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준극

음악의 도시 비엔나와 오페라 이야기

쇼텐슈티프트(Schottenstift) - 아일랜드 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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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수도원/수도원의 영욕

2011. 1. 28.

쇼텐슈티프트(Schottenstift) - 아일랜드 수도원

Scottisch Abbey - Benediktnerabtei unserer Lieben Frau zu den Schotten(Benedictine Abbey of Our Dear Lady to the Scots)

 

프라이융에 면한 쇼텐슈티프트(수도원)과 교회

 

쇼텐슈티프트는 글자그대로 보면 스코틀랜드 수도원이지만 실은 아일랜드 수도사들의 수도원이다. 쇼텐슈티프트는 1155년 야소미어고트라는 별명을 가진 바벤버그의 하인리히(헨리)2세가 설립하였다. 그는 바벤버그가 새로 수도로 정한 비엔나에서 가톨릭 교회를 부흥발전시키고자 하는 염원으로 독일 레겐스부르크의 성야콥 수도원에서 활동중인 아일랜드의 베네딕트파 수도사들을 초청하여 선교활동을 하도록 배려하였다. 중세 초기에 아일랜드 수도사들은 선교활동에 대단히 적극적이었다. 아일랜드는 라틴어로 Scotia Major 또는 Nova Scotia 라고 부른다. 그러므로 독일에서 아일랜드 수도사들은 쇼텐(Schotten) 또는 이로쇼텐(Iroschotten)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따라서 아일랜드 수도사들을 위해 비엔나에 세운 수도원도 쇼텐슈티프트(또는 쇼텐클뢰스터)라고 부르게 되었다. 쇼텐슈티트프의 설립에 대한 문서를 보면 하인리히2세가 이 수도원을 전적으로 이로쇼텐(Solos elegimus Scottos)으로 하여금 관장토록 한다고 적혀 있다.

 

1760년대의 프라이융과 쇼텐슈티프트 및 교회

 

하인리히 2세 통치하인 1156년부터 오스트리아(오스타라키)의 군주는 변경백(Margrave: Markgraf)이 아니라 공작(Duke: Graf)이라는 호칭을 사용하였다. 이와 함께 하인리히 2세는 거주지를 클로스터노이부르크에서 비엔나로 옮겼다. 하인리히 2세는 새로운 왕도인 비엔나에 수도원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중세에 수도원은 단순히 기도나 묵상을 하는 장소가 아니라 지식의 창고와 같은 역할을 했다. 하인리히 2세가 비엔나에 수도원을 세운 것은 비엔나의 지식과 문화 수준을 높이고자 하는 의도에서였다. 당시 수도원은 군주에게 여러 자문을 하였는데 예를 들면 자질있는 서기들을 교육하는 학교를 설립하는 문제 등이었다. 서기는 주로 성경을 필경하는 임무를 맡았었다. 수도원은 또한 도서실을 운영하여 귀중한 자료와 문서들을 보관하였고 아울러 양노원과 같은 역할도 하였다. 1365에 설립된 비엔나대학교도 실은 쇼텐슈티프트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그리고 다른 수도원들도 대개 그렇지만 쇼텐슈티프트도 박물관을 운영하고 있다. 한번 볼만하다는 것은 당연한 얘기다.

 

쇼텐슈티프트 박물관의 한 전시실

 

하인리히2세는 쇼텐슈티프트에 여러 특권을 부여하였다. 수도원은 하나의 치외법권적인 장소가 되었다. 쇼텐슈티프트의 건설은 1160년에 시작하였다. 수도원이 봉헌된 것은 1600년이었다. 수도사들은 수도원 내에 순례자들이나 간혹 비엔나를 통과하는 십자군들을 위한 호스피스(일종의 양노원을 겸한 병원 스타일의 시설)를 건설하였다. 당시 쇼텐슈티프트는 비엔나 성곽 외부에 위치하고 있었다. 수도원 교회는 로마네스크 양식의 건물로서 하나의 커다란 회랑으로 구성되어 있다. 하인리히2세는 1177년 세상을 떠나자 이 교회에 안치되었다. 1418년 멜크 개혁의 기간 중에 아레르트5세는 쇼텐슈티프트를 장악하여 오리지널 베네딕트 수도회 활동을 부흥시키고자 했다. 그리고 순수한 아일랜드 수도사들이 아닌 일반 베네딕트 수도사들, 특히 멜크 수도원에서 온 수도사들도 정착하여 지내도록 했다. 하지만 다른 수도사들이 입주하였지만 이들 역시 계속 쇼텐(아일랜드) 수도사들이라고 불렀다.

