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준극

음악의 도시 비엔나와 오페라 이야기

진짜 모차르트의 작품 맞아?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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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엔나와 음악/신동 모차르트

2018. 3. 20.

진짜 모차르트의 작품 맞아? - 1

모차르트의 작품이라고 하기에는 의심스러운 작품들 집중분석 - 교향곡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다른 작곡가의 경우에도 그런 일들이 종종 있지만 모차르트의 경우에도 상당기간 동안 모차르트가 작곡한 작품으로 알려져 있었는데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미심적고 의심스러워서 위조 또는 표절이라고 생각되는 작품들이 있다. 문제는 모차르트가 작곡한 것이라고 알려진 작품들이 생각 밖으로 많이 있다는 점이다. 모차르트의 전체 작품은 루드비히 폰 쾨헬이란 사람이 정리해서 하나하나에 넘버를 붙였다. 오늘날 우리가 자주 듣는 쾨헬(K) 넘버이다. 예를 들어서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은 쾨헬(K) 492 이고 교향곡 41번 일명 '주피터'는 쾨헬(K) 551 이다.  그런데 쾨헬이 모차르트의 전체 작품을 연도별로 정리하여 세상에 발표한 이후에도 모차르트의 작품이라고 여겨지는 작품들이 새롭게 발견되는 일이 많았다. 때문에 쾨헬 넘버는 수정에 수정을 거듭해야 했다. 문제는 그중에 모차르트의 작품이라는 확신이 서지 않는 작품들도 있다는 것이다. 쾨헬은 이들을 따로 한데 묶어서 일단은 부록(Anhang)으로 정리했다. 약자로는 Anh. 이라고 표기했다. 그런데 쾨헬이 Anh. 리스트로 정리한 후에도 모차르트의 작품이라고 주장되는 것들이 또 발견되었다. 새로 발견된 작품들은 모차르트가 작곡한 것으로 생각되기는 하지만 실상은 과연 그런지 의심스러운 작품들이었다. 그것들도 어떤 것들인지 소개코자 한다. 한편, 쾨헬의 리스트에 포함되어 있어서 모차르트의 작품으로 인정되었지만 나중에 조사해보니 모차르트의 작품이 아닌 것으로 판명된 작품들도 있다. 그것들도 소개코자 한다. 어떤 작품은 모차르트가 작곡한 것이라고 생각되었으나 나중에 조사해보니 아닌 것으로 의논이 모아져서 이미 쾨헬의 리스트에서 발빠르게 제외한 것들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확실치 않지만 그대로 모차르트의 작품으로 소개되고 있는 작품들도 있다. 그들도 소개한다. 아무튼 별별 케이스가 다 있다.


파리에도 모차르트의 발자취가 남아 있다. 메종 모차르트. 1778년에 모차르트가 어머나 안나 마리아와 함께 직장을 구하러 파리에 왔을 때 머물렀던 여관이었다. 당시 여관의 이름은 Quatre Fils Aymon 이었다. 이곳에서 모차르트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주소는 파리 2구 Rue de Sentier 8번지이다. 포르트 생드니 인근이다.


