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곳간/선비마을 이야기

향곡[鄕谷] 2005. 7. 17. 21:54


[고문서…역사와의 대화]<12>우향계안


‘우향계안’의 표지(왼쪽)와 책 내용 중 1478년 첫 결성 당시 13인의 선비 명단과 서거정의 축시가 적힌 부분.

한국인은 관계 속의 자리매김과 사귐에 익숙하다. 모듬살이가 필수적인 농경이 그 토양이었다면 타자와의 조화로운 삶을 중시하고 “길동무 셋이면 그중에 내 스승이 있기 마련이다”고 한 ‘논어’의 말처럼 교유를 통한 인격의 성숙을 강조한 유학은 그 토양을 일군 자양이었다. 선인들이 그러한 취지에서 참여한 갖가지 사회적 모임을 아우를 수 있는 말이 다름 아닌 ‘계’이다.

 

‘우향계안(友鄕(결,계)案)’은 1478년(성종 9년)에 시작되어 1903년(광무 7년)까지 420여년 동안 이어진 우향계의 기록을 담고 있다. 계의 시작은 이증(李增) 등 안동의 5개 성씨 선비 13인의 모임이었다. 인물이 많고 산수가 뛰어난 고향에서 벗들이 모여 자연 속의 즐거움을 누리는 한편 서로 도의로써 인격을 도야하고 풍속을 아름답게 만들자는 것이 모임의 취지였다. 우향이란 이름은 “한 고장의 선한 선비라야 그 고장의 선한 선비와 벗할 수 있다”는 ‘맹자’의 한 구절에서 취했다. 이들은 이날의 모임을 기리기 위해 계축((결,계)軸) 13부를 만들어 나누어 가졌는데 당시 문호로서 명성이 높았던 서거정이 지은 축시와 계원들의 명단인 좌목(座目)을 담고 있다.

우향계안은 계축 내용을 첫머리에 옮겨 적은 것을 시작으로 140면에 걸쳐 역대 계모임 관련 계안((결,계)案)과 기념 시, 그리고 참석자 명단 등의 기록을 싣고 있어 500년 가까운 우향계의 확대 전승 과정을 한눈에 보여주고 있다.

우향계원들이 타계한 후 후손들이 1502년 영호루에 모여 우향계의 계승을 표방하며 진솔회(眞率會)를 결성했고 그 200년 후인 1702년에는 63인의 후손들이 세호계(世好(결,계))로 이름을 바꾸어 모여 “덕업상권(德業相勸), 과실상규(過失相規), 화난상구(禍難相救) 등의 일을 한결같이 여씨향약에 따른다”는 등 총 9개조 규약을 갖추었다.

계는 1865년에 수호계(修好(결,계))로 이름을 바꾼 이래 거의 매년 5개 문중의 재실과 고운사 등 인근의 사찰에서 돌아가며 열렸다. 특히 최초의 우향계 모임으로부터 7주갑(周甲)이 되던 1898년의 계회는 안동 권씨 능동재사에서 100명에 이르는 사람이 참여한 가운데 성대하게 치러졌다. 1903년 안동 인근의 광흥사에 모여 문서를 닦은(修(결,계)·문서를 정리한) 사실을 적는 것으로 우향계안의 기록은 끝을 맺고 있다.

그러나 우향계는 근대 이후 당초의 이름을 회복해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계회에서는 옛 법도대로 전작(奠爵·돌아가신 분에게 술을 올리는 예)과 독약(讀約·향약 조항의 낭독)을 행하는데 달라진 것이라고는 전작 대상이 공자 등 중국의 성현에서 13인의 우향계 창립 선조들로 바뀐 것뿐이다. 우향계는 또 다른 500년을 기약하며 안동댐 인근에 계회 전용 공간인 우향각을 짓고 있다.

이 우향계안을 보고 있노라면 ‘유구한 문화’라는 말이 비로소 마음에 닿는다. 생물학적 유한성을 넘어서 영원히 사는 방법을 대를 이은 계회라는 세련된 문화형식에서 찾아낸 선인들의 지혜에 탄복할 뿐이다.

 

박 경 환 한국국학진흥원 책임연구원·동양철학

동아일보 2004.7.27 기사

감사합니다
감사히 스크랩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