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치연합이 신당의 정강정책에서 6. 15 남북공동선언과 10. 4 남북정상선언 등을 빼자고 제안한 뒤 여론을 뭇매를 맞고 한발 물러섰다. 민주당과 새정치연합은 불협화음이 나오는 것을 자제하면서 논란을 정리하는 수순을 밟고 있지만 이번 사태는 신당의 중도 노선 문제가 상징적으로 표출된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이번 문제는 정통 야당의 정체성 문제로까지 번지면서 민주당 내부 계파를 가리지 않고 반발하는 모습을 보였다. 당장 6. 4 지방선거에서 야당 지지층이 새정치민주연합에 선뜻 표를 던질까라는 회의적인 목소리도 나왔다. 이번 논란이 김대중-노무현 정부에 표를 던졌던 유권자들 입장에선 민주정부 10년 남북관계 성과의 상징을 부정하는 모습으로  비춰졌던 것이다. 일부 유권자들은 신당이 박근혜 정부와 어떤 차이가 있는지 물음표를 던지기도 한다.

박근혜 정부와 여당이 '역사 전쟁'을 벌이고 있는 마당에 야당이 쌓아올린 역사적 성과마저도 스스로 지우겠다는 꼴이라는 쓴소리도 있다. 강기정 의원은 "박근혜 정부에서 두 선언을 부정하고 있는 것도 아닌데 정강정책에서 빼겠다고 하면 어떻게 하라는 말이냐"라고 비난했다.

인터넷에서 안철수 새정치연합 위원장을 두고 '간철수'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주목할 만한 현상이다. ‘간철수’라는 말은 새누리당이 정치적 결정 시점에 안 위원장이 간을 보고 있다고 비난하는 정치 공세적인 말인데 야당 지지층 사이에서도 널리 퍼져 있다. 안 위원장이 '새정치'라는 브랜드를 가지고 있는 인물임을 감안할 때 야당 지지층 사이에서 정략에 따라 움직이는 구태 정치인의 이미지로 비춰지는 것은 상당한 손실이다.

이 같은 이미지는 안 위원장이 정권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이슈와 관련해 적극적인 입장을 피력하지 않거나 오히려 진보개혁세력과 선을 긋는 행보를 보여온 것과 무관치 않다.

대표적으로 안 위원장은 창당발기인대회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은 북한과의 화해협력을 적극 추진해 나가야 하지만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위협하는 세력과는 결코 함께 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며 중도 보수 지지층을 공략하겠다는 분명히 했다.

하지만 이번 정강정책 논란은 새정치연합의 중도 지지층 공략 노선이 딜레마에 빠질 수 있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준다. 중도 지지층을 넓히려고 했다가 오히려 전통적인 야당 지지층인 '집토끼'까지 잃을 수 있다는 위기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번 논란은 새정치연합의 중도 지지층 확장 노선의 문제가 아니라는 주장도 나온다. 안철수 위원장의 새정치연합 정체성 자체가 박근혜 정부와 다를 게 없는 '우파진영'이기 때문에 이 같은 문제는 언제나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김연철 교수(인제대 통일학)는 '이념 논쟁을 피하기 위해' 6. 15 선언과 10. 4 선언을 뺐다는 새정치연합 쪽의 설명에 대해 "6. 15와 10. 4를 주장하는 사람들을 특정 이념 세력으로 본 것이다. 특정이념 세력, 그 말이 무슨 뜻이냐. 바로 종북세력이라는 말"이라며 "사실 안철수 측의 그런 발언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대선 TV 토론에서 금강산 관광 재개 문제가 쟁점이 됐다. 문재인 후보는 해법을 물었는데 안철수 후보는 이것을 이념의 문제로 이해했다"고 꼬집었다.

안 위원장 주변 인사의 책임론도 제기된다. 이번 정강정책 논란의 중심에 선 공동분과위원장 윤영관 전 외교부 장관에 대한 책임론이다. 지난 2004년 2월 윤영관 전 장관은 노무현 대통령이 외교안보 정책 폄하 발언 파문에 대한 책임을 물어 경질을 당한 인물이다.