 

쇼텐슈티프트 교회 내부

 

1638년의 어느날 갑자기 벼락이 쳐서 교회의 첨탑이 무너졌다. 이 기회를 이용하여 완전히 새로운 교회를 세우자는 노력이 집중되었다. 거장 안드레아 달리오(Andrea d'Allio)와 실베스트로 카를로네(Silvestro Carlone)가 건축의 책임을 맡았다. 그러한 과정에서 교회의 규모는 길이가 조금 단축되었다. 하지만 이 때에 오늘날 보는 새로운 중앙제단이 마련되었다. 터키의 공성이 있는 후에 교회를 다시 확장하는 논의가 있었지만 그다지 성공적이지는 못했다. 1700년경에 위대한 바로크 음악가인 요한 푹스(Johann Fux)는 쇼텐슈티프트 교회의 오르간 연주자로 활동했다. 기왕에 얘기가 나온 김에 좀 더 거들자면 쇼텐키르헤의 사람들은 도대체 쇼텐키르헤가 다른 교회들에 비해서 어떤 점이 특별하냐고 물어보면 약간 주저하다가 '아 예, 하이든이 세상을 떠나자 곧바로 추모 음악회를 열었습니다. 그리고 유명한 배우인 프란츠 랑(Franz Lang)의 영결미사를 치루었습니다'라며 자랑한다. 그런에 요한 푹스가 이 교회의 오르가니스트로 봉사했다는 것도 자랑거리에 포함된다.

 

쇼텐슈티프트 벽면에 설치되어 있는 하인리히(헨리)2세의 기념상

 

1774년(미국이 독립하던 해)에는 수도원 내의 공동묘지 자리에 학교 건물을 세웠다. 예전에는 대학이 생기기 전에 학문의 전당은 수도원뿐이었다. 새로 세운 학교 건물은 마치 관공서의 사무실처럼 생겼기 때문에 슈블라트카스텐하우스(Schubladkastenhaus)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서랍장 집'이라는 뜻이다. 학교 건물의 바로 옆에는 호텔 뢰미셔 카이저(Hotel Roemischer Kaiser)가 문을 열었다. 슈베르트 처음으로 가곡발표회를 가진 장소가 바로 호텔 뢰미셔 카이저(로마황제호텔)였다. 한편, 1807년에는 프란츠 1세 황제의 명에 의해 중등교육의 김나지움이 설립되었다. 쇼텐김나지움이었다. 쇼텐김나지움은 오늘날 까지도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우수한 김나지움으로 명성을 얻고 있다. 1830년경에는 거장 요셉 코른호이젤이 수도원건물과 프라이융의 맞대어 있는 건물의 외관을 새로 보수하고 확장하였다. 수도원의 호프(내정)에는 1825년 페터 노빌레(Peter Nobile)가 완성한 '검은 성모'(Schwarze Mutttegottes)가 있다. 하인리히2세의 기념상이 있는 분수는 세바스티안 바그너(Sebastian Wagner)의 작품이다.

 

교회 중앙제단

 

수도원 박물관은 근자에 두번이나 재건되었다. 1995년과 2005년이었다. 박물관에는 1470년 경에 제작된 쇼텐마이스터알타르(수도원 중앙제단)가 있어서 특히 눈길을 끈다. 이 제단은 후기 고딕양식의 걸작일 뿐만 아니라 역사적으로도 비엔나의 발전과정을 지켜본 중요한 것이다. 교회, 납골당, 도서실, 박물관은 매 목, 금, 토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5시까지 문을 연다. 가이드 투어는 토요일 2시 30분에 있다. 쇼텐슈티프트는 여행자들을 위한 숙박시설도 운영하고 있다. 베네딕투스하우스(Benediktushaus)라고 부른다. 도심에 있지만 비교적 조용하며 가격도 저렴한 편이어서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고 있다.

 

쇼텐슈티프트가 운영하고 있는 베네딕투스하우스의 식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