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준극

음악의 도시 비엔나와 오페라 이야기

향유를 바른 여인 진실 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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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달라 마리아 이야기/막달라 마리아는 누구?

2009. 9. 27.

향유를 바른 여인은 누구? 왜? 어떻게? 반응은?

 

예수의 발 앞에 엎드려 눈물로서 참회하는 막달라 마리아 

 

복음서에는 어떤 여인이 예수님께 나아와서 예수님의 머리와 목 또는 발을 값비싼 향유로 아낌없이 씻은 사건이 기록되어 있다. 예수님의 공생애에서 중대한 사건의 하나이다. 유대에서는 손님을 크게 환영하는 뜻에서 머리나 목에 향유를 발라주는 풍습이 있지만 이 경우에는 평소에 알지 못하는 죄를 지은 여인이 부르지도 않았는데 찾아와서 예수님의 머리(또는 발)에 향유를 바르던 중에 눈물이 쏟아져 나와 예수님의 발에 떨어지자 자기의 긴 머리털로 눈물에 젖은 예수님의 발을 닦았다는 사건이기 때문에 의미가 특별하다. 유대에서는 죽은 사람을 장사 지낼 때에 몸에 향유를 바르는 풍습이 있기는 하다. 그런 의미에서 생각해 본다면 어떤 여인이 예수님에게 값비싼 향유를 발랐다는 행위는 마치 장례식을 치룬듯 해서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볼수 있다. 예수님에게 향유를 바른 사건은 4 복음서에 모두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각 복음서에 기술된 내용은 조금씩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학자들은 이 사건을 근본적으로 하나의 사건으로 보고 있다. 물론 그렇지 않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각각 다른 사건이라는 것이다.

 

예수님에게 향유를 부은 사건은 마태복음 26장, 마가복음 14장, 누가복음 7장, 요한복음 12장에 나온다. 복음서를 찬찬히 읽어보고 기록된 내용을 음미해 보면 서로 다른 두명의 여인이 서로 다른 환경에서 향유를 부은 것처럼 생각된다. 하나는 막달라 마리아이고(마태, 마가, 요한) 다른 여인은 이름이 없이 다만 죄를 지은 여자라고만 되어 있다(누가). 두 사람은 같은 사람인가? 아니면 다른 사람인가? 흥미로운 일은 우리나라 찬송가 211장에 보면 ‘값비싼 향유를 주께 드린 막달라 마리아 본받아서....’라는 구절이 있다. 이 찬송가에서는 향유를 바른 여자를 두말할 필요도 없이 막달라 마리아라고 단정하고 있다. 그래서 대부분 교인들은 죄를 지은 여자이건 아니건 예수님에게 향유를 바른 사람은 막달라 마리아라고 믿고 있다. 과연 그럴까?

 

막달라 마리아의 회심. 1547년 파올로 베로네세 작


혹시 예수님에게 향유를 바른 사건이 두 번 있었을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우선 유태인은 귀중한 손님이 오면 머리나 발에 향유를 바르는 관습이 있었다고 한다. 막달라 마리아는 자기 집에 오신 예수님을 매우 존귀하게 여겨 관습대로 향유를 발랐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누가복음의 여자는 좀 색다른 행동을 했다. 관례대로 예수님의 머리에 향유를 발랐을 뿐이지만 자기의 눈물이 예수님의 발을 적시자 자기의 긴 머리털로 젖어 있는 예수님의 발을 닦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인이 머리털로 그런 행동을 했다는 것은 당시의 관례를 잘 알지 못해서 미안하기는 하지만 상당히 이례적인 일인 것만은 틀림 없다고 생각된다. 오늘날에도 무슬림 여인들은 자기의 머리칼을 다른 사람, 특히 외간 남자에게 절대로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두건으로 머리를 감춘다. 유태여인들도 그런 관습이 있다고 본다. 그렇다면 그 여인이 외간 남자들 앞에서 머리를 풀고 예수님의 발을 씻었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례적인 일이 아닐수 없다. 여인의 머리칼은 자기의 남편에게만 보이는 것이 관례였다면 이 노릇을 어떻게 설명할수 있단 말인가? 또한 막달라 마리아가 향유를 바른 행동과 어떤 죄 지은 여인이 향유를 바른 행동은 서로 완전히 다르다는 것인지도 궁금증을 자아내게 해주고 있는 일이다. 혹자는 두 얘기가 실상 같은 사람에 의해 같은 장소에서 일어난 일을 말한 것이지만 세월을 따라 전해 내려오면서 표현에 약간 변질이 생겼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만일 각각 다른 두 개의 사건이라고 하면 다수결에 의해 ‘어떤 죄 지은 여자’라고 기록한 누가복음의 스토리가 제외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튼 이에 대하여 조금 더 궁금증을 풀어보자.

