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악산 암자 명진 스님

    도야지꿀 2011. 11. 2. 20:10

    장시기교수의 세상읽기] 탈근대란 무엇인가?(1)   2011-10-19 (수) 13:59
    장시기   224

     

    I.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

    지난 10월 1일 미국의 뉴욕에서 “월가를 점령하라”라는 구호를 외치며 수천 명이 시위를 하였다. 이 시위에서 700명이 경찰에 체포되어 연행되었다. 그 다음 날,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는 구호와 시위는 미국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2011년 10월 15일, “월가를 점령하라”는 구호와 시위는 지구촌 전체 세계로 확산되었다. “월가를 점령하라”는 단지 1% 사람들이 향유하고 있는 금융특권층의 일상적이고 구조적인 근대적 착취와 억압에 항거하는 99% 지구촌 민중의 분노를 표현하는 시위이다. 그래서 미국의 “월가를 점령하라”에 호응하여, 한국, 일본, 대만, 홍콩, 인도네시아, 영국, 이탈리아, 독일, 스페인, 포르투갈, 호주, 뉴질랜드, 브라질, 칠레 등 80여개 국가 1500여개 도시에서 불평등하고 부조리한 근대의 제국주의적 자본주의에 저항하는 “점령하라”의 시위가 들불처럼 타올랐다.
     
    많은 사람들은 2011년 10월에 일어나고 있는 “월가를 점령하라”가 1968년 프랑스에서 일어난 “68 혁명”과 유사하다고 이야기한다. 1968년 5월 프랑스의 한 대학교 기숙사에서 대학교의 기숙사 정책에 반발하여 일어난 “68 혁명”은 순식간에 프랑스의 전역으로 확산되었고, 마침내 영국과 독일 그리고 이태리와 미국, 일본 등등 근대의 제국주의적 자본주의의 중심국들에서 제국주의적 자본주의의 지배에 저항하는 운동이 불꽃처럼 타올랐다. 그 결과로 프랑스의 “68 혁명” 이후 프랑스를 포함하여 서구 유럽 국가들의 교육제도를 포함한 근대의 제국주의적 국가제도가 바뀌었다. 프랑스의 “68 혁명”은 단지 국가제도만이 바뀐 것은 아니었다. 프랑스의 “68 혁명”은 프랑스의 대학제도뿐만 아니라 대학교수들을 포함한 지식인들의 지식체계와 일반인들의 사고방식도 바꾸었다.
     
    1968년 “68 혁명”으로부터 시작된 새로운 지식체계와 새로운 사고방식을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그것은 ‘자본과 권력으로 이루어진 “근대의 문명(modern civilization)”으로 살거나 사유하지 말고, 생명과 상생의 관계로 이루어진 “탈근대의 문화(trans-modern culture)”로 살거나 사유하자’라고 말할 수 있다.(“근대의 문명”과 “탈근대의 문화”에 대해서는 다음에 다시 이야기하겠다.) 이것은 근본적으로 근대의 지식이라고 일컬어지는 근대 인문학 전반의 문제이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는 또한 UN을 포함한 국가관계, 금융제도, 국가제도, 교육제도, 주거환경 등등의 사회과학적인 모든 문제들과 연관되어 있다. 따라서 1968년 “68 혁명” 이후 만들어진 새로운 지식체계와 새로운 사고방식은 서구 유럽 여러 국가들의 탈근대적 복지제도와 평화체제를 포함하여 동서독의 통일, 그리고 동유럽 국가들을 포함한 유럽연합(EU)으로 발전하였다.
     
