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준극

음악의 도시 비엔나와 오페라 이야기

세계의 오페라 하우스 베스트 20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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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오페라하우스/세계의 오페라극장

2015. 1. 30.

영국의 세계적 여행정보 회사 선정

세계의 오페라 하우스 베스트 20 - 1

포도르 트레블(Fodor's Travel) 선정

 

오페라에 대하여 문외한이 사람이라고 해도 오페라 하우스가 한 나라의 문화예술의 수준을 가늠할수 있는 가장 중요한 건물이라는 것은 인정할 것이다. 오페라는 모든 예술분야를 종합한 총체적 예술이기 때문이며 그런 오페라를 공연하는 오페라 하우스야 말로 건물 자체만으로도 뛰어난 예술작품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과연! 유서 깊은 오페라 하우스들을 보면 오페라에 대하여 문외한이 사람이라고 해도 아름답고 웅장한 모습에 감탄을 금치 못하게 될 것이다. '옷이 날개'라는 말이 있듯이 아름답고 웅장한 오페라 하우스에서 훌륭한 오패라 공연이 이루어지는 법이다. 훌륭한 오페라 하우스가 있고 뛰어난 오페라가 공연된다는 것은 그 오페라 하우스가 있는 도시가 경제적으로도 부유한 도시라는 것을 말해주는 일이다. 막대한 경비가 드는 오페라를 수시로 공연한다는 것은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으면 못할 일이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여행가이드 출판사 겸 여행 정보회사인 영국의 포도르 트레블(Fodor's Travel)이 최근 세계의 오페라 하우스 베스트 20을 선정해서 발표했다. 선정기준은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지만 대체적으로 보면 역사적으로 전통을 지닌 오페라 하우스, 아름답고 웅장한 건물, 최적의 음향, 다수의 훌륭한 오페라 솔리스트를 전속으로 보유한 극장, 오페라 합창단 및 발레단을 거느린 극장, 그리고 전속 오케스트라 보유도 중요한 잣대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수한 품질의 오페라를 제작하는 극장을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삼았다. 이와 함께 그 나라 정부의 지원을 충실히 받고 있는지, 민간 후원회는 활성화되어 있는지도 기준으로 삼았다.

 

세계에서 가장 화려한 오페라 극장이라고 하는 파리 오페라. 일명 팔레 갸르니에.

 

1. 파리 오페라(L'Oper). 팔레 갸르니에(Palais Garnier): 팔레 갸르니에는 세계에서 이에 견줄만한 화려하고 웅장한 오페라 하우스가 없을 정도로 베스트이다. 팔레 갸르니에는 새로운 파리를 설계하기 위한 나폴레옹 3세 황제와 하우스만 남작의 의지로 탄생되었다. 나폴레옹 3세는 하우스만 남작의 자문으로 파리에 새로운 대로와 광장과 분수와 다리들을 만들어서 파리의 모습을 유럽의 정상으로 만들었다. 파리 9구의 기념비적인 보우자르(Beaux-Arts) 건물인 파리 오페라는 당대의 건축가인 샤를르 갸르니에의 작품이다. 그 때문에 팔레 갸르니에(갸르니에 궁전)라고 부르게 되었다. 갸르니에게 파리 오페라 극장이 어떤 스타일에 속하는 건물이냐고 물었더니을 간단히 '나폴레옹 3세' 스타일이라고 대답했다는 것은 유명한 에피소드이다. 오페라광장(Place de l'Opera)을 압도하고 있는 팔레 갸르니에 건물의 정면 벽면에는 위대한 음악가들인 로시니, 오버, 베토벤, 모차르트의 브론즈 흉상이 마치 음악이라는 것이 국경을 초월하는 예술이라는 것을 보여주듯 아늑하게 설치되어 있다. 그런가하면 건물 외관에 설치되어 있는 하모니, 시와 음악을 의인화한 조각들도 감동을 준다. 안으로 들어가보면 웅장하고 화려한 계단이 경이로운 세계인 오디토리엄으로 인도한다. 마르셀 프루스트가 귀족들과 함께 앉아서 오페라를 감상하던 오디토리엄이다. 1964년에는 오디토리엄의 천정이 샤갈의 환상적인 그림으로 장식되었다. 유명 오페라 14편의 장면들을 그린 것이다. 오늘날 팔레 갸르니에는 세계적인 발레 들 로페라 나쇼날 드 파리(Ballet de l'Opera National de Paris)의 본부로도 사용되고 있다. 현재 팔레 갸르니에에서는 비교적 규모가 작은 오페라를 무대에 올리고 있으며 대신에 규모가 큰 오페라는 바스티유 오페라(Opera de la Bastille)에서 공연되는 경향이다. 

