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준극

음악의 도시 비엔나와 오페라 이야기

진짜 모차르트의 작품 맞아?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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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엔나와 음악/신동 모차르트

2018. 3. 22.

진짜 모차르트의 작품 맞아? - 2


교향곡 이외에도 모차르트의 작품이라고 알려졌지만 나중에 알고보니 다른 사람이 작곡한 것이고 또한 모차르트의 작품이라고 되어 있긴 하지만 아직도 출처와 작곡자가 미상인 작품들을 소개한다.


○ 아델라이데 협주곡(Adelaide Concerto)은 모차르트가 작곡한 것으로 알려져 있던 바이올린 협주곡 D 장조의 별명이다. 세번째로 수정된 쾨헬 카탈로그에는 모차르트의 사후에 발견된 작품이기 때문에 K. Anh. 294a라는 넘버링으로 올라와 있다. 그러던 차에 비교적 최근에 프랑스의 바이올리니스트이며 작곡가인 마리우스 카사데수스(Marius Casadesus: 1892-1981)가 모차르트 스타일을 모방해서 작곡한 일종의 위작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그래서 학자들이 쾨헬 카탈로그를 여섯번째로 수정할 때에는 K. Anh. C 14.05 라는 긴 넘버링을 부여하였다. Anhang C는 과거 한때나마 모차르트의 작품이라고 알려졌지만 아무래도 위작 또는 의문작으로 생각되었던 것들만 정리해 놓은 파트이다. '아델라이데 협주곡'이라는 별명이 붙은 것은 카사데수스가 루이 15세의 장녀인 아델라이데 공주에게 헌정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 협주곡은 1933년에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버전으로 처음 출판되었다. 출판책임자는 카사데수스였다. 카사데수스는 열살 때의 모차르트가 써놓은 어떤 악보를 참고로 이 협주곡을 만들었다고 털어 놓았다. 그렇지만 어떤 악보를 참고로 했는지는에 대하여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다만, 카사데수스는 모차르트가 자필로 적은 악보인데 두개의 오선으로 되어 있으며 윗쪽의 오선에는 솔로파트가 있고 아랫쪽 오선에는 베이스 파트가 있는 것이라고만 설명했다. 그러면서 바이올린 파트는 D 조로 되어 있고 베이스 파트와 E 조로 되어 있다고 했다. 하지만 바이올린은 전조를 할수 있는 악기가 아니므로 조성이 다르다는 것은 이해하기가 어려운 얘기였다. 그래서 어떤 학자는 카세데수스가 참고로 했다는 악보는 모차르트가 직접 썼다고 믿을수 없다고까지 말했다. '아델라이데 협주곡'은 간혹 마리우스의 동생인 앙리 카사데수스의 작품으로 잘못 알려지기도 했다. 동생 앙리도 마리우스를 비롯한 카사데수스 집안 사람들처럼 자기의 작품에 남의 이름을 붙여서 발표하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들은 자기들의 작품을 주로 요한 크리스티안 바흐, 조지 프리데릭 헨델의 작품이라고 발표했었다. 모차르트의 이름으로 발표하기도 했는데 그 대표적인 케이스가 '아델라이에 협주곡'인 것이다. 사족이지만, 이렇듯 자기의 작품을 다른 위대한 작곡가가 작품처럼 발표하는 것을 '알 라 크라이슬러'(a la Kreliser)라고 한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바이올리니스트이며 작곡가인 크라이슬러는 자기의 작품을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발표하기를 즐겨했다.


마리우스 카사데수스. 모차르트의 '아델라이데 협주곡'을 작곡했다고 알려졌다.