    그러나 2011년 10월에 일어나고 있는 미국의 “월가를 점령하라”와 1968년 프랑스의 “68 혁명”은 서로 유사하면서도 또한 차이가 있다. 두 사건의 상호유사성은 근대의 제국주의적 자본주의에 대한 저항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프랑스의 “68 혁명”은 근대 제국주의적 자본주의의 국가제도에 대한 저항인데 반하여 2011년에 일어나고 있는 “월가를 점령하라”는 근대 제국주의적 자본주의의 금융제도에 대한 저항이다. 이러한 상호유사성과 차이는 프랑스의 “68 혁명”이 프랑스를 비롯한 서구 유럽의 세계를 탈근대적으로 변화시키는 계기가 되었지만, 그 영향력은 대한민국을 포함한 다른 지역의 국가들에는 전혀 영향력이 없었다는 점을 반영한다. 또한 1968년의 “68 혁명”과 2011년 “월가를 점령하라”의 상호유사성과 차이는 1968년 이후 1970년대부터 시작된 미국의 신자유주의적 세계지배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1968년 프랑스의 “68혁명”이 혁명적으로 변화시킨 것은 근대의 제국주의적 자본주의 지배체제가 지니고 있는 제국주의 국가 내부의 “자유주의(liberalism)” 체제이다. 18세기부터 제국주의 영국과 프랑스가 그 이전의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제국주의 지배를 이어받아 아프리카와 인도를 비롯한 식민지 국가들을 지배한 것은 근대 국민국가를 토대로 한 국가 내부의 자유주의 체제를 법률적으로 확고하게 만든 덕분이었다. 복잡한 경제학적 용어들에서 벗어나 “자유주의”를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그것은 국가가 만들어 놓은 시장에서 자유롭게 돈을 버는 사람이 자유롭게 그 돈을 쓰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자본주의 시장은 돈이 돈을 버는 곳이지, 각 개개인의 노력이 돈을 버는 곳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구 유럽의 “자유주의”가 한 세기 이상 동안 유지되었던 것은 영국과 프랑스가 식민지 국가들을 거느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유주의” 체제에서 영국과 프랑스, 네덜란드와 독일, 그리고 일본 등등의 제국주의 국가들 내부에 있는 가난한 사람들은 그들의 국가가 지배하는 식민지 나라들로 가면 “자유주의” 체제를 향유하면서 돈을 벌 수 있었다. 그들의 이익과 권력을 제국주의 국가가 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도 그런 “자유주의” 체제를 일제 식민지 기간 동안 경험하였다. 그리고 해방 이후 그런 “자유주의” 체제에 힘입어 국가의 부를 형성하게 되었다. 1970년대 중반서부터 본격화되기 시작한 미국의 “신자유주의(neo-liberalism)” 체제는 국가 내부의 “자유주의” 체제를 국가 간 “자유주의” 체제로 확대한 것이다. 이러한 미국의 “신자유주의” 체제는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인도나 우리와 같이 해방된 아시아 국가들과 1960년대 아프리카 등등에서 해방된 국가들을 다시 미국의 식민지 국가들로 만들고자 하는 제국주의적 전략이다.
     

    II. “서울을 점령하라(Occupy Seoul)!”

     
    1968년 프랑스의 “68 혁명”은 미국에도 영향을 주었다. 그것은 우리에게 “히피”니 “게이”니 하는 부정적인 방식으로 전달되었지만, 그 내용은 마틴 루터 킹 목사를 중심으로 하는 흑인 인권운동과 여성운동 그리고 학생운동 등등의 전반적인 문화운동으로 확산되었다. 그러한 미국의 변화를 가장 일목요연하게 보여주는 것이 1969년 뉴욕 주의 한 시골마을에서 일어난 “우드스탁 페스티발(Woodstock Festival)”이었다. 그것은 한 마디로 베트남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를 주창하면서 ‘자본과 권력으로 살거나 사유하지 말고 생명과 상생의 관계로 살거나 사유하자’는 락 뮤직을 포함한 대중음악의 운동이었다. 이러한 미국의 “우드스탁 페스티발” 정신은 1970년대 중반 이후 미국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사라져버렸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대만 출신이면서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안 감독은 미국인들의 “우드스탁 페스티발” 정신의 부활을 주장하면서 영화 <테이킹 우드스탁(Taking Woodstock)>을 지난 2009년에 발표하였다.
      
