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우상 최동원

    도야지꿀 2011. 9. 16. 08:23

    [추억] 내 생애 최고의 한국 시리즈


    2010.03.09.화요일

    사회부장 산하

     

    편집자주

     

    이 기사는 지난해 3월 故최동원 선수의 간암 투병 소식이

    전해진 뒤 나갔던 기사를 재편집 한 것 입니다.

     

    최동원 선수의 명복을 빕니다.

     

     

    1984년 가을, 프로야구 출범 3년만에 드디어 코리안 시리즈에 진출한 롯데 자이언츠의 맹렬팬으로서 나는 다른 친구들과 더불어 열광에 빠져 있었다. 연합고사 걱정 따위는 말머리 성운쯤으로 여행을 보낸 지 오래였고 전포동에서 구덕운동장까지 버스 타고 갔다가 표를 못 구해 씩씩거리며 돌아오기도 했다.  

    그 1년 전 시즌 자이언츠의 성적은 참담했다. 오죽하면 그 유명한 삼미 슈퍼스타즈의 독보적인 구원자였을까. 얼마전 유명을 달리한 너구리 장명부 투수가 현해탄을 건너오기 전의 한 리그에서 삼미는  단 5승을 올렸는데 그 5승을 해태와 롯데가 나눠 헌납했던 것이다.  덕분에 삼미는 "(해태와 롯데제과) 과자만 좋아하는 아기 슈퍼맨"이라는 별명을 얻었었다. 롯데는 에이스 크래카 역할을 했던 것이고.


     

    빼빼로를 선전하고 있는 1984년의 롯데 자이언츠 선수들


    3연승한다 해서 박수를 치면 그 박수의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5연패를 선물했고 5연승 롯데 개발에 땀났다 하면 어김없이 10연패로 화답했던 롯데 자이언츠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가져왔던 것은 불세출의 투수 최동원의 오른팔이었다.   경남고등학교 시절부터 140킬로미터의 강속구를 씽씽 뿌려 댔던 괴물 투수.......  와인드 업을 할 때 마치 태권도 앞차기 하듯  왼발을 거의 이마까지 들어올리는 다이나믹한 폼을 지녔던 그는 84년 시즌에서 27승을 올렸다. 

    최동원 한 명이 27승을 올렸음에도 불구하고 롯데의 후기 리그 우승은 불안했다. 그래서 롯데는 자력으로 우승을 결정짓지 못하고 예나 일찌감치 전기리그 우승을 차지한 삼성의 '간택'을 기다려야 했다.  이것이 삼성의 '져주기 사건"이다.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노조 인정 못한댜"는 당시 생존 중이던 삼성 그룹 회장 이병철의 모토처럼, 삼성 감독 김영덕은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껄끄러운 OB 베어스와는 코리안 시리즈 못한다"고 작심한 듯 했다. 그래서 롯데와의 마지막 경기때 초일류 팀 삼성은 갑자기 동네 야구팀으로 전락한다. 

    상대가 무안하지 않게, 보는 사람 화나지 않게 그럴 듯 하게  져 주는 것도 테크닉일 텐데 이때의 삼성 라이온즈의 작태는 모기업 삼성의 노조 탄압 방식만큼이나 노골적이었다.  평범한 플라이가 안타가 되는가 하면 어떤  내야수는 글러브를 갖다 대지도 않고 공을 가랭이 사이로 흘렸다.   

    당시 삼성의 주전 포수 이만수는 홈런 타점 타율 3관왕이라는 가공할 기록을 세워 가고 있었는데 이 대기록을 세워 주기 위해 삼성 김영덕 감독은 삼성 가문의 편법승계만큼이나 치졸한 수를 구사했다.  타율 부문의 유력한 경쟁자였던 롯데의 홍문종에게 연속 고의 사구를 내 준 것이다.  

     

    삼성 가문의 대부분의 부를 조족지혈의 세금으로 낼름 물려받고도 별 죄의식이 없는 이재용 전무와는 달리 이만수는 그 모습이 무척 부끄러웠다고 고백했던 것이 그나마 위안이라고 할까.  그러나 김영덕 감독은 삼성의 여느 경영진과 같이 두꺼운 얼굴을 보여 주었다. "승리를 위하여 못할 것은 없다"고 했었으니까. 삼성에 들어가면 사람이 달라지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 듯 싶다.

