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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야지꿀 2013. 11. 11. 10:27

    '적반하장 사회 구현'으로 가는가

    [오홍근의 '그레샴 법칙의 나라']<88>일사불란 공화국의 막장 검찰

    오홍근 칼럼니스트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3-11-11 오전 9:16:00

     

     

    서울 서초동 대법원과 당주동 변호사회관 앞에 서 있는 여신상은 오른 손에 저울을 들고 있다. 고대 로마시대 정의의 여신인 유스티티아 조각상이다. 추(錘)의 무게와 달고자하는 사물의 무게가 균형을 이루도록 하는 게 저울의 기능이다. 여신상은 죄와 벌의 무게를 달 때 그렇게 눈곱만큼의 편견과 사사로움 없이 공정한 균형을 이뤄야 한다는 점을 역설하고 있다고 했다. 수년전 이 칼럼에서 쓴 적이 있다.

    서양에서 뿐만 아니라 동양에서도 그런 가르침이 있다. '권(權)'이란 한자의 훈독(訓讀:한자의 뜻을 새기어 읽는 말)에는 '권세'란 말 말고도 '저울질 할 권'이라는 또 다른 훈독이 있다. 권세는 저울이 균형을 이루듯이 한 쪽으로 기울지 않는 평평함을 이뤄야 한다는 선인들의 가르침을 내포하고 있다고 본다.

    권세를 수단으로 해서 법을 집행하는 기관이나 사람들은 모름지기 형평성과 타당성과 공정성을 철저히 지키라는 소리다. 말하자면 동양의 '權'과 서양의 '정의의 저울'은 다 똑같이 권력 집행자들의 올바른 자세를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이 나라에서 그것은 도저히 가능하지 않은 꿈같은 이야기라고들 말한다.

    박근혜 정권의 막강한 법 집행기관인 검찰에서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갈피를 못 잡게 너무 자주 벌어지고 있어서 나오는 불평과 불만인 듯싶다. 비열하고 야비한 일까지 일상으로 일어나고 있다고 개탄하는 사람들도 많다. 특히 이번 국정원 대선 개입사건에서 '윗분들의 뜻에 거슬리는' 수사를 했다하여 '정직(停職)'이란 중징계를 받는 윤석열 사건을 보면서, 사람들은 타당성과 공정성과 형평성을 상실한 채 부도덕하기까지 한 이 정권의 편견과 사사로움의 극치를 절감하고 있다.

    대통령 선거 범죄꾼을 재판에 회부했다고 검찰총장 목을 자르더니, 범죄꾼의 새로운 범죄사실 밝혀냈다고 악을 쓰며 생트집 잡아 담당 검사를 매질하는 해괴한 광경이 국민들 앞에서 벌어지고 있다. 정작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재판부는 윤석열 전 수사팀장이 새로운 범죄사실 밝혀낸 '공소장 변경신청'을 허가 했는데도 그랬다. 그런다고 막장 공화국에서나 벌어지곤 하는 범정부적 총체적 선거부정 사건이 덮어지는 것도 아닌데 그랬다.

    그러면서도 "야당 도와줄 일 있느냐"는 어처구니없는 소리를 내지르며 범죄꾼 잡는 일을 '방해'한 상관은 징계를 모면했다. 그 상관은 윤석열 수사팀장이 '외압의 진실'을 털어놓을 것을 두려워 한 나머지 "몸이 아프다는 핑계를 대고 국회 국정감사장에 나오지 말라"고 압력을 가하기까지 했다는 보도도 있었다.


    ▲ 지난 달 21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검찰청에서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서울고검·서울지검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조영곤 서울중앙지검장(오른쪽)과 윤석열 여주지청장(왼쪽)이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다. ⓒ연합뉴스

    '정의사회 구현'은 박정희·전두환 씨의 군사통치 아래서도 거의 노상 외치던 구호였다. 검찰은 그런 구호도 외치지 못했다. 적반하장(賊反荷杖)은 도둑이 오히려 매를 든다는 4자 성어다. 잘못한 사람이 도리어 잘한 사람을 욕하거나 나무라는 경우 쓰는 말이다. 이 땅의 검찰은 그 흔한 정의사회 구현 구호 한 번 외치지 못한 채 '적반하장 사회의 구현'을 위해 결사적으로 덤비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 누군가 뒤에서 지휘하고 있을 것이다.

