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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차수 2011. 12. 30. 11:41
1.施罰勞馬(시벌로마)

고대 중국의 당나라 때 일이다.
한 나그네가 어느 더운 여름날 길을 가다 이상한 장면을 목격하였다.
한 농부가 밭에서 허벌나게 열심히 일하는 말의 뒤에 서서 자꾸만 가혹하게 채찍질을 가하는 광경을 본 것이다.

계속해서 지켜보던 나그네는 말에게 안쓰러운 마음이 들어 농부에게 "열심히 일하는 말에게 왜 자꾸만 채찍질을 하는가?"고 물었다.

그러자 그 농부는 자고로 말이란 쉬임없이 부려야 다른 생각을 먹지 않고 일만 열심히 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남의 말을 놓고 가타부타 언급할 수가 없어 이내 자리를 뜬 나그네는 열심히 일하는 말이 불쌍하여 가던 길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며 긴 장탄식과 함께 한마디를 내뱉었다 한다.

"아! 施罰勞馬(시벌로마)"

훗날 이 말은 후세 사람들에게 이어져 주마가편(走馬加鞭)과 뉘앙스는 약간 다르지만 상당히 유사한 의미로 쓰였다 한다.

施罰勞馬(시벌로마) :
열심히 일하는 부하직원을 못잡아먹어 안달인 직장상사들에게 흔히 하는 말

- 한자공부 : 施:행할 시 罰:죄 벌 勞:일할 로 馬:말 마
走:달릴 주 馬:말 마 加:더할 가 鞭:채찍 편

- 용법 :
아랫사람이 노는 꼴을 눈뜨고 보지 못하는 일부 몰상식한 상사의 뒤에 서서 들릴락 말락하게 읊어주면 효과적일 것이다.

단, 이 말을 들은 상사의 반응에 대해서는 책임질 수 없다.
왜냐하면 아직 국내의 현실에 비추어 이 고사성어의 심오함을 깨달을 상사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2. 漁走九里(어주구리)

옛날 한나라 때의 일이다.
어느 연못에 예쁜 잉어가 한마리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디서 들어왔는지 그 연못에 큰 메기 한 마리가 침입하게 된 것이다.

그 메기는 예쁜 잉어를 보자마자 잡아 먹으려고 했다.
잉어는 연못의 이곳 저곳으로 메기를 피해 헤엄을 쳤다.
하지만 역부족이었다.

굶주린 메기의 추격을 피하기에는...
피하다 피하다 못한 잉어는 초어적(?)인 힘을 발휘하게 된다.

잉어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뭍에 오르게 되고, 뭍에 오르자 마자 꼬리를 다리삼아 냅다 뛰기 시작했다.
메기가 못 쫓아 오는걸 알게 될 때까지 잉어가 뛰어간 거리는 약 구리 정도였을까? 암튼 십리가 좀 안 되는 거리였다.

그때 잉어가 뛰는 걸 보기 시작한 한 농부가 잉어의 뒤를 쫓았다.
잉어가 멈추었을때 그 농부는 이렇게 외쳤다.

`어주구리(漁走九里)`...고기가 구리를 달려왔다...

그리고는 힘들어 지친 그 잉어를 잡아 집으로 돌아가 식구들과 함께 맛있게 먹었다는 얘기이다.

어주구리(漁走九里) :
능력도 안 되는 이가 센척하거나 능력밖의 일을 하려고 할 때 주위의 사람들이 쓰는 말이다.

이 고사성어는 말할 때 약간 비꼬는 듯한 말투로 약간 톤을 높여 말하면 아주 효과적이다.


3. 足家之馬(족가지마)

이 고사성어는 '분수에 지나친 행동을 경계하라'는 깊은 교훈을 담고있다.

아주 먼 옛날 중국 진나라시대에, 어느 마을이 있었는데 그 마을사람들의 성씨는 신체의 일부를 따르는 전통이 있었다.
대대로 귀가 큰 집안은 이(耳)씨, 화술에 능통한 사람을 많이 배출한 집안은 구(口)씨와 같은 식이였다.