○ 대관식 미사 C 장조는 K. deest로 되어 있지만 누가 보더라도 모차르트의 오페라인 '여자는 다 그래'(Cosi fan tutte)를 패로디한 작품이다. (라틴어인 deest라는 단어는 '분실된', '현재는 없는' 이라는 뜻이다.) '여자는 다 그래'는 모차르트가 세상을 떠나기 1년 전인 1790년에 비엔나의 부르크테아터에서 초연된 코믹 오페라이다. 모차르트가 '여자는 다 그래'에 나오는 멜로디들을 사용해서 '대관식 미사 C 장조'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대관식 미사 C 장조'는 키리에, 글로리아, 크레도, 오페르토리움, 상투스, 베네딕투스, 아누스 데이로 구성된 미사곡이다. 그렇지만 짧은 미사(미사 브레미스)인지 긴 미사(미사 롱가)인지조차 확실하게 구별하기가 어려운 작품이다. 이 '여자는 다 그래'를 바탕으로 삼은 대관식 미사곡이란 것은 언제 어떻게 알려지게 되었을까? 처음에 소개한 사람은 오스트리아의 작곡가이며 지휘자 겸 악보출판가인 칼 출레너(Carl Zulehner: 1770-1841)로서 그가 이 작품을 독일의 악보출판사인 짐로크(Simrock)에게 사라고 제안했다는 것이다. 물론 출레너는 이 작품이 모차르트의 '대관식 미사곡'이라고 말했지만 짐로크는 '여자는 다 그래'의 음악을 거의 그대로 인용한 것이어서 출처를 의심할수 밖에 없다면서 거절했다고 한다. 말하자면 파스티치오(pasticcio)이기 때문에 오리지널리티가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출레너는 모차르트가 이 미사곡을 '여자는 다 그래'를 작곡하기 전에 완성한 것이므로 오페라와는 관련이 없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하지만 과연 모차르트가 만든 미사곡인지, 그리고 만들었다면 언제 만들었는지 등이 아직까지 확실하게 밝혀져 있지 않다. 당시에는 유명한 작품의 이곳 저곳에서 음악을 가져와서 짜집기로 작품을 만드는 것이 하나의 유행처럼 되어 있었기 때문에 원작자가 누구인지 모르며 또한 모차르트는 그런 정도로 짜집기를 하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더구나 의심스럽다는 얘기였다. 현재의 카탈로그에는 K. Anh. 232로 되어 있다. '여자는 다 그래'는 K 588이다.   


오페라 '여자는 다 그래'(Cosi fan tutte)의 한 장면. 모차르트가 작곡했다는 '대관식 미사 C 장조'는 이 오페라에 나오는 음악들을 인용한 작품이다.


○ 모차르트가 작곡한 것으로 알려진 '제12번 미사'(Twelfth Mass: K. Anh. 232)도 실은 다른 사람이 작곡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제12번 미사'는 19세기에 영국의 음악전문가인 빈센트 노벨로(Vincent Novello: 1781-1861)가 출판하여 종교음악 중에서는 베스트 셀러가 된 작품이다. 처음부터 출처가 분명치 않기 때문에 모차르트의 작품이라는 주장이 있지만 쾨헬은 카탈로그에 올리기를 거절했다. 그래서 훗날 다른 사람들이 쾨헬 카탈로그를 수정할 때에 겨우 K. Anh. 232로 올렸고 이어 최근의 에디션에서는 K. Anh. C1.04 로 등재되었다. C 파트는 처음엔 모차르트의 작품인줄 알았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아무래도 모차르트의 작품이 아닌 것 같으며 그렇다고 다른 누가 작곡했는지를 모르는 작품들을 모아 놓은 것이다. 그러면 '제12번 미사'라는 타이틀은 어떻게 생긴 것일까? 영국에서 노벨로가 악보를 출판하면서 모차르트의 미사곡 시리즈에서 제12번이라고 붙인 것이 기원이다. 악보가 출판되고 나서 얼마 후에 음악평론하는 사람들은 이른바 '제12번째 미사'가 아무리 보아도 모차르트의 평상적인 스타일이 아니라는 견해를 내세웠다. 악보가 처음 출판된 후로부터 약 1세기가 지나는 동안 '제12번 미사'의 원래 작곡자가 아무개라는 주장이 계속 나왔다. 첫번째 후보자는 독일의 작곡가이며 오르가니스트 겸 합창지휘자로서 주로 봐이마르에서 활동했던 아우구스트 에버하르트 뮐러(August Eberhardt Müller: 1767-1817)이다. 모차르트와 거의 같은 시대에 활동했던 인물이다. 아우구스트 에버하르트 뮐러는 K. Anh. 232인 '제12번 미사'뿐만이 아니라 K. Anh. 248, 249, 286도 실은 그가 작곡했다는 것으로 얘기가 되고 있다. 다음 후보자는 오스트리아(보헤미아)의 작곡가이며 지휘자인 벤첼 뮐러(Wenzel Müller: 1767-1835)이다. 하지만 벤첼 뮐러는 주로 무대음악을 작곡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에 미사곡은 작곡하지 않았다는 얘기를 듣고 있다. 다음으로는 칼 출레너(Carl Zuhlener)이다. 그런데 칼 출레너는 모차르트의 음악을 짜집기 하거나 모방하는 일을 많이 해서 비난을 받은 사람이므로 그가 '제12번 미사'를 작곡했다는 신뢰도는 떨어진다. 20세기에 들어와서도 계속 연구가 되었는데 대체적인 결과는 벤첼 뮐러의 작품이 거의 확실시 된다는 것이다. 벤첼 뮐러는 모차르트가 세상을 떠난 해인 1791년부터 이 작품의 작곡을 시작해서 1803년에 완성했다는 것이다. 아무튼 1819년에 노벨로가 이 미사곡을 출판하자 가파를 인기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거의 반세기 동안 다른 어느 미사곡보다도 더 사랑받는 작품이 되었다. 그리고 영어권 국가에서는 20세기에 이르기까지 '제12번 미사'를 모차르트가 작곡한 것으로 믿었다. 그러는 중에 독일의 학자들은 이미 1820년경에 이 미사곡의 작곡자에 대하여 의구심을 표현했다. 그래서 독일을 비롯한 일부 나라에서는 모차르트의 작품이 아닌데 모차르트의 작품이라고 내세우면서 연주하는 것은 도덕상의 문제라고 하면서 심지어 연주하기를 회피하였다. 그러나 일반 교회성가대는 글로리아 파트만은 너무 훌륭하므로 계속 연주하였다.