    이 나라 검찰의 균형감각 상실은 어제 오늘의 모습이 아니다. 남북정상 회담 대화록 관련 수사를 한다며 야당 대통령 후보를 공개리에 검찰로 소환했다. '참고인' 자격이었다. 그러면서도 국가기밀인 그 대화록을 어디선가 빼내 대선 때 유세장에서 낭독하고 다닌 여당의 거물 정치인에 대해서는 참고인도 아닌 '국가기밀 누설 용의자'인데도 쉬쉬하며 서면조사를 했다.

    말썽이 나자 검찰은 어쩔 줄 몰라 쩔쩔매고 둘러대기에 급급했다. 보기에 딱했던지 '용의자'가 "검찰청에 출두해 수사 받겠다"고 검찰 입장을 돕는 '은혜'를 베푸는 '허가'를 해줬다. 이번 주 부터 그들의 '시혜성(施惠性) 자발적 공개수사 참여'가 시작된다. 참으로 웃기는 나라다. 서울 중앙지검장의 '셀프(self) 감찰'에 이은 '셀프 소환'이라는 새로운 검찰용어가 그렇게 생겨났다.

    검찰청법 제4조는 〈검사는 공익의 대표자로서 …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로서 정치적 중립을 지키고 권한을 남용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오늘 이 땅의 검찰이 '정치적 중립'이란 말에 어울리는 저울로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믿는 사람 거의 없다. 검찰 위에 국정원이 있고, 그 위에 청와대의 민정수석과 비서실장으로 이어지는 게 직속상관 라인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정부기관들의 대선개입 사건 수사과정을 보면서 우리가 느끼는 것은 검찰의 상층부 인사들은 오로지 개인의 영달만을 위해 온 몸을 던져 매달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다. 그들에게 국민이나 국익이나 정의로움이나 형평성 같은 단어가 머릿속에서 어떤 의미로 작동되는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

    일간베스트가 전 대통령 김대중 씨를 악의적으로 깎아 내리는 악질적 허위사실을 인터넷에 유포했다. 2009년 8월20일 서울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서 촬영된 DJ의 입관식 모습을 게재하면서 '홍어 택배왔습니다'라는 제목과 함께 DJ를 '홍어'라 하고 관을 '택배'라 했다. 동시에 DJ가 차명계좌로 12조 원을 갖고 있다고도 했다. 그게 10월31일 이었다.

    그러나 이 사실은 상처받은 이희호 여사가 검찰에 '인터넷 명예훼손'으로 고소장을 낸 11월7일에야 세상에 알려졌다. 1주일 동안이나 없었던 일인 듯 잠잠했던 사실이 사람들을 '분노'케 한다고 했다. 가령, 어느 인터넷 매체에서 박정희 씨의 입관식 모습을 게재하면서, '간 고등어 택배왔습니다'라는 제목과 함께 박정희 씨를 '간 고등어'라 하고 관을 '택배'라 했을 경우에도, 1주일씩이나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이 나라가 조용할 수 있었겠느냐 하는 물음이 있다.

    여당은 물론 국정원이나 검찰이나 경찰 등 이 땅의 사정기관들이 즉각 난리를 냈을 것이란 의견들이 많았다. 계엄령이 선포됐을 것이라 말하는 사람까지 있었다. 어울리는 표현이 아닐 수도 있지만 '형평성'이나 '역지사지(易地思之)'란 말은 이런 경우에도 쓰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서글픈 사실은 DJ와 관련된, 상상을 초월한 악질적 행위가 특정계층에서는 아무 죄의식도 없이 상식처럼 인식되고 있다는 점이다. DJ는 종북이요 좌빨이라 그렇다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DJ는 이 땅의 민주주의를 지켜내기 위해 거의 한평생을 온갖 핍박 속에서 살다 간 사람이다. 이 나라에서 노벨상을 받은 단 한사람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홍어' 논쟁은 더러운 짓거리다. 그런 논쟁을 일으키는 사람들이 바로 편 가르기를 하면서 나라를 결딴내고, 그렇게 민주주의를 작살나게 짓밟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그 더러운 짓거리가 바로 적을 이롭게 하는 종북이요 좌빨이다.

