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준극

음악의 도시 비엔나와 오페라 이야기

지붕 위의 바이올린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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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집중탐구/뮤지컬 스토리

2018. 6. 6.

지붕 위의 바이올린 -3

브로드웨이 공연 일화


'지붕 위의 바이올린'은 브로드웨이에 올리기 전에 테스트를 위해 두어 군데에서 첫선을 보였다. 첫번째는 1964년 7월로서 디트로이트의 '피셔 테아터'(Fisher Theater)에서 였다. 두번째는 8월에 워싱턴에서였다. 브로드웨이 상륙은 1964년 9월 22일 임페리얼 테아터(Imperial Theater)에서였다. 그러다가 3년 후인 1967년에는 머제스틱 테아터(Majestic Theater)로 무대를 옮겼고 1970년에는 마침내 브로드웨이 테아터에 입성하였다. 브로드웨이에서만 세 극장을 돌았으며 이 기간에 토털 3,242회의 공연을 가졌다. 모든 공연의 감독 및 안무는 제롬 로빈스(Jerome Robbins: 1918-1998)였다. 제롬 로빈스는 브로드웨이 뮤지컬인 '왕과 나'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등의 안무를 맡아 여러번의 토니상을 받은 거장이다. 그가 브로드웨이에서 마지막으로 제작하고 안무를 맡은 작품이 '지붕 위의 바이올린'이다. 브로드웨이 초연에서 무대배경은 마르크 샤갈의 작품인 '지붕 위의 바이올린'을 바탕으로 삼았다. 포스터의 컬러풀한 로고도 역시 샤갈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하지만 후문이지만 샤걀은 뮤지컬 '지붕 위의 바이올린'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고 한다.


'지붕 위의 바이올린'이 브로드웨이에서 처음 공연된 임페리얼 테아터


초연에서 주요 출연자들의 이미지를 창조한 배우들은 누구일까? 가장인 테브예는 제로 모스텔(Zero Mostel)이 맡았다. 제로 모스텔은 유태계로 1915년 뉴욕의 브루클린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이스라엘 모스텔은 러시아 서부지역에 살던 유태인이었다가 미국으로 이민온 사람이었다. 어머니 첼리아는 폴란드에서 태어났으니 비엔나에서 성장한 유태계로 역시 미국으로 이민을 와서 이스라엘 모스텔을 만나 홀아비인 그와 재혼하였다. 아버지 이스라엘 모스텔은 전처에서 네명의 소생이 있었고 체칠리아와 재혼하여 다시 네명의 자녀를 두었다. 제로 모스텔은 제혼한 부인의 세번째 아들이었다. 제로 모스텔의 원래 이름은 사무엘 요엘 모스텔이었다. 그런데 어머니가 어린 사무엘에게 학교공부를 잘 하지 못하고 집에 오면 집에서 빵점(제로)을 주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는 바람에 제로가 별명이 되었고 나중에 아예 정식 이름이 되었다고 한다. 테브예의 부인 골데의 이미지는 마리아 카르닐로바(Maria Karnilova)가 창조하였다. 마리아 카르닐로바는 1920년 콘네티커트주 하트포드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제정러시아에서 살다가 미국으로 이민을 온 사람이었다. 그러니까 유태계는 아니었다. 마리아는 어린 시절에 식구들을 따라서 브루클린으로 와서 그때부터 댄스를 배우기 시작하여 댄서 및 배우가 되었다. 큰딸 차이틀의 이미지는 요안나 멀린(Joann Merlin)이 창조했고 둘째 딸 호들의 이미지는 줄리아 미제네스(Julia Migenes)가 창조했다. 그리고 셋째 딸 하바의 이미지는 원래 피아 차도라(Pia Zadora)가 창조하였다가 나중에 타냐 에베레트(Tanja Everett)로 넘어갔다. 호들의 역할도 처음에는 잠시 아드리안느 바르보(Adrienne Barbeau)가 맡았었다.


분장실에서 잠시. 왼쪽으로부터 어머니 골데(마리아 카르닐로바), 셋째 딸 하바(타냐 에베레트), 아버지 테브예(제로 모스텔), 둘째 딸 호들(줄리아 미제네스), 큰딸 차이틀(조안나 멀린). 모두 영화보다고 무척 예쁘다.


