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준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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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롯과 아켈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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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좀 더 알기/성가족의 애굽 피난

2015. 7. 22.

헤롯과 아켈레오 - Herod and Archelaus

 

성경에는 헤롯이라는 이름이 자주 나오는 편이다. 물론 신약성경에서이다. 헤롯 대왕(헤롯 1세), 헤롯 2세, 헤롯 아그리파, 헤롯 안티파스, 헤롯 아켈로우 등등...이들 중에서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하는 헤롯이란 이름의 사나이는 둘이다. 하나는 헤롯 대왕(Herod the Great: 74/73 BC-4BC)이다. 기원전 37년부터 기원전 4년까지 로마제국의 예속왕(Client King)으로서 유대 땅을 통치했다. 당시 유대는 로마제국에 속한 영토였다. 그래서 헤롯이 비록 대왕이라는 그럴듯한 타이틀을 가지고 있지만 실은 로마제국의 황제가 임명한 분봉왕에 불과하였다. 분봉왕이지만 정식명칭으로는 예속왕이라고 불렀다. 명칭이야 왕이지만 실제로는 총독이나 다름 없었다. 헤롯 왕은 '미친 인간'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다. 권력을 위해서 자기 가족들을 죽였고 수많은 랍비들을 죽였기 때문이다. 헤롯 대왕은 유대 사람들 사이에서 '사악하기가 이를데 없지만 머리는 좋은 사람'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자기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남들보다 더 열심히 머리를 굴려가며 노력했기 때문이다. 헤롯 대왕은 위대한 건축가나 다름 없는 인물이었다. 분봉왕(또는 예속왕)으로 재임하는 중에 엄청나게 큰 건축 프로젝트들을 무조건 추진하고 성취했기 때문이다. 그가 이룩한 대형 건축사업을 보년, 우선 예루살렘에 제2의 성전을 지은 것이다. 예루살렘 성전은 일찍이 솔로몬이 완성하였으나 그후 바벨론과 로마 등에 의해 파손되어서 볼상 사나운 입장이었다. 그것을 헤롯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 재건하고 제2 성전이라고 불렀다. 아마 속으로는 유대인들의 마음을 잡아 놓기 위해서는 성전을 재건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일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 다음으로는 마사다 요새를 건조했다. 마사다에 대하여는 굳이 여러모로 설명할 여유가 없다. 다만, 오늘날에도 마사다는 애국의 상징으로 되어 있어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누구나 군인이 되었을 때에 마사다에 올라가서 조국에 대한 충성과 헌신을 서약한다는 것만 강조하고 싶다. 또 하나 헤롯 대왕의 건축업적으로서는 헤로디움(Herodium)을 완성한 것이다. 헤로디움은 예루살렘 남쪽 12km, 베들레헴에서 남쪽으로 5km 떨어진 곳에 있는 원추 모양의 광대한 언덕으로 상부의 평지에는 요새와 궁전과 마을까지 조성되었던 곳이다. 헤롯 대왕이 죽고나서 헤로디움에 매장되었다고 한다.

 

유대광야에 있는 헤로디움의 유적지. 헤롯 대왕은 유대광야에 이처럼 거대한 산정 요새를 만들었다. 비가 안오는 광야이지만 놀랍게도 그 시대에 아래의 평지로부터 물을 끌어다 썼다. 산정에는 요새와 궁전과 마을이 조성되었다.

 

