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야할 상식과 법/정의는 무엇인가?

2014. 9. 29. 19:28
  • 김철추의 황장엽 망명비화-② 이 카테고리의 다른 기사보기

    황장엽 망명에 충격받은 김정일 "南의 오익제를 끌어오라!"

  • 김철추
    탈북자
    북한 중앙기관에서 책임부원으로 근무하다가 탈북했다. 보안 관련 ..
    더보기

입력 : 2014.09.29 13:32

 

황장엽 비서의 탈출은 김정일은 물론 북한의 모든 간부들과 주민들에게 큰 충격을 던져주었다.

북한주민들 대다수는 황장엽 비서가 김일성종합대학 교원으로 근무하면서 김정일의 직접적인 담임선생으로 있었던 것을 알고 있다. 김정일은 아버지 김일성과 외국에도 나가고 현지지도를 많이 나가기 때문에 대학에도 잘 나오지 않고 실력도 높지 못했다. 이 때문에 졸업논문을 황 비서가 대신 써주고 그 일로 김정일의 신임을 받아 김일성종합대학 총장과 중앙당 국제부 비서로, 최고인민회의 의장으로 출세를 하였다는 소문도 은밀히 떠돌았다. 황 비서의 탈출 직후엔 ‘그러한 황 비서가 오죽했으면 일가식솔을 한지에 남겨두고 남조선으로 갔겠는가’ 하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렇게 북한주민들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황장엽 비서의 한국 망명이 화제가 되면서 김정일의 위상은 완전히 바닥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북한 당국은 나아가 국제인권단체들의 눈을 의식해 ‘한국정보기관의 유혹과 매수로 빚어진 결과’라고 여론을 호도했다. 황 비서의 가족도 일정한 기간은 놔두고 가택연금정도만 시키었다. 그러다보니 일부 주민들은 황 비서가 강제로 끌려갔다고 믿는 경향도 나타났었다.
황장엽 관련 어록.
황장엽 관련 어록.
황장엽 비서는 김일성, 김정일 독재정권시기 권력의 지도적 위치에 있으면서 독재의 비극을 숱하게 체험했다. 그러다보니 환멸을 느끼고 정권을 민주주의 정권으로 교체하여야 한다는 의지를 가지고 있다가 이전 소련과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의 붕괴현상을 목격하면서 사회의 민주화와 자유화는 막을 수 없는 흐름이라는 진리를 보았다고 볼 수 있다.

1994년 김일성 사망 직후 북한에선 음주가무를 못하게 하였다. 북한사람들은 통상 새해 1월 1일을 술을 많이 먹는 날이라고 해서 ‘술날’이라고도 부른다. 그런데 김일성 사망으로 1995년 1월 1일은 명절인데도 술을 제대로 못 마시게 됐다. 황장엽 비서의 아들 황경모의 친구들은 술이 하도 먹고 싶어 ‘중앙당 비서의 집에서 술을 마시면 누가 보지도 못하고 단속하지도 못하겠지’ 하면서 평양시 보통강구역 서장동에 있는 황 비서의 집에 둘러앉아 술을 마시고 놀았다.

그때 갑자기 황 비서가 집에 들어왔고 황경모의 친구들은 다들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몰랐다. 그런데 황 비서는 ‘다들 편히 앉아라. 우리 아들 경모의 친구들이니 반갑다’ 하면서 손수 술을 한 잔씩 부어주면서 어느 대학을 졸업하고 어느 기관에서 근무하는가, 부모들은 무엇을 하는가 등등을 물었다. 아들 경모를 보고는’ 동무들을 잘 사귄 것 같다’고 칭찬을 하다가 ‘동무들 사이에는 어떤 일이 있어도 서로를 버리지 말고 끝까지 생사운명을 같이 하여야 한다. 앞으로 너희들이 정말 할 일이 많다’며 격려까지 해주었다.

