한 지도자

    도야지꿀 2011. 8. 31. 16:49

    설훈,우리가 잊어서는 안될 민주화 그 꽃을 피운 피눈물
    조회71 트위터노출 4146댓글0 추천0 스크랩0 11.08.31 01:30 우리들뉴스
    • 뉴스 본문
    • 한마디 함께쓰기
    • 나이테 히스토리
      (1)
    11.08.31 01:30 우리들뉴스

    설훈 민주당 원미(을)위원장을 만났을 때 좀 더 설훈위원장을 알기 위해 지은 책 한권을 요청해서 받았다. 짙은 녹색의 두꺼운 책이었는데 "김대중 내란음모의 진실"이란 제목의 책이고, DJ와 민주화 동지들의 글을 모은 것으로 설훈 위원장이 편집위원으로 참여하고 직접 사건당시를 회고해 쓴 글이었다.
    ▲ 김대중&설훈 외 공저 "김대중 내란음모의 진실"  . 아래 잡지는 한겨레21   © 부천투데이

    1980년의 어느 봄날, 기자는 초등학생일 때였다. TV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했다는 뉴스만 본 기억이 나고 어디에서도 1980년을 알 수가 없었다.
    정동영의원(당시 MBC기자)의 보도되지 못한 518 현장취재 보도 녹음을 2011년에 들었으니 당시 군부정권하 방송이 통제되던 시절, 그리고 어린 초등학생이 알 수 있는 방법조차 없었다.
     
    두꺼운 책을 펼쳐 설훈 위원장의 글 부터 찾아 읽어보았다.
    31년전의 역사 속으로 되돌아가는 타임머신을 탄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설훈위원장의 글은 사실을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었다.
    ▲ "영원히 잊지 못할 그 모습"은 설훈 원미을 위원장이 뵌 적도 없는 김대중 주범의 종범으로 엮여 법정에서 처음 만난 DJ의 모습에서 지은 제목이다.     © 부천투데이

    첫 페이지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영원히 잊지 못할 장면일 것이다. 나는 수많은 얼굴을 대했지만 그렇게 무심한 모습은 본 적이 없다. 그 후로 20년이 지났고, 나에게 많은 날들이 남아 있지만 앞으로도 그런 감정을 느낄 수는 없을 것이다. 화가 난 듯도 하고, 어떻게 보면 슬픔이 한껏 어려 있기도 하고, 또 어떻게 보면 겁먹은 모습같은, 수많은 감정들이 뭉뚱그려져 하나로 합쳐진 얼굴! 내게그분의 첫 모습은 완벽한 '무표정' 그 자체였다."
    "한복을 입고 양팔을 헌병에게 붙잡힌 채, 용산의 육군본부 군사법정에 들어서는 김대중 선생의 모습이었다. 1980년대 '종범'인 나는, 너무 무표정해서 차라리 평화로워 보이는 '주범'김대중 선생을 그렇게 첫 대면했다."
    기자는 'DJ도 많이 떨렸는데 당신을 바라보는 국민들과 민주화 동지들을 위해 애써 담담한 표정을 연출한 것은 아닐까? 1973년 일본 납치사건으로 초월하게 된 걸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 1980년 5월 계엄령 선포 후 광주 민주화항쟁 탄압 장면   © 부천투데이

    신군부가 1980년 5월17일 계엄을 확대하고 DJ와 민주인사와 학생들을  검거하기 시작해 설훈 위원장도 도피에 나섰다가 6월18일 붙잡히게 된다.
    설훈 위원장은 삼엄한 계엄하에서 도피 중 결사대까지 조직하여 광주학살의 진상을 알리는 전단을 살포하고 광주시민의 위대함과 억울함을 알리기 위해 3번의 시위를 주도했다니 대단한 강심장이 아닐 수 없다.
    아파트에 숨어 있다가 체포되어 화장실에서 수갑을 채우고 욕조에서 물고문을 당했다고 한다. 20~30분쯤 물고문을 당하다 완전히 늘어진 상태가 되자 경찰차에 태워 연행했다는 것이다. 성북서에 끌고 가서는 고문을 하면서 김대중선생을 아느냐 광주사태와 관련이 있느냐 데모를 했느냐는 물어보지도 않고 도망간 사람들이 어디에 있느냐는 것만 물으며 고문을 했다고 한다.팬티만 입힌채 몽둥이로 4,5명이 돌아가며 20~30분을 구타하고  또 물고문을 하고 또 구타를 하고 그렇게 인간이하의 아니 생명체로는 받아서는 안될 고문을 당했다는 것이다.
    ▲ 1980년 광주민주화항쟁 당시 군부의 학살에 희생된 시민들    © 부천투데이