 

우선, 예수님께서 계시던 장소.

- 마태복음: 베다니의 나병환자 시몬의 집

- 마가복음: 마태와 마찬가지로 베다니의 나병환자 시몬의 집

- 요한복음: 베다니에서 마리아, 마르다, 나사로와 함께

- 누가복음: 어디라고는 말하지 않고 바리새인의 집이라고만 기록되어 있으며 나중에 바리새인은 시몬이라고 적음.

 

여기에서 두 가지 사항을 짚어볼 필요가 있다. 요한복음 12장 2절에는 “거기서 예수를 위하여 잔치할새 마르다는 일을 하고 나사로는 예수와 함께 앉은 자 중에 있더라”라고 되어 있다. 예수께서 마리아, 마르다, 나사로의 집에 계셨다고 되어 있지는 않다. 다만, 마르다가 음식준비를 하고 나사로는 식탁에 다른 사람들과 함께 앉아 있다고 되어 있다. 마르다가 음식준비를 하고 나사로가 식탁에 앉아 있다고 해서 그곳이 반드시 이들 남매의 집이라고 할 수는 없다. 만일 그 집이 나병환자 시몬의 집이라고 한다면 나병환자는 부정하므로 그가 직접 손님들에게 음식을 나누어 대접할수는 없으므로 누군가가 식탁에서 서브를 해야 했다. 특히 잔치를 할 정도라면 몇 사람이 시중을 들어야 했다. 마르다는 시몬의 집에 부엌 일을 도우러 온 여자일 뿐이라고 생각할수 있다.

 

비엔나 갈멜교회 중앙제단화. 피터 페어카데 작.

 

두 번째로 생각할 것은 시몬이라는 사람의 이름이다. 시몬이라는 이름은 이스라엘에서 상당히 흔한 이름이다. 유다나 레위와 마찬가지로 이스라엘 열두지파 중 하나의 이름도 시몬이다. 성경에는 시몬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19명이나 등장한다. 예수의 제자 중에도 시몬이 두명이 있고(시몬 베드로와 열심당원 시몬) 야고보는 세명이나 있다. 요한의 동생 야고보,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예수의 동생 야고보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잔치에 참석하신 집이 어떤 시몬의 집인지는 확실치 않다. 그냥 대표적으로 시몬이라고 했을 가능성도 있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서 향유를 바른 여자는 과연 누구인가? 네 복음서에는 어떻게 표현되어 있는가?

 

- 마태복음: 이름을 명시하지 않았다.

- 마가복음: 역시 이름을 명시하지 않았다.

- 누가복음: 성읍에 사는 자로 죄를 지은 여자라고 되어 있다.

- 요한복음: 마르다와 나사로의 동생 마리아라고 적었다.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서 여자의 이름을 명시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하지만 이들보다 나중에 쓴 요한복음에는 마리아라는 이름이 밝혀져 있다. 이유는 무엇인가? 추측컨대 처음에 이름을 밝히지 않은 것은 마리아와 마르다 자매에 대한 당국의 핍박이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에 일부러 그렇게 했다는 것이다. 당시 예수님을 미워하는 대제사장들은 예수님에 의해 죽었다가 살아난 나사로도 미워하였다. 요한복음 12장 9절을 보면 “유대인의 큰 무리가 예수께서 여기(베다니) 계신 줄을 알고 오니 이는 예수님만 보기 위함이 아니요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도 보려 함이러라”고 적혀 있다. 즉, 많은 사람들이 다시 살아난 나사로를 보기 위해 몰려 온 것이다. 대제사장들은 이것이 못마땅했다. 나사로 때문에 많은 유대인들이 가서 예수님을 믿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12장 10절을 보면 “대제사장들이 나사로까지 죽이려고 모의하니”라는 구절이 나온다. 그러한 입장에서 예수께 향유를 부어 죄 사함을 받은 마리아의 이름을 밝히는 것은 위험한 일이므로 일부러 밝히지 않았다는 것이다.

 

시몬의 집에서 잔치를 할 때에 마리아가 나아와 눈물로서 예수의 발을 적시자 머리털로 닦고 있다. 디에릭 부츠(Dieric Bouts) 작품.

 

막달라 마리아는 어떤 일을 했나?

마태복음: 옥합에 들어 있는 값비싼 향유를 가져와서 예수의 머리에 부었다.

마가복음: 마태복음의 내용과 같다.

