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전설의싸나이 2013. 2. 10. 03:12

1. 신립이 결전을 선택했던 충주의 지형

 

신립이 배수진을 치기 위하여 충주에 주둔했다고 말하는 자료도 있긴하지만

최소한의 상식만 가지고 있어도 그런 논리는 터무니 없다는걸 알 수 있다.

더더욱 이것이 당대 최고의 장수 신립이 생각해낸 것이라니

어떻게 그자리까지 오를수 있었는지 의심마저 생기게 만든다.

 

적군이 충주를 통과하면 곧 도성이 위급해지기 때문에 작전요충지로 인식했다지만

차라리 이일의 말대로 후퇴해서 한양이나 지키는게 이보다는 납득이 가지않을까.

 

지형에대해 쉽게 표현하기위해 산과 강으로 둘러쌓여있다 폐쇄적이다 라고 말하지만

이건 지리학자나 군사전문가도 아닌 그냥 평범한 사람도 보기만하면 누구나 알수 있는 사실이다.

 

전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장악하고 적군이 접근할 수 있는 길을 막는건 당연한 조치다.

또한 전투가 길어지거나 불리해질때 추가지원을 받거나 퇴각할 수 있는 경로도 있어야한다.

적의 접근을 막은것도 아니고 아군이 움직일수 있는 틈도 없는 곳이라면 피해야하지 않았을까.

 

일부 신립의 전장선택이 옳았다는 주장도 있는데

한결같이 아군의 사기와 훈련상태가 나빠서 도망자가 속출했다는 등의 근거가 빈약한 주장들이다.

차라리 실록에서처럼 기병전술을 구사하기 위해서라든가 아니면 귀신에 홀렸다든가 하는 얘기라면 또 모르겠다.

 

기록들이 하나같이 신립의 전장선택을 지적하고 있는건

병법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일지라도 상식선에서 이해할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인 것이다.

그냥 아무 야산에 주둔했다한들 그렇게 허무하게 끝날 전투는 아니었다.

뻔히 보이는 적의 이동경로를 못봤다는게 말이나 되는것인지 기록이 뭔가 잘못 적은게 아닌지  

 

 

신립이 조령을 포기하고 충주로 물러났을때 왜군들은 기뻐서 춤을추며 산을 넘어왔다고 한다.

이게 좀 과장되었다 싶더라도 왜군이 여러날동안 정탐하느라 조령을 넘지 못했다는 류성룡의 말은 사실이 아니었을까.

 

 

 

2. 탄금대의 지형

 

탄금대가 충주성과 5리쯤 떨어져있다고도 하고 8리쯤 떨어졌다고도 하는데

그래봤자 사람이 걸어도 한시간이 안걸리고 말을 타고가면 10분이나 걸릴까 하는 거리다.

 

탄금대는 신라시대에 견문산 위에 만든 시설물이다.

우륵이 가야금을 켜서 탄금대라고 하는데 실제 용도는 강변을 지키는 군사시설인 것이다.

 

원래 산봉우리인데다 토성까지 쌓아서 가파르고 비좁기까지하며

큰 강두개가 만나는 지점에 작은 개천들까지 엉켜서 말 그대로 섬이나 다름 없는 곳이다.

주변에 논이 많고 수풀이 우거져있었다는 기록이 있지만

신립이 정말 제정신이라면 당연히 여기를 전장으로 여기지는 않았을 것이라 생각된다.

 

아군의 숫자가 8천명 또는 1만명이 넘는 규모였다고 기록되어있고

상당수가 기병이었다면 말 또한 수천필이 있었을 것인데

저런 섬에서 무슨 기병전술을 구사할수 있다고 들어갔을리 있겠는가.

 

(물론 기록상 탄금대는 아군의 주둔지 였을뿐 격전이 벌여졌던 지점은 아니다)

 

 

 

실록과 상촌집에서는 신립이 성을 비워두고 탄금대에 나가있는 사이에

왜군이 침입해서 민가를 불태우고 난리가 난뒤에야 적침을 눈치챘다고한다.

강 끝에서 있어도 불이나는 모습이 보이고 총쏘는 소리가 들렸을 것이다.

(견문산 탄금대 주둔지에서 봤을 충주성 일대의 모습)

지금이야 도심지에 높은 건물이 들어서고 곳곳에 소음때문에 한치앞의 상황도 지나치기 일쑤라지만

왜란당시에는 저멀리서 왜군이 침입해 마을을 습격하는걸 다 알았봤을것이다.

 

 

 

3. 충주성의 지형

 

상촌집에도 수정실록에도 적군이 침입해서 충주성을 장악하고 마을에 불이난 정황은 똑똑히 드러나있다.

애당초 산악지대도 버린 마당에 충주성 같은 작은 성을 지킬 생각은 없었으리라 보여진다.

신립은 말을 타고 왜군을 유린할 생각으로만 가득했을테니까.

 

문제는 백성들을 대피시키지 않았던것.

실록에서도 밝히는바와 같이 충주의 백성들은 신립을 믿고 피난을 가지않았다.

졸지에 이들이 위험에 처해지게 된것이다. 이게 아군의 족쇄가 된거다.