    프로야구 출범 당시 삼성은 정권 측에 볼멘 소리를 했었다.  참가 그룹의 레벨이 맞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현대나 럭키금성(당시)은 쏙 빠지고 대우도 외면한 자리에 과자 회사와 맥주 회사 그리고 듣보잡같은 삼미같은 회사와 삼성의 이름이 나란히 선다는 것을 삼성으로서는 참아 주기 어려웠던 거다. 

     

    헌데 첫 해 우승은 맥주 회사가 차지하더니 이듬해에는 과자 회사가 우승을 차지했다.  1등주의 삼성으로서는 참을 수 없었던지 원년 우승팀으로부터 김영덕 감독을 끌어 왔고 최고의 재일교포 투수 김일융을 불러 왔다.  선수단에 대한 각종 지원도 최상급이었다. 그리고 위에서 보았듯이 1등이라는 목표를 위해서  많은 것을 희생시키면서도 그에 대한 비난에 무덤덤했다.  모든 것은 결과가 말한다는 듯이.   

    전력면에 있어서 솔직히 롯데는 삼성의 적수가 아니었다. 김일융과 김시진이 이끄는 삼성 마운드는 최동원이 외로이 서 있고 임호균이 그를 도와 보겠다고 안간힘을 쓰던 롯데 마운드와는 질적인 차이가 있었고 장효조와 이만수 장태수 등이 버틴 삼성의 타선은 롯데 마운드 융단폭격에 필요한 폭탄들을 만땅 탑재하고 있었다.  누가 봐도 승부는 뻔했다.   

    "혹시 모르지..... 롯데가 미칠라는지도."라고 은근한 기대를 품던 중 3 소년들도 막상 내기할래? 니 롯데 해라 내 삼성할께 라고 500원 동전을 들이밀고 "태워라(걸어라)"고 윽박지르면 풍력발전을 일으킬만큼 세차게 머리저으며 물러섰으니까.  누군가 "최동원이 하루씩 건너 뛰고 나오면 1,3,5,7차전을 이기면 되는 거 아이가?"라고 조심스레 물었다가 말이가 방귀가 하는 호통에 찍소리 못하고 찌그러지곤 했다.  누가 봐도 다웃과 골리앗의 싸움이었고 한국과 브라질의 축구 A매치였고 참여연대와 삼성의 대결이었다. 

    1차전 경기 시작 전 주욱 늘어선 삼성 선수들을 보면서 나는 기가 죽었었다.  말할 필요가 없는 컴퓨터 타자 장효조 타격 삼관왕 이만수 프로야구 최초의 사이클 히트 오대석, 일발장타 장태수, 만루홈런 전문 함학수...... 이후 다시 일본에 건너가서도 선수 생활을 할만큼 쟁쟁한 실력을 자랑했던 재일교포 김일융, 김시진, 권영호,......  롯데의 유일부동의 에이스 최동원도 페넌트 레이스에서 삼성에 2승 4패로 열세를 면치 못했음에랴. 

    그러나 '혹시'의 유일한 근거였던 투수 최동원은 혹시나?에서 어머나?로 롯데팬들의 감탄사를 뒤바꿔 놓았다. 1차전 선발로 나와 어느 하나 허약해 보이지 않는 삼성의 강타선을 침묵시키며 1승을 챙겼고 3차전에서도 완투승을 거뒀다.  4차전에서 김일융에게 완봉을 당했지만 부산 시민들은 가히 열광의 분위기에 접어들었다.  계획대로 되어 가고 있었다.  이제 5차전 찍고 7차전만 누르면 우승이었다.  최동원이 그렇게 해 줄 것이었다.  

