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 가는 길에

상생이 공존하는 길이므로~

나 아무것없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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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성가

2020. 3. 21.



하모니카 연주~중리 조동현











나 아무것없어도 찬양:손미경



나 아무 것 없어도

 

나 아무 것 없어도 주님이 있고

나 아무것 할 수 없으나 주 주시네

나 무력해도 주는 강하시네

나 모든 것 모르나 주는 다 아시네

나 어두울 때 주는 빛 되시고

나 어디가야 좋을 지 모를 때

주 나의 길이 되시네

나 슬픔에 잠기어 낙심될 때

선하신 주의 팔 날 붙드셨네

 

 - 송명희 시인님

 


 

 

 

 

 

 

 


송명희 시인


1) 송명희 시인은 약하고 보잘 것 없는 깨어진 질그릇이었습니다.

송명희 시인은 태어날 때부터 깨어진 질그릇이었습니다.

의사의 부주의로 아기의 뇌를 집게로 잘못 건들어 소뇌를 다쳤습니다.

태어난 아기는 울지도 못하고 몸을 가누지도 못했습니다.

여물지 못한 계란처럼 아기 머리가 만지는 대로 푹푹 들어가 만질 수도 없었습니다.

집안은 너무 가난해서 뇌성마비로 태어난 아기에게 아무 것도 해 줄 수가 없었습니다.

아버지는 약한 몸과 술과 담배와 과로로 병이 들었고
어머니도 몸이 약해 아기에게 젖도 먹이지 못하고 우유도 사 먹이지 못했습니다.

쌀가루 끓인 물만 아기에게 억지로 떠 먹이곤 했습니다.

송명희 시인은 어린 시절의 고통을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나는 일곱 살까지도 누워만 있다가 업으면 머리가 등 뒤로 고꾸라져 허리가 빠지고 목이 꺾일 듯한 고통을 느꼈다.
어머니는 나를 업고 은사 집회에 가서 안수 기도를 수 없이 받기도 했고
침 맞는 곳에 가서 머리와 팔 다리에 침을 꽂기도 해서 난 자지러지게 울기도 했다.
그때의 고통을 지금까지도 기억해낼 수 있음은 지독한 고통이 너무나 컸기 때문이다.”

송명희씨는 열 살이 넘어가면서 하나님과 어머니를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18살 때 다이빙을 하다가 머리를 부딪혀 목 이하의 전신이 마비된 [조니 에릭슨이] 자신의 삶을 저주하고 하나님께 반항했던 것처럼,
송명희씨도 자신의 삶을 저주하며 하나님과 어머니를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느날 불쑥 어머니에게 대들었습니다.
“엄마는 애기를 자연 유산도 잘하면서, 왜 난 이렇게 났어?
나도 그렇게 유산해 버리지 왜 이렇게 나은 거야?”
송명희씨는 자기를 사랑하면서도 때로는 욕설을 퍼 붓는 아버지가 원망스러웠고 자기에게 아무 것도 해 주지 못하는 어머니가 원망스러웠고
그런 집이 싫었고 그런 세상이 싫었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원망스러웠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어머니가 미웠고 하나님이 원망스러웠다.
온 몸이 멍 투성이가 될 때까지 맞으며 비인간적인 안수기도를 받고 있노라면 그 고통이 나를 견딜 수 없도록 했다.
나를 이렇게 만들어 놓고 나타나지도 않고 뭔가 해주지도 못하는 하나님을 향해 불신하며 원망하며 반항했다.
한없이 외로웠고 답답함에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자살하려고 했다.
무조건 반항이었고 무조건 원망이었다. 미치고 싶었으나 미쳐지질 않는게 더 큰 고통이었다. 애지중지하던 긴 머리를 잘라버렸다.

모든게 절망이었다.”
송명의 시인은 깨어진 질그릇이었습니다.
몸뿐 아니라 그의 마음과 정신과 영혼은 완전히 망가지고 깨어진 질그릇이었습니다.


2) 송명희 시인은 보배를 담은 고귀한 질그릇이 되었습니다.

송명희 시인은 16살 되던 해 그가 극심한 절망에 빠졌을 때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하늘의 빛을 받게 됩니다. 예수님의 생명을 몸에 담게 됩니다.
약하고 보잘 것 없던 깨어진 질그릇이 하나님의 집에서 가장 귀하게 쓰여지는 고귀한 그릇으로 바꾸어지게 됩니다.