그곳에 수(手)씨 집안이 있었는데, 그 집안은 대대로 손재주가 뛰어난 집안이었다.
이 '수'씨 집안에는 매우 뛰어난 말 한 필이 있었는데, 이 역시 수씨 집안의 손재주에 의해 길들여진 것이었다.

어느 날 도적들과의 전쟁에 수씨집안의 큰 아들이 이 말을 타고나가 큰 공을 세워 진시황으로부터 벼슬을 받았다.

이것을 본 앞집의 족(足)씨 집안에서는,
"손재주나 우리 집안의 달리기를 잘하는 발재주나 비슷하니 우리도 말을 한 필 길러봄이 어떨까....?"

하여 말 한 필을 길들이기 시작했다. 한 달후, 도적들이 보복을 위해 마을로 내려왔다.
이를 본 족씨는 아들에게, "어서 빨리 수씨 집안보다 먼저 우리 말을 타고 나가거라."

하였고, 족씨 집안의 장자는 말을 타고 나가다 대문의 윗부분에 머리를 부딪혀 어이없게도 죽고 말았다. 이를 본 족씨는 통곡하며,

"내가 진작 분수에 맞는 행동을 했더라면, 오늘의 이 변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을..."
하며 큰 아들의 주검을 붙잡고 통곡하였다.

이 때부터 세인들은 분수에 맞지않는 말이나 행동을 하는 사람에게 '足家之馬(족가지마)'라고 말하곤 한다.

足家之馬(족가지마) :
자기의 주제도 모르고 남의 일에 참견하거나 분수에 맞지않는 행동을 하는 사람에게 흔히 하는 말

파생어 :
足家苦忍耐(족가고인내) -  족씨가문의 큰아들이 분수를 몰라 죽음으로 인해 비롯된 고통임으로 누구에게 하소연도 못하고 참을수 밖에 없는 인내를 말한다)

4. 始發奴 無色旗(시발노 무색기)

옛날부터 중국 고사에는 삼황오제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 중 복희씨는 주역의 만들었을 뿐 아니라, 길흉화복을 점치는 법을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이 이야기는 그 복희씨 시대의 이야기이다.

복희씨가 중국을 다스리고 있던 어느 날, 태백산의 한 산마을에 돌림병이 나서 많은 사람이 죽어가고 있다는 전갈을 들었다.

그리하여 복희씨는 그 마을로 향하게 되었는데, 그 마을은 황하의 물이 시작되는 곳이라 하여, 시발(始發) 현(縣)이라 불리고 있었다.

그 마을에 도착한 복희씨는 돌림병을 잠재우기 위해 3일 낮 3일 밤을 기도 하였는데, 3일째 되는 밤 기도 도중 홀연 일진광풍이 불면서 왠 성난 노인이 나타나
'나는 태백산의 자연신이다. 이 마을사람들은 몇 년째 곡식을 거두고도 자연에게 제사를 지내지 않으니, 이를 괘씸히 여겨 벌을 주는 것이다. 내 집집마다 피를 보기 전에는 돌아가지 않으리.' 하였다.

복희씨는 자연신이 화가 난 것을 위로하기 위해 방책을 세우고 마을 사람들을 불러모아 말하였다.

'자연신의 해를 피하기 위해선 집집마다 깃발에 동물의 피를 붉게 묻혀 걸어두어야 하오! '

그런데, 그 마을사람 중에 시발(始發)현(縣)의 관노(官奴)가 하나 있었으니, '귀신은 본디 깨끗함을 싫어하니, 나는 피를 묻히지 않고 걸 것이다.'하여 붉은 피를 묻히지 않은 깃발을 걸었다.

그날 밤 복희씨가 기도를 하는데, 자연신이 나타나 노여워하며 말하길
'이 마을사람들이 모두 정성을 보여 내 물러가려 하였거늘, 한 놈이 날 놀리려 하니 몹시 불경스럽도다. 내 역병을 물리지 않으리라.' 하였다.

