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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드 2007. 3. 11. 18:19

 

 

[me] 시공을 넘어, 신분의 벽을 넘어 … 사랑을 갖다 [중앙일보]

천년을 흐르는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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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다른 시공을 오가는 것도, 맨손으로 마술을 부리는 것도, 실은 영화라는 장르에 가장 유리한 표현이다.

조명.세트 같은 공간예술의 장치뿐 아니라 편집이라는 시간예술과 특수효과까지도 자유자재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

8일 개봉하는 '천년을 흐르는 사랑'(감독 대런 애로노프스키)과 '일루셔니스트'(감독 닐 버거)는 영화의 이런 장점을 무기로 내걸고, 사랑을 요리하는 영화다.

 


천년을 흐르는 사랑 = 외과의사 토머스(휴 잭맨)는 아내가 앓고 있는 뇌종양을 고치기 위해 신약 개발에 강박적으로 매달린다. 첫눈이 내리는 날, 산책하러 나가자는 아내를 혼자 보낼 정도로 그는 마음에 여유가 없다. 정작 아내(레이철 와이즈)는 다가올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접고, 그동안 써온 책을 마무리하는 중이다. 이 책의 이름은 영화의 원제인 '샘물(The Fountain)'. 16세기 스페인 여왕의 명을 받아 마야문명에 감춰진 영생의 나무를 찾아선 남자와 마야인의 우주관을 담은 내용이다.

요약하자면 대략 이런 줄거리임을 짐작하기까지 이 영화의 초반부는 야심 차다고 할 정도로 혼란스럽게 진행된다. 16세기와 21세기, 그리고 수도승처럼 보이는 사내가 말라 죽어가는 거목과 함께 우주를 여행하는 26세기의 장면까지, 세 가지 시공을 순서 없이 중첩되어 오간다. 세 시공의 남자는 모두 같은 배우. 다시 말해 이들은 사랑을 위해 불사의 수단을 찾아나선 일종의 여행자라는 점에서 동일한 인물이다. 그 대표격인 21세기의 남자는 이 수단에 몰두하다 잠시 마음의 길을 잃고, 사랑과 생명에 대한 그의 깨달음은 16세기와 26세기의 남자들을 통해 완성된다.

이 영화를 가장 잘 즐기는 방법은 복잡한 전개방식에 굳이 아귀를 맞추려 하지 않고 감성적으로 따라가는 것일 듯하다. 신비스러운 시각효과와 배우들의 무난한 연기는 사랑이라는 화두에 아릿한 여운을 더한다. 결말에 이르면 사랑의 유한성, 특히 인간의 유한성 때문에 아파하는 이들을 위로하고픈 영화의 마음이 읽힌다.

정작 냉정하게 따져 본다면 세 가지 시공을 오가는 야심 찬 전개방식에 비해 거기에 담긴 철학은 싱겁다 싶을 정도로 피상적이고 단순하다. 죽음은 곧 생명의 새로운 시작이라는 것, 그러니 죽음은 사랑의 끝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기 위해 지나치게 폼을 잡은 듯 보인다.

감독 대런 애로노프스키는 1998년 선댄스영화제 감독상을 받으면서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시작했다. 모르고 보면 모르되 전작인 '파이'나 '레퀴엠'의 강렬하고 기발한 맛에 비하면 이번 영화는 거기에 철학적 스펙트럼을 더하려다 미수에 그친 듯한 인상이다. 15세 이상 관람가. 개봉일 : 2007-03-08

 

 


 

일루셔니스트
일루셔니스트 = 떠돌이 마술사를 우연히 만난 뒤 마술에 남다른 재능을 갖게 된 소년이 성장해 19세기 빈에 혜성같이 등장한다. 마술사 아이젠하임(에드워드 노튼)의 명성은 그의 공연에 황태자까지 구경오게 한다. 마술사는 황태자가 데려온 여자(제시카 비엘)가 어린 시절 풋사랑을 나눈 연인임을 한눈에 알아본다. 귀족의 딸이었던 그때나, 절대권력자의 약혼녀인 지금이나 두 남녀의 사랑에는 장애물이 놓인 상태다.

1900년대 전후의 마술사가 주인공이라는 점에서 이 영화는 지난해 개봉한 '프레스티지'와 닮았지만 갈등의 구도가 다르다. 마술사 간의 경쟁이 중심이었던 '프레스티지'와 달리 마술에 대한 믿음과 불신으로 편을 가른다. 정치적 야심가이자 포악한 성품의 황태자는 마술이 과학적 장치를 활용한 눈속임에 불과하다고 여기는 점에서도 아이젠하임과 뚜렷한 대척점에 선다. 합리주의가 빛을 발하던 시대배경, 그럼에도 무대마술의 환영을 곧이곧대로 믿는 관객들의 맹목적인 추종은 영화에 시종일관 갈등의 그림자를 드리운다. 독특한 것은 둘 사이에 놓인 경찰(폴 지아매티)의 역할이다. 황태자의 하수인이면서도, 출신이 비천하다는 점에서 아이젠하임에게 은근한 연대감을 드러낸다.

막판에 반전을 등장시키는 점은 '프레스티지'와 닮았는데, 아쉽게도 반전의 효과는 기대만큼 충격적이지 않다. 그보다는 반전 직전까지 과학과 마술, 권력과 신분, 그리고 애정문제까지 중층적인 갈등요소를 연기 잘하는 배우들에게 입혀 매끈하게 긴장감을 유지하는 솜씨가 돋보인다. 따지는 대신 보이는 대로 마술을 즐기라는 요지의 대사가 영화속에 나오는데, 이 영화의 감상법에도 적용될 만하다. 오렌지 씨에서 싹을 틔워 순식간에 열매를 맺게 하거나 거울 속에 유령을 불러내는 마술을 스크린 밖에서 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니까. 15세 이상 관람가. 개봉일 : 2007-03-08

이후남 기자

 
2007.03.05 21:12 입력 / 2007.03.06 09:05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