헤롯 대왕이라는 사람은 부인이 5명이나 있었다. 첫번째 부인 도리스(Doris), 두번째 부인 마리암네 1(Mariamne 1), 세번째 부인 마리암네 2, 네번째 부인 말타스(Malthace), 다섯번째 부인 예루살렘의 클레오파트라(Cleopatra of Jerusalem)였다. 이들에게서 난 아들 중에서 유대의 왕이라는 타이틀을 계승한 아들들은 네명이다. 헤롯 아켈레우, 헤롯 안티파스, 분봉왕 필립, 그리고 살로메 1이다. 이렇게 말하면 '원 복잡해서 어디 알겠나?'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저 공부하는 셈치고 양해하여 주기 바란다. 네명의 계승자 중에서 첫번째인 헤롯 아켈라우(Herod Archelaus)가 성가족이 애굽에 있을 때 유대의 왕이 된 사람이다. 성경에 언급되어 있는 바로 그 아켈라우이다. 천사가 요셉의 꿈에 나타나서 '이제 아켈라우가 죽었으니 유대로 돌아가라'고 말했던 그 아켈라우이다. 헤롯 대왕은 세번째 부인인 제사장의 딸 마리암네 2와의 사이에서는 유일하게 아들 하나를 두었다. 헤롯 2(또는 헤롯 보에투스)이다. 헤롯 2는 사람이 그러면 안되는데 조카인 헤로디아스와 결혼했고 두 사람 사이에서 태어난 딸이 이른바 춤 잘추는 사악한 살로메이다. 해롯 2와 헤로디아스 사이에서 태어난 딸의 이름이 살로메라는 것은 근대에 와서 지어낸 것이다. 영국의 극작가인 오스카 와일드가 그의 극본에서 처음으로 사용한 이름일 뿐이다. 아무튼 살로메는 헤롯 아켈레우의 앞에서 춤을 추고 세례 요한의 목을 쟁반에 담아서 달라고 했던 지독한 여자이다. 다시 살로메의 어머니인 헤로디아스(Herodias: 15 BC-39BC)의 얘기로 돌아가면, 이 여자는 남편인 헤롯 2가 죽자 얼마후에 시동생이었던 헤롯 아켈레우와 재혼하였다. 세상에 아무리 도덕이 땅에 떨어졌다고 해도 자기의 시동생과 재혼을 하다니 말도 안되는 소리이지만 역사적인 사실은 그러했다. 그리고 헤롯 아켈레우는 자기 형의 딸, 즉 조카인 살로메가 요염하게 춤을 추자 눈을 게슴프레하고 뜨고 보다가 그만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살로메에게 빠져서 '네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주겠다. 나라의 반이라도 주겠다'고 약속을 했고 살로메가 자기 어머니 헤로디아스와 의논하여서 '세례 요한의 목을 달라'고 한 것은 성경을 모르는 사람이라고 해도 잘 아는 내용이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오페라 '살로메'에서 감옥에 갇혀 있는 세례 요한과 살로메

 

다시 헤롯 대왕의 얘기로 돌아가서, 헤롯은 시간이 지날수록 질투심이 강해지고 심리상태가 불안해졌다고 하며 특히 극단적인 행동조차 서슴치 않는 인간이었다고 한다. 헤롯의 정신상태가 극도록 포악해 진것은 그가 29BC에 두번째 부인인 마리암네를 살해한 후부터였다고 한다. 헤롯은 부인 마리암네가 처남인 요셉과 불륜을 저질렀다는 거짓 고변을 믿고서 질투심을 이기지 못해서 두 사람을 모두 살해하였다. 여기에 그의 장모까지도 처형하였다. 그리고 7BC에는 자기의 친아들인 아리스토불루스와 알렉산더를 모반한다고 누명의 씌어서 모두 살해하였다. 또한 그런 일을 자행하고 난 다음 해에는 그가 거느리고 있던 여노예들을 모두 가혹하게 하나하나 고문을 해서 더러는 죽게까지 만들었다. 자기의 권위를 위협한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리고 헤롯 대왕은 그가 세상을 떠나기 직전에 아들 안티파테르를 처형했는데 역시 자기의 왕좌를 넘본다는 이유에서였다. 이것들은 그저 몇개의 예에 불과하지만 아무튼 헤롯 대왕이라는 사람이 얼마나 포악하고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인지를 알게 해주는 일들이었다. 그러므로 그런 그가 유대인의 왕이 새로 태어났다고 하는 동방박사들의 얘기를 듣고 너무나 분노하고 시기하여서 베들레헴 일원에 있는 아이들 중 두 살 아래의 남자 아이들을 모두 죽이라고 명령하였으니 사람이 정말 그러면 안되는데 헤롯은 남들이 도저히 이해못하는 미친 행동을 했던 것이다. 성경에  의하면 헤롯은 동방박사들이 '유대인의 왕으로 태어난 아이가 어디 있나이까?'라고 묻자 패러노이드, 즉 과대망상적인 편집증이 도져서 박사들이 돌아간 다음에 베들레헴의 어린 남자 아이들을 모두 죽이라고 명령했던 것이다. 이를 나중에 역사학자들은 The Massacre of the Innocents(죄없는 자들을 학살함: 또는 무고한 대학살)이라고 불렀다.