가장 문제가 되는 장르가 교향곡이다. 모차르트의 교향곡은 1번부터 41번까지로 넘버링이 되어 있다. 다시 말해서 모차르트는 41편의 교향곡을 작곡한 것이다. 그런데 그것 이외에 모차르트가 작곡한 것으로 간주되어 할수 없이 리스트에 추가로 올라와 있는 교향곡이 39편이나 된다. 다행히도 그중에는 나중에 알고보니 모차르트의 교향곡이 아닌 것으로 입증된 것도 더러 있다. 또 아무래도 의심스러워서 아직까지도 계속 조사연구가 진행되고 있는 교향곡들도 있다. 문제는 공식적으로 41편의 교향곡을 작곡한 것으로 넘버링이 정리된 내용도 실은 더 따져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교향곡 2번, 3번, 11번, 그리고 37번은 모차르트가 아니라 다른 작곡가가 작곡한 것이 거의 확실시 되고 있으므로 이거야 말로 무슨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안될 입장이다. 만시지탄의 감이 있지만 모차르트가 작곡한 교향곡 리스트에서 정식으로 삭제하는 것도 하나의 방안이다. 그건 그렇고 또 문제가 있다. 모차르트가 작곡한 교향곡은 공식적으로 41편이 있고 또한 확실치는 않지만 처음에 작품을 정리할 때에 모차르트가 작곡한 것으로 분류해 놓은 것이 39개 있다고 했지만 이들 말고도 또 모차르트의 교향곡으로 여겨지는 작품들이 계속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모차르트가 작곡한 교향곡이 확실한데 스코어가 나중에 발견되어서 처음에 리스트를 만들 때에 포함되지 않은 것들이다. 그런 것들이 무려 20편이나 된다. 또 다른 사정도 있다. 처음에 리스트를 만들 때에 '이건 모차르트의 작품이라고 입증하기가 어렵다'라고 판단해서 리스트에 포함하지 않은 교향곡들이다. 1991년에 만든 '신모차르트 에디션'(Neue Mozart-Ausgabe: NMA)에 따르면 처음에 악보가 출판될 때에 모차르트의 교향곡인지 아닌지 확실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출판사가 모차르트의 작품으로 출판한 것이 8편이나 되었다. 나중에도 설명하겠지만 모차르트의 교향곡이라고 내세우면 악보가 잘 팔릴것 같아서라는 이유에서였다. 아무튼 복잡하다. 그 복잡함이 어떤 연유에서 나온 것인지 대분석을 해보자.


모차르트의 생애를 그림으로 그린 것 중의 하나. 어린 모차르트가 1762년에 비엔나의 쇤브룬 궁전에서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의 무릎에 앉아 있다.


모차르트가 작곡했다고 하는 교향곡 중에서 진짜로 모차르트가 작곡한 것이 맞는지, 또는 아닌지에 대한 문제가 되는 것들은 대부분 초기 교향곡들이다. 오리지널 자필 스코어가 분실되었기 때문에 과연 모차르트가 작곡한 것인지, 또는 아닌지를 알기 어려운 교향곡들을 말한다. 어떤 경우에는 제목만 남아 있고 전체 스코어는 분실된 경우도 있다. 그나마 어떤 것은 다행히도 앞 부분의 몇 소절이 마치 중세에 필사본을 만들어 놓은 것처럼 남아 있어서 그걸 완전한 한편의 교향곡이라고 말할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향곡 스타일로 시작되어 있으니 비록 미완성 또는 조각뿐인 작품이라고 해도 어쨋든 모차르트가 작곡을 시도한 것이 분명하므로 리스트에는 포함시켰다. 18세기의 출판 방식이나 배포 방식이 문제가 되어 모차르트의 작품을 판단하기에 어려움을 주는 경우도 있었다. 악보의 출판은 18세기부터 본격화 되었다고 본다. 문제는 정확치 않은 정보와 자료 때문에 잘못 출판되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다. 그런가하면 앞에서도 얘기했듯이 출판하는 사람이 모차르트가 작곡한 작품으로 출판하면 대인기를 끌것이므로 의도적으로 모차르트가 작곡한 작품이라고 출판하는 경우도 있다. 일종의 사기출판이다. 그래서 진위를 모호하게 만드는 케이스도 더러 있었다. 그러면 어째서 모차르트의 작품으로 잘못 알려졌는지 그 이유를 정리해보자.