그리하여 다음날부터 전염병이 더욱 돌아 마을 사람들이 더욱 고통스럽고 많은 이가 죽었으니, 이는 '그 마을(시발현)의 한 노비가 색깔 없는 깃발을 걸었기(始發奴 無色旗)' 때문이었다.

이 이야기로 인해, 그 이후 혼자 행동하여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입히는 사람이나,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마구 행동하는 사람을 보면, ' 始發奴(시발노) 無色旗(무색기)'라고 하게 되었다.

오늘 익혀야 할 한자 :
始 (시작할 시) 發 (발할 발) 奴 (노예 노) 無 (없을 무) 色 (색 색) 旗 (깃발 기)

5. 趙溫馬 亂色氣(조온마 난색기)

이 고사성어는 '사람들 틈에서 경거망동한 행동을 삼가라'는 깊은 교훈을 담고있다.

옛날 중국 춘추전국시대에 조씨성을 가진 사람이 살고 있었다.
조씨에게는 만삭인 부인이 있었는데, 어느날 아침 부인이 말하길,

"여보! 어제 밤 꿈에 말 한 마리가 온천으로 들어가 목욕을 하는 꿈을 꾸지 않았겠어요.

아마도 우리가 말처럼 활달하고 기운센 아들을 얻게 될 태몽인것 같아요." 라고 하였다. 조씨는 심히 기뻐하여,

"그것 참 좋은 태몽이구려 어서 빨리 우리 아들을 보았으면 좋겠소."
라고 하였다.

사흘 뒤 조씨부인은 매우 건강한 사내아이를 순산하였고, 조씨는 태몽을 따라 아이의 이름을 '溫馬(온마)'라 하였다.

세월이 흘러 조온마가 스무 살이 되었다.
조온마는 조씨부부의 기대와는 달리, 마을의 처녀란 처녀는 죄다 욕보이는 난봉꾼이 되었다.

이를 보다 못한 마을 사람들은 결국 조온마를 관아에 고발하였고 조온마는 판관앞에 끌려가게 되었다.

판관이 말하길,
"조온마는 색기로 인하여 마을을 어지럽혔다(趙溫馬亂色氣:조온마난색기). 따라서 거세를 당함이 마땅하다." 라고 하였다.

결국 조온마는 거세를 당하였고, 후일 사람들은 경거망동하는 사람에게 조온마의 일을 상기시키기 위하여 "조온마난색기"라고 충고를 하게 되었다고 한다.

야사에 의하면 조온마의 키는 5척으로 150cm 정도의 작은 키였다고 전해진다.

趙溫馬 亂色氣(조온마 난색기) :
1. 경거망동한 사람에게 충고할 때 쓰는 말.
2. 조온마의 키가 매우 작았으므로 작은 사람을 일컫는 말로 쓰이기도 한다.

주의 :
이 고사성어는 빠르게 발음이 되었다고 한다.

6. 善漁夫非取(선어부비취)

옛날 중국 원나라때의 일이다.
어떤 마을에 한 어부가 살았는데...

그는 너무나도 착하고 어질어서 정말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정도였다.
그래서 항상 그는 마을사람들로부터 신망이 두터웠고,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마을에 새로운 원님이 부임하게 되었는데...
그는 아주 포악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그 원님은 부임한 뒤 그 마을에 한 착한 어부가 덕망이 높고 마을 사람들의 신임을 얻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괴로워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하면 저 어부를 제거 할 수 있을까?'
한참을 생각하다가, 원님은 묘안을 하나 짜내게 되었다.

그 어부의 집 앞에 몰래 귀한 물건을 가져다 놓고 그 어부가 그 물건을 가져 가면 누명을 씌워 그 어부를 죽일 계획을 세운것이다.

