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준극

음악의 도시 비엔나와 오페라 이야기

양이재를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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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궁 일화/덕수궁의 비운

2010. 2. 24.

경운궁(덕수궁)의 양이재(養怡齋)

 

서울 중구 정동의 성공회 서울성당의 구내에 새로 복원된 커다란 한옥이 한 채 있다. 양이재(養怡齋)라는 건물이다. 양이라는 뜻은 '인재를 양성하니 이 아니 기쁜 일인가' 라는 뜻이다. 짐작컨대 2008년 12월에 복원된 모양이다. 원래의 양이재 건물은 예전에 성공회 서울성당의 영빈관으로 사용되었다고도 한다. 양이재는 덕수궁(당시에는 경운궁) 안에 있던 건물이었다. 그런데 일제에 의해 경운궁의 규모가 점점 축소되자 궁궐의 담장 밖으로 밀려나게 되어 마치 경운궁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건물처럼 동떨어지게 되었다. 하지만 분명히 경운궁에 속한 건물이었다. 옛날 경운궁의 배치도를 보면 경운궁을 대표하는 11채의 건물을 그려 놓았는데 그 중에 양이재도 당당하게 포함되어 있는 것을 보면 잘 알수 있다. 그만큼 중요한 건물이었다. 양이재는 확실치는 않지만 당시 경운궁(덕수궁)에 머물던 왕실의 자제들이나 일부 대가집 자제들을 별도로 교육시키던 장소였다고 한다. 1906년부터 1910년까지는 수학원(修學院)이라는 이름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양이재 건물 한 채만 특목교로 사용한 것이 아니라 주변에 있던 행각이나 정자들도 강의실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양이재의 바로 옆에는 함희당(咸喜堂)이라는 건물이 있었다. 그것도 사정에 따라 강의실로 사용되었다. 함희당은 1960년에 영국대사관에 흡수되었는지 철거되었고 양이재만 남아 있었는데 그동안 만고풍상을 겪다가 금번에 정부 지원으로 복원하게 된 것이다. 건물은 복원되었지만 아직 단청을 입히는 등 단장은 하지 않았다.

 

오리지널 양이재는 경운궁 시절인 1905년에 건설된 건물이었다고 하니 비교적 근세의 기와집이다. 아무튼 현재의 성공회 성당와 붙어 있으므로 혹시 덕수궁에 소속되었던 건물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지 모르지만 기록에 의하면 분명히 덕수궁(경운궁)에 속한 주요 건물이었다. 원래 경운궁이 넓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동쪽으로는 현재의 웨스틴조선 호텔까지 점유하고 있었고 서쪽으로는 로서아(러시아)대사관, 즉 현재의 예원여중이 있는 곳까지가 경운궁의 담장 안에 있었다. 그러다가 일제의 간계에 의해 경운궁의 규모가 점차 줄어들었고 급기야 현재의 좁은 모습을 유지하게 되었으니 참으로 민망스러운 일이 아닐수 없다.

 

 영국대사관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양이재의 모습. 도대체 누가 차를 저기에 하루종일 주차해 놓았을까?

                           

양이재와 함희당이 있던 일대는 홍원(紅園)이라고 하여 행각과 꽃담으로 둘러싸인 곳이었다. 그러나 홍원 일대는 덕수궁이 국운의 명멸과 함께 허물어지고 축소되어 갈 때에 함께 쇠락하는 운명을 겪었다. 일제는 경운궁을 의도적으로 축소하기 위해 여러 전각들을 개인에게 팔아넘기기도 했다. 서울 성공회는 바로 한 울타리 안에 있는 양이재가 다른 사람에게 팔려가는 것을 아쉽게 생각하여 아이디어를 내어 1912년부터 이곳을 임대하여 쓰다가 1920년에 아예 사들이고 서울교구의 사무실로 사용했었다. 그래서 그나마 자취가 남아 있게 된 것이다. 함희당은 1960년대에 헐렸으나 양이재 뒤편에 복도의 일부가 남아 있다. 이제 양이재를 다시 복원하여 모습을 보이게 되어 과거 경운궁(덕수궁)의 원대함을 잠시나마 느끼게 해주니 감회가 새롭다고 아니할수 없다.

 

 웬 검은 자가용이 앞을 가로 막고 있어서 사진을 원만하게 촬영하지 못했다. 문화재 앞에는 주차를 못하게 해야 한다. 그래도 양이재의 모습이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