비엔나의 쇤브룬 궁전에서 프란시스 1세 황제를 위해 피아노를 연주하는 모차르트


모차르트는 어린 시절에 작곡을 공부할 목적으로 다른 사람이 작곡한 음악을 오선지에 옮겨 적는 일이 많았다. 모차르트가 직접 오선지에 그려 넣은 것이기 때문에 나중에 그런 악보를 찾아낸 사람들은 그것이 모차르트가 작곡한 오리지널 작품이라고 믿었다. 모차르트는 아버지인 레오폴드 모차르트가 작곡해 놓은 교향곡이나 미하엘 하이든이 작곡해 놓은 교향곡에서 일부, 또는 상당부분을 공부를 위해 그려 놓은 일이 많았다. 그래서 모차르트의 초기 교향곡으로 분류된 작품 중에는 사실상 레오폴드 모차르트의 작품이라고 생각되는 것들어 더러 있었던 것이다. 아무튼 이 때문에 모차르트의 초기 교향곡 중 일부는 아무래도 모차르트의 작품이 아니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그런가하면 모차르트는 성인이 되어서 정식으로 연주회를 가질 때에 사람이 그러면 안되는데 아무튼 다른 무명 작곡가의 작품을 자기가 작곡한 것처럼 프로그램에 올려 놓는 일이 간혹 있었다고 한다. 다른 무명 작곡가들은 대체로 아직 젊은 나이여서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사람이거나 또는 생활고에 시달리는 사람들이었다고 한다. 이런 사람들을 도와주기 위해 자기의 연주회 프로그램에 이들의 작품을 자기가 작곡한 것처럼 소개해서 사람들의 찬사를 받으면 그때에 모차르트는 연주회가 끝나고 나서 사람들에게 실은 이 작품이 누구누구의 것이라고 소개해서 그 사람이 작곡가로서 데뷔하도록 도와주거나 또는 후원자를 얻을수 있도록 도와주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중에 그런 사실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고 그저 모차르트와 연관되어 있으면 모차르트의 작품으로 간주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다보니 다른 사람의 작품이 모차르트의 작품으로 오늘에 이르기까지 계속 알려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볼프강과 누이 난네를과 아버지 레오폴드 모차르트


한편,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18세기 당시의 악보출판 업무는 허술한 편이어서 출판하는 사람이 잘 모르고 모차르트의 이름으로 출판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가하면 어떤 출판가는 일부러 모차르트가 작곡했다고 출판해서 판매부수를 올리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보니 오리지널 작곡가가 누구인지 분명치 않을 경우가 생겼던 것이다. 잘못된 카탈로그를 고집스럽게 주장하기 때문에 잘못된 정보가 그대로 사용되었던 경우도 있다. 함부르크의 악보상인인 요한 크리스토프 베스트팔이 처음에 모차르트의 작품이라고 정리해 놓은 것이 있다. 모차르트의 작품인지 아닌지가 분명치 않은 작품들도 모차르트의 작품으로 간주하여 정리해 놓은 리스트이다. 이것을 나중에 독일의 브라이트코프 운트 해르텔 출판사와 오스트리아의 루드비히 폰 쾨헬이 모차르트의 작품을 대대적으로 분류하면서 베스트팔이 정리해 놓은 리스트를 참고하였다. 그래서 모차르트의 작품이라고 보기에 의심스러운 것들도 그대로 모차르트의 작품으로 분류되었던 것이다. 그것도 '모차르트의 작품이 맞아?'라는 의심을 갖게 만드는 요인 중의 하나였다. 모차르트의 작품 중에서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상당부분이 세상에 알려지지 않고 분실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다가 훗날 하나 둘씩 발견되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특히 모차르트와 연관이 있는 장소들에서 발견된 새로운 악보들은 거의 무조건 모차르트의 작품으로 인정하는 경향이었다. 예를 들면, 만하임, 파리, 로마, 프라하 등에서 새로 발견된 악보 중에서 모차르트의 것이라고 생각되면 앞뒤 가릴 것도 없이 그저 모차르트의 작품을 새로 발견했다고 광고를 했다. 그러다보니 잘못 알려지는 경우도 많았다.