첫 번째로 그는 그 어부의 집 앞에 쌀 한 가마니를 가져다 놓았다.
하지만 그 어부는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도 그 쌀 가마니를 거들떠 보지도 않는 것이었다.
그래서 원님은 두 번째로 최고급 비단을 어부의 집앞에 가져다 놓았다.
그러나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몸이 달을때로 달은 원님은 최후의 수단으로 커다란 금송아지 한 마리를 집앞에 가져다 놓았다.
그러나 어부에게는 금송아지마저 소용이 없었다. 어부가 손끝 하나 대지않은 것이다.

그러한 어부의 행동에 화가 난 원님은 그 자리에서 이렇게 탄식을 했다.

`선어부비취`(善漁夫非取)...착한 어부는 아무것도 가지지 않는구나.
그 뒤로 어부에게 감명받은 원님은 그 어부를 자신의 옆에 등용해, 덕으로써 마을을 다스렸다고 전해진다.

善漁夫非取(선어부비취) :
자신이 뜻한대로 일이 잘 이루어지지 않을 때 약간 화가 난 어조로 강하게 발음한다.

이 고사성어는 그 때 당시 중국 전역에 퍼졌고, 급기야는 실크로드를 타고 서역으로까지 전해졌으며...
오늘날에는 미국, 영국 등지에서 'son of a bitch' 로 자주 쓰이고 있다고 한다.
출처 : 부산마라톤 클럽!
글쓴이 : 푸른항공서일수 원글보기
메모 : 재밋는 고사성어들로 음미해 보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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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차수 2011. 12. 22. 16:41

오늘은 우리 중년들에게

정말 좋은 책 한권 소개 합니다.


물론 중년이 아니라도

  맞벌이 부부에게 꼭 권하고 싶은 책입니다.

 

저도 이 책을 권유받기까지

여자의 언어를 이해 못했습니다.

 

여자의 언어는 다르다는 사실을 정말 몰랐습니다.

 아내의 하소연을 들어달라는 뜻을

 남자들은 남편에 대한 잔소리, 바가지로 받아들인다는 사실은

 정말 몰랐습니다.

 

이 책을 읽어 나가면서 정말 내가 아내에게

그동안 하지 말아야 할 말들을 많이 했구나 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지금의 시대는 우리 부모님 세대나

 우리 중년들이 살아 온 아내의 역할

즉, 남편은 밖에서 돈을 벌고 , 아내는 내조하는 그런 시대가 아닙니다.

 

아내도 똑같이 밖에서 일을하고 가정으로 돌아옵니다.

그런데 남편은 피곤하다며 몸을 풀 수 있지만

아내는 집에서 해야 할 가사노동이 또 기다리고 있습니다.

 

남자들은 가사일은 당연히 여자의 일로 받아들인다는 것이지요.

요즘은 여자들도 바깥에서 노동의 강도가 남자와 똑같습니다.

 

예전에 제가 공직에 들어갔을 때

 여직원들이 하는 일과 남자직원들이 하는 일이 

비중이 달랐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그러나 집에서 가사노동만은 아직도 변함이 없습니다.

당연히 여자들의 일로 남아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여자의 언어를 잘 이해해야 합니다.

결코 잔소리, 바가지가 아님을

 

" 남자들은 전혀 모르는 것들" 입니다.

 

이 책을 중년의 남성들에게 그리고 중년의 여성들에게

꼭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엇그제 퇴근을 하는데

지하철에서 젊은 여자분이

유치원에 있는 자녀를 시간안에 못 데려간다고

 유치원 선생님께 부탁하는

모습을 보면서 가정으로 돌아가서도

 

"여자는 차마 말 못하고,"

 

"남자는 전혀 모르는 것들"의 언어가

 저 가정에 평화가 깃들기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 시간 토요일 인데도 아직 아내가 퇴근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아내가 퇴근해서 가사일에  손이 가지 않도록

집에서 쉬고 있는 나의 당연한 몫임을 그때는 몰랐습니다.

 

중년의 남자들이여!

지금 당신의 아내가

 

 "여자의 언어로서 차마 말 못하고" 있음을 들어봅시다.

 

 

이 한권의 책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맞벌이 직장인들에게 꼭 권해 봅니다.