    요 며칠 사이 일어난 쇼킹한 사태가 바로 한국사 교과서를 유신시절의 단일 국정교과서 체제로 되돌리려는 움직임이다. 아무리 역사 거꾸로 돌리기 작업이 작동 중이라 해도 이건 가슴 철렁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국무총리가 국회예결위에서 "올바른 역사교육을 위해서는 통일된 국사교과서가 필요할 수 있다"고 했다. 교육부 쪽에서도 "앞으로 역사는 국정교과서로 갈 것"이라고 단언 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새누리당의 한 실세의원도 "국어와 국정교과서는 국정체제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에 활발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필자가 국사교과서 단일화 추진 소식에 질겁을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수상한 짓으로 일관해 오던 이 정권이 드디어 가고자하는 목적지를 분명히 보여주기 시작했다는 점에 경악한다.

    국사교과서가 국정체제로 바뀐 것은 1974년 2월이었다. 박정희 정권이 당시 11종이던 중고교 국사교과서를 1종의 단일 국정교과서로 만들어 냈다. 그리고는 학생들에게 유신독재의 '정당성'을 주입하는데 악용하기 시작했다.

    1974년 고등학교 국사교과서는 〈대한민국 정부는 1972년 10월, 급변하는 국제정세에 대처하고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달성하고자 헌법을 개정하고 10월 유신을 단행하였다. 우리는 이제 한국적 민주주의를 정립하고, 사회의 비능률과 비생산적 요소를 불식해야 할 단계에 와 있다〉고 쓰고 있다. 결국 민주주의의 공정성이나 타당성이나 형평성은 '사회의 비능률과 비생산적 요소이므로 불식 시켜야 한다'는 이야기가 된다.

    어린 학생들에게 그렇게 가르쳐 획일적 역사관을 주입시켰다. 그런 '일사불란 시스템을 만들자'는 의도가 지금 벌어지고 있는 역사교과서 단일화 추진 작업에는 도사리고 있다. 그 역사교과서가 바뀐 것은 김대중 정부 때로, 긴 논의를 거쳐 2003년부터 다양한 검인정 교과서가 들어섰다. 새로운 단일 국정교과서 추진계획 앞에서 우리가 더욱 불안해하는 것은 단일화 작업이 추진된다면 그 한 복판에 온통 거짓말과 뒤틀림으로 일관해 온 특별한 국사편찬위원장이 자리 잡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날 "한국인은 짐승같이 저열하다"거나 "한국인은 도덕적 수준이 낮아 독립을 지키지 못했다"는 식의 괴상한 견해를 표명한 적이 있다. 지금은 이 정권의 도덕적 수준을 말해야 마땅한 시점이지만 그는 분명히 그렇게 말하지 않을 것이다.

    국민 모두에게 "우향 우!" "앞으로 갓!" 이런 식의 일사불란을 이 정권은 기대하는 지도 모른다. 국민의 손에 맡겨져야 할 '정당해산 절차'를 외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밀어붙이는 것을 보면서 "이건 막가파 시스템 아니냐"는 소리도 나온다. 역사교과서 단일화 추진과 상통하는 이야기다. 두렵다. 소름이 돋는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민주주의를 짓밟는 세력은 반드시 국민들로부터 심판받게 되어있다. 특히 권력을 잡은 사람들은 유스티티아의 저울과 '저울질 할 權'이란 한자 훈독을 거듭거듭 새길 필요가 있다. 역사 앞에서 겸손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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