파리 갸르니에극장에 설치되어 있는 모차르트 흉상


모차르트의 작품을 가장 믿을만하게 정리하고 분류한 사람은 루드비히 폰 쾨헬(Ludwig von Köchel: 1800-1877)이다. 그래서 오늘날까지도 모차르트의 작품을 소개할 때에는 K(쾨헬) 넘버를 인용하고 있다. 쾨헬이 모차르트의 작품 카탈로그를 처음 발표한 것은 1862년이었다. 모차르트가 세상을 떠나고 나서 70여년 후의 일이었다. 그 카탈로그를 K1 이라고 부른다. 그후 쾨헬은 새로운 악보가 발견되거나 또는 이미 모차르트의 작품으로 정리되어 넘버를 붙였다고 하지만 과연 모차르트가 작곡했는지 의심스럽거나 또는 아예 다른 사람의 작품으로 판명된 것이 있으면 카탈로그를 수정해왔다. 쾨헬 카탈로그는 쾨헬의 후배 학자들까지 참여해서 여섯번이나 수정했다. 그리하여 마지막으로 수정한 카탈로그를 K6라고 부른다. 1964년이었다. 오리지날 카탈로그인 K1에서는 미완성 작품이거나 분실된 작품은 K(카) 넘버가 아닌 안항(Anhang: 부록)으로 분류하였다. 안항에서는 작품들은 연대순이 아닌 무순으로 정리하였다. 그러는 중에 모차르트의 작품인지 아닌지 의심스러웠던 작품이 나중에 연구결과 모차르트의 오리지날 작품으로 판명되어서 K1의 안항에 있던 작품이 K 넘버링으로 승격되는 일도 있다. 그런가하면 반대로 K1에 있었지만 미심쩍어서 K6의 안항으로 이동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는 중에 쾨헬 카탈로그에서 K 넘비링으로 분류된 것과 안항으로 분류된 것에 대한 지표가 분명치 않다는 지적도 있었다. 쾨헬이 임의대로 분류했다는 지적이었다. 그래서 오늘날에도 좀 더 신뢰성이 있는 분류가 필요하다는 의견들이 있다. 


1778년 프랑스 베르사이유 궁전에서 마리 앙뚜아네트를 만나는 모차르트


모차르트의 교향곡 중에서 신빙성이 의심스럽거나 위작으로 생각되어서 안항(부록)으로 처리된 39편의 작품은 다음과 같다. 대부분이 부록으로 처리된 작품들이다. K1에서의 넘버링, 괄혼안에 표시된 K6에서의 넘버링, 작품이 쓰여졌다고 생각되는 연도, 교향곡의 타이틀, 그리고 코멘트의 순서로 소개한다.


○ K 15a-ss(K 15a-ss). 1764. 키보드 스케치 E 플랫 장조(교향곡 제0번). 모차르트의 런던 노느북에는 43개의 음악 스케치가 들어 있다. K 15a로부터 K 15ss 까지이다. 그중에서 네 편은 모차르트 학자인 미국의 닐 차슬러(Neal Zaslaw: 1939-)가 분실된 4악장의 '런던교향곡'의 오리지널 파트가 아니겠느냐는 가설을 내세웠다. '런던교향곡'이 있다는 가정은 모차르트의 누이인 난네를이 어느 기록에서 언급한 것이 있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다. 그러나 그런 작품이 있었다는 확실한 증거는 없다. 

○ K 16b(Anh. C11.01). 1765. 교향곡 C 장조. 런던 시기의 작품으로 보이는 이 작품은 스케치 형태로만 남아 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레오폴드 모차르트의 작품으로 생각되고 있다.

○ K 17(Anh. C11.02). 1765?. 교향곡 B 플랫 장조. No 2. 19세기의 사본을 바탕으로 K1에서는 모차르트의 작품으로 간주되었고 모차르트의 교향곡 2번이라는 라벨이 붙여졌다. 하지만 이후 오리지널에 대한 신뢰성이 의심되었다. 왜냐하면 모차르트의 작품이라고 보기에는 너무나 수준이 낮아서였다. 어떤 학자는 '진부하고 서투르다'라고 평했다. 오늘날에는 모차르트의 작품으로 생각되기는 하지만 혹시 레오폴드 모차르트의 교향곡일수도 있다고 얘기되고 있다.

