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박 근혜 직무유기

    도야지꿀 2014. 5. 2. 11:12

    오대양’이 뭐였기에

    고제규 기자  |  unjus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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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46호] 승인 2014.05.02  08:5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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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7년 8월29일 경기도 용인에 있는 오대양 공장의 구내식당 천장에서 남자 4구, 여자 28구의 시신이 발견되었다. 당시 경찰은 집단 자살로 결론 냈지만, 집단 자살 사건의 배후로 유병언씨가 지목되었다. 나아가 타살설까지 돌았다.

    1987년 8월15일 오대양 박순자 사장에게 돈을 받으러 왔던 부부가 구타를 당했다. ‘돈을 안 받겠다’는 각서를 쓰고 풀려난 이들은 박씨를 경찰에 고소했다. 8월24일 박순자 사장이 경찰에 자진 출석했다. 박씨의 남편은 당시 충남도청 고위직이었다. 그녀와 남편을 믿고 사채를 빌려준 이들이 대전 시내에 적지 않았다. 박씨 역시 유병언씨와 똑같이 신도들에게 받은 돈으로 사업체를 운영했다. 당시 조사를 받던 박씨는 기자들이 몰려들자 그 자리에서 기절해 대전성모병원으로 옮겨졌다. 병원을 탈출한 박씨는 자신을 따르던 신도들에게 ‘용인공장으로 피신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학생·어린이 50여 명까지 공장에 숨어 있으라고 지시한 후 박 사장은 자신의 아들딸과 사원 가운데 사채를 많이 끌어온 32명을 이끌고 천장으로 피신했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연합뉴스</font></div>1987년 8월29일 경기도 용인 오대양 공장 식당 천장에서 집단 자살한 구원파 교인들의 사체를 끌어내고 있다. 당시 이 사건의 배후로 유병언씨가 지목되었다.  
    ⓒ연합뉴스
    1987년 8월29일 경기도 용인 오대양 공장 식당 천장에서 집단 자살한 구원파 교인들의 사체를 끌어내고 있다. 당시 이 사건의 배후로 유병언씨가 지목되었다.

    채권단과 경찰이 용인공장을 찾았지만, 어린이들만 찾고 천장에 숨어 있던 이들은 발견하지 못했다. 천장 아래에서 주먹밥 등을 올려주던 직원들이 일절 함구한 탓이다. 이들과 박순자 사장은 쪽지로만 대화했다. 8월28일 이불보를 올려달라는 쪽지가 마지막이었다.

    집단 자살 뒤 발견된 이 쪽지들이 바로 타살설과 배후의 근거가 되었다. ‘지금 삼우는 무척 고통을 받고 있답니다’ ‘반대다 완전 도전이다. 넘기면 개발비 불게 하는 거다’ 따위 내용이었다. 쪽지에 등장하는 삼우는 바로 유병언씨가 이끈 삼우트레이딩을 의미했고, 개발비는 사채를 뜻했다. 유병언씨는 삼우트레이딩에 ‘개발실’을 운영하며 교인들을 통해 사채를 끌어 쓴 것으로 1991년 검찰 수사 결과 드러났다. 검찰은 오대양 박순자씨를 유병언의 자금모금책으로 보았다. 검찰은 “사채 반환 등 극단으로 몰린 이들이 집단적으로 자살한 사건으로 타살은 근거가 없다”라고 밝혔다. 당시 차장검사로 수사를 지휘했던 심재륜 변호사는 2012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신앙의 구심점이자 돈의 종착역은 유병언 사장이었다. 유 사장은 집단 자살에 형사책임은 없더라도 직간접으로 중대한 책임이 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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