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악산 암자 명진 스님

    도야지꿀 2011. 11. 2. 20:12

    이학종기자의 불교이야기] 장자종단 조계종의 양심은 어디로   2011-10-06 (목) 09:14
    이학종   495

     
     
    양심, 도덕은커녕 법 어기고 혼인했어도
     
    사실혼 관계를 따져 봐야 한다는 조계종
     
    요즘 부쩍 양심(良心)이란 말을 떠올린다. 기본적으로 종교(집단)는 양심에 의해 운영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믿기에 그렇다. 종교집단에 양심보다 도덕이, 도덕보다 법의 기준이 성행한다면, 그 성행의 정도에 비례해 그 종교집단이 타락했다는 등식이 가능하다.
     
    예서 양심과, 도덕, 법에 대한 정의를 살펴보기로 하자.
    양심의 사전적 의미는 한 개인이 자기 자신의 행위·의도·성격의 도덕적 의미를 올바르고 착해야 한다는 의무감과 관련지어 파악하는 도덕의식이다.
     
    양심은 일반적으로 어떤 행동의 도덕적 특성에 관해 직관적으로 권위 있는 판단을 내리는 마음작용으로 이해된다. 역사적으로 볼 때 거의 모든 문화는 양심의 존재를 인정했다. 예를 들어 고대 이집트인들은 양심의 명령을 어기는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고 역설했는데, 이유는 사람은 ‘양심의 인도에서 벗어나면 반드시 두려움을 느끼게 되기 때문’이었다.
    몇몇 신앙에서 양심은 신의 목소리이기 때문에 전적으로 신뢰할 만한 행동지침으로 여겨진다. 힌두교 신자들은 양심을 ‘우리 내부에 살고 있는 보이지 않는 신’으로 생각했으며, 서구 종교 중 프렌드회(퀘이커교도)는 양심이 신의 ‘내적인 빛’을 이해하고 행동을 통해 그에 반응하는
    데 있어 특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강조했다.
     
    양심에 이어 자연스럽게 떠올려지는 것이 도덕(道德)이다. 도덕이란 인간이 지켜야 할 도리(道)를 체득한 상태(德)를 일컫는다. 오늘날에는 윤리라는 말과 같은 뜻으로 쓰이는데, 영어의 ‘morality’는 그리스어의 ‘ethos’, 라틴어의 ‘mores’에서 유래한 것이다. 에토스라는 말에는 첫째, 익숙한 장소, 사는 곳, 고향 등의 뜻이 있고, 둘째, 집단의 관습이나 관행을 의미하며, 셋째, 그러한 관습이나 관행에 의해 육성된 개인의 도덕의식, 도덕적 심정, 태도, 성격 또는 도덕성 그 자체를 의미한다.
    현대에서 도덕이라는 말을 쓸 때는 셋째의 뜻이 가장 강하게 반영된다.
    도덕은 인간존재가 개인적이면서 동시에 공동적인 존재임을 감안할 때 종교·법·경제 등과 밀접한 관계를 갖게 된다. 개개인의 인간은 특히 양심의 가책이라는 현상에 비추어 자기 자신의 행위와 인격의 선악을 구별하게 된다.
     
    양심과 도덕에 이어, 다음으로 떠올려지는 것이 법이다. 이는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 법이란 상호 관련되어 있는 법규범의 총체를 말한다. 법규범이란 명령(命令)과 평가(評價)의 공통분모로서의 행위 지시이다. 법의 고자(古字)는 ‘수(水)’·‘치(廌)’·‘거(去)’의 3자가 합쳐진 것(法)이었다. ‘수’는 수면과 같이 공평함을 뜻한다. ‘치’는 해태라고 하는 전설적 동물로서 시비곡직을 가리는 일을 맡은 동물인데, 정의를 실현하는 상징이다. 해태는 또한 불을 삼키는 동물로 알려져 불붙은 분쟁을 가라앉힌다고 하여 중국에서는 예로부터 재판을 할 때 이 해태상 앞에서 했다고 한다. ‘거’는 악을 제거하는, 즉 응징적인 강제성을 나타낸 것이다. 그 약자인 ‘법’(法)도 따지고 보면 물이 높은 데서 낮은 곳으로 흐르듯 순리적인 것을 뜻하는 글자라고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법은 넓은 뜻으로는 실정법과 자연법을 총괄하고 좁은 뜻으로는 법률과 같은 뜻으로 사용되지만, 현실적으로 사회에서 시행되고 있는 실정법을 가리키는 것이 일반적이다.
     