 

상촌 신흠은 말을 달렸지만 지형이 불편해서 주춤했다고 기록했다.

마을에 건물이 빽빽하여 비좁고 논이 많아서 기마전술이 좋지않았다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왜군이 동서 방향에서 나타나 기습을 가했다고 말하고있다.

 

수정실록도 신립이 말을 달렸다고는 기록했지만 뒷부분이 좀 다르다.

성 안에서 적군이 호각신호를 보내자 사방에서 적군들이 쏟아져나왔다는 것이다.

 

이 두 기록이 과연 다른 내용일까.

관점에 차이일뿐 분명 같은 장면을 표현한 것으로 보여진다.

상촌집에 있는 지형문제는 수정실록에도 있는 내용이다. 다만 비좁았다는것만 빠져있다.

적에게 포위공격을 당한 구절도 양쪽방향이었든 사방의 방향이었든 일치한다고 본다.

 

이 두기록이 다른 장면을 표현했다는 주장이 성립되려면

상촌집에 없는 호각소리와 실록에 없는 마을이 비좁다는 두 문장만을 근거로 들수있다.

하지만 호각소리를 못들었을수도 있고 건물 간격을 눈여겨보지 않았을수도 있고 혹은 모르고 빼먹었을수도 있다.

모든 기록이 100% 동일할수는 없지않은가.

 

충주성에서 호각이 세번이나 울린걸 똑똑히 들은 사람도있고 건물이 많아서 비좁다고 느낀 사람도 있는 것이다.

탄금대와 충주성은 불과 2~3km 간격을 두고 있었고 기마병은 시속 40km 정도의 속도로 달려왔으니까.

그 짧은 시간동안 모든걸 다 감지하지 못했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류성룡이 말했던것처럼 충주성의 성곽이 토적도 막지 못할정도였다면 신립이 기마병을 이끌고 돌진해서 되찾을만도 했을 것이다.

그런데 신립은 대패를 당하고 말았다.

비록 충청도의 농촌마을이었으나 조선시대에는 광역시 수준의 큰 도시였다.

성으로 가까이 갈수록 가옥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었고 

그닥 크지않은 개천이었을지언정 성을 두르고 있는 교현천까지 아군의 진입에 장애가 됐을 것이다.

 

성 안에서는 적군이 조총을 쏘는데 100발자국 안쪽으로 접근하면 표적이 될게 뻔했고

어디선가 나타난 적의 유격대는 말위에 앉아있는 아군을 사정없이 찌르고 들어왔을 것이다.

 

이 난장판 속에서 신립이 두어차례 공격시도를 하다 퇴각했다는 기록이 재조번방지에 남아있다.

징비록과 재조번방지에 기록된 두차례 돌격실패에 대한 구절은 바로 이장면을 묘사한 것이다.

 

 

 

 

최종 전투내용을 정리하자면

   1. 충주의 지형을 볼때 산악을 버리고 고립된 전장에 들어간건 비상식적인 선택이었고

   2. 그나마도 충주성을 지키지않고 탄금대에 주둔한건 더더욱 이해가 어려운 부분이고

   3. 뒤늦게 적침을 알고 충주성으로 달려나갔지만 극복할수 없었다

이렇게 글을 마친다.

 

 

 

 


탄금대전투 게시물 목차

임진왜란 탄금대전투 기록에 대한 분석

임진왜란 탄금대전투 지형에 대한 고찰

임진왜란 탄금대전투 군사 구성의 비교

임진왜란 탄금대전투 조선과 일본의 자료 비교

임진왜란 탄금대전투 도성정규군 10만 몰살설 반박

탄금대의 마지막 조언자, 종사관 김여물 묘소와 신도비

 

 


비밀댓글입니다
비밀댓글입니다
싸나이님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ramse&logNo=220258820465

여기글에 의하면 조령은 우회로가 있어 징병된 신립의 군대로는 막을수 없었다는 주장이 있는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 부분은 신립의 패전을 미화하는 의미에서의 논지가 강하게 느껴집니다
조령을 지켜봤자 소용이 없었으므로 차라리 충주에 주둔한게 옳다는 얘기죠

근데 실상으로는 왜란당시 그 누구도 신립의 전투진행에 대해 긍정적으로 본 사람이 없습니다
당시 전투에 참전했던 사람 조차도 신립이 무작정 기마전술을 하러 충주에 주둔한 거였고
정찰 한번 제대로 못해서 충주성이 불타올랐다고 기록했는데요
심지어 그 목격자가 신립이랑 같은집안 사람이었다니 더 말할것도 없죠


전술적으로 봐도 조령방어는 절대 무의미한게 아닙니다
왜란당시 아군이 산악에서 승전한 사례가 한두번이 아닐뿐더러
왜군도 적지않은 병력이 매복해있는 산을 우회돌파하여 간다는건 상식밖의 행동이니까요
만약 왜적이라면 조령진격을 포기랬으리라 봅니다
차라리 호남지역을 공격한다든지 하는 계획을 세웠겠죠
ㅇㅇ 그렇군요.
깊히있는 분석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