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최동원 선수가 선수협의회를 창설할 당시 법률적 문제를 상담했던 변호사가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였던 것으로 알려져 화제가 되고 있다.

트위터 아이디 @MKTKIM은 4일 “고인이 된 최동원 선수가 처음 선수노조 만든다고 했을 때 도움을 준 고문변호사가 바로 문재인 이사장님이라고 하네요…역시”이라고 올렸다.

@MKTKIM는 이어 “최동원 선수와 문재인 이사장님의 인연힐링캠프에서 나온이야기인데 편집되었다고…최동원, 문재인, 이경규 모두 부산출신이라 추억을 떠올리다 나온 이야기인 것 같네요. 암튼 공지영 작가가 알티하니 대박났군요”라고 자신의 트위터에 남겼다. 소설가 공지영 씨는 “최동원…RT"라며 이를 리트윗했다.

고 최동원 선수는 1980년 중반 최고의 연봉을 받던 롯데에이스 투수였다. 최 선수는 6월항쟁 이후 사회민주화의 열기가 강했던 1988년, 열악했던 선수 복지를 개선하고자 선수협의회(선수협) 결성을 주도했다. 일종의 야구선수 노조라 할 수 있는 선수협을 꿈꾼 그는 그해 부산일보 파업 현장에 유니폼을 입고 찾아가 격려금 100만원을 쾌척하기로 했다.

최 선수는 선수연봉인상 상한제 25% 철폐와 연급제도 도임 등을 선수협의 주요 과제설정했다. 최 선수는 이를 위해 그해 9월 대전 유성에서 각 팀 주전선수들과 모여 인천에서 대의원대회를 열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이를 막기 위해 구단들이 와해 조작에 나서자 선수들이 동요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대의원대회도 구단의 반대로 3개 구단 선수들이 불참, 결국 참석인원 20명에 불과해 정족수 미달로 성사되지 못했다.

이후 구단들은 선수협과 관련된 선수 20명과는 재계약을 하지 않겠다며 압박에 들어갔고 결국 선수협 출범은 무산됐다. 최동원 선수 역시 주동자로 찍혀 재계약을 하지 못하면서 그의 야구 인생도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당시 소속구단이었던 롯데는 최 선수를 팀에서 방출했기로 결정하고 결국 삼성으로 강제 이적시켰다.

88년 11월 삼성으로 이적한 최 선수는 이후 초라한 성적으로 선수생활을 이어나갔다. 1989년 1승, 1990년 6승이라는 부진한 성적 끝에 32살의 젊은 나이로 은퇴했다. 앞선 롯데에서는 6년 동안 96승을 기록했던 '괴물투수'였다. 

   
▲ 고 최동원 선수
©CBS노컷뉴스

 

선수협 주동자라는 꼬리표는 은퇴 후에도 최동원 선수를 괴롭혔다. 구단 어디에서도 불려주지 않았던 최 선수는 은퇴 10년 만에서야 2000년 이광환 감독의 부름을 받아 한화 투수코치로 지도자 세계에 입문했다. 그후 한화 2군 감독으로 역임했고 2009년부터 한국야구위원회 경기운영위원으로 일했다. 

최 선수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인연 또한 깊다. 최 선수는 1991년 초대 광역의원 선거 당시 부산 서구에 꼬마 민주당 후보로 출마했다.

최 선수는 경남고 선배인 민주자유당 김영삼 대표의 영입 제의를 뿌리치고 ‘새정치의 강속구’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출마했다. 최 선수는 당시 “대선배(YS)의 3당야합 부도덕성을 선거로 심판하기 위해 출마했다”고 밝혔다.

최 선수는 선거운동 기간 부산대학교에서 열린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5기 출범식에 참석하기도 했다. 서울대 조국 교수는 이후 “내가 다닌 초등학교 선배였고 ‘동네 행님’이었다”며 “주변에선 민자당으로 출마하면 무조건 당선인데 왜 그러느냐고 했지만 그는 ‘생각이 다르다’며 민주당을 택했다”고 최 선수를 기억했다.

최 선수를 영입했던 노무현과 김정길은 그의 선거를 도왔고, 최 선수 역시 이들을 지원했다. 하지만 셋 모두 민자당의 강세를 꺾지 못해 그 해 결국 정치의 꿈을 이루지 못했다.

53세라는 짧은 나이로 운명한 '부산 사나이' 최 선수는 선수들의 복지 향상과 지금의 선수협회가 결성되는데 밑거름이 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노무현 재단 김경수 봉하사업본부장은 4일 통화에서 “문재인 이사장이 최동원 선수의 법률적인 자문을 했다”며 “문 이사장님이 최 선수의 경남고 선배다. 최 선수가 운명할 때 법률자문을 한 적이 있다고 문 이사장님이 말했던 적이 있다”고 사실을 확인해줬다.

김 본부장은 “당시 노동운동 전문 변호활동을 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재인 이사장님이 부산지역 노조 자문은 다 해줬다. 선수협도 그런 노조의 차원이니깐 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