누가복음: 7장 37-50절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베다니에 죄를 지은 한 여자가 있는데 예수께서 바리새인의 집에 계신 것을 알고 향유가 들어있는 옥합을 가져와서 예수의 뒤로 그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의 머리털로 닦고 그 발에 입맞추고 향유를 부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요한복음: 12장 3절에 보면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닦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라고 되어 있다.

 

나드의 꽃과 열매. 학명으로는 Nardostachys_grandiflora라고 부른다.  

 

나드는 향유의 한 종류이다. 저 멀리 히말라야나 인도의 산간에서 자라는 꽃나무의 이름이다. 나드의 꽃과 열매는 향기가 매우 진하여서 약이나 기름으로도 사용하지만 보통 향수를 만들거나 불면증 치료제를 만드는데 사용한다. 이스라엘에서는 나지 않는 희귀한 꽃으로 만들기 때문에 값이 무척 비싸다. 몰약(Myrrh)이든지 나드(Nard)든지 향내가 빠지지 않도록 옥합에 넣고 밀봉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향유는 목에 바르던지 발에 바른다. 그러나 마리아가 향유를 발에 부었는지 또는 머리에 부었는지는 서로 다른 기록 때문에 확실치 않다. 아무튼 향유를 머리에나 발에 바르는 것은 당시의 관습상 크게 유별난 행동이 아니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요한은 향유를 발에 발랐다고 했는데 마태와 마가는 머리에 부었다고 기록한 것이다. 요한과 누가는 머리털로 발을 닦았다고 했는데 마태와 마가복음에는 그런 내용이 없다. 왜 그런가? 복음서를 쓴 저자들의 신앙관이 다르기 때문이라는 해석이다. 향유를 머리에 부은 것은 예수님께서 만왕의 왕이 되심을 상징하는 것이며 발에 부은 것은 예수님이 죽음으로 영광 받으심을 상징한다는 것이다. 머리털로 발을 닦았다는 것도 크게 유별한 행동은 아니었다. 고대로부터의 관습에 따르면 잔치를 할 때에 손을 물이나 기름으로 닦는 것이 보통이었으며 그 때에는 하인들의 머리털로 물이나 기름이 묻은 손을 씻었다고 한다. 별난 풍습이기는 했다.

 

막달라 마리아가 베다니에서 예수의 발에 향유를 바름

 

마지막으로 마리아가 향유를 부은 후에 반응은 어떠했는가?

마태복음: 26장 8-13절에 제자들의 반응과 이에 대한 예수의 가르침이 기록되어 있다. “8 제자들이 보고 분개하여 이르되 무슨 의도로 이것을 허비하느냐 9 이것을 비싼 값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수 있었겠도다 하거늘 10 예수께서 아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 여자를 괴롭게 하느냐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11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12 이 여자가 내 몸에 이 향유를 부은 것은 내 장례를 위하여 함이니라 13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서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하시니라”

 

마가복음: 마태복음의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몇가지 표현이 다를 뿐이다. 14장 4-9절을 보면 “4 어떤 사람들이 화를 내어 서로 말하되 어찌하여 이 향유를 허비하는가 5 이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 이상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하며 그 여자를 책망하는지라 6 예수께서 이르시된 가만 두라 너희가 어찌하여 그를 괴롭게 하느냐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7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니 아무 때라도 원하는 대로 도울수 있거니와 나는 너희와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8 그는 힘을 다하여 내 몸에 향유를 부어 내 장례를 미리 준비하였느니라 9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하시니라”라고 기록되어 있다.

누가복음: 7장 36-50절에는 예수를 청한 바리새인 시몬이 마리아의 행동에 대하여 의아하게 생각하자 예수는 여러 비유로서 죄를 사하는 문제에 대하여 말씀하였다.

 

요한복음: 요한복음에서는 가롯 유다가 이의를 제기했다고 적혀 있다. 12장 4-7절에 “4 제자 중 하나로서 예수를 잡아 줄 가롯 유다가 말하되 5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6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그는 도둑이라 돈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 7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를 가만 두어 나의 장례할 날을 위하여 그것을 간직하게 하라”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상에서 볼수 있듯이 마태, 마가, 요한의 기록은 서로 내용이 흡사하나 누가의 기록만이 약간 다르다. 요한은 가롯 유다에게 초점을 두었다. 요한은 가롯 유다를 매우 나쁜 인간으로 보았다. 이제 결론을 말하자면, 베다니 마을의 죄 지은 여자와 막달라 마리아는 같은 여자로 볼수 있고 향유를 발에 부었던지 머리에 부었던지는 큰 문제가 되지 않으며 이 여자가 예수에게 향유를 부은 것은 예수의 장례를 예비한 것이라는 것이다.

 

막달라 마리아가 베다니에서 예수의 발에 향유를 바르는 장면 포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