○ K 18(Anh. A51). 1764?. 교향곡 E 플랫 장조. No 3. K1 카탈로그에서는 모차르트의 교향곡 3번으로 소개된 작품이다. 그러나 독일의 칼 프리드리히 아벨(Karl Friedrich Abel: 1723-1787)의 교향곡 6번으로 판명되었다. 아마 모차르트가 런던에서 아벨의 교향곡을 연습삼아서 사본으로 만들고 이어 편곡하지 않았나 보고 있다.

○ Anh. 220(K 16a). 연도미상. 교향곡 A 단조(Odende). 이 작품의 오케스트라 파트는 1983년 덴마크의 오덴세에서 발견되었다. 모차르트가 A 단조 교향곡을 작곡했다는 기록은 있었지만 그동안 발견되지 않아서 궁금해 하다가 오덴세에서 발견되어서 '오덴세 교향곡'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초연은 1984년 12월에 이루어졌다. 그후 이 교향곡에 대한 깊이있는 연구가 진행되었고 결과 이 교향곡은 함부르크의 음악상인 요한 크리스토프 베스트팔(-1797)이 모차르트의 위조작품으로 분류해 놓았던 것을 알게 되었다.


런던에 있는 모차르트 기념상. 모차르트 서거 200주년을 기념하여 1991년에 제작되었고 제막식은 1994년에 마가렛 공주가 참석한 가운데 거행되었다. 모차르트는 1764년에 런던의 에버리가(Ebury St) 180번지에 체류했었다.


○ Anh. 222(K 19a). 1765?. 교향곡 C 장조. 이 교향곡의 남아 있는 악보는 오프닝의 알레그로에서 세 마디만이다. 음악학자인 알프레드 아인슈타인은 모차르트가 런던에 있을 때에 작곡한 C 장조 교향곡의 일부라는 것을 입증했다. C 장조 교향곡은 분실되었다. 그후 이 교향곡의 오리진에 대한 의심이 줄곧 있어왔지만 아직까지 확실히 누구의 작품이라는 것은 밝혀지지 않았다.  

○ K 76(K 42a). 1767?. 교향곡 F 장조. No 43(NMA에서는 섹션 46). 최근까지 이 작품은 모차르트가 작곡한 것이 틀림없다는 설명이었다. 그러나 현재에는 미정이다. 닐 차슬러는 레오폴드 모차르트(Leopold Mozart: 1719-1787)의 작품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레오폴드 모차르트 전문가인 클리프 아이젠은 이 교향곡이 레오폴드의 것도 아니고 볼프강의 것도 아니라고 내세웠다.

○ Anh. 214(K 45b). 1767?. 교향곡 B 플랫 장조, No 55(NMA에서는 섹션 46). 오리지널 악보가 분실되었으나 1943년 전쟁이 한창 중인 때에 배를린에서 사본이 발견되었다. 오리지널 작품이 어디서 언제 쓰여졌는지에 대하여는 아직도 논란이 되고 있다. 차슬러는 1767년 잘츠부르크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NMA에서는 1768년 비엔나라고 주장하고 있다. 베를린에서 발견된 악보가 사본이지만 모차르트의 작품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하지만 모차르트의 작품으로 대우받고 있다.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아버지인 레오폴드 모차르트


○ Anh. 215(K 66c). 1768?. 교향곡 D 장조. 학자들이 이 작품이 모차르트가 1769년 가족들과 함께 이탈리아를 방문하기 전에 작곡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모차르트의 작품이라는 직접적인 증거는 없다. 브라이트코프 운트 해르텔의 카탈로그에는 필사본으로 남아 있지만 오리지널은 분실된 66c, 66d, 66e 중의 하나이다. 

○ Anh. 217(K 66d). 1768?. 교향곡 B 플랫 장조. 위와 같은 내용임.

○ Anh. 218(K 66e). 연도불명. 위와 같은 내용임.