 

'무고한 대학살'. 1658년 발레리 카스텔로 작.

 

유대인의 왕이 태어났다는 동방 박사들의 이야기를 듣고 헤롯이 취한 행동에 대하여 좀 더 고찰해 보도록 하자. 마태복음 2: 7-12에 그나마 기록되어 있는 사항이 동방박사와 헤롯과 동방박사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기록하였으되, '7 이에 헤롯이 가만히 박사들을 불러 별이 나타난 때를 자세히 묻고 8 베들레헴으로 보내며 이르되 가서 아기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보고 찾거든 내게 고하여 나도 가서 그에게 경배하게 하라 9 박사들이 왕의 말을 듣고 갈새 동방에서 보던 그 별이 문득 앞서 인도하여 가다가 아기 있는 곳 위에 머물러서 있는지라 10 그들이 별을 보고 매우 기뻐하고 기뻐하더라 11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12 그들이 꿈에 헤롯에게로 돌아가지 말라 지시함을 받아 다른 길로 고국에 돌아가니라'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유의할 사항은 헤롯은 유대인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런데도 유대인의 왕으로서 권세를 행사하였으며 새로 태어난 유대인의 왕에 대하여 크게 질투하였다는 것이다. 헤롯 대왕이란 사람은 선조가 아랍인이었다. 에돔인의 후손이라고 보면 된다. 다만, 그의 선조들이 유대 땅에 들어와 살면서 유대교로 개종하였던 것이다. 헤롯은 74BC에 이두메아(Idumea)에서 태어났다. 유대의 남쪽 지방에 있는 도시이다. 그래서 헤롯은 비록 그의 선조가 아랍인이라고 해도 유대인으로 성장했다고 할수 있다.

 

동방의 박사들은 헤롯이 당부한 대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서 아기 예수의 탄생에 대하여 자세히 보고하지 않고 천사의 지시에 따라 다른 길로 고향으로 돌아갔다. 아마 무사히들 돌아갔을 것이다. 베들레헴에서 동쪽으로 12km 떨어진 곳에 있는 우베디예(Ubediyyeh) 마을에는 그리스 정교회의 성테오도시우스(St Theodosius) 수도원이 있다. 수도원이 있는 곳은 동방박사들이 꿈에 천사들로부터 헤롯에게 돌아가지 말고 그대로 고향으로 가라는 지시를 받은 장소라고 한다.

 

베들레헴 근교의 우베디예(Ubediyyeh 또는 우베 이에: Ube Dieh)에 있는 성테오도시우스 수도원. 동방박사들이 꿈에 천사들로부터 헤롯에게 가지 말고 다른 길로 고향으로 가라는 지시를 받은 장소에 세운 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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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박사와 베들레헴의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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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블로그의 다른 항목에서 동방박사에 대한 이야기를 비교적 자세히 개설하였으나 다시한번 음미하는 의미에서 설명코자 하니 지루하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동방박사라고 번역된 현자들(Magi)는 조로아스터교 사제들이거나 또는 점성술사들로서 간혹 대상들과 함께 여러 곳을 여행하여 별에 대한 연구를 보다 착실히 하였다. 예루살렘에는 동방의 각지에서 온 수많은 장사꾼 내지 무역상들이 있었다. 마찬가지로 동방에서 왔다는 현자(또는 박사)들도 예루살렘에서 자주 찾아볼수 있었다. 성경에 등장하는 동방박사들은 아마도 바빌론(현재의 이락 일부) 또는 페르시아(파사: 현재의 이란)에서 왔다고 생각된다. 동방박사들은 전통적으로 별의 운행을 기록하는 천문학자라고 할수 있다. 이들은 별의 움직임을 보고 왕의 탄생이나 죽음과 같은 중요한 사건들을 예언하기도 했다. 말하자면 점성술사였다. 이들은 조로아스터교를 믿는데 조로아스터교도 유대교와 마찬가지로 유일신을 믿었기 때문에 공통점이 있다. 이들은 또한 유대교에서 말하는 구세주(메시아)를 믿었다. 그래서 언젠가는 메시아가 나타나서 억압받고 있는 민족을 구원해 준다고 믿었다. 별을 따라 예루살렘에 온 동방박사들은 헤롯 대왕에게 축하의 인사를 했다. 왜냐하면 헤롯에 이어 유대인의 왕이 될 사람이 태어났기 때문이었다.

