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철論

최영철 2018. 12. 11. 23:34

사소하게 고귀하게

     -최영철 시집 말라간다 날아간다 흩어진다(문학수첩, 2018)

 

 

말라가고 날아가며 흩어지는 것. 그것은 가장 사소하면서도 하찮게 놓여 있는 지상의 사물이다. 고속도로 갓길에 방치되어 말라가는 에 대한 관찰. 속력에 취해 살아가는 현대인이라면 누구라도 쉽게 볼 수 없는 사소한 대상에 대한 정지 화면이다. 이 시집 전반이 조명하는 인간의 삶과 죽음도 이렇게 하찮다. 한 덩어리의 처럼 말라가고 날아가며 흩어진다. 죽음에 대한 관조는 연륜의 정서와 함께 묻어 나온다. 삶의 농익음은 죽음에 가까워지는 방식이며 그러한 맥락에서 시인에게 죽음은 유머다. 죽음은 피하거나 경계해야 할 대상이 아니며 즐기고 웃어넘기고 풍자해야 할 대상이다. 다만 고속도로를 내달리다 갓길에 버려진 똥 하나를 발견하는 일처럼 삶의 속도를 늦추거나 멈추어 바라보는 수고를 해야 한다.

 

여기 오면 왜 금방 배가 고플까/화장을 고치고 싶어질까/금방 잿더미가 될 줄 알면서/싸 늘하게 말라 버린 얼굴에/누가 자꾸 분을 발라 주고 있었어

-화장의 기술일부

 

화장(火葬)을 화장(化粧)d 빗대어 화장장의 풍경이 묘사된다. 화장터는 오븐으로 묘사된다. 화장장은 우스꽝스럽다. 죽음은 목숨이 끊어지는 생물학적 순간과 그 내적 의미가 다르다 죽음은 하나의 세러머니다. 육체가 불타 재로 변하는 그 순간까지도 육체를 떠난 정신은 그 광경을 바라보고 함께한다. 죽은 자와 산 자 모두 그 세러머니 앞에 있다. 그 모습이 가히 꾸며진 비통함으로 얼룩져 있더라도 그것은 죽음이 통과해야 할 필수적인 관문이다. 죽음은 그 자체로 고독이며 독거의 마지막 결실은 고독사. “때마침 하루일 마친 해가 돌아가는 길에 내 혼령을 무등 태우고 가는 산마루, 떠들썩, 왁자지껄 바라볼 순 없지 모름지기, 고독하게, 애타게, 오랫동안 기다린 먼 여행”(고독사를 굼꾸며이 시인에게 고독사다. 고독사는 흥겹고 희망차다. 주목할 점은 고독사가 고독한 것이 아니라 고독사를 기다리던 한 생이 고독이다. 삶과 죽음은 이러한 면에서 서로에게 역설적인 면을 가진다.

관에 들어가기 딱 좋은 오종종한 자세로 다음다음 골목에 사는 할머니가 걸어오신다 다음다음 주자에게 바통을 넘기려는지 나를 보자 반갑게 손을 흔들며 뛰어오는 자세를 취했다”(퇴로)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3인칭의 대상을 관찰하는 듯 보이지만 이어지는 문장 속의 시적 화자는 1인칭의 화법을 넘나들며 그것이타인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환기한다. 죽음은 졸업장이며 씩씩하고 유쾌하게직행해야 할 곳이 바로 황천길 너머다. 최영철 시인의 죽음에 대한 시편들에서 자주 그렇듯, 죽음을 향해 가는 인간의 자세는 오욕칠정”(퇴로)을 털거나 막막한 무단가출”(고독사를 꿈꾸며을 끝내는 일이다. 죽음은 인간으로서 짊어지고 가는 욕망의 과잉을 털어 내며 가벼워지거나 자유로워지는 과정이다. 이 지점에 연륜이 엿보인다. 시인은 죽음을 묘사하는 듯하지만 실상 삶의 속도를 늦추고 삶을 바라보는 작업을 끌어낸다. 그것은 가장 사소하게 던져졌기 때문에 존재의 묵중함으로 침전하는, 삶의 철학적 단면이다.

(문학수첩, 2018 겨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