 

팔레 갸르니에의 중앙계단과 포이어

 

기왕에 얘기가 나온 김에 샤갈의 천정화를 소개하자면, 우선 샹들리에의 가운데에 있는 천정에는 다음 네 장면이 그려져 있다.

(1) 비제의 '카르멘'에서 카르멘이 투우장에 있는 모습. 투우 한마리와 기타도 추가로 그려져 있다. 색갈의 기조는 붉은 색이다.

(2)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에서 두 남녀가 서 있고(아마도 알프레도와 비올레타) 그 뒤로 어떤 수염을 기른 신사가 서 있다. 아마도 알프레도의 아버지인 조르즈 제르몽일 것이다. 색갈의 기조는 노란색이다.

(3) 베토벤의 '휘델리오'에서 레오노라가 어떤 기사를 향해 달려가는 장면이다. 청색과 녹색 기조이다.

(4) 글룩의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스'의 장면으로 오르페우스의 리라를 에우리디스가 연주하는 모습이다. 여기에 천사가 꽃을 뿌리는 장면도 추가되어 있다. 색갈의 기조는 녹색이다.

 

다음에는 샹들리에를 중심으로 바깥 쪽 천정의 그림들이다. 오페라뿐만 아니라 발레의 장면도 표현해 놓았다.

(1) 무소르그스키의 '보리스 고두노프'

(2) 모차르트의 '마술피리'

(3)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

(4) 베를리오즈의 '로메오와 줄리엣'

(5) 라모의 경우에는 오페라의 장면을 그리지 않고 팔레 갸르니에의 정면 모습을 그렸다.

(6) 드빗시의 '플레아와 멜리상드'

(7) 라벨의 '다프니와 클레오'

(8) 스트라빈스키의 '불새'

(9) 차이코브스키의 '백조의 호수'

10. 아당의 '지젤'이다. 오페라의 장면과 발레의 장면이 조화롭게 그려져 있다.

 

팔레 갸르니에의 천정화는 마르크 샤갈이 그린 것으로 유명 오페라-발레의 장면 14개가 그려져 있다.

 

2.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Teatro alla Scala): 18세기에 밀라노를 포함한 북부 이탈리아의 대부분 지역은 합스부르크의 오스트리아가 통치하였다. 밀라노의 라 스칼라극장은 합스부르크의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의 지시로 1778년에 오픈되었다. 개관기념으로는 안토니오 살리에리의 '에우로파의 재회'(L'Europa riconosciuta)가 공연되었다. 그후 라 스칼라라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세계 오페라의 메카로서 존경을 받았다. 라 스칼라라는 이름은 그 자리에 있었던 산타 마리아 알라 스칼라 교회의 이름에서 가져온 것이다. 오페라 극장을 짓기 위해 조그만 산타 마리아 알라 스칼라 교회를 철거해야 했는데 그래도 그 교회의 이름만은 남겨 놓자고 하여 스칼라라는 단어를 극장이름에 사용한 것이다. 조아키노 로시니는 라 스칼라에서 여러 편의 그의 위대한 오페라들을 지휘했다. 베르디가 비로소 이름을 떨치기 시작한 곳도 라 스칼라였다. 푸치니의 마지막 작품인 '투란도트'가 토스카니니의 지휘로 초연된 곳도 라 스칼라였다. 마리아 칼라스가 스타가 된 곳도 라 스칼라였다. 비바 라 스칼라가 아닐수 없다.