                     

    2011년 10월에 일어나고 있는 “월가를 점령하라”는 바로 1969년에 일어난 “68 혁명”을 계승하는 “우드스탁 페스티발” 정신의 부활이다. 또한 프랑스의 “68 혁명”이 근본적으로 베트남과 같은 프랑스의 식민지 국가들이 해방되면서 프랑스 사람들이 이 세계를 올바로 인식하기 시작한 운동인 것처럼 오늘날의 “월가를 정복하라”는 남아프리카를 포함한 아프리카 국가들과 베네엘라나 볼리비아 등등의 중남미 아메리카와 이집트와 이란 등등의 이슬람권 국가들이 미국의 식민지 지배에서 벗어나고 있고, 그 덕분으로 미국의 금융위기가 닥쳤기 때문에 가능한 미국인들의 깨달음이다. “월가를 점령하라”는 1968년 프랑스의 “68 혁명”과 마찬가지로 미국이 지배하고 있는 대한민국을 포함한 지구촌 세계의 신자유주의적 근대 제국주의 체제를 바꿀 것이다.
     
    지구촌 여러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미국의 제국주의적 신자유주의의 지배가 잘못되었다는 깨달음이 대한민국에서도 일어났다. 1998년 IMF 위기를 정점으로 만들어진 박찬욱 감독의 <공동경비구역(JSA)>를 포함한 영화를 포함한 “한류” 문화운동과 “6.15 남북공동선언”, 2002년 월드컵을 계기로 만들어진 “붉은 악마”와 미군의 장갑차에 치여 죽은 “미순이ㆍ효순이 사건”으로 이루어진 “촛불문화제” 등등은 지난 20세기 미국의 지배를 받는 식민지 근대국가와는 다른 탈근대 국가의 문화적 선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정부의 등장은 21세기의 새로운 대한민국을 지난 20세기 식민지 근대국가로 되돌리고 있다. 그런 이유 때문에 지난 토요일(10월 15일) 미국인보다 더 미국인이 되어 버린 이명박 정권의 독단과 탐욕으로 밀고 가고 있는 갖가지 신자유주의 정책에 저항하는 시위가 일어났다. 그것이 바로 미국의 식민지 신자유주의의 도시, “서울을 점령하라”이다. “서울을 점령하라”는 시민과 민중들이 여의도 증권가, 서울역, 대한문 앞 광장 등에 모여서 “1% 부자만을 위한 정부의 정책 반대,” “반값등록금 실현,” “한미 FTA 저지,” “영리병원 반대”를 외치고 있다.
     
    그렇다고 우리 모두가 “월가를 점령하자”에 발맞추어 “서울을 점령하라”에 참여하자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각각의 사람들이 자신의 삶과 현실을 판단하여 스스로 선택할 일이다. 문제는 결코 변하지 않을 것 같았던 미국마저도 “월가를 점령하라”라는 구호와 함께 미국식 신자유주의 제국주의 정책에 반대하는 21세기의 현재, 즉 지구촌 세계의 현재가 과연 무엇이냐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나는 왜, “지금 그리고 여기에(now and here)” 살고 있느냐는 것이다. 내가 왜, “지금 그리고 여기에” 살고 있는 이유를 알아야만 “월가를 점령하자”나 “서울을 점령하라”와 같은 것이 오늘날의 지구촌 국가들 대부분의 신문들과 인터넷에 떠다니고 있는 이유를 알 것이 아닌가? 그것에 접근하는 방법은 각각의 학자들마다 서로 다르게 쓰고 있는 “현대(the contemporary age)”, “근대(the modern age)”, “후기 근대(the post-modern age)”, 그리고 “탈근대(the trans-modern age)”와 더불어 “근대성(modernity)”과 “탈근대성(trans-modernity)”의 용어들이 어떻게 다르고 또한 어떻게 서로 유사한가를 살펴보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우리가 모두 언어의 지배를 받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어떤 지배에서 벗어나는 것 또한 언어이다. 그래서 불교의 그 오랜 기간 동안 깨달음의 참선을 위하여 “화두(話頭)”가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화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곧 그 “화두”를 준 사람의 지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고, “화두”를 깨는 사람은 곧 그 “화두”를 준 사람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것이다. 따라서 언어의 한계는 삶과 지식의 한계이며, 지식의 한계는 곧 나 자신과 이 세계를 인식하는 상상력의 한계이다. 그러나 이 세상의 모든 언어들이 다 “화두”는 아니다. “화두”는 시간과 공간의 차이에 따라서 서로 다르다. “화두”의 시간적 차이를 인식하는 것이 역사성이고, 화두의 공간적 차이를 인식하는 것이 진실성이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의 “화두”를 가지고 아직도 고민하는 것은 역사성을 망각하는 것이고, 이명박 정권처럼 미국과 한국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는 신자유주의와 같은 “화두”를 가지고 이야기하는 것은 대한민국이라는 지역의 진실성을 상실하고 있는 것이다.
     