당시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는 "사실상 경질이라고 볼 수 있는 윤영관 장관에 대한 사표수리는 파문을 일으켰던 외교부 일부 관료들의 행태에 대한 책임을 넘어서 그 동안 외교부가 대미의존적인 외교자세로 일관하면서 각종 대미협상의 부실을 가져왔다는 점에서 마땅히 취해져야 할 적절한 조치"라고 밝혔다. 외교 안보 분야에서 보수적 색채가 짙은 윤 전 장관이 정강정책 협상 당사자로 나오면서 논란을 키웠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윤 전 장관은 안철수 위원장의 싱크탱크인 '정책네트워크 내일'의 이사장인데 ‘내일’의 실행위원이라고 발표한 명단에 한나라당 출신과 친박 인사들이 포함돼 있어 논란이 되기도 했다.
 

   
▲ 안철수(가운데) 무소속 의원이 17일 서울 용산구 백범기념관에서 열린 새정치연합 창당발기인 대회에 참석해 중앙운영위원회 위원장으로 당선된 후 공동위원장단과 함께 손을 들어 보이며 인사하고 있다. ⓒ 노컷뉴스
 

논란을 정리하는 방식도 잡음이 커지면서 구태 정치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지적이다. 안 위원장은 정강정책 논란이 커지자 "새정치연합이 정강정책 전문에 '4.19혁명과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해 삭제를 요청했다', '6.15남북공동선언과 10.4남북공동선언에 대해 삭제를 요청했다'는 보도가 있었다"며 "다시 한 번 분명히 말씀 드리자면 이는 사실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전날 금태섭 대변인은 "민주당의 현행 강령을 보면 5.18, 4.19를 비롯한 여러 사건이 나열돼 있다. 회고적으로 특정 사건을 나열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사건들에 대한 것은 어떤 건 넣고 어떤 건 빼냐 이런 불필요한 논란이 있어서 넣지 말자는 게 기본 입장"이라고 말한 바 있다. 안 위원장의 주장대로라면 금태섭 대변인이 거짓말을 하고 있는 셈이다.

최영일 시사평론가는 "지엽적인 문제로 볼 수도 있지만 초창기부터 같은 배를 탄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거짓말을 한 게 돼버렸다. 묻고갈 수 없는 사안이다. 안 위원장의 어법 자체가 거짓말쟁이로 만들어버리는 비겁한 방식이고 구태정치의 방식"이라고 비판했다.

최 시사평론가는 "합리적 중도 민심을 잡기 위한 산토끼 전략 때문에 사실은 DJ와 YS스의 반독재 투쟁을 지켜봤던 야당 지지층인 집토끼를 방치하는 그런 현상이 일어나면서 위험한 정치의 수순으로 들어간 것 같다"고 지적했다.

갈등 사태도 커지고 있다. 당헌당규 분과위원장인 이계안 새정치연합 공동위원장은 당헌당규 회의 자리에서 박차고 일어나는 발생했다. 지도체제와 의사결정 구조 등을 논의하는 자리로 이 위원장이 방안을 제시했지만 결정을 하지 못하고 지지부진하는 양상이 계속되자 회의장을 떠나버린 것이다. 새정치연합은 제왕적 총재제인 단일 지도체제와 민주당의 현 단일성 집단지도체제를 놓고 고민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위원장은 또한 “4.19혁명은 물론 5.18, 6.15, 10.4 모두 반드시 명시적으로 강령에 넣어야 한다”며 새정치연합의 선언 제외 제안에 불만을 드러내기도 했다.

오는 26일 신당 창당을 앞두고 컨벤션 효과를 노렸던 전략도 차질이 예상된다. 신당 전략은 창당일에 유권자의 기대치를 극대화하면서 새누리당과 견줘 40%대로 지지율을 끌어올려 유지한 뒤 '알파'를 얻어 선거에서 승리한다는 것인데 이번 사태로 인해 여론이 싸늘히 식은 모습이다.

최 시사평론가는 "안 위원장이 의사결정 등 신당의 구조에 집착하고 상왕정치를 하고 있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신당이 추구해야할 강력한 주장을 가로 새기고 함께 가자는 포용력을 보여주는 방향으로 가야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