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준극

음악의 도시 비엔나와 오페라 이야기

고종황제 등극 재현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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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궁 일화/운현궁의 봄

2009. 11. 1.

고종의 황제 등극 재현행사

(Reenactment of Emperor Gojong's Enthronement)

 

면류관을 쓰고 면복을 입다.

 

운현궁에서 고종이 황제로 등극하던 행사를 고증에 따라 재현한다는 안내판들이 여러군데 붙어 있어서 그것도 미상불 볼만한 이벤트라고 생각하여 시간을 내어 가보았다. 2009년 10월을 마지막으로 보내는 31일 토요일이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아침나절엔 날씨가 관찮았는데 점심 쯤해서부터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행사시간이 가까워지자 남의 사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비가 하늘에서 주룩주룩 내렸다. 운현궁 마당에는 무대도 만들어 놓고 관객들이 앉아서 관람 할수 있게 차일을 치고 의자들을 정리해 놓았는데 줄기차게 내리는 비 때문에 난리도 아니었다. 어가행렬에 참가할 예정인 스태프들은 운현궁 밖의 길거리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하며 기다리고 있는 중에 하늘만 바라보며 '이거 이러다가 비 맞으면서 행렬하는게 아닌가?'라는 걱정을 했다. 우천이면 연기되거나 취소될 것으로 짐작했는데 주최측은 웅기중기 앉아 있는 관람객들이 안스러웠는지 우중임에도 행사를 강행키로 결정했다. 다만 행사의 규모를 비 때문에 어쩔수 없이 축소하였으니 예를 들면 인사동 거리에서 고종이 탄 어가의 행진 등은 중단할수 밖에 없었다.

 

어가 등장.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데 임금을 태운 어가가 무대를 향해 들어오고 있다.

 

등극식을 재현하는 행사는 2시부터 시작되었지만 그 전에 식전행사가 있었다. 율곡 중고등학교라는 학교의 취타대가 나와서 연주를 했는데 어린 학생들이었지만 아주 잘했다. 요즘엔 학교마다 장기(長技)를 하나씩 가지고 있으면 학교의 명예진작을 위해 여러모로 쓸모가 있는 것 같다. 이어 한혜경장고춤보존회라는 곳의 멤버들이 나와서 태평무 등 몇가지 궁중무와 전통무를 선보였다. 다행히 무대의 가운데 부분은 비에 젖지 않았기 때문에 그나마 사뿐사뿐 춤들을 출수 있었다. 식전행사의 사회는 운현궁관리소장이라는 양반이 맡아했는데 우중에도 이리저리 바쁘게 왔다갔다하면서 아주 수고가 많은듯 보였다. 적은 수의 관객이지만 운현궁관리소장의 수고를 치하하기 위해 박수들을 보냈다.

 

신식군인들도 포함된 후위군이 등장하여 사방을 호위하다. 구경하던 어떤 어린 학생들이 '일본군이 나왔네'라고 말했지만 일본군이 아니라 대한제국의 신식군대이다. 비가 너무 와서 군인들은 모두 철수했다.

 