예수님은 어느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마11:26).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비밀을 세상의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와 같이 힘 없고 연약하고 병들고 쓸모없는 사람들에게 나타내신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시기도 했습니다. "너희의 보는 것을 보는 눈은 복이 있도다. 많은 선지자와 임금이 너희 보는 바를 보고자 하였으되 보지 못하였으며
너희 듣는 바를 듣고자 하였으되 듣지 못하였느니라” (눅10:23,23).

주님은 이 말씀처럼 어린아이와 같은 송명희씨에게 자기를 나타내 주셨습니다.

송명희씨가 16살 되던해
그가 극심한 절망에 빠졌을 때 교회 강단 밑으로 들어가서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교회 강단 밑으로 기어들어가서 넋 나간 사람처럼 이렇게 중얼거렸습니다.

“하나님! 제발 저를 만나주세요. 제발 저를 만나주세요. 제 모든 걸 다 드릴께요.”

그런 기도를 한 후 이상한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작은 빛이 소녀 송명희 머리 위에서 밤낮으로 반짝거렸습니다. 사흘 뒤 밤 열 두시에 다시 기도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반짝이는 빛이 위로 올라가고 밝은 빛이 비추이면서 두루마리 같은 것이 눈 앞에 서더니 양쪽으로 펼쳐지고 이상한 글이 적혀 있을 것을 보았습니다.
한글도 영어도 한자도 일어도 아니었고 생전 처음 보는 글이었지만 읽을 수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라! 네가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면 죽으리라!”

그 두루마리는 말려서 다시 올라가고 밝은 빛도 사라지고 다시 작은 빛이 반짝거렸습니다.

하나님은 자기의 빛을 소녀 송명희에게 비추어주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믿으라는 말씀을 보여주셨습니다.

그 해 1979년 10월 어느날 저녁 어느 부흥회에 참석했다가 송명희씨는 자기가 죄인 것을 깨닫고 통곡을 하며 울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 아버지! 저는 죄인입니다.” 그렇게도 원망하고 반항하던 하나님을 향해 '아버지’라고 부르며 통곡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은 소녀 송명희에게 아버지로 나타나셨습니다.

그 후부터 소녀 송명희는 성경을 읽기 시작했고 하루에 다섯 시간 동안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은 깨어진 질그릇에 그의 빛을 비추어 주셨고 아버지로 나타나주셨고 그의 음성을 들려주시기 시작했습니다.

성경에 나타난 이적들에 대한 의심이 생길 때
이런 주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너는 그것도 못 믿으면서 어떻게 나를 믿겠느냐?”
마음 속에서 사탄의 유혹이 일어나고 그래서 죄책감과 낙심과 좌절의 늪에 빠져 있을 때 이런 음성도 들려 왔습니다.
"그래도 나는 너를 사랑한다. 그래도 나는 너를 사랑한다.”

어떤 때는 극심한 몸의 고통 중 자리에 누어 있을 때 십자가에 못 박히신 주님의 손이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누어서 고통 중에 있는데 어두움 속에서 나무 토막이 나타나고 그 위에 손바닥이 올려지고 돌로 된 못이 박혀서 손바닥을 부수며 뚫고 나갔다.

붉은 피가 터져 나오고 뼈에서 흰 진액이 나오는 광경을 보게 되었다.
주님의 못 박히신 손이었다. 꿈이 아니었다.”
소녀 송명희는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하나 발견하고 체험하기 시작했습니다.

성경에 숨겨져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비밀이 하나하나 나타나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는 값없는 은혜라 하여 가볍게 여길 만한 게 아니라 값이 너무나 커서 그 값을 붙일 수 없다” 는
사실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는 감격해서 울면서 성경을 읽고 또 읽었습니다.
가슴이 터질 것 같았습니다.
그 사랑에 자신의 마음을 주체할 수가 없었습니다.
주님의 놀라운 사랑에 감동한 이 소녀는 사도 바울처럼 그리스도의 비밀을 전하고 싶었으나
몸을 움직여 전할 수가 없어서
깨달은 말씀을 노트에 기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마다 하나님은 그에게 시를 불러주셨고 시를 쓰게 했습니다.

소녀 송명희는 울고 또 울었습니다. 주님이 깨어진 질그릇 같은 자기에게 주님 자신을 보여주셨고
주님 자신의 음성을 들려주셨다는 사실 앞에서 기쁨과 감격에 사로잡혀 울고 또 울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주님은 일기장 한 장도 채우지 못할 정도로 문학에 소질이 없었던 나에게 문학을 가르치셨고 예술성을 불어넣으셨다.
시를 불러주시고 성경을 알려주셨다.
그 누구도 나와 말하지 않았고 아무도 나에게 성경을 알려주지 않았지만 주님이 함께 하셨고 주님이 하나하나 알려주셨다.