 

 

출처 : 서일수의 "꽃중년 브랜드" 프로젝트
글쓴이 : 꽃중년서일수 원글보기
메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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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차수 2011. 12. 20. 11:48

 

어느 며느리의 고백

 

 

신랑이 늦둥이라 저와 나이차가 50 년 넘게 나시는 어머님..

저 시집오고 5 년만에 치매에 걸리셔서

저혼자 4 년간 똥오줌 받아내고,잘 씻지도 못하고,

딸내미 얼굴도 못보고, 매일 환자식 먹고,

간이침대에 쪼그려 잠들고,

4 년간 남편품에 단 한번도 잠들지 못했고,

힘이 없으셔서 변을 못누실땐

제 손가락으로 파내는 일도 거의 매일이었지만

안힘들다고, 평생 이짓 해도 좋으니 살아만 계시라고 할수

있었던 이유는

정신이 멀쩡하셨던 그 5년간 베풀어주신 사랑 덕분이었습니다.



제나이 33살 먹도록 그렇게 선하고 지혜롭고 어진 이를

본적이 없습니다.

알콜중독으로 정신치료를 받고 계시는 아버지...

그런 아버지를 견디다 못해 제가 10살때 집나가서 소식없는 엄마..

상습절도로 경찰서 들락날락 하던 오빠..

그밑에서 매일 맞고..울며 자란 저를 무슨 공주님인줄

착각하는 신랑과 신랑에게 모든 이야기를 듣고는 눈물 글썽이며

한시라도 빨리 데려오고 싶다고 2천만원짜리 통장을 내어주시며,

어디 나라에서는 남의집 귀한딸 데리고 올때 소팔고 집팔아

지참금 주고 데려 온다는데,, 부족하지만 받으라고...

그돈으로 하고싶은 혼수, 사고싶은거 사서 시집오라

하셨던 어머님...



부모 정 모르고 큰 저는 그런 어머님께 반해,

신랑이 독립해 살고있던 아파트 일부러 처분하고

어머님댁 들어가서 셋이 살게 되었습니다.

신랑 10살도 되기 전에 과부 되어, 자식 다섯을 키우시면서도

평생을 자식들에게조차 언성 한번 높이신 적이 없다는 어머님...

50 넘은 아주버님께서 평생 어머니 화내시는걸 본적이

없다 하시네요.



바쁜 명절날 돕진 못할망정 튀김 위에 설탕병을 깨트려

튀김도 다 망치고 병도 깬 저에게 1초도 망설임 없이

"아무소리 말고 있거라" 하시고는

늙으면 죽어야 한다며 당신이 손에 힘이 없어 놓쳤다고

하시던 어머님...



단거 몸에 안좋다고 초콜렛 쩝쩝 먹고있는 제 등짝을

때리시면서도 나갔다 들어오실땐 군것질거리 꼭 사들고

"공주야~ 엄마 왔다~" 하시던 어머님..



어머님과 신랑과 저. 셋이 삼겹살에 소주 마시다

셋다 술이 과했는지 안하던 속마음 얘기 하다가,

자라온 서러움이 너무 많았던 저는

시어머니앞에서 꺼이꺼이 울며 술주정을 했는데,,,

그런 황당한 며느리를 혼내긴 커녕

제 손을 잡으며, 저보다 더 서럽게 우시며,

얼마나 서러웠노,, 얼마나 무서웠노..

처음부터 니가 내딸로 태어났음 오죽 좋았겠나,,

내가 더 잘해줄테니 이제 잊어라..잊어라...하시던 어머님...



명절이나 손님 맞을때 상차린거 치우려면

"아직 다 안먹었다 방에 가있어라"하시곤

소리 안나게 살금 살금 그릇 치우고 설겆이 하시려다 저에게 들켜

서로 니가 왜 하니, 어머님이 왜 하세요 실랑이 하게 됐었죠...

제가 무슨 그리 귀한 몸이라고..

일 시키기 그저 아까우셔서 벌벌 떠시던 어머님.