다른 간부 집 부모들 같으면 ‘술을 마시지 말고 끼리끼리 몰려다니지 말고 장군님과 당에 충성을 하라’는 속에 없는 말을 먼저 하는데, 황 비서는 젊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는 의리적인 말을 해주고 편하게 놀다 가라고 하면서 자리를 피해주는 아량을 보이었다.

이렇게 평양에서의 황장엽 비서를 보면 중앙당 고위간부라고 해서 틀을 차리고 주민들을 하대하는 것이 아니고 인간 대 인간으로 무던하게 대해주기 때문에 아래 사람들도 흉금을 털어놓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고 주체과학연구원 직원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하곤 하였다.

한편 황장엽 비서의 망명으로 자기의 위신이 크게 저하되었다고 생각한 김정일은 중앙당과 인민무력부의 관련 간부들을 모아놓고 이 창피를 어떤 수단과 방법을 다 해서라도 만회하라고 하면서 그 일을 얼마나 잘하는지에 따라 충성도를 평가하겠다고 말하였다고 한다.
1997년 8월15일 열차편으로 월북한 한국 천도교중앙본부 전 교령인 오익제(吳益濟)가 북한에 도착해 환영을 받는 모습.
1997년 8월15일 열차편으로 월북한 한국 천도교중앙본부 전 교령인 오익제(吳益濟)가 북한에 도착해 환영을 받는 모습.
이에 중앙당 3호청사 대남공작부서는 화가 난 김정일을 진정시키고 그 기회에 점수도 따기 위해 공작을 벌였다. 당시 한국 정치지도자급 인물 중 한 명이라는 오익제의 월북제안을 김정일에게 보고한 것이다. 그러자 김정일은 황장엽을 데려간 한국 정부와 정보기관에 보복을 하기 위하여 황 비서와 대등하다고 할 수 있는 남조선 정치인(오익제)을 무조건 끌어오라고 지시하였다. 그리하여 북한 대남기관에서는 오익제의 처자를 내세워 그를 그해 8월 북한으로 끌어오는데 성공하였다. 오익제는 한국 천도교 24대 교령을 지낸 저명 인사다.

북한에서는 오익제가 북한에서 살다가 6·25전쟁 시기 미국의 원자탄 투하 공갈로 남조선에 끌려 나간 사람들 중 한 명으로, 정의와 민주를 위해 남조선에서 민주화투쟁에 앞장서 싸우다가 미제와 남조선 군사독재정부를 반대하여 과감히 북한으로 망명했다고 공개하였다. 그때 일부 북한 간부들은 1997년 8월에 중국을 거쳐 평양으로 왔다고 보도된 오익제는 북한에 살고 있던 본처와 딸을 미끼로 유인 납치해왔다고 수군대며 말하였다.

그 후 중앙당에서는 간부강연에 오익제라는 사람을 출현시켰다. 오익제는 ‘황장엽은 당과 수령의 크나큰 믿음과 사랑을 받아왔지만 그에 보답을 하지 못하고 비열하게 자신의 온 가족을 버리고 달아났지만 나는 사회주의 우리 조국을 항상 가슴에 품고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남조선 사회의 민주화를 위하여 투쟁하다가 이제는 나이가 있어 그리운 처자가 있는 조국의 품에 안기었다’고 주장했다. 또 ‘우리 장군님께서는 크게 한 일도 없는 나에게 조국통일상을 수여해주고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위원장으로 내세워주었다’며 북한 사회주의를 선전했다. 그는 강연들을 통해 북한사람들에게 한국의 많은 정치인들과 교수들 및 국민 대다수가 북한의 사회주의를 지지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려고 애썼다.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정치하는 놈들은 모두 도깨비 같은 행태를 인들 앞에 벌이면서 무슨 애국자인 것 처럼 인민들 앞에 거짓말을 늘어 놓고 있다는 사실, 인민이 모두 개돼지처럼 생각이 없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