○ Anh. 216(K3 74g, Anh. C11.03). 1770?. 교향곡 B 플랫 장조. No. 54. 이 교향곡은 1910년까지 중세 스타일의 필사본 악보로만 알려졌었다. 오리지널 스코어는 분실된 것으로 간주되었다. 그러다가 베를린도서관에서 정식 사본이 발견되었다. 기본적으로 모차르트 스타일이어서 모차르트의 작품으로 인정되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아무래도 모차르트의 작품이 아닌 것같다는 견해들이다.

○ K 98(Anh. C11.04). 1770?. 교향곡 F 장조. No 56. 쾨헬은 이 교향곡을 모차르트의 오리지널 작품이라고 인정하여 K 넘버링에 포함하였다. 그러나 그후 이 교향곡은 모차르트 서클에는 들어 있지 않는 어떤 작곡가의 작품이라는 의견이 나왔다. 그런데 오래전에 발견된 두개의 스코어 사본에는 모차르트가 작곡한 것으로 적혀 있어서 일단은 모차르트의 작품으로 간주되고 있다.  


모차르트의 작품을 연대순으로 정리한 오스트리아의 루드비히 폰 쾨헬. 모차르트의 작품들은 쾨헬의 첫 글자인 K를 따서 넘버링을 했다. 쾨헬의 모차르트 분류작업은 비엔나 1구의 알브레헤트 대공의 시내 궁전에서 거처하면서 완성했다. 현재의 알베르티나 미술관 건물이다. 


○ - (Anh. C11.05). 연도미정. 교향곡 B 플랫 장조. 1806년경에 파리에서 처음 출판되었다. 그후 오리지널 스코어가 분실되었으나 1937년에 재발견되었다. 당시에는 두번째 파리 교향곡으로 생각되었다. 그러나 수준이 상당이 낮아서 과연 모차르트가 작곡했는지 의심을 가질만 했다. 닐 차슬러는 프랑스의 오페레트 서곡과 같다고까지 말했다. 아마도 어떤 사람이 위조해서 만들어 놓은 것이라는 생각이다.

○ Anh. 219(Anh. C11.06). 연도미상. 교향곡 D 장조. 브라이트코프 운트 해르텔 카탈로그에는 함부르크의 요한 크리스토프 베스트팔로 구입한 모차르트의 작품이라고 되어 있다. 그러나 최근에 레오폴드 모차르트의 교향곡이라는 것이 판명되었다.

○ - (Anh. C11.07). 연도미상. 교향곡 D장조. 브라이트코프 운트 해르텔의 리스트에 의하면 중세 스타일의 필사로 두 마디만 남아 있다고 한다. 모차르트의 작품인지는 확실치 않다.

○ - (Anh. C11.08). 연도미상. 브라이트코프 운트 해르텔 카탈로그에 의하면 4마디만 남아 있다고 한다. 모차르트의 작품인지는 분명치 않다.

○ K 81(K 731). 1770. 교향곡 D 장조. No 44.(NMA에는 섹션 47에 포함). 이 작품의 작곡자는 레오폴드 모차르트라는 주장과 볼프강 모차르트라는 주장이 있다. 브라이트코프 운트 해르텔의 카탈로그에는 레오폴드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추후에 학자들은 볼프강의 작품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하지만 아직 확실하게 입증된 것은 아니다.



비엔나 링 슈트라쎄의 부르크가르텐에 있는 모차르트 기념상의 상단부분


○ K 97(K 73m). 1770. 교향곡 D 장조. No 47.(NMA에는 섹션 47에 포함). 대체로 모차르트의 작품이 맞다는 견해이다. 다만, 스코어에 모차르트의 자필 서명이 없어서 확실하다고 말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 K 95(K 73n). 1770?. 교향곡 D 장조. No 45.(NMA에는 섹션 47에 포함). 모차르트가 작곡한 것이 틀림없을 것이므로 작곡자를 의심하지는 않고 있다. 그렇지만 악보에 모차르트의 서명이 없어서 주저하게 만들고 있다. 그러나 모차르트가 1770년에 로마에서 작곡했다는 주장이 강력하다. 그래서 K1과 K6에도 모차르트의 작품으로 정리되어 있다. 더구나 전체적으로 음악이 모차르트의 스타일이기 때문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는 얘기다.