브로드웨이에서의 첫번째 리바이발은 초연으로부터 12년 후인 1976년이었다. 12월 28일 첫 리바이발 공연을 가졌다. 윈터 가든 테아터에서였다. 제로 모스텔이 주역인 테브예의 역할을 다시 맡았다. 그리고 감독 및 안무는 제롬 로빈스였다. 첫번째 리바이발은 176회의 공연을 기록한 것이었다. 두번째 리바이발은 5년 후인 1981년이었다. 링컨 센터의 뉴욕 스테이트 테아터에서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53회의 공연으로 막을 내렸다. 아마 출연진들이 바뀌어서 인기가 시들해졌던 것 같았다. 주역인 테브예는 헤르셀 베르나르디(Herschel Bernardi)라는 배우가 맡았지만 골데는 예전 그대로 마리아 카르닐로바가 맡았다. 물론 제롬 로빈스가 감독 및 안무를 맡았다. 세번째 리바이발은 1990년 조지 워싱턴 테아터에서였다. 이때에는 241회의 공연을 가졌다. 테브예는 차임 토폴(Chaim Topol)이 맡았고 골데는 마르시아 루이스(Marcia Lewis)가 맡은 것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로빈스의 제작을 루드 미첼이 재생산하였고 안무는 새미 달라스 바에스가 로빈스의 안무를 바탕으로 재생산하였다. 이 제작은 최우수 리바이발로서 토니상을 받았다. 브로드웨이 뮤지컬 중에서 리바이발이 이렇게 많은 작품도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지붕 위의 바이올린'은 네번째 리바이발은 2004년에 가졌다. 민스코프 테아터에서였고 781회의 공연을 기록했다. 그것만해도 대단한 기록이 아닐수 없었다. 테브예는 랜디 그라프(Randy Graff)가 맡았다가 나중에 안드레아 마틴(Andrea Martin)이 맡았고 골데는 로지 오도넬(Rosie O'Deonnell)이 맡았다. 네번째 리바이발에서는 중매장이 옌테의 노래 '소문'(The Rumor)을 옌테와 다른 두 여자들이 함께 부르는 '톱시 터비'(Tposy-Turvy)로 교체하였다. 네번째 리바이발은 토니상의 여섯 분야의 후보로 올랐지만 상은 하나도 타지 못한 것이었다. 2014년에는 '지붕 위의 바이올린' 50주년을 기념하는 갈라 콘서트가 뉴욕시 타운 홀에서 열렸다. 브로드웨이의 여러 공연에 출연했던 배우들과 1971년 영화에 출연했던 배우들이 참석하여 성황을 이룬 것이었다.


영화에서 테브예의 하임 토폴.


다섯번째 리바이발은 2015년 12월 브로드웨이 테아터에서였다. 테브예는 대니 버슈테인(Danny Berstein)이었고 골데는 제시카 헤흐트(Jessica Hecht)였으며 알렉산드라 질버(Alexander Silber)가 차이틀이었다. 다섯번째 리바이발은 1년 후인 2016년 12월 31일에 463회 공연을 마지막으로 막을 내렸다. 미국 순회공연은 2009년 1월에 시작되었다. 영화로 유명한 차임 토폴이 주역을 맡았다, 그러나 토폴은 근육통이 심해서 2009년 11월에 무대를 떠나야만 했다. 하베이 피어슈테인이 토폴의 배역을 대신 맡았다. 영화로는 1971년에 제작되었다. 감독 겸 제작은 노만 주위슨()이었다. 제로 모스텔 대신에 차임 토폴이 테브예를 맡았다. 사람들은 너무나 오랫동안 제로 모스텔에게서 테브예의 이미지를 간직하고 있었는데 차임 토폴이 맡게 되어서 이상하다고 난리들이었지만 일단 영화가 나오고 나서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제로 모스텔의 이미지는 잊어 버리고 차임 토폴의 모습만을 기억하게 되었다. 영화 '지붕 위의 바이올린'은 여덟 분야의 오스카 상 후보에 지명되었으나 실제로 결정된 것은 세개였다. 영화에서는 레오나드 프레이가 모틀을 맡았는데 오리지널 브로드웨이 뮤지컬에서는 프레이가 랍비의 아들로 나왔었다. 또한 영화에서는 중매장이 옌테의 역할이 축소되었다. 그리고 퍼치크의 노래인 '이제 나는 모든 것을 가졌다'는 삭제되거 대신에 키에프의 광경으로 대체되었다.


키에프. 퍼치크의 고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