 

동방박사들이 하늘에서 본 것은 큰 별이라고 했지만 다른 사람들이 그 별을 보았다는 기록은 아쉽게도 없다. 점성술의 세계에서 갑자기 하늘에 큰 별이 나타났다는 것은 새로운 왕이 태어났다는 의미라고 한다. 많은 학자들이 '베들레헴의 별'의 정체에 대하여 여러가지 주장을 내놓았다. 어떤 학자들은 혜성이라고 내세웠다. 중국의 점성술사들이 BC 5년의 봄에 긴 꼬리가 달린 별, 즉 혜성을 관측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런데 동서양을 막론하고 혜성이 나타났다는 것은 불운과 재앙을 의미했다. 그런 의미에서 베들레헴의 별을 혜성이라고 보는 것은 어색하다. 어떤 학자들은 베들레헴의 별이 초신성(超新星: 수퍼노바)라고 보았다. 수퍼노바는 별의 진화 과정에서 마지막으로 대폭발을 일으켜 태양의 천만 배에서 수억 배까지 밝아지는 별을 말한다. 그런데 초신성이라는 것은 천문학에서 아직까지 실체가 밝혀지지 않은 존재이므로 베들레헴의 별이 초신성이라고 확정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있다. 어떤 학자들은 베들레헴의 별이 실제로는 태양계의 다른 위성이라고 보았다. 가장 가능한 주장은 목성 또는 토성이라는 것이다. 학자들은 예수의 시대에 현재의 목성이나 토성은 '왕을 만드는 별'로 간주되었다고 설명했다. 지금은 런던의 대영제국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바벨론 제국의 어떤 벽돌에 기록된 내용을 보면, BC 7세기의 5월, 7월, 9월에 목성과 토성이 겹치는 행사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밤하늘에서 대단히 밝은 빛을 발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바빌론에서 관측되었다는 얘기이며 유대와는 관련이 없다. 더구나 그런 현상이 일어난 것이 BC 7세기라면 그 때는 예수께서 이미 소년의 시기에 있었던 때이므로 예수 탄생과는 거리가 멀다. 천체에는 물고기자리 또는 쌍어궁이라고 하는 별자리가 있다. 이 별자리에서 간혹 별들의 회합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회합이라는 것은 우리가 보기에 두개 이상의 별이 겹쳐지는 경우를 말한다. 이러한 별들의 회합은 점성술에서 말하는 12궁의 입장에서 볼때 이스라엘 시기와 연관이 되며 특히 새로운 왕의 탄생과 관계가 된다는 것이다. 물고기자리는 12궁의 하나를 차지하고 있는 별자리이다. 베들레헴의 별은 밤하늘의 동쪽에서 나타나서 서쪽으로 움직였을 것이라는 얘기다. 그리고 물고기자리에 있는 별들은 각각 독립적으로 움직일수 있으므로 그 중에서 회합을 이룬 별들이 예루살렘의 상공에 나타났다가 얼마후에 남쪽으로 이동하여 마치 베들레헴으로 움직인 것처럼 보였을 것이라는 얘기다.

