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의 9족을 멸문지화시켜야 한다

    도야지꿀 2013. 11. 1. 18:08

    굿바이! 이명박 - MB정권 5년 막후스토리 [20] 언론정책
    ‘MB맨’ 언론사 투입 아마추어리즘 완결판
    [제1095호] 2013년05월08일 09시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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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요신문]

    ▲ 최 위원장은 이 대통령과 수시 독대하며 정치 전반에서도 무소불위의 힘을 발휘했다. 일요신문 DB
    이명박 정부의 언론정책은 한마디로 꼼수로 점철된 극심한 아마추어리즘의 완결판이었다. 대통령이 심을 수 있는 언론사 수장 자리에 ‘이명박 사람들’만 꽂으려 했으니 반발이 잇따랐고, 언론사의 투쟁과 파업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치적 홍보에만 열을 올리고 언론의 건강한 비판에는 귀를 막으려 했던 이명박은 아군인 줄로만 알았던 보수 언론으로부터 임기 말과 퇴임 후 극심한 비판 보도에 시달려야 했다.

    이명박의 언론관은 이미 서울시장 재직 때 온 천하에 드러나게 된다. 때는 2004년, 서울시가 일부 언론사에만 국외취재 경비를 전액 지원한 것으로 밝혀지면서 서울시청 출입기자단이 시장 사과와 담당자 징계 등을 요구하게 된다. 그런데 이명박의 해명은 다음과 같았다.

    “진상을 제대로 보고받지 못해 사과할 사안인지 잘 모르겠다. 모든 언론사를 평등하게 대우해야 할 이유가 있느냐?”

    2007년 6월 한 토론회에서 당시 이명박 대선 후보는 ‘언론 매체를 차별 대우할 것인가’라는 뼈있는 질문에 “대통령으로서 친한 정도에 따라 따지는 것은 옳지 않다. 그렇게 하고 싶어도 참아야 한다”고 답했다. 하지만 아무도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옳지 않기 때문에 참는 것이지, 마음으로는 ‘그게 아니다’라고 생각한다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부에서 이명박 정부로 넘어가는 가교 역할을 했던 인수위원회는 출범 당시부터 이명박의 언론관을 여과 없이 드러내게 된다. 그것은 바로 신문과 방송의 겸영을 가능토록 하고, 문화방송 MBC를 민영화할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먼저 속도를 낸 것은 신문·방송 겸영이었다.

    2008년 1월 8일 인수위 강승규 부대변인은 문화관광부 업무보고 직후 기자회견을 열고는 “언론의 자율성과 공정성을 확보하고 미디어 산업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신문법을 폐지하고 대체입법을 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그게 바로 신문·방송 겸영 규제를 완화하는 내용이었고, 이명박 편에 있던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는 쌍수를 들어 환영하는 자세를 취했다.

    MBC 민영화도 이명박의 굳은 결심이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2007년 11월 22일 한나라당은 예정돼 있던 MBC <100분 토론>에 일방적으로 불참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그 이유는 같은 날 MBC 라디오 <시선집중>이 이명박 당시 대선 후보에게 불리한 증언을 해왔던 에리카 김을 인터뷰했다는 것이었다. MBC <PD수첩>이나 <시사매거진 2580> 같은 심층탐사보도 프로그램도 이명박의 BBK 사건을 파헤친 바 있다. 한나라당은 MBC 본사를 직접 찾아 항의할 때마다 민영화 설을 흘리게 된다. 그게 바로 MBC의 ‘괘씸죄’였던 것이다.

    ▲ 2011년 3월 28일 언론 노조와 시민단체 등이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왼쪽) 연임 규탄 기자회견을 가졌다. 일요신문 DB
    이명박이 정권을 잡으면 무조건 방송에 진출하겠다는 언론사는 알게 모르게 차곡차곡 경험을 쌓던 중이었다. 조선일보는 비즈니스앤이라는 자체 케이블 방송 채널을 개국해 송출하고 있었고, UCC 사이트인 키위닷컴도 오픈해 운영했다. 수십억원을 들여 스튜디오와 녹음실, 종합편집실을 가동한 것에서도 어떤 자신감을 엿볼 수 있었다. 중앙일보는 Q채널, J골프, 히스토리채널, 카툰 네트워크 등 다양한 케이블 채널을 자회사로 가지고 있었다. 이런 보수 신문사들이 모두 종합편성채널권을 가지게 된 것을 우연으로 보는 정치권 인사들을 찾아보기 어렵다.