    이 대목에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사람의 몸이라는게 어디 한군데 조금만 부딪혀도 아프고 몇십초만 숨을 못 쉬어도 그 괴로움이 상당한 데, 지옥을 넘나드는 고문을 받으며 이틀만에 새 팬티가 걸레조각처럼 될 정도로 변했다니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이틀만에 중환자가 되어 합수부에 인계하러 가자 합수부에서 너무 망가져 인수를 거부할 정도였다니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성북서는 설훈 위원장에게 의사를 불러 주사를 놓고 물리치료사를 불러 안티프라민으로 맛사지를 하는 등 야단법썩을 떨고 그 다음날에서야 합수부로 인계할 수 있었다.
    성북서 인계자는 고문을 더 이상 당하지 않게 잘 해주겠다고 처음엔 말을 했었으나 합수부에서 망가뜨려 왔다고 질책을 받은 후로 말을 뒤집어 "설훈은 독종이라 고문하지 않으면 안 불기 때문에 할 수 없이 했고 할때마다 새로운 사실이 나온다"라고 고문을 심하게 한 변명을 하니, 합수부직원들도 " 몸을 보니 더 이상 손댈 데가없지만, 너는 독종이니까 할 수 없이 처음부터 새로한다"며 고문을 또 받게 되었다.
     
    아무리 시대가 군부시대이고 계엄령 상황이고 상부의 지시가 있었다고 치더라도, 인간이 인간에게 해선 안되는 짓을 한 이유는 자신들의 실적을 위한 것이었으리라. 무슨 일을 하더라도 바삐 움직이면 밥 굶는 세상이 아니거늘 사람이 사람의 정신과 육체를 훼손시켜가며 있지도 않은 사실을 가공하려는 것은 이 지구상에서 사라져야 한다.
    큰 선거를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공안정국의 선언포고문 같은 검찰총장의 취임사를 들으며 걱정되는 이유다.
    합수부에서도 물고문과 철봉에 매달려 구타를 당하는 고문의 연속이었다고 한다.
    민주화 운동으로 3번째 징역살이를 하게 된 설훈위원장은 내란음모죄가 되고
    김대중선생과 공범으로 조작되는 것을 꿈에도 몰랐다고 한다.
    설훈 위원장은 김대중이 어떤 분인가 잘 살펴보는 것과 김대중살리는 것 2가지를 생각하게 되었고, 8월14일 오전 10시 군사법정에서  조작된 23명의 종범들이 앉아 있는 가운데 김대중 선생이 뒤에서 들어왔고, 무표정한 잊지 못할 김대중선생의 얼굴을 처음으로 보며 첫 대면을 했다고 한다.

    ▲ 민주화에 청춘을 바친 설훈 원미을 위원장이 수평선을 바라보며 걸어온 길을 회상하며 부천과 시민의 미래를 고민하고 있다.     © 부천투데이

    부천에 그 설훈이 와 있다.
    민주당 부천 원미(을) 지역위원장으로 설훈이 와 있다.
    지나갈 때나 식당에서나 소탈하고 꾸밈없는 소박한 모습에 그를 못 알아보는 분도 있을 수도 있다.TV 속에서나 보던 분이 동네에 나타나면 좀 낯선것이 사실이기도 하다.
    그러나, 세상이 이만큼 민주화가 되는데 온 몸으로 온 정신으로 견뎌내고 막아낸 시대의 인물-설훈이 우리와 같은 공간에서 지역발전과 주민을 위해 연구하고 땀 흘리고 있다는 사실을 잊을 수는 없다. 설훈위원장이 김대중대통령을 처음 만난 그 모습을 잊지 못하듯이, 우리도 세상을 이만큼 가꿔온 민주화의 꽃은 당신들의 피눈물과 고통을 먹고 자랐기 때문이다.
     