○ K 84(K 73q). 1770. 교향곡 D 장조. No 11.(NMA에는 섹션 47에 포함). 비엔나, 베를린, 프라하에서 사본이 나왔다. 볼프강 모차르트가 작곡했다는 주장이 있고 레오폴드 모차르트, 칼 디터스 폰 디터스도르프가 작곡했다는 주장도 있다. 스타일을 분석한 결과, 볼프강 모차르트의 작품이 확실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 K 75(K75). 1771. 교향곡 F 장조 No 42. (NMA에는 섹션 47에 포함). 아직 작곡자가 확실히 밝혀진 것은 아니지만 볼프강 모차르트라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는 설명이다. 음악학자인 닐 차슬러는 '출처가 신비스럽다'라고 말했다. 한편 다른 학자들은 2악장에서 미뉴엣과 트리오가 모차르트의 특색을 보여준 것이라는 의견이었다. 

○ K 96(K 111b). 1771?. 교향곡 C 장조. No 46. (NMA에는 섹션 47에 포함). 자필 서명이 없기 때문에 의심스럽지만 스타일 등을 따려보면 모차르트의 작품이 확실하다는 의견들이다.


칼 디터스 폰 디터스도르프


○ Anh. 293(C 11.09). 1775. 교향곡 G 장조. 레오폴드 모차르트의 작품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주장이다. 하지만 초창기에는 볼프강 모차르트의 작품으로 알려졌었다.

○ K 291(Anh. A52). 1781?. 교향곡 D 장조. 미하엘 하이든의 작품이지만 모차르트의 작품으로 잘못 알려져 온 작품이다. 모차르트는 푸가를 공부하기 위해 이 교향곡의 마지막 악장을 사본으로 만들어 놓았는데 사람들이 그것만 보고 모차르트의 작품이라고 주장했었다.

○ - (Anh. A59). 1783?. 전체 스코어에서 일부만이 중세 스타일로 필사된 사본이 네개가 있다. 그중에서 세편은 요제프 하이든의 작품으로 판명되었다. No 47, 62, 75이다. 네번째 작품은 작곡자가 아직 확실하게 판명되지 않았다. 모차르트의 분실 오페라 중의 하나라고 생각된다는 것이다. 쾨헬 카탈로그에는 없다.

○ - (Anh. C11.10). 연도미상. 교향곡 F 장조. 오스트리아 출신으로 스트라스부르에서 활동했던 이그나스 플라옐(Ignace Pleyel: 1757-1831)의 작품으로 판명되었다. 그는 여러 편의 교향곡과 오케스트라 작품들을 남겼지만 그가 유명한 것은 피아노 제작자였기 때문이었다.

○ - (Anh. C11.11). 1783. 교향곡 C 장조. 모차르트의 작품으로 잘못 알려진 작품이다. 원작곡자는 보헤미아 출신의 아달베르트 기로베츠(Adalbert Gyrowetz: 1763-1850)이다. 이 작품이 1785년에 비엔나에서 모차르트가 주관한 콘서트에서 발표되었기 때문에 모차르트의 작품이라고 잘못 알려졌었다.


아달베르트 기로베츠


○ K 444(Anh. A53). 1784?. 교향곡 G 장조. No 37. 미하엘 하이든의 작품이지만 모차르트가 도입부의 일부(20개 음표)를 작곡했기 때문에 모차르트의 작품이라고 잘못 알려졌었다. 이 교향곡은 린츠에서 모차르트의 교향곡 36번인 '린츠'가 초연될 때에 함께 초연되었다. 그래서인지 1907년까지 모차르트의 작품으로 인식되어 왔었다. 그래서인지 오늘날에도 이 교향곡은 모차르트의 교향곡 37번 '린츠'와 함께 연주되는 관례가 있다.