치매에 걸려 본인 이름도 나이도 모르시면서도

험한 말씨 한번 안쓰시고

그저 곱고 귀여운 어린 아이가 되신 어머님...



어느날 저에게 " 아이고 이쁘네~ 뉘집 딸이고~~" 하시더이다.

그래서 저 웃으면서

"나는 정순X여사님(시어머님 함자십니다) 딸이지요~

할머니는 딸 있어요~?"했더니 "있지~~

서미X(제이름)이 우리 막내딸~ 위로 아들 둘이랑 딸 서이도 있다~"

그때서야 펑펑 울며 깨달았습니다.

이분 마음속엔 제가, 딸같은 며느리가 아니라

막내시누 다음으로 또 하나 낳은 딸이었다는걸...



저에게...

"니가 내 제일 아픈 손가락이다" 하시던 말씀이 진짜였다는걸...

정신 있으실때, 어머님께 저는 항상 감사하고 사랑하고

잘하려 노력은 했지만 제가 정말 이분을 진짜 엄마로

여기고 대했는지...

왜 더 잘하지 못했는지, 왜 사랑하고 고맙단 말을 매일 매일

해드리진 못했는지..



형편 어렵고 애가 셋이라 병원에 얼굴도 안비치던 형님..

형님이 돌보신다 해도 사양하고 제가 했어야 당연한 일인데,

왜 엄한 형님을 미워했는지..

말한마디 행동 하나하나가 사무치고 후회되어

혀를 깨물고 싶은 심정이었답니다.



밤 11시쯤,, 소변보셨나 확인 하려고 이불속에 손 넣는데

갑자기 제 손에 만원짜리 한장을 쥐어 주시더군요..

"이게 뭐에요?" 했더니 소근소근 귓속말로

"아침에~ 옆에 할매 가고 침대밑에 있드라~

아무도 몰래 니 맛있는거 사묵어래이~" 하시는데 생각해보니

점심때쯤 큰아주버님도 왔다 가셨고, 첫째, 둘째 시누도

다녀갔고.. 남편도 퇴근해서 "할머니~ 잘 있으셨어요~?"

(자식들 몰라보셔서 언젠가부터 그리 부릅니다) 인사하고

집에 들어갔는데...



아침 7시에 퇴원한 할머니가 떨어트린 돈을 주으시곤

당신 자식들에겐 안주시고 갖고 계시다가 저에게 주신거였어요.

그리곤 그날 새벽 화장실 다녀왔다 느낌이 이상해

어머님 코에 손을 대보니 돌아가셨더군요....



장례 치르는 동안 제일 바쁘게 움직여야 할 제가

울다 울다 졸도를 세번 하고 누워있느라 어머님 가시는 길에도

게으름을 피웠네요...

어머님을 닮아 시집살이가 뭔지 구경도 안시킨 시아주버님과

시누이 셋. 그리고 남편과 저..

서로 부둥켜안고 서로 위로하며, 어머님 안슬퍼하시게

우리 우애좋게 잘살자 약속하며 그렇게 어머님 보내드렸어요..

오늘이 꼭 시어머님 가신지 150일 째입니다..

어머님께서 매일 저 좋아하는 초콜렛,사탕을 사들고 오시던

까만 비닐봉지.

주변에 널리고 널린 까만 비닐봉지만 보면 눈물이 납니다..

어머님이 주신 꼬깃꼬깃한 만원짜리를 배게 밑에 넣어두고..

매일 어머님 꿈에 나오시면

사랑한다고... 감사하다고 말해드리려 준비하며 잠듭니다.

다시 태어나면 처음부터 어머님 딸로 태어나길 바라는건

너무 큰 욕심이겠죠...

부디 저희 어머님 좋은곳으로 가시길..


다음 생에는 평생 고생 안하고 평생 남편 사랑 듬뿍 받으며

살으시길 기도 해주세요.
출처 : Real Football
글쓴이 : 10.Rosicky 원글보기
메모 : 고부간의 뜨거운 사랑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