    한국시리즈 중 인터뷰 중인 최동원


    그러나 문제는 5차전에서 발생했다.   최동원은 계속해서 늠름하여 5회인가 6회까지 무실점으로 잘 막고 있었고 최동원의 찰떡궁합 배터리였던 포수 한문연이 홈런을 때려내는 등 이번에도 이긴다 싶었는데 장효조에게 안타를 맞고 동점을 내주더니 급기야 역전 솔로 홈런을 허용하고 말았다.  그리고 그대로 경기가 끝났다.  그리고 나도 낙심천만이었다. 아무리 최동원이 무쇠팔이라고 해도 5차전에 그리 졌으니 6차전에 또 나올 수는 없지 않은가.   김일융은 득의양양해 있었고 '돈 삼성'  (당시 우리는 이렇게 불렀다. 그 창업자와 경영자의 성이 이씨가 아니라 즐겨 '돈'이었던 것처럼)  의 자원과 힘은 아직도 퍼렇게 남아 있었다. 

    6차전 롯데 선발은 임호균.  국가대표 출신의 컨트롤 좋은 투수였지만 삼성의 타선에 비해서는 무게가 떨어졌다.  하지만 임호균은 "최동원 말고 롯데엔 사람이 없느냐?"라는 비난에 이를 악문 듯 역투를 거듭했다.  투수가 클로즈업 될 때마다 부서져라 이를 악문 임호균의 입매는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그래서 그랬는지 그만 그는 손가락 껍질이 벗겨지고 말았다.  누군가 구원에 나서야 했다.  마운드로 올라오는 구원투수를 보고, 그 호명을 듣고 나는 눈과 귀를 의심했다. 최동원이었다. 그리고 그가 삼성의 강타선을 틀어막는 동안 롯데 타자들도 눈에 불을 켜고 공을 쳐내서 6차전은 롯데가 가져갔다. 


    운명의 7차전.  최동원은 지쳐 있었다. 가수 김장훈의 발차기만큼이나 다이나믹하게 들어올렸던 왼발은 흐느적거리면서 겨우 올라갔고 안타 하나 맞은 뒤의 지친 눈빛은 잔업철야 마친 뒤의 노동자의 그것처럼 풀려 있었다.   사실 그는 말이 안되는 힘으로 최강 삼성의 라인업을 제압해 왔다.  그래도 지치지 않는다면 당장 그의 인조인간 여부를 조사하여 아톰 가면을 씌우거나 슈퍼맨 망토를 둘러 지구 방위 임무를 맡겨야 할 것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삼성이 당시 돈 2억을 써 가며 불러온 '밤의 신사' (워낙 야간 경기에 강해서 붙은 별명) 김일융도 지쳐 가고 있었다는 점이다.   

    삼성 타선은 복수라도 하듯이 최동원에게서 점수를 뽑아 냈다. 초반에 4점을 내 버린 삼성은 환호했다.   솔로 홉런을 치고 들어오는 오대석의 모습은 지금도 선명하다.  허탈한 표정의 최동원을 뒤로 하고 삼성 선수들은 바야흐로 우승의 밥상을 받아든 표정이었다.   다된 밥상이었다.  우리가 고른 상대에게 호되게 고생은 했으되 우리가 져 준 덕에 우리 상대가 된 팀 주제에 무얼 넘보느냐고 쐐기를 박는 것 같았다.   마치 법원에서 무죄 판결 받고 미소 짓던 우리의 회장님과 같이.......  너희들이 해 봐야 나를 털끝 하나 건드릴 거 같으냐는 듯 아우디부터 포르쉐까지 외제차 열 몇 대를 구입해서 에버랜드에서 레이싱을 즐기셨다는 우리의 회장님과 같이.  일선에서 물러나겠다는 말의 온기가 시식기도 전에, 건국 이래 유례없는 1인 사면의 코미디의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휘하 사장들이 "회장님의 복귀"를 딸랑거리게 만드시는 우리의 회장님과 같이.     
      