 

보헤미아 출신으로 비엔나에서 활동했던 벤첼 뮐러


○ 피아노 소나타 B 플랫 장조 K. 498a(Anh. 136)은 4악장의 피아노 소나타이다. 이 작품이 처음 출판된 것은 1798년 라이프치히에서였다. 그때 작곡자를 모차르트라고 인쇄했다. 하지만 모차르트가 작곡한 것이 아니라 라이프치히의 토마스교회 칸토인 아우구스트 에버하르트 뮐러의 작품인 것이 밝혀졌다. 그래서 1805년에 출판된 악보에는 아우구스트 에버하르트 뮐러(August Eberhardt Müller: 1767-1817)의 이름으로 출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어떤 출판사는 '피아노 소나타 B 플랫 장조'를 모차르트의 작품으로 간주하여 출판하고 있고 간혹 모차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20번'이라는 제목을 붙이기도 했다. 모차르트가 작곡한 것이라고 고집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독일출신의 미국 음악학자인 알프레드 아인슈타인(Alfred Einstein: 1880-1952)이 이 소나탄의 3악장 메누에토가 1787년에 모차르트가 작곡한 '아이네 클라이네 나하트무직'(Eine kleine Nachtmusik: K525)의 분실된 악장을 피아노로 편곡한 것 같다고 주장했기 때문이었다. 


아우구스트 에버하르트 뮐러


○ '피아노 소나타 F 장조'(K 547a - Anh. 135)는 1799년 독일의 브라이트코프 운트 해르텔 출판사가 출판할 때에는 모차르트의 오리지널 작품이라고 했다. 이 소나타는 모차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19번'이라고 불려지기도 했다. 그러다가 그후에 여러 학자들의 연구결과 이 소나타는 모차르트가 했는지 또는 누가 했는지는 모르지만 하여튼 모차르트의 다른 여러 작품에서 이부분 저부분을 가져와서 땜을 하듯 붙여서 만든 것으로 판명되었다. 그러므로 오늘에 이르기까지 진짜 모차르트의 작품인지 또는 누가 감히 짜집기를 했는지 확실히 알지 못하고 있다. 이 소나타는 2악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악장은 알레그로이다. 그런데 바이올린 소나타 K547의 2악장을 솔로 피아노 연주로 그대로 옮긴 것이다. 2악장은 론도이다. 그런데 C 장조 소나타 화실레(Sonata Facile: 소나타 스타일로)의 피날레 부분을 F 장조로 전조한 것이다.  