 

기왕에 얘기가 나온 김에 당시의 베들레헴 숙박상황에 대하여 설명코자 한다. 누가복음 2: 7을 보면 '첫 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라고 되어 있다. 공관복음서인 마태복음에는 예수의 탄생에 대하여 천사가 마리아에게 수태고지를 한 이야기, 동방에서 박사들이 별을 보고 아기 예수를 경배하기 위해 찾아온 이야기, 헤롯이 유대인의 새로운 왕이 태어났다는 얘기를 듣고 분노하고 두려워하여서 베들레헴과 그 인근에 있는 두살 아래의 남자 아이들을 모두 죽이라고 명령한 이야기 등만 있고 베들레헴에 온 요셉과 마리아가 숙박할 방이 없어서 마굿간에 머물다가 예수를 낳았다는 얘기는 나오지 않는다. 누가복음에도 예수의 탄생에 대한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누가복음은 예수가 태어나신지 30년쯤 지나서 세례자 요한이 요단강에서 사람들에게 세례를 주며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라고 외치는 이야기부터 나온다. 그나마 공관복음에서 예수의 탄생과 관련한 이야기는 누가복음이 자세하다. 그러나 여관과 마굿간 이야기는 단 한 소절 밖에 나오지 않아서 전후의 사정이나 이것저것에 대한 궁금증은 풀기가 어렵다.

 

우리는 요셉이 호적을 하러 베들레헴으로 갈때에 정혼한 마리아가 만삭이 되어 있으므로 힘든 줄은 알지만 함께 베들레헴으로 갔다는 내용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이쯤해서 베들레헴의 여관이야기가 나온다. 요셉이 마리아와 함께 하루 이틀이라도 묵을 여관 방을 찾아 보았으나 여관 주인의 대답은 '방이 없어요'였다. 그런데 그리스어 또는 독일어로 된 성경을 보면 여관(Inn)이라는 표현은 없고 대신에 게스트 룸(guest-room)이라고 표현되어 있다. 그리스어에서 여관이라는 단어는 카탈루마(kataluma)라고 한다. 그런데 이 단어는 실제로 '게스트 룸'을 말한다. 어떤 집에서 손님이 오면 묵어 가는 방을 말한다. 카탈루마는 어떤 집의 윗층 또는 다락방을 뜻한다. 대체로 예수 시대에 유대에서 대가족의 경우에 자기의 식구들은 아랫층에 살고 손님이 오면 윗층이나 다락방에 묵도록 하는 것이 관례였다. 당시에는 집집마다 가축을 기르는 것이 보통이었다. 가축들은 아랫층에서 지내거나 또는 집근처의 동굴이나 지하의 방에 두기도 했다. 카탈루마라는 단어는 누가복음 22:11에 나오는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최후의 만찬을 가졌던 다락방을 표현할 때에도 똑같이 사용되었던 단어이다. 그러므로 '여관에 방이 없어서...'라는 이야기는 거리가 멀다.

 

요셉이 마리아와 함께 베들레헴에 왔을 때 요셉은 우선 자기의 친척 집을 찾아가서 혹시 하룻밤 묵을 장소가 있느냐고 물어 보았을 것이다. 요셉의 집안은 대대로 베들레헴이 고향이므로 베들레헴에는 친척들이 살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가까운 친척 집을 찾아가서 게스트 룸에 묵어 갈수 있느냐고 물어보았을 것이다. 당시의 관습으로 보면 로마인이나 다른 나라 사람들은 여행을 다니다가 해가 저물어서 하룻밤을 묵어 가려면 주로 성밖에 있는 여관에 머물렀고 유대인들은 성안에 있는 친척 집에 묵었다. 로마인이나 다른 나라 사람들은 성안에 친척들이 살고 있지 않기 때문이었다. 누가복음 9: 4을 보면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거기서 머물다가 거기서 떠나라'라는 기록이 있다. 이 말은 유대인들의 관습을 잘 설명해 준 구절이라고 본다. 유대인들은 여관에 묵지 않고 친척집에 묵는 것이 관례였다. 그래서 성경에도 여관에 들어가서 지내라라는 말이 나오지 않는다. 더구나 누가복음 10: 7에는 '이 집에서 저 집으로 옮기지 마라'라는 구절이 나온다. 여관 방을 전전하지 말라는 의미라고 해석할수 있다. 이어 누가복음 10:30-35을 보면 흥미로운 구절이 나온다. 선한 사마리아 사람에 대한 비유이다. 선한 사마리아 사람은 길에서 강도를 만나 모든 것을 빼앗기고 상처를 입은 사람을 주막에 데려가서 회복되도록 한다. 사마리아 사람은 이방인이므로 친척 집의 문을 두드리지 않는다는 것을 설명해 주는 대목이다.