    요즘 한국불교 장자종단인 조계종의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막막하기가 그지없다. 양심은커녕 도덕이나 법의 규정조차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자주 분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매우 심각한 일이지만, 왠지 종단의 구성원들은 이를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 것 같다. 몰라서라기보다는 애써 모른척하거나 잘못된 흐름에 편승하는 것이 당장의 이해에 유리하다는 판단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마치 옛 공자시절 도척의 무리들을 보는 듯하다.
     
    조계종단을 좌지우지하는 이들을 향하여 양심과 도덕을 언급하는 것은 부지불식간 웃기는 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그들에게서 양심과 도덕을 기대하거나, 아니면 회복하기를 바라는 것은 난망한 일이다. 믿기지 않겠지만, 생사의 이치를 깨달아 생사의 굴레에서 벗어나겠다는 출가정신을 언급하는 것은 유치한 일이 된지 오래다. 양심과 도덕은커녕 자신들이 스스로 정한 규범인 종단 법조차 지키지 않는 일이 자주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할 것도 없이 조계종에서 발생한 한 사건을 보자.
     
    최근 조계종의 한 중진 승려가 종단의 고위직 승려가운데, 출가 이후 승려생활을 하던 중에 결혼을 한 승려가 있다고 폭로한 일이 있었다. 조계종에서 고위직에 있는 이 승려가 미국에 가서 결혼을 하고 약 5년간의 결혼생활을 하다가 이혼을 했다는 것인데, 그는 매우 자세한 증빙서류와 함께 이 사실을 세상에 공개했다. 종단호법부에 이 사실을 진정했는데도 반년 가까이 아무런 조처를 하지 않아 부득이 기자회견을 통해 공개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런 사실이 폭로된 지 한 달이 넘도록 아무런 조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청정비구, 독신을 생명처럼 여기는 조계종단에서, 바로 이것을 명분으로 이른바 정화를 통해 대처승 쪽으로부터 희생을 치르며 도량을 되찾은 조계종단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으니 기가 막힐 일이다.
     
    더 기가 막힌 일은 조계종단에서 흘러나오는 말이다. 비록 결혼을 했더라도, 영주권을 얻기 위해서 한 것이니 경우가 다르며, 정말로 사실혼 관계였는지는 따져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조계종단의 존립 근간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반응이 아닐 수 없지만, 종단을 구성하는 책임 있는 출가자들은 아무런 말이 없다. 화쟁위원회를 대표한다는 승려조차도 그리 대단한 일이 아니라는 식의 발언을 했다는 소식이고 보면, 조계종이 점차 존립의 근거를 상실해가고 있다고 해도 결코 지나치지 않다.
     
    이는 가장 성스러워야 할 승단에서, 양심도, 도덕도, 법도 무용지물이 된 명백한 예가 아닐 수 없다. 더구나 승려가 결혼을 한, 이른바 정화 종단을 자처하는 조계종으로서는 가장 생명처럼 여겨야할 종법 위반 사건인데도 말이다. 특정한 이유 때문에 결혼했다면, 또 사실혼 관계가 아니라면 괜찮다는 것인지, 왜 이런 납득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지 그 속내가 몹시 궁금하다.
     
    자세한 내용을 더 따져봐야 한다는 것이 조계종단의 입장이라면, 정말로 조계종단이 이런 지경에 이르렀다면, 더 이상 조계종은 귀의의 대상으로 존립하기 어렵다. 불가피한 일이었다는 이유를 대면, 결혼해도 괜찮고, 결혼한 사실이 발각 나도 사실혼 관계만 아니면 괜찮다는 것이 공식화되면 앞으로 어떻게 소속 승려들의 혼인을 막을 수 있을 것인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
     
    이대로 가다가는 혼인을 했다는 이유로 절을 ‘빼앗긴’ 쪽에서 혹여 사찰 반환소송이라도 걸어오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다. 그럴 경우 어떤 논리로 대응할 것인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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