피아노를 연주하는 모차르트


○ '네개의 목관을 위한 신포니아 콘체르탄테 E 플랫 장조'는 모차르트가 작곡한 것으로 생각되는 작품이다. 네개의 목관악기란 오보에, 클라리넷, 혼, 바순을 말한다. 쾨헬 카탈로그에는 K. 297b(Anh. C14. 01)로 올라가 있는 작품이다. 그런데 모차르트는 1778년 4월에 파리에 있을 때에 플루트, 오보에, 혼, 바순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작품을 작곡한 일이 있다. 모차르트가 세상을 떠난 후에 발견되었기 때문에 쾨헬 카탈로그에는 부록으로 등록되었다. K. Anh. 9(297B)이다. 두 작품이 분명히 무슨 연관이 있을 터인데 아직 확실하게 파악되지는 않았다. '신포니아 콘체르탄테'는 4개의 목관을 위한 곡이라고 되어 있지만 실제로 스코어에는 네개의 목관악기 이외에 오케스트라 파트가 있다. 오케스트라 파트는 두개의 혼, 두개의 오보에, 그리고 현악기로 구성되어 있다. 한편, 모차르트는 친구에게 보낸 편지를 통해서, 그렇지 않으면 콘서트 발표를 통해서 플루트, 오보에, 혼, 바순을 위한 신포니아를 작곡했다고 선전했는데 오리지널 스코어는 분실되었다. 그래서 오늘날 모차르트의 신포니아를 연주함에 있어서 상당한 진위여부를 두고 상당한 논란이 야기되었었다. 모차르트는 그의 오페라에서, 그리고 콘체르토에서 목관악기에 대한 특별한 애정을 보여주었다. 피아노 협주곡 15번이나 17번을 보면 알수 있다. 솔로 플루트, 오보에, 바순간에 대화를 나누는 듯한 형식으로 되어 있다. 오페라에서도 목관악기나 프렌치 혼을 사용한 파사지들을 많이 볼수 있다. 예를 들어서 '여자는 다 그래'에서 표르딜리지의 아리아인 Per pieta, ben mio, perdona에서이다. 이처럼 오페라 아리아와 콘체르토에서 보여준 목관악기의 수준높은 특성이 이 '신포니아 콘체르탄테'에도 나타나 있다는 얘기다. 오늘날 '신포니아 콘체르탄테'는 상당한 인기를 얻고 있어서 콘서트의 스탠다드 레퍼토리가 되어 있다. 그런데도 아직 모차르트의 작품이라는 확신을 얻지 못하고 있다. 미국의 작곡가이며 연주자, 음악학자인 로버트 레빈(Robert Levin: 1947-)은 오케스트라 파트와 1악장의 카덴짜를 보면 역시 위작이라는 생각을 떨칠수가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솔로 파트중의 상당부분은 다른 사람이 손을 대서 전혀 다른 뉘앙스로 만들어 놓은 것 같다고도 말했다. 로버트 레빈은 그동안 이 작품에 대한 깊은 연구 끝에 오리지널 스코어를 훌륭하게 복구했다. 그것이 오늘날 연주되고 있는 '신포니아 콘체르탄테'이다. 레빈의 복구작품은 '그란 파르티타 B 플랫 장조'(K. 361)보다 더 뛰어나다는 평을 받았다.

  

볼프강, 난네를, 레오폴드 모차르트의 연주


○ 모차르트의 '소나타 C 장조'(K 19d)는 네손을 위한 피아노 소나타이다. 아직도 모차르트가 아홉살 때인 1765년에 작곡한 것으로 알려진 작품이다. 하지만 여러 면에서 모차르트의 작품이 아닌 것같아서 논란이 되고 있다. 네 손을 위한 이 작품은 아마도 피아노가 아니라 하프시코드를 위해서 작곡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런데 모차르트는 네손을 위한 피아노 또는 하프시코드 작품을 거의 작곡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소나타 C 장조'는 특별한 케이스라고 볼수 있다. 네 손을 위한 작품이라고 하면 하프시코드의 경우에는 2단으로 되어 있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건반이 나열되어 있는 매뉴얼이 두개가 있는 악기이다. 이를 투 매뉴얼(Two-manual) 또는 더블 매뉴얼(Double-manual) 하프시코드라고 부른다. '소나타 C 장조'는 3악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알레그로 모데라토, 메뉴에토와 트리오, 론도(알레그로)이다. 이 작품의 악보는 1921년 런던과 파리에서 처음 발견되었다. 악보를 면밀히 조사한 결과, 악보가 출판된 시기는 1789년으로 판단되었다. 악보가 쓰여진 시기는 아마도 모차르트가 런던을 여행했던 1765년으로 보고 있다. 1765년 5월 13일에 모차르트와 누니 난네를은 이 작품을 런던 브루어 스트리트()에 있는 히크포드 그레이트 룸에서 더블 매뉴얼의 하프시코드를 함께 연주했다. 그날 연주회의 기록에 따르면 모차르트와 난네를은 건반들을 손수건으로 가리고 연주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시기에 모차르트가 네 손을 위한 다른 작품을 작곡했다는 기록이 없기 때문에 네 손을 위한 작품으로서는 '소나타 C 장조'가 유일하며 그런 의미에서 이 소나타는 모차르트의 오리지널 작품이라고 볼수 있다. 그래서 K. 19d라는 넘버링으로 쾨헬 카탈로그에 포함했던 것이다. 그런데 근자에 이르러서 모차르트의 작품인지에 대한 의심이 커지고 있다. 대부분 학자들은 모차르트의 작품이 아니라는 의견이었다. 그렇다고 누가 작곡했는지는 명확히 제시하지 못했다. 학자들은 모차르트가 런던에서 작곡한 것으로 보이기는 하지만 스타일등 여러 견지에서 모차르트이긴 하지만 다른 모차르트가 작곡한 것으로 생각된다는 것이었다. 다른 모차르트라면 누이인 난레를과 아버지 레오폴드를 말한다. 볼프강 모차르트의 작품이 아니라는 이유로는 작곡을 서투르게 했다는 지적이 가장 컸다. 예를 들어서 네 손으로 연주하는데 왼손과 오른손이 서로 부딪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아무튼 그러자 NMA(Neue Mozart-Ausgabe)는 1993년에 이 소나타를 모차르트의 키보드 작품 리스트에서 삭제하고 대신에 '위작 또는 의심작'의 항목에 넣었다.


