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철論

최영철 2017. 10. 17. 00:04

만추 / 최영철


꼭 한마디 전할 게 있다는 듯 겨울이 오기 전에 귀뚜라미 울음이 요란하다
귀뚜리가 울자 옆에 있던 벌거지들이 풀섶 곳곳에 숨어 따라 운다
동감이요, 재청이요, 옳소, 막무가내 외치는 소리
가을의 저지선을 뚫고 달려온 구급차가 시끄러운 잎새들을 짓밟고 간다
너무 빨리 짓밟힌 벌거지들이 피에 물들어 바스러지고 있다
그리고 잠시 후
귀뚜리도 울지 않고 구급차도 오지 않고 겨울도 오지 않았다
피를 다 흘린 잎새들만 남아 오랜 적막이 계속되었다


『호루라기』, 최영철, 문학과지성사, 2007년, 90쪽


언제 가을이 되었는가 싶었는데, 겨울이 한걸음 성큼 다가왔습니다. 이런 기운이면, 머지않아 눈이 날릴 것 같습니다. 여름이면 겨울이 기다려지고, 겨울이면 다시 여름이 기다려집니다. 이번 겨울도 내년 여름이 그렇게 기다려지겠습니까.
 
되돌리고 싶을 것입니다. 지난여름으로. 십오 년 만에 잘 쉬었습니다. 정말 푹 잘 쉬었습니다. 그런데 쉰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무엇을 보고 잘 쉬었다고 말하는 것입니까. 이것 참 어려운 개념입니다. 올해도 전년처럼 바빴고, 분주했습니다. 하루도 편하게 쉬어 본 적 없습니다. 일이 있든 없든, 긴장을 놓는다는 것은 저에게 익숙하지 않습니다. 근육을 긴장시키고 눈을 맑게 합니다. 잠을 물리치고, 책을 듭니다. 머리는 맑은 것이 좋습니다. 술도 멀리합니다. 단 한잔이라도 술을 마시면, 그날 저녁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만추에 들면 책 읽기가 좋습니다. 가을이 이렇게 좋은 계절인지 몰랐습니다. 더위도 없고 내 주위를 맴도는 벌거지 한 마리 없습니다. 몸과 마음을 둔하게 하는 두꺼운 옷을 입지 않아도 됩니다. 저 붉은 단풍이 내 눈과 마음을 유혹하지만, 나는 흔들리지 않습니다. 눈의 호사를 위하여 저 산을 왕래하지 않기로 마음 먹은 지 오래입니다. 아직 책을 볼 수 있는 시력이 남아 있을 때 조금이나마 더 보기 위해서요. 아 그런데, 결정적으로 나의 의지를 방해하는 것은 집안일입니다. 너무나도 태산과 같은 저 넘기 힘든 콘스탄티노플 성벽. 하지만 그 성벽을 무너뜨릴 술탄의 대포알은 없습니다. 그래서 하루에 겨우 두어 시간이 전부. 읽은 만큼 써야 하고, 생각을 정리하고, 다시 써야 합니다.

새벽이면 씁니다. 여름에도 그랬고, 가을이 한참인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더워도, 추워도 씁니다. 일찍 하루를 시작하니, 쓸 수 있습니다. 계절의 변화도 느낄 수 있습니다. 벌거지들 소리가 들리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저야 깊은 방구석에 있으니까요. 새벽엔 베란다에 마련한 제 책상에서 글을 쓰거나 책을 읽지 못합니다. 노트북도 철수했고, 며칠 전에 산 기다란 전등도 방으로 철수했습니다. 아직 철수하지 못한 것이 있다면, 베란다를 가득 메운 꽃과, 식물과, 그 주변을 서성거리고 있는 제 마음입니다.

염려됩니다. 식물이, 꽃이, 이제 막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기 시작한 방울토마토가. 저 토마토는 늦가을을 잘 견딜 수 있을까요. 울창한 수확을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기십 여 개라도 열매가 열렸으면 좋겠습니다. 막내 아이가 잔뜩 기대하고 있으니까요. 한철 블루베리도, 금귤도, 상추도 잘 먹었습니다. 그 추억을 못 잊어 배추도 심고 방울토마토도 심은 것인데, 제 욕심이 너무 과한 것입니까. 방울토마토 나무의 어깨에 너무나 큰 무게감을 얹어 준 것입니까. 그래도 아직 제법 뜨거운 가을 햇살이 남았으니 기대를 해 봐도 되는 것입니까. 아! 저녁에 털 잠바라도 입혀 줄까요. 마음은 그러고 싶지만, 사람들이 놀리겠지요.

벌거지 소리 잦아든다는 것은, 올 한해도 다 갔다는 얘기입니다. 시끄러웠던 여름이 벌써 저만치 흘러갔다는 얘기입니다. 사람도 그러하지요. 노인이 되면, 말할 기력도 없어 입에선 한숨과 “죽겠다, 죽겠다” 소리만 나오지요. 새끼 새처럼 종알거리던 좋았던 시절은 다 어디로 갔는지. 아! 그 소리들도 전부, 만추 속에 있겠습니다. 어디 간 것이 아니라, 여기에 있습니다.

아기 울음소리도, 모든 것이 궁금했던 시절의 종알거림도 제 몸속에 있습니다. 어디로 간 것이 아니라 다 내 몸속에 가지고 있습니다. 다만, 그 소리를 제가 기억하지 못하는 것뿐입니다. 앞으로 잊을 것이 더더욱 많아지겠지요. 잊고, 잊고, 다 잊은 후에 한 생을 후련하게 마무리하겠지요. 그것이 가을의 또 따른 은유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