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준극

음악의 도시 비엔나와 오페라 이야기

자이텐슈테텐(Seitenstetten) 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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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수도원/수도원의 영욕

2011. 1. 28.

자이텐슈테텐(Seitenstetten) 수도원

Stift Seitenstetten - Seitenstetten Abbey

 

자이텐슈테텐 수도원

 

자이텐슈테텐 수도원은 니더외스터라이히주 모스트피어르텔(Mostviertel)의 자이텐슈테텐에 있는 베네딕트 수도원이다. 자이텐슈테텐 수도원은 일찍이 1112년에 우달샬크(Udalschalk)라고 하는 사람이 전재산을 쾌척하여 설립하였다. 우달샬크는 당시 파싸우(Passau) 대주교인 울리히의 친척이었다. 수도원을 세우고 나자 괴트봐이크 수도원에 있던 수도승들이 이곳으로 옮겨와서 정착하였다. 울리히 대주교는 자이텐슈테텐 수도원을 1116년에 봉헌하고 아슈바흐(Aschbach) 교구를 관할토록 하였다. 1142년에는 볼프스바흐(Wolfsbach)교구도 자이텐슈테텐 수도원의 관할 아래에 들어가게 되었다. 자이텐슈테텐 수도원은 세월의 흐름과 함께 이 두 곳의 교구 이외에도 니더외스터라이히주의 14개 교구를 관할하게 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1180년 마그데부르크의 비히만(Wichmann)대주교는 자이텐슈테텐 수도원에게 입스(Ybbs) 강 연안의 광대한 삼림지대를 하사하면서 그곳에 기도처를 세우고 영원히 예배를 드리도록 하였다. 이렇게 하여 자이텐슈테텐 수도원은 니더외스터라이히에서도 손꼽히는 상급 수도원으로 성장하였다. 어떤 기록에 의하면 이미 12세기에 수도원 부속의 학교가 운영되고 있었다고 한다. 그 학교의 전통이 오늘날의 수도원학교에까지 이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고난도 많았다. 두번에 걸친 대화재가 있었으며 재산에 대한 분규로 위기를 겪은 일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도원은 점진적인 발전을 보았으니 하나님의 은총이었다. 하지만 당시 대개의 수도원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수도승들이 물질에만 관심을 가지고 세속적인 생활에 물들기도 하여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이에 자이텐슈테텐 수도원은 멜크 개혁을 받아들여 성령이 역사하는 수도원으로 거듭나는 노력을 기울였다. 

 

수도원의 입구

 

1440년에는 존타크버그(Sonntagberg)에 별도의 예배처를 세웠다. 자이텐슈테텐 수도원에 속한 존타그버그예배처는 순례교회로서 이름을 떨치기 시작했다. 많은 순례자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그러던중 헝가리의 간섭으로 어려움을 겪었으며 이어 터키의 침공으로 고난을 당하였고 16세기에는 종교개혁으로 크게 위축되었다. 또 다시 부흥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그때에 등장한 인물이 크리스토프 헬트(Christoph Held: 1572-1602) 수도원장이었다. 그는 황실로부터 강력한 후원을 받아 수도원의 부흥을 위해 전념하였다. 신앙의 부흥이 일어났다. 헬트 수도원장의 뒤를 이는 수도원장들도 수도원의 확장발전을 위해 노력하여 바로크 양식의 모습을 갖추게 만들었다. 그러나 자이텐슈테텐 수도원이 정작 신앙적인 장소로 우뚝 서게 된 것은 30년 전쟁 이후 수도원장이 되 가브리엘 자우어(Gabriel Sauer: 1648-74)에 의해서였다. 그는 수도원을 경제적으로 자립하도록 만든 인물이기도 했다. 자우어 수도원장 시절부터 수도원의 주요 건물들이 완성되었다.

 

수도원 내정(호프)의 분수

 

존타그버그에 웅장한 순례교회를 세운 것으 베네딕트 아벨츠하우저 수도원장 시절이었다. 그는 거장 야코 프란타우어(Jakob Prandtauer)에게 성삼위일체 교회를 건축해 달라고 의뢰하였다. 초기 고딕 양식의 수도원 교회는 화려하게 장식된 아름다운 건물이다. 그리고 1718-47년간에는 오늘날 우리가 볼수 있는 바로크 양식의 건물을 완성하였다. 대리석 홀의 천정 프레스코와 도서실은 거장 파울 트로거가 완성한 것이다. 그랜드 계단은 바르톨로메오 알토몬테의 작품이다. 대식당에는 크렘저 슈미트(Kremser Schmidt)의 작품 19점이 전시되어 있다. 로마네스크 양식의 기사채플(Ritterkapelle), 회화전시실, 정원도 화려하고 아름답다.

 

수도원 교회의 내부

 

특히 정원에는 무려 110종이 넘는 온갖 장미가 가꾸어져 있어서 이것만 보러 오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이렇게 화려한 건물과 내부장식을 하는데 든 돈은 주로 슈티리아의 라드머(Radmer)에 있는 수도원 소유의 구리광산의 소출로부터 충당한 것이다. 자이텐슈테텐 수도원은 오베르외스터라이히의 라이히라밍(Reichraming)에 청동주물 공장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요셉2세의 수도원 정리 정책과 나폴레옹 전쟁의 여파로 수도원은 큰 곤란을 겪었다. 하지만 19세기에 이르러 수도원은 점차 예전의 명성과 풍족함을 회복할수 있었다. 수도원장인 테오도르 슈프링거(Theodor Springer: 1920-58)의 공로를 간과할수는 없다. 그는 1차 대전, 나치점령시기, 2차 대전이라는 난관 속에서도 수도원을 지켜낸 인물이었다.


수도원의 본건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