○ - Anh.C11.12. 연도미상. 교향곡 F 장조. 원래 칼 디터스도르프의 작품인데 잘못에서 K6의 부록에 포함되었다.

○ Anh. 294(Anh. C11.13). 연도미상. 교향곡 G 장조. K6 안항에는 레오폴드 모차르트의 교향곡이라고 되어 있다.

○ - Anh. C11.14. 연도미상. 교향곡 C 장조. 1944년에 밀라노에서 발견되었다. 모차르트의 분실된 교향곡 중의 하나라고 발표되었다. 그러나 오스트리아의 안톤 에베를(Anton Eberl: 1765-1807)의 작품인 것으로 판명되었다. 안톤 에베를은 프란츠 요제프라고도 한다. 모차르트와 거의 같은 시대에 활동했던 작곡가이다. 그래서인지 안톤 에베를의 작품은 간혹 모차르트의 이름으로 등장한 일도 있다.

○ - Anh. C11.15. 연도미상. 교향곡 C 장조. 악보의 표지에 모차르트라는 이름이 적혀 있기 때문에 처음에는 모차르트의 교향곡으로 간주하였으나 여러 연구 결과 현재는 작곡가 미상으로 분류되어 있는 작품이다. 음악학자인 닐 차슬러는 '어느 면을 보더라도 모차르트의 펜으로부터 나온 작품이라고 보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안톤 에베를


○ - Anh. C11.16. 연도미상. 교향곡 G 장조(또는 C 장조). 한때 모차르트의 작품으로 간주되었으나 지금은 작곡가 미상의 작품으로 남아 있다. 모차르트가 작곡했다는 어떠한 기미도 발견할수 없었다는 것이다.

○ - K deest. 1767. 교향곡 G 장조(신람바흐). 오버외스터라이히의 람바흐(Lambach) 수도원에서 악보가 발견되었기 때문에 노이에 람바흐, 즉 신람바흐라는 별명이 붙은 작품이다. 모차르트 가족은 1769년 람바흐 수도원을 방문했다는 기록이 있다. 학자들은 이 작품이 아들 볼프강보다는 아버지 레오폴드의 작품으로 간주하고 있다. 어떤 학자는 이 교향곡인 칼 디터스도르프의 교향곡 1번과 놀랄만큼 흡사하다고 평했다. 

○ - K. deest. 1760. 신포니아(Sinfonia). 독일 레겐스부르크의 투른 운트 탁시스 도서관에서 악보가 발견되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모차르트의 작품으로 잘못 알려져 있었다. 그러다가 실은 독일의 요한 게오르그 바스무트(Johann Georg Wassmuth: -1766)의 작품인 것으로 확인되었다.

○ - K. deest. 1785. 교향곡 C 단조. 파리국립도서관이 1971년에 모차르트의 작품으로 분류했다. 아마 악보에적혀있는 모차르트라는 이름 때문일 것이다. 오늘날에는 요제프 마르틴 크라우스(Joseph Martin Kraus: 1766-1792)의 작품으로 판명되어 있다.

○ - K. deest. 1730. 교향곡 D 장조. 독일의 요한 아돌프 하쎄(Johann Adolph Hasse: 1713-1771)의 '아르타세르세'(Artaserse)라는 작품인 것으로 판명되었다. 처음에 모차르트가 작곡한 것으로 간주되었던 것은 독일 레겐스부르크의 투른 운트 탁시스 수도원에서 이 악보가 발견된 후에 누가 표지에 모차르트라는 서명을 해 놓았는데 그것을 모차르트의 친필로 생각해서였다.

○ - K. deest. 1761. 교향곡. 요제프 하이든의 작품인데 모차르트의 작품으로 잘못 알려진 경우이다. 하이든의 작품 카탈로그인 Hob. 1: 6이다.


오스트리아의 람바흐 수도원. 모차르트가 작곡했다는 교향곡 G 장조가 발견되었지만 레오폴드 모차르트의 작품이라는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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