나는 하나님이 불러주시는 대로 노트에 시를 썼다.
그 비밀스런 은혜의 말씀을 알고 얼마나 울었는지! 나는 주님과 울고 웃으며 그렇게 살았다.”

이 무렵 송명희 시인은 에바다란 제목의 시를 썼습니다.

아니 자기가 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시를 그에게 불러 주셨습니다.

열어주소서 열어주소서
내 눈을 열어주소서 주님 바라볼 수 있도록.

열어주소서 열어주소서
내 귀를 열어주소서 주님 말씀 들을 수 있도록.

열어주소서 열어주소서
내 맘을 열어주소서 주님의 뜻 깨달을수 있도록.

열어주소서 열어주소서
내 입을 열어주소서 주님 말씀 전할수 있도록

송명희 시인은 이렇게 주님과의 친밀한 교제의 삶을 살면서도 세월이 흘러 이십대가 되면서 또 한번 번뇌와 좌절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불만을 가지기도 했습니다. "나는 무익한 종입니다. 왜 나를 이렇게 만드셨나요?
휠체어도 없어서 교회도 못 가고 봉사도 전도도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나는 도대체 무엇에 쓸 수 있나요?”

그때마다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시곤 했습니다.
"내가 너를 이렇게 만들지 않았다면 네가 나를 믿었겠느냐? 너는 지금 기도로 나를 기쁘게 하고 있다.
내가 너를 반드시 들어 쓰리라! 내가 너에게 많은 사람을 주리라!”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머리에 기름을 부으시고 안수하심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그런 말씀을 늘 들었지만
현실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어서
안타까움과 서글픔에 잠길 때가 많았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연희동 집 주인이 집을 비워달라고 해서
서초동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연희동 교회에서 가장 친하던 친구
최인자 언니와 헤어져야만 했습니다.

그는 아무 것도 없다는 생각에 너무 슬퍼서 방바닥에 엎드려서
부르짖으며 울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아무 것도 없어요! 친구도 집도 휠체어도 아무 것도 없어요!”

바로 그때 주님이 그에게 시를 불러 주셨습니다.

"내가 말하는 대로 써라!
왼 손에 토막 연필을 쥐고
울먹이면서 알아볼수 없는 글씨로 시를 썼습니다.

나 가진 재물 없으나,
나 남이 가진 지식 없으나,
나 남에게 있는 건강 있지 않으나”
나 남이 없는 것 있으니,
나 남이 못 본 것을 보았고,
나 남이 듣지 못한 음성 들었고,
나 남이 받지 못한 사랑 받았고,
나 남이 모르는 것 깨달았네,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가진 것 나 없지만,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없는 것 갖게 하셨네.”

너무나 엉뚱하신 말씀에
기가 꽉 막혀서 도저히 쓸 수가 없었습니다.
폭발하는 울음을 발산하며 소리쳤습니다.

"아니요! 못 쓰겠어요!
하나님 공평해 보이지가 않아요!

내겐 아무 것도 없잖어요!”
그러나 주님은 화를 내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시키는 대로 공평하신 하나님이라고 써라!”

송명희자매는 하나님의 고집을
자신이 꺾을수가 없음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결국 송명희 시인은
하나님이 시키는대로 그 유명한
“나” 라는 시를 썼습니다.

3)송명희 시인은 주님을 증거하는 반짝이는 별이 되었습니다.

이제 송명희 시인은
일약 주님에 의해 주님을 증거하는 반짝이는 별이 되어집니다.

그는 극동 방송을 늘 들으면서 극동방송을 교회로 삼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극동 방송이 재정적으로 어려움에 처해있다는 소식을 듣고
극동방송을 돕고 싶다는 생각을 품기도 했습니다.

그는 계속 주님께 기도하며 주님이 주시는 시를 썼습니다.

그가 21살이 되던 1984년 8월 16일 극동방송에 가서 면담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간증은 많은 사람들을 울게 만들었습니다.

= 유관지 목사님은 울음보를 터뜨렸습니다.

소원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노트에 써 놓은 시를
책으로 출판하는 것이 소원이라고 대답했습니다.

결국 1년 후인 1985년 5월 여운학 장로의 도움으로 규장에서 그의 시집이 출판되었습니다.

왼손으로 몽당 연필로 쓴 원고지 열 권 분량의 시와 왼손으로 몽당 색연필로 그린 그의 그림을 표지로 한 송명희 시인의 시집 3권이 출판되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