더블 매뉴얼 하프시코드


○ '바이올린 협주곡 6번 E 플랫 장조'(K.268/365b/Anh. C. 14.04)는 모차르트의 작품으로 알려져 왔으나 오늘날에는 독일의 요한 프리드리히 에크(Johann Friedrich Eck: 1767-1838)가 작곡한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 이 협주곡은 통상적인 빠르게-느리게-빠르게의 패턴으로 구성되어 있다. 1악장 알레그로 모데라토, 2악장 운 포코 아다지오, 3악장 론도: 알레그레토이다. 이 작품이 처음 출판된 것은 모차르트가 세상을 떠난지 8년 후인 1799년이었다. 학자들은 모차르트가 작곡했다면 1784년일 것이며 아마도 모차르트가 에크를 위해 직접 연주했을 것이라는 추측을 했다. 그런데 나중에 모차르트의 미망인인 콘스탄첸은 이 작품의 작곡연도에 대하여 '만일 볼피(모차르트의 애칭)가 작곡했다면 1784년보다 훨씬 전이었을 것'이라고 말해서 작곡연도에 대한 궁금증을 더하게 만들었다. 쾨헬은 그의 카탈로그에서 이 작품의 작곡연도를 1776년이라고 적어 넣고 K. 268 이라는 넘버링을 부여했다. 19세기 후반에 들어와서 모차르트 학자들은 어떤 아마추어 작곡가가 모차르트의 오리지널 스코어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것이 틀림없다는 의견을 내세웠다. 세실 올드맨과 같은 학자는 이 협주곡이 '바이올린과 비올라를 위한 신포니아 콘체르탄테'(K. 346)과 스타일에서 비슷하다는 점을 내세웠다. 그리고 모차르트가 작곡했던 가족 중에 누가 작곡했던, 미흡한 부분을 에크가 완성했다는 것이다. 한편, 알프레드 아인슈타인은 쾨헬의 카탈로그를 세번째로 수정하면서 이 협주곡이 1780년의 것이라고 기록했다. 그리고 쾨헬 넘버링도 K. 365b로 수정하였다.