    사실 이명박 정부에서 ‘조중동’은 특권 이상을 누렸다. 권언유착이 얼마나 심했는지 대선 당시 대선미디어연대는 조중동에 대해 “한나라당이 아니라면 아니라는 취지에서 쓰고, 한나라당이 침묵하면 침묵했고, 한나라당이 대응하지 않겠다고 하면 기사가 사라졌다”고 평가했다. 이경숙 인수위원장 인선, 4강 특사단 파견, 총리 후보 압축, 신문법 폐지, 국정원 대화록 등 굵직굵직한 특종이 모두 조중동에서 나온 것을 두고서도 ‘이명박의 편애가 심하다’라는 지적이 잇따랐다.

    취임 첫해 미국산 쇠고기 촛불 파동으로 위기에 빠진 이명박은 ‘언론사 낙하산 부대’를 투입해 구원받으려 했다. 사건은 사건이고, 국민이 알지 못하게만 하면 된다는 식이었다. 그러니 장악력이 큰 골치 아픈 방송부터 어떻게든 요리하고자 했다. 그게 바로 이명박의 ‘언론 장악’ 시도다.

    이명박은 스카이라이프, YTN, 아리랑TV, 한국방송광고공사 등 대통령이 앉힐 수 있는 언론계 사장 자리에 대선에서 자신의 언론·방송 특보를 지낸 공신들을 차례로 내보내기 시작한다. 대선 캠프의 방송특보로 KBS 보도국장 출신인 이몽룡 씨가 스카이라이프 사장으로 가는 것을 시작으로, 언론특보 정국록 씨를 아리랑TV 사장으로 보낸다. 캠프 방송총괄본부장이었던 구본홍 씨는 YTN 사장 자리를 꿰찼고, 방송특보 단장이었던 양휘부 전 방송위원회 상임위원은 한국방송광고공사 사장으로 임명된다. 광고 판매를 독점하는 기관에 캠프 출신 인사를 기용했으니 “광고 탄압을 통한 방송 길들이기 아니냐”는 여론이 비등해졌다. 그 즈음에 임기가 남은 KBS 정연주 사장을 사퇴시키면서 언론 탄압 비판이 고조되기 시작했다.

    이 모든 언론 ‘장악과 탄압’ 시나리오의 중심에는 최시중 ‘감독’(방송통신위원장)이 있었음은 물론이다. “방송과 인터넷 때문에 미 쇠고기 수입 반대 여론이 확산됐다”는 겁 없는 이야기를 한 최 위원장은 이명박 정부 출범 전후 대통령의 멘토로서 줄곧 실세로 거론된 인물이었다. ‘정권 실세’ ‘넘버3’ ‘방통대군’ ‘방송통제위원장’ 등으로 지칭된 그는 청와대를 무시로 드나들며 이 대통령과 수시 독대했으며, 방송이나 통신 분야뿐만 아니라 정치 전반에서도 무소불위의 힘을 발휘하고 있었다.

    다음은 그가 얼마나 기세등등했는지 알 수 있는 한 대목이다. 2008년 12월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창립 20주년 기념식 자리에서 최 위원장은 김형오 국회의장, 여야 원내대표,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장 등 자신을 감독하는 국회 요인들이 줄줄이 참석한 자리에서 20분 이상 훈계를 늘어놓았다.