 

라 스칼라 극장 오디토리움 

밤의 라 스칼라


3. 비엔나 슈타츠오퍼(Wiener Staatsoper): 비엔나의 슈타츠오퍼(국립오페라극장)는 비엔나의 심장이다. 음악의 도시 비엔나라는 명칭은 바로 슈타츠오퍼라는 심장의 박동으로 유구하게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현재의 건물은 1869년 프란츠 요셉 황제와 엘리자베트 황비의 주선으로 완성되었다. 비엔나 슈타츠오퍼가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했던 것은 아마도 구스타브 말러가 음악감독으로 있을 시기라고 한다. 명실공히 세계 최고 수준의 오페라를 무대에 올렸다. 슈타츠오퍼는 2차 대전 중에 폭격을 받아 상당부분이 파손되었다. 전쟁이 끝나자 다른 어느 건물보다도 우선적으로 복구를 시작했다. 그리하여 10년 후인 오스트리아가 독립국으로 재출범한 1955년에 다시 오픈되었다. 재개관 기념 공연은 베토벤의 '휘델리오'였다. 자유를 향한 숭고한 외침이었다. 메인 로비, 슈빈트 포이어, 중앙 계단 등은 폭격에서 살아남아서 예전의 영광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비엔나 슈타츠오퍼는 세계 최고 수준의 공연을 제작하는 것으로 확고한 명성을 얻고 있다.

  

비너 슈타츠오퍼

입장하지 못한 애호가를 위한 오페라 공연실황 중계. 슈타츠오퍼 옆 광장

 

4. 런던 로열 오페라 하우스(Royal Opera House, London): 런던의 코벤트 가든에는 1732년부터 세개의 극장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코벤트 가든의 로열 오페라 하우스는 런던의 풍부한 오페라 연혁과 함께 지속적으로 성장해 왔다. 로열 오페라 하우스는 1858년에 신고전주의 양식의 건물로서 문을 열었다. 2차 대전 중에는 주로 병사들을 위로하기 위한 댄스 홀로 사용되기도 했다. 전쟁이 끝나자 영국을 대표하는 로열 오페라단과 로열 발레단의 본부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로열 오페라 하우스에서는 세계적인 성악가들이 출연하여 명성을 빛내었다. 플라시도 도밍고, 루치아노 파바로티, 조앤 서덜랜드, 키리 테 카나와, 자넷 베이커 등등. 오늘날 로열 오페라 하우스라는 단어는 퀄리티 퍼포먼스(Quality Performance)와 같은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로열 오페라 하우스의 오디토리움과 무대

코벤트 가든의 로열 오페라 하우스


5. 모스크바 볼쇼이 극장(Bolshoi Theater, Moscow): 러시아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가장 오랜 연륜의 극장이다. 표도르 표도로브스키가 제작한 유명한 '소비엣'이란 타이틀의 커튼은 50년이 지나도록 변함 없이 그대로  무대를 장식하고 있다. 모스크바의 볼쇼이에서는 여러 오페라들이 초연을 가져서 역사적으로 유명하지만 레닌이 대중들에게 마지막으로 연설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볼쇼이는 현재는 러시아의 국립극장과 마찬가지 역할이지만 처음에는 표트르 우루소프 공자의 개인극장으로 시작되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조금은 아이러니컬하다. 볼쇼이 내부의 타페스트리, 발코니, 크리스탈 샹들리에, 금빛 찬란한 아름다운 조각들을 보면 찬란했던 당시의 건축예술과 장식예술을 알수 있다. 볼쇼이 오페라단과 볼쇼이 발레단은 세계 정상이다.

 

볼쇼이극장 오디토리움

모스크바 볼쇼이극장


6. 생페터스부르크 마리인스키 극장(Mariinsky Theater, St Peterburg): 생페터스부르크의 서커스 극장이 1859년에 화재로 파괴되자 그 자리에 새로운 오페라 극장을 짓기로 하고 알렉산더 2세의 짜리나인 마리아 알렉산드로브나의 이름을 딴 장엄한 마리인스키 극장이 탄생하였다. 마리인스키는 1886년부터 오페라 뿐만 아니라 발레 공연을 하는 극장으로서 세계적인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차이코브스키의 발레 작품들도 이곳에서 초연되었다. 그리하여 세계적인 발레 댄서들인 안나 파블로바, 미하일 바리쉬니코프 등이 마리인스키의 무대를 화려하게 장식했다. 마리인스키의 민트 그린색 외관은 이 극장의 고귀한 특성을 보여주는 것이며 내부의 황금 장식들은 오페라와 발레의 웅장함을 나타내는 것이다.