모차르트와 콘스탄체


○ '바이올린 협주곡 7번 D 장조'(K 271a/271i)는 모차르트가 1777년 7월에 잘츠부르크에서 작곡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아직도 확실치 않아서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 협주곡은 통상적인 3악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악장 알레그로 마에스토소, 2악장 안단테, 3악장 론도 알레그로이다. 이 협주곡의 별명은 콜브 협주곡(Kolb Concerto)이다. 콜브는 잘츠부르크에서 가깝게 지낸 선배인 프란츠 사비에르 콜브(Franz Xavier Kolb: 1731-1782)를 위해서 작곡한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학자는 프란츠 사비에르 콜브가 그의 큰 아들인 요한 안드레아스 콜브를 위해 작곡한 것이라는 주장을 했다. 어쨋든 콜브 식구중의 한 사람을 위해 작곡했다고 하니 '콜브 협주곡'이라고 불러도 이의가 없다. 이 협주곡은 1907년 독일의 브라이트코프 운트 해르텔 출판사에 의해 처음 출판되었다. 그 이전에는 솔직히 말해서 이런 협주곡이 있었는지 알지 못했었다. 그런에 이 협주곡이 세상에 알려져서 모차르트의 작품으로 소개되었지만 일부 학자들은 솔로 바이올린 파트의 연주가 모차르트 전혀 아니라고 주장했다. 무슨 말이냐하면 모차르트는 보통 오선지에서 높은 위치에 있는 음들을 자주 사용했는데 여기서는 오선지의 낮은 위치에 있는 음들을 연주토록 되어 있다는 것이다. 악보가 최근에 발견되었기 때문에 쾨헬이 처음에 카탈로그를 작성할 때에는 알려지지 않았다. 그래서 리스트에 오르지 못했다. 그러다가 두번째 에디션을 만들 때에 독일 포츠담 출신의 편곡자인 파울 폰 봘더제(Paul von Waldersee: 1831-1906)가 K. 271 로 추가하였다. 이 때에 작곡연도를 1777년 7월로 적어 넣었다. 이 협주곡은 1907년 11월에 드레스덴에서 처음 연주되었다. 그후 학자들 사이에서 과연 진짜 작곡자가 누구냐, 모차르트가 작곡했다고면 언제 작곡했느냐는 등의 문제를 놓고 논쟁이 있었다. 프랑스의 조르즈 드 생 푸아(Georges de Saint-Foix)는 1777년이 아니라 1779년 또는 1780년이라고 주장했다. 루돌프 거버(Rudolf Gerber)는 1934년에 또 다른 에디션을 출판하면서 모차르트의 작품이 확실하다고 주장했다. 그 증거로서 협주곡의 피날레 파트가 모차르트가 작곡한 발레음악인 Les petits riens(K. 299b)에 나오는 Gavotte joyeuse와 비슷하다는 점을 내세웠다. 그는 또한 이 협주곡의 오프닝 주제도 K. 211의 것과 흡사하다는 점도 내세웠다. 이 협주곡이 처음 취입된 것은 1932년으로 예후디 메누인이 연주했다. 그런데 게오르게(조르주) 에네스쿠가 카덴짜를 만들어 넣은 것이었다. 알프레드 아인슈타인이 이 협주곡의 넘버링을 K. 271i로 변경했다. 왜냐하면 K. 271a 이후에 새로운 작품들이 발견되어서 K. 271H까지 넘버링이 주어졌기 때문에 그 다음인 K. 271i로 정한 것이다. 이밖에도 여런 의견과 주장이 있었지만 아직도 출처미상으로 되어 있다.


○ 바이올린 소나타 D 장조 K. deest는 악보가 실종된 경우의 작품이다. 바이올린과 피아노(또는 하프시코드)를 위한 작품으로 18세기에 영국에서 처음 출판되었다. 그때에는 모차르트의 이름으로 출판되었다. 당시에는 아마추어 목적으로, 그렇지 않으면 연습 목적으로 무명작곡가가 작곡을 하고 유명한 작곡가가 작곡한 것처럼 출판되는 일이 종종 있었다. 그래야 인기를 얻어서 판매가 잘되기 때문이다. 이 소나타도 그런 케이스라고 생각된다. 런던에서 처음 출판될 때에는 '피아노 또는 하프시코드를 반주로 바이올린을 위한 인기 소나타. 모차르트 작곡'(A favorite Sonata for the Piano or Harpsichord, with an accompaniement for a Violin, Composed by W.A. Mozart)이라는 제목이었다. 학자들은 이 소나타의 작곡 연도를 1780년보다 앞선 시기로 보았으나 분명치는 않다. 그러나 모차르트가 마지막으로 런던을 방문한 것은 1760년대이기 때문에 이 소나타를 모차르트가 런던에서 작곡했다는 주장에 대하여 의구심을 표명해 왔다. 앞에서도 얘기했듯이 당시에는 무명 작곡가의 작품에 위대한 작곡가의 이름을 붙이는 것이 하나의 묵인된 관례처럼 되어 있어서 이 소나타도 그런 유형 중의 하나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런던 SW1 구역에 있는 이버리 스트리트(Ebury Street). 왼쪽 끝에 철책이 있고 작은 정원이 있는 집이 모차르트 테라스라는 곳이다. 모차르트가 1764년에 이 집에서 지내면서 첫 교향곡을 작곡했다. 철책에는 MOZART TERRACE라고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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