    III. 탈근대의 지식과 권력

     

            

    “화두”와 같은 그 시대의 역사성과 진실성을 가진 언어들이 그 시대의 지식을 구성하고 또한 그 시대의 권력을 형성한다. 그래서 질 들뢰즈(Gilles Deleuze)와 함께 “68 혁명” 이후 프랑스 탈근대 사상을 이끌었던 미쉘 푸코(Michel Foucault)는 지식이 권력을 생산하는 것처럼 “권력은 지식을 생산한다(권력은 지식이 권력에 봉사하기 때문에 그 지식을 장려할 뿐만 아니라 지식이 권력의 유지에 유용하기 때문에 그 지식을 이용한다)”고 이야기한다. 이것은 “권력과 지식이 직접적으로 서로서로를 포용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지식의 장을 상호 연관적으로 구성하지 않는 권력관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권력관계를 전제하거나 구성하지 않는 그 어떤 지식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내가 가지고 있는 지식은 내가 어떤 권력관계에 연루되어 있는가를 내포하고 있다. “월가를 점령하자”와 “서울을 점령하라”를 이해하기 위하여 근대와 현대 그리고 후기근대와 탈근대라는 “화두”의 언어를 다시 살펴보자는 것은 오늘날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지식이 미국과 대한민국의 1%만을 위한 지식과 권력인가, 아니면 대한민국을 포함한 지구촌 전체의 99%를 위한 지식과 권력인가를 살펴보자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지금까지 우리를 지배했던 ‘자본과 권력으로 이루어진 “근대의 문명(modern civilization)”으로 살거나 사유하지 말고, 생명과 상생의 관계로 이루어진 “탈근대의 문화(trans-modern culture)”로 살거나 사유하자’라는 탈근대의 지식과 권력은 불교적 삶이나 사유방식과 유사하다. 그러나 오늘날의 불교는 많은 부분에서 일제 식민지 시대와 1960-80년대에 이루어진 근대화 과정으로 말미암아 기독교화 된 불교이다. 그것은 불교만이 아니다. 의식주를 포함한 우리의 삶이 근대화되었고, 우리의 생각들과 인간관계가 근대화 되었으며, 심지어 인간과 사회와 국가와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도 근대화되어 있다. 그러나 불교의 근본적인 부분이 ‘생명과 상생의 관계로 살거나 사유하자’인 것처럼 우리의 삼과 생각과 세계인식의 근본적인 부분은 ‘생명과 상생의 관계로 살거나 사유하자’라는 탈근대의 문화로 이루어져 있다. 1968년의 “68 혁명”과 유사한 “월가를 점령하자”와 “서울을 점령하라”가 2011년 10월 지구촌 전체의 “화두”로 등장한 지금, 이러한 탈근대의 지식과 권력의 문제를 “단지불회(但知不會)”의 회원들과 함께 살펴보자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다. 오늘은 단지 그것을 시작하는 글을 올리고자 한다. 많은 회원들의 질책과 보완, 그리고 성원과 참여를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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