    ▲ ‘방송장악·네티즌탄압저지범국민행동’ 등 언론·시민단체들은 기자회견을 갖고 방송법 시행령 개정과 민영 미디어렙 도입 중단을 촉구했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공영방송, 공·민영방송, 또는 민영방송 등 여러 가지로 일컬어지고 있는 MBC의 정명(正名)은 과연 무엇인가. 이 자리가 축하의 말보다 오늘의 현실을 다시 돌아보는 냉엄한 자리가 되길 바란다. MBC가 지난 1년 동안 무엇을 했는지, 국민의식 속에 무엇을 심어주었는지 돌아보라.”

    그의 한마디는 그야말로 생일상에 재를 뿌린 격이었다. 고령이었기 때문에 비판을 의식하지 않고 뜻한 바를 강하게 밀어붙이는 ‘70대 리더십’을 펼쳤다. (최시중은 이명박 서울시장 시절 캄보디아 앙코르와트에 함께 다녀왔다. 현지를 여행하면서 전후 비참한 생활을 하는 현지를 지켜보며 최시중은 “대한민국도 국부를 창출할 뛰어난 지도자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이명박을 지목했다)

    2009년은 미디어 관련법 처리가 정국의 핵폭탄이 된 해다. 대기업의 지상파 방송 진출 허용 문제를 둘러싸고 국회 문화체육예술방송통신위원회(문방위)가 열쇠를 쥐고 있었는데 위원들 면면이 모두 조중동 편임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당시 한나라당에는 조선일보 출신인 김효재, 진성호, 최구식 위원이 있었고, 자유선진당에는 김창수 위원이 있었다. 중앙일보 출신으로는 고흥길 문방위 위원장과 홍사덕 위원이 배치됐다. 동아일보 출신으로 김경재 위원이, 그리고 강승규, 안형환, 허원제, 한선교 등 위원장을 포함해 새누리당 16명 위원 중 10명이 언론사 출신으로 채워졌다. 미디어 관련법은 그렇게 국회에서 처리된 것이다.

    하지만 이명박의 언론 장악은 곧 암초를 만났다. 바로 사법부다. 2009년 11월 서울행정법원 행정13부는 정연주 KBS 사장 해임에 대해 “KBS 사장의 임기 제도는 공영방송의 독립성, 공정성, 자율성을 보장하기 위해 마련된 것으로 정 전 사장에 대한 해임 처분은 재량권을 일탈 남용한 위법성이 있어 KBS 사장 해임 처분을 취소한다”고 판결했다.

    YTN 구본홍 사장 임명을 반대한 노조원 6명이 해고되고, 14명이 징계를 받은 것에 대해 서울중앙지법 민사42부는 “YTN이 2008년 10월 7일 처분한 해고는 재량권을 남용했고, 정당한 이유가 없어 무효”라고 밝혔다.

    2009년 10월 20일 ‘국경없는기자회’(RSF)는 ‘2009 세계 언론자유지수’를 발표했는데 한국이 175개국 가운데 69위로 강등된다. 2007년 39위, 2008년 47위에서 더 떨어지면서 이명박과 언론의 관계는 차갑게 식어버린다. 2011년 국제 인권감시단체 프리덤하우스는 한국을 아예 ‘언론자유국’에서 ‘부분적 언론자유국’으로 강등하는데 그 이유는 “검열과 함께 언론매체의 뉴스와 정보 콘텐츠에 대한 정부 영향력의 개입이 확대된 데 따른 것이며 정부가 대형 방송사의 경영에 개입해 왔다”를 들었다.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으로선 아주 창피한 상처였다.

    이명박이 얼마나 언론을 장악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 있다. 2010년 청와대 홍보수석실은 1월 10일 ‘세종시 수정안 홍보계획’ 문건을 작성해 각 부처에 지침을 내렸다고 한다. 이 문건에는 ‘언론을 접촉할 때 지역차별이 없다라고 집중 홍보하라는 지침과 함께 KBS <뉴스라인> 20분 특집 편성(세종시 및 과학기술벨트 정책 설명-총리실장, 민동필 이사장, 강병주 교수 등)’이라고 기술돼 있다.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한국방송 KBS에 정부가 정책 홍보 뉴스를 편성해 넣으려고 했던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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