이어 2시부터 고종황제의 등극의가 약식으로 진행되었다. 아무리 비가 온다고해도 준비해 놓은 행사이니 치루어야 했다. 더구나 방송국에서 카메라를 가지고 취재를 왔으니 그걸 생각해서라도 안할수 없었다. 비가 내리는 중에 드디어 등극의 시작을 알리는 북이 한번 울렸고(북에는 비닐을 덮어 씌웠다) 황제를 호위하는 군사가 입장하였으며 뒤를 이어 의장을 든 사람들과 깃발을 든 사람들이 어영부영 들어와서 자리를 잡았다. 모두들 내리는 비를 주룩주룩 맞고 있었는데 하기야 보수를 받고 알바를 하는 것이기 때문에 비를 탓할 처지가 아니어서인지 우중의 노천임에도 불구하고 근엄하게 자리들을 지키고 있었다(얼마후 계속 비맞고 서 있는 것이 안타까워서 퇴장토록 했다). 다음으로는 만조백관들과 종친들을 대표하는 사람들 몇명이 들어왔고 이어 고종이 가마(어가)를 타고 등장하였다. 신하들이 고종을 부축하여 의자(금의)에 앉혀 드리면 그것으로 황제에 등극한 것이라고 한다. 성경책이라도 가져다 놓고 손을 얹어 선서라도 했으면 특이했을 것인데 그럴수는 없었던 모양이었다. 그 다음에는 집시관이라고 하는 시종들이 황제에게 황제의 옷인 면복을 입히고 황제의 관인 면류관을 씌우는 의식이었다. 그런데 면복(冕服)이 여러벌이기 때문에 입는데에만 그럭저럭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 다음의 순서는 종친과 문무백관들의 국궁사배, 어보 증정, 조칙 선포, 마지막으로 산호(만세 만세 만만세)를 외치니 그것으로 끝이었다. 등극의 절차를 말로 하자면 간단하지만 실제로 자세히 설명하자면 상당히 길고 복잡하다. 날씨만 좋았더라면 생전 처음 보는 역사에 길이 빛나는 조선제국의 황제의 등극식을 아주 찬찬히 볼수 있었을 터인데 비가 와서 그렇지 못했다. 운현궁에서 다시 행사를 가졌으면 좋겠다.

 

군신들의 등장. '거 참 돈 벌기 힘들다. 비 맞으며 이게 무슨 고생인가?'라고 중얼거렸을 것이다.

 

고종은 민비가 비참하게 일본 놈들의 칼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건청궁 뒤편 언덕에서 불에 태워 재가 되는 비운을 경험하였으며 또한 임오군란과 갑신정변이라는 난리를 겪자 오랜 생각 끝에 조선을 대한제국으로 명칭변경하고 자신은 황제로 등극키로 결심했다. 연호를 광무로 고친 것은 1897년 8월이었지만 황제로서 등극의를 거행한 것은 그해 10월 12일이었다. 장소는 현재 웨스틴-조선호텔 경내에 있는 원구단(환구단)이었다. 그리고 황제로서 조칙을 발표하는 행사는 덕수궁의 즉조당(태극전)에서 거행하였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잠시나마 제국으로서 왕이 아니라 황제가 군주로 있는 나라가 되었다. 얼마후 다 아는대로 고종은 일본의 간섭에 의해 억지로 아들 순종에게 양위를 하였다. 따라서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는 순종이라고 할수있다. 그러나 어떤 사학자는 순종은 일본에 의해 자유의지가 없이 황제가 되었으니 무효이며 오리지널 황제는 고종황제뿐이라고 주장했다. 그리하여 고종황제는 대한제국의 첫 황제이며 동시에 마지막 황제였다는 것이다. 금번 10월 마지막 날의 고종의 황제등극의는 예문관이라는 문화용역단체가 주관하였다. 이날 토요일 오후에는 운현궁 노락당 예식장에서 전통혼례식이 있었다. 하객으로 온 사람들 중 어떤 사람은 고종의 황제등극의가 진행되는 것을 결혼식이 진행되는 것으로 알고 관중석에 한참이나 앉아 있다가 아무래도 이상해서 슬며시 자리를 뜬 경우도 있었다. 사족-영어표기가 영 어색하다. Reenactment?   

 

어가의 뒤를 이어 들어오는 작은 가마. 누가 탓을까? 

등극의의 시작을 알리는 타고. 방송국 카메라맨들이 북치기를 기다리고 있다. 비가 와서 북은 비닐로 씌었다. 

율곡중고등학교 취타대의 식전행사 연주 

한혜경장고춤보존회의 태평무. 역시 식전행사  

관중석. 아, 비만 오지 않았더라면...예산을 많이 들여서 행사를 준비했는데 관객은 고작 이들이 전부다. 노락당에서 열리는 결혼식을 보러 온 사람들인데 이 곳에서 결혼식이 진행되는 줄 알고 멋 적게 한참 앉아 있다가 아무래도 이상해서 주변 사람들에게 '아, 여기에서 시방 결혼식을 올리는 건가유?'라고 물은후 아니라고 하자 황급히 자리를 뜬 경우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