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산문

최영철 2020. 3. 1. 14:07

[박미영의 즐거운 글쓰기] 아프다와 아프리카의 사이


몸살로 여러 날 아프다 아프니까 내가 살아 있다 아프지 않을 땐 내가 어디 있는지 몰랐다 아프지 않을 땐 내가 죽은 것이나 다름 없었다 맥박은 뛰는지 숨은 쉬는지 몰랐다 아프니까 할딱거리는 내가 들렸다 할딱거리는 내가 만져졌다 약을 타려고 줄선 구부정한 뒤통수가 보였다 살려고 죽을 퍼 담고 있는 쪼그라든 부대자루가 흔들렸다 아프니까 며칠 전 들은 아프리카 생각이 간절했다 할례를 한 엄마 품을 통과하느라 작게 작게 만들어진 아이들이 어두운 교실 바닥에 따개비처럼 붙어 책을 읽고 있다 폭삭 늙어버린 아버지들이 밀림으로 가고 있다 아프니까 아프리카를 떠나지 못하고 있는 처녀들이 더 새까매졌다 아프니까 아프리카가 된 것인지 아프리카니까 아픈 것인지 아프리카가 아프니까 나도 아픈 것인지 내가 아프라고 아프리카가 한 발 먼저 아팠던 것인지 모르겠다 아프니까 아무도 말해주지 않는다 아프리카가 아프다는 이야기는 더더욱 해주지 않는다 나도 이제 아프니까 어느 날 그만 아프리카로 가봐야 하지 않을까 아프리카처럼 새까맣게 누워 있어야 하지 않을까 눈만 번득이다가 그것도 안 되면 이빨만 희게 빛내다가 아프리카를 지고 좀 더 큰 병원으로 가 봐야 하지 않을까. <아프리카, 최영철>


‘아프리카가 아프다’ 정말 시인의 말대로 이름이 아프리카여서 아픈지, 아프니까 아프리카인지, TV나 매체를 통해 바라보는 아프리카의 아픔은 우리의 마음을 끝없이 아프게 합니다. ‘이빨만 희게 빛내’며 ‘새까맣게 누워 있’는 아프리카는 한 때 제국주의에 함몰되어 패권을 휘둘렀던 열강들(현재 또한!)과 온 인류가 지고 가야 할 아픔이 아닐 수 없습니다.

비단 아프리카뿐만 아니라 환경오염으로 인한 피폐와 굶주림, 종교 갈등, 인종 차별, 정치 불안정, 내전 등으로 인한 죽음과 질병, 할례와 명예살인, 여성비속화 등의 악습은 지금 바로 이 순간 중지되거나 철폐해야 할 인류의 악몽이며 세계고(世界苦)입니다.

현재 몸살로 심하게 앓는 시인은 이토록 거대한 인류의 화두를 짐짓 유행가 가사의 ‘톡’ 손 대면 좌르르 흩어지는 씨앗이라도 되는 양 독자들 마음에 하나씩 뿌려줍니다. 마치 스티브 잡스가 자신을 아는 21세기 모든 인류에게 ‘세계를 바꿔야 한다’는 무거운 사과를 가슴에 하나씩 안겨 주었듯 말입니다.

하지만 우리 모두에게는 저마다 할 일, 즉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의식주를 비롯한 인간 본연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일, 그 삶을 영위하기 위해 가지는 회사원, 교사, 사업가 등의 직업, 부모나 주부라는 의무 등도 여기에 해당될 것입니다. 물론 공부를 하는 학생도 할 일과 해야 할 일이 있는 이 군(群)에 속합니다.

글을 쓰는 작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도 대부분 건널목을 건너고 고객들을 만나고 기계를 조립하거나 진료나 운전을 하는 등 일상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요즘은 투 잡스, 스리 잡스라는 말이 유행인 것처럼 일의 가짓수를 셀 수 없을 만큼 여러가지 일을 하고 있는 작가들도 꽤 있더군요.

글을 쓰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자주 만납니다. 하지만 모두 먹고 살기에 너무 바빠 여유가 없다고 하더군요. 저는 그때 위의 시를 예를 들어 말해줍니다. 다른 세계와 내 삶의 사이 즉 ‘아프다’와 ‘아프리카’의 그 가까운 사이를 인식해 ‘슬픔’이라는 글자만 쓰면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다고 말입니다. <시인·작가콜로퀴엄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