    부천에서 설훈 위원장을 만나면 반갑게 손 인사를 나누며 인사를 건네 보자.
    "민주화를 위해 애쓰신 것을 우리도 잊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책 제목: 김대중 내란음모의 진실
    -펴낸 곳 : 문이당
    -지은이: 김대중 외
    -초판1쇄 발행일:2000년 11월15일
     
     
     
     
    ◆ 설훈 부천 원미을 지역위원장의 프로필
     


    1953년 경남 창원에서 독립운동가이신 설철수님(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의

                  3남으로 출생

    1969년 마산중학교 졸업

    1972년 마산고등학교 학생회장, 졸업

    1974년 고려대학교 문과대 사학과 입학

    1975년 유신반대 시위로 고려대학교 문과대 사학과 제적

    1977년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구속

    1979년 형집행정지로 석방

    1980년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으로 징역 7년 선고

    1982년 형집행정지로 석방

    1983년 민주화청년연합(민청련) 창립 주도·상임위원

    1985년 김대중 총재 비서로 정치활동 시작

    1987년 평민당 마산 지구당 위원장

    1988년 평민당 성북(갑) 지구당 위원장

    1988년 13대 국회의원 출마

    1992년 김대중 총재 보좌관

    1993년 민주당 수석 부대변인

    1995년 새정치국민회의 수석 부대변인

    1995년 새정치국민회의 도봉(을) 지구당위원장

    1996년 제 15대 국회의원

    1996. 7. ∼ '99. 2. 국회 교육위원회 새정치국민회의 간사

    1996년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

    1996년 새시대새정치연합청년회 지도위원 

    1996년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 총재 특별보좌역

    1996년 새정치국민회의 총재비서실 수석차장

    1997년 고려대 사학과 복학

    1996년 아태재단 이사 

    1998년 새정치국민회의 원내부총무

    1998. 4. ∼ '99. 3. 새정치국민회의 기획조정위원장

    1998년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 수석집행위원장

    1999년 새정치국민회의 개혁추진위원회 제 3분과 위원장

    1999년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 총재 특별보좌역

    1999년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위원

    2000년 1. 새천년민주당 도봉(을)지구당 위원장

    2000년 1. 새천년민주당 시민사회위원회 위원장

    2000년 2. 고려대학교 사학과 졸업

    2000년 4. 제 16대 국회의원

    2000. 6. ~ 2001년 2 국회 교육위원회 새천년민주당 간사

    2000. 6. ~ 2002. 6 재단법인 관정 이종환 재단 이사

    2000년 6. 총리후보자(이한동) 인사청문특별위원회 새천년민주당 간사

    2000년 9. 한빛은행 국정조사특별위원회 위원

    2000. 10. ~ 2009. 2.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 공동의장 

    2001. 3. 과학발명영재단 명예회장

    2001. 4. 재단법인 한국기원 이사

    2001년 6. ~ 2003. 5. 국회 예산결산위원회 위원

    2001. 10. 민주화추진협의회 이사 

    2002년 8. 총리후보자(장대환) 인사청문특별위원회 새천년민주당 간사

    2004년 6.  중국 북경대학교 아태연구원 교수급객좌연구원

    2007년 대통합민주신당 손학규 경선후보 상황실장

    2007년 17대 대통령선거 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 대외협력위원장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예비후보(서울 도봉을)

    2008년 민주연대 조직위원장(현)

    2009년 민주당 부천 원미을 지역위원장(현)

    사업자 정보 표시
    | | | 사업자 등록번호 : -- | TEL : -- | 사이버몰의 이용약관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