 

동방박사들이 경배(Adoration of Magi). 헨리 시돈스 모우브레이 1915년 작품.

 

어떤 학자는 요셉이 마리아와 함께 찾아간 친척 집에 요셉의 형이 그의 부인과 함게 이미 와서 묵고 있으므로 어쩔수 없이 친척에게 '그렇다면 가축들을 두는 아랫 방에서 지낼수 있도록 해 달라'고 말해서 그렇게 되었다고 볼수 있다. 물론 성경에는 요셉의 형이 이미 베들레헴에 와서 있었다는 얘기는 없다. 하지만 요셉이 찾아가서 하룻밤을 지내게 해 달라고 말할 정도의 친척인데 방이 없다고 대답한 것은 억지해석인지 모르지만 요셉보다 더 중요한 친척, 즉 요셉의 형이 다른 지방에서 베들레헴으로 호적하러 왔고 이미 게스트 룸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볼수 있다. 아무튼 결과적으로 예수는 가축들이 지내는 방에서 태어났으며 적당히 뉘일 자리가 없어서 가축들이 꼴을 먹는 구유에 뉘이게 되었다고 볼수 있다. 예수께서 베들레헴의 어느 집에서 태어났는지는 정확치 않다. 다만, 로마제국 콘스탄틴 대제의 모후인 헬렌이 베들레헴을 찾아갔을 때 지역주민들이 '여기가 예수께서 태어나신 장소올시다'라고 말하는 곳에 기념교회를 세웠는데 지금도 수많은 순례자들이 그 교회를 찾아가서 경배하고 있다. 헬렌 모후가 베들레헴을 찾아 갔을 때에 지역주민들은 모후에게 기원후 135년에 또 다른 헤롯이 베들레헴에 살고 있던 유대인들을 모두 쫓아냈을 때에 예수께서 태어나셨다는 장소를 파괴하기 위해 그 자리에 로마 신인 아도니스(탐무즈: Tammuz)에게 바치는 나무들을 심었다는 얘기를 했다고 한다. 헬렌 모후는 예수께서 태어나셨다고 하는 그 자리에 기원후 326년에 교회를 세우기 시작하여 3년 후인 기원후 339년에 완성하여 봉헌했다고 한다. 오늘날에도 헬렌 모후가 세운 예수탄생교회는 그 자리에 서 있는데 이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라고 한다. 예수탄생교회는 그후 529년에 유스티니안 황제가 확장보수하여 오늘에 이르도록 하였다. 이 교회의 중앙제단의 뒷쪽은 예수께서 태어나신후 잠시 누워있었던 구유가 있던 위치라고 한다. 제단 뒤의 가파른 계단을 내려가면 바로 구유가 있던 장소를 볼수 있다. 그 자리에는 은으로 만든 별장식이 있으며 Hic de Virgine Maria Jesus Christus natus est 라고 라틴어로 적혀 있는 글귀가 있다. '이곳이 예수 그리스도가 성모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신 곳이올시다'라는 뜻이다. 이 교회의 동남쪽에는 '밀크 동굴'(Milk Grotto)라는 동굴이 있다. 성가족이 애굽으로 피난을 가기 전에 마리아가 예수에게 수유를 하던 곳이라고 한다. 그러고보면 성가족은 베들레헴에서 직접 애굽으로 피난을 갔다고 생각할수 있다. 그 어린 예수를 데리고, 그 먼 사막 길을 지나서!

 

베들레헴의 예수탄생교회의 지하에 있는 예수께서 누워있었다고 하는 구유가 있었던 장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