 

마리인스키 극장

 

7. 나폴리 산 카를로 극장(Teatro di San Carlo, Naples): 이탈리아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웅장한 오페라 극장이라고 하면 라 스칼라를 생각할지 모르지만 실은 나폴리의 산 카를로 극장이 더 오래되고 더 웅장하다. 일찍이 1737년에 카를로 3세의 간절한 소망으로 건설되었다. 부르봉 왕조의 카를로(샤를르) 3세는 나폴리의 왕으로서 나폴리가 이탈리아뿐만 아니라 유럽의 오페라 중심지가 되기를 원했다. 그래서 카를로 왕의 네임 데이에 오픈되었다. 개관기념 공연은 도메니코 사로(Domenico Sarro)의 '스키로의 아르킬레'(Archille in Sciro)

였다. 산 카를로의 넓은 무대는 기마병들이 등장할수 있고 코끼리도 등장할수 있을 정도이다. 산 카를로에서는 세계 최고의 오페라들이 공연되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산 카를로 극장의 오디토리움

나폴리의 산 카를로 극장


8. 베니스 라 페니체 극장(Teatro La Fenice, Venice): 라 페니체는 '불사조'(The Phoenix)를 말한다. 그도 그럴 것이 이 극장은 지나간 수세기 동안 세번이나 대화제를 만나서 잿더미가 되었지만 그때마다 새로 태어났기 때문이다. 라 페니체가 있던 자리에는 1774년부터 산 베네데토 극장이 있었다. 그러다가 1792년에 그것을 철거하고 라 페니체로 대치하였다. 1836년에는 대화재가 일어나서 잿더미가 되었던 것은 잊지 못할 사건이었다. 산 카를로에서는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 '리골레토' '아틸라' '시몬 보카네그라' 등 무수한 작품들이 역사적인 초연을 가졌다. 1996년 또 다시 화재로 파손되었다. 방화라고 했다. 그리하여 2003년 재개관되었다.

 

라 페니체 극장

베니스의 라 페니체 극장


9. 뮌헨 국립극장(Nationaltheater München): 세계적으로 유명한 뮌헨국립극장(바바리아 슈타츠오퍼)에서는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 '뉘른베르크의 명가수', '라인의 황금', '발퀴레'와 같은 대작들이 역사적인 초연을 가졌다. 그것도 1865년으로부터 1870년 사이에였다. 바그너의 신봉자였던 바바리아의 루드비히 2세는 뮌헨 바바리아 슈타츠오퍼(뮌헨국립극장)를 바그너를 위해서 기꺼이 제공하였다. 건물은 마치 그리스의 신전과 같은 인상을 준다. 1943년 연합군의 폭격으로 극장의 상당부분이 파괴되었지만 전쟁이 끝난후 거의 20년에 걸쳐 복고하여 1963년 재개관하였다. 뮌헨국립극장은 세계적으로 가장 완벽한 기계장치의 무대를 가지고 있다.

 

뮌헨국립극장(바바리아 슈타츠오퍼)의 오디토리움

 

10.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하우스(Metropolitan Opera House, New York):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하우스는 뉴욕에 있는 링컨센터의 일부이다. 대단위의 링컨센터의 풀 네임은 '링컨공연예술센터'(Lincoln Center for the Performing Arts)이다. 1962년에 문을 열었다.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하우스는 간단히 메츠(Met)라고 부른다. 메트 건물은 거대한 유리창으로 인하여 채광도 잘되고 미적으로도 우수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오디토리엄 안에 들어가면 벽면에 있는 샤갈의 두 장의 그림이 넋을 잃게 만든다. 마르크 샤갈이 1967년에 완성한 작품이다. 하나는 '음악의 승리'(The Triumph of Music)이고 다른 하나는 '음악의 원천'(The Source of Music)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는 1883년에 설립되었다. 원래의 건물은 39번가와 브로드웨이에 있었다. 그러다가 링컨 센터의 식구가 된 것이다. 메트에서는 푸치니의 '황금서부의 아가씨', '일 트리티코'(3부작), 훔퍼딩크의 '임금님의 아이들', 필립 글라스의 '항해'(The Voyage) 등 오페라 역사에 있어서 중요한 작품들이 초연되었다. 메트는 매 시즌마다 2백 회 이상의 공연을 갖는다. 메트는 미국을 주도하는 오페라 하우스일뿐만 아니라 세계 최고, 최대의 오페라 하우스이다.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하우스의 오디토리엄

마르크 샤갈의 '음악의 승리'(오른쪽)와 '음악의 원천'.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하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