    그러나 강화도 앞바다 갈매기들이 관광객들이 던지는 새우깡을 죽어도 포기하지 않는 것처럼 부산 갈매기들도 끈질긴 날개짓을 멈추지 않았다. 4대 3으로 따라붙었고 8회초에는 1사 1,3루의 황금찬스를 맞았다. 읏쌰 읏쌰  (이거 일본 사람들이 하는 거고 우리 말로는 영차 영차라고 하는데 당시 롯데팬들은 읏쌰를 죽어라 고집했다) 가 북구 모라동에서 영도 앞바다까지 쓰나미처럼 몇 바퀴를 돌았다. 잘하면 역전이었다. 이 황금찬스를 해결할 타자는 누굴까?  야구박사로 통하던 친구 영수가 비명을 질렀다.  "점마 저거 빼라~~~~~" (저 녀석 빼라)  

    와? 와?  친구 집에 모여 있던 친구들이 누군가 유심히 봤을 때 나타난 타자는 유두열이었다.  이번 코리안 시리즈 최고의 허방 타자였다. 경기에 빠짐없이 나왔지만 7차전까지 오는 동안 안타는 하나인가 둘인가였다. 코리안시리즈 타율이 1할도 안되는 맹물이었던 것이다. 원아웃이었던 바, 병살타 한 방이면 이 황금 찬스가 은하철도 999를 타고 메텔과 함께 안드로메다로 떠나 버릴 상황이었으니 영수의 비명도 무리가 아니었다.  

    볼 카운트까지 기억난다. 원 스트라이크 원 볼......  김일융이 공을 뿌렸고 유두열은 방망이를 휘둘렀다.  축구의 슛은 골 네트를 가르기 전까지는 골인인지 아닌지 감을 잡기 어렵다.  크로스바를 맞기도 하고 아슬아슬 빗나가기도 하고 골키퍼가 막아낸다.  그러나 야구에서 홈런은 배트에 맞아 뻗어나가는 모양만으로 "크다~"는 본능적인 외침이 나온다.    "크다~~~" 그리고 동시에 일어난 여섯 명의 중학생들이 상을 차 버린 덕분에 친구 어머니가 정성스레 가져오신 음료수들은 그만 방바닥이 포식을 했다.   공은 빨랫줄처럼 뻗어나가서 왼쪽 스탠드 중하단에 시원스럽게 꽂혀 버렸다.  쓰리런 홈런이었다.   허구헌날 풀죽 시래기죽을 골고루 쑤어대던 타율 몇 푼 몇 리의 유두열이 마침내 일을 낸 것이다.   

    3루를 돌아서 홈으로 들어올 때 유두열은 몇 발짝 나아가기조차 힘들었다.  주루코치는 유두열을 업고 가려고 했지만 다른 선수들이 몰려 들어 그 기회를 뺏아 버렸다. 홈을 밟아야 홈런이 되는 걸 까먹기라도 했던 듯 롯데 선수들은 유두열의 주루를 열광적으로 방해하고 있었다. "전두환이 포기한 동네" 전포동의 한 친구 집에 모여 있던 우리도 미쳐 날뛰었다.   전포동 산동네 전부가 벌집이 되었다는 편이 맞겠다. 

    동네 꼬마들이 "호우무랑~~~~"이라는 일본식 발음으로 홈런을 외치며 밤골목을 누볐고 아저씨들은 건배를 외치며 맥주를 들이켰다.  그때 한 아저씨의 외침은 실로 호기로왔다.  "삼성 쉐끼들아 봐라. 야구는 돈으로 하는 기 아이다."  뭐 롯데도 돈으로 야구하기는 마찬가지였지만,,,,, 그래도 동네 아저씨 눈에 삼성은 좀 특별했던가보다. 

    나는 84년의 롯데의 수호신 최동원을 헌신짝처럼 버려 버리는 걸 보고 롯데에 대한 애정을 오랫 동안 접었었다.   정말이지 온몸을 내던져 1,3,5,6,7차전 5경기에 출전해서 이빨이 나갈 정도로 깨물고 공을 던져 팀을 창단 후 첫 우승에 올려 놓은 투수를 내다 버린 후 코치로도 쓰지 않는 롯데 (부산 야구팬들에게는 솔직히 정말로 어울리지 않는 기업이다. )의 옹졸함에 대한 내 나름의 복수였고 롯데가 8888577 의 순위를 기록하며 헤맬 때는 아예 내 관심의 파울라인 밖에 있었다.   
      
    그래도 지금도 롯데 자이언츠가 잠실에 올라온다면 촬영 스케쥴을 어떻게든 조정해서 아이들 데리고 야구장 구경을 해 볼 요량이 있긴 하다.  그것은 막강한 상대를 앞두고 온몸이 부서져라 최선을 다하던 선수들의 모습이 불같은 영상으로 추억 속을 일렁이고 있기 때문이며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타자가 극적인 활약을 펼치며 '져주기' 만행을 저질러가며 '1등'을 향해 줄달음치던 상대를 들어메쳤던 그 통쾌함에 온몸을 적시는 느낌을 되살리기 위해서일 것이다. 

    삼성 라이온즈는 당시 최강팀이었지만 오늘날의 모기업 삼성은 그때 라이온즈 팀보다도 몇 단계 더 높은 위상에서 세상을 굽어 보고 있다.  삼성 라이온즈는 껄끄러운 OB 베어스라도 있었지만 모기업 삼성에게는 배신자 변호사나 OB 베어스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실력의 시민단체 정도가 귀찮을 뿐 법도, 여론도, 도덕도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도덕이야 생각하기 나름이고 여론이야 제 아들이 삼성 들어간다면 급거 삼성 만세 회장님 천세를 부르짖을 허섭일 뿐이고 법이 삼성을 제대로 때린 적이라곤 84년 코리안 시리즈의 유두열의 안타보다도 더 희귀하다.   여북하면 진보의 깃발을 든 신문사가 대학 교수의 기명칼럼조차 싣지 못하다가 내부의 반발이 터져나오는 일에 직면할까.

     

    아직은 지금 회장님의 아버님이신 돈자 병자 철자 어르신이 살아 계시던 시절, 몇 년 뒤엔 "누구도 2등은 기억하지 않는다"는 위험천만한 구호를 광고에 싣게 되는 돈 삼성을 맞아 마운드에 우뚝 섰던 최동원의 모습은 적어도 내 머리 속에서만큼은 희미해지지 않는다.  오히려 갈수록 또렷해진다. 

     

    9회초 최동원은 또 한 번의 위기를 맞았었다.  동점 주자가 나가 있었고, 구위는 투구마다 떨어졌다.   가까스로 투아웃을 잡았지만 투 스트라이크 쓰리볼의 건곤일척판에 몰렸고, 만약 포볼을 내준다면 떨어질 나락이 눈 앞에 보였다.  그때 볼 콘트롤이 흔들리던 최동원은 약간 높은 공을 던졌고 삼성 타자의 방망이가 돌다가 멈추고 거둬들여졌다.  타자는 마치 2년 전의 태안 기름 유출 사건 때 '삼성유조선 사건'이 아닌 '서해안 기름 유출 참사'로 바꿨던  것과 동일한 순발력과 연기력을 발휘하며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1루로 뛰어나갔다.  최동원과 한문연 배터리는 방망이가 돌았다고 어필했고 3초 후 주심의 손가락총이 1루로 뛰어가는 타자의 뒤통수를 쏘았다.   아웃!    본드걸 김연아의 손가락총이 있기 전에 나는 그렇게 감동적인 손가락 총을 들은 적도 본 적도 없다.   그렇게 롯데는, 아니 최동원은 삼성을 이겼다.

     

    우승!

     

    그 최동원이 간암 투병 중이라 한다.  2년 전에는 대장암 판정을 받았었지만 84년의 기세로 이겨낸 듯 싶더니 이번엔 또 간암이란다.   흘러드는 말을 듣자니 심상치 않은 느낌이다.    그의 쾌차를 바란다.  이마까지 차고 올랐던 발길질로 병마를 걷어 차고 150킬로를 넘나들던 강속구로 암세포를 때려잡기를 빈다.  그는 삼성을 이긴 몇 안되는 대한민국 사람 중의 하나였다.

     

     

    딴지사회부 산하
    사업자 정보 표시
    | | | 사업자 등록번호 : -- | TEL : -- | 사이버몰의 이용약관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