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정비석) 연재

홍반장 2020. 12. 5. 11:50

삼국지(三國志) (153) 형주 탈출

 

채모는 장군부로 돌아오자 휘하 장수들을 소집하였다. 그리고 이들에게 명한다.

 

"유비가 지금 객사에 묵고 있다. 지금 이 자를 없애려 하니, 허 장군은 군사 오백을 이끌고 나와 함께 객사로 가자. 오 장군은 정예병 6만을 데리고 성 밖에 주둔하고 신야성 공격 명령을 기다려라 ! 송 장군, 형주 9개 군을 봉쇄하여 백성들의 출입을 막고 삼엄한 경계를 펼치라 !"

"예 !"

 

명령을 받은 장수들은 제각기 임지로 흩어졌다.

 

그시간, 유비가 묵고있는 객관에서는,

"유황숙 ! 유황숙 !...."

 

유표의 장자 유기가 유비의 처소로 급히 뛰어들며 유비를 불렀다.

유비가 방문을 열자, 유기가 인사할 사이도 없이 달려들었다.

"황숙 !"

"공자 ?"

 

유비가 방문을 닫으며 물었다.

"이 야밤에 무슨 일이오 ?"

 

유기는 거두 절미, 본론부터 꺼낸다.

 

"우선 여쭐 것이 있습니다. 오늘 아버님과 단 둘이서 애기하셨죠 ?"

"그렇소, 단오절이잖소. 술이나 하자 하셨소."

"무슨 말씀을 나누셨습니까 ?"

 

유비는 느닷없이 뛰어 들어온 유기가 묻는 말에 의문도 들었으나, 그가 서두는 품이 이상하여 순순히 대답해 주었다.

"후계자 문제를 꺼내시길래, 장자를 끌어내리는 것은 도리에 어긋난다 하였소."

 

그러자 유기는 두 손을 모아 고개를 숙이며,

"황숙, 감사드립니다."

하고, 예를 표한다. 그리고 이어서 말하는데,

"하지만 덕분에 황숙께 큰 화가 닥치게 되었습니다."

하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 유비가 그 말을 듣고 반문한다.

 

"무슨 일이오 ? 경승형이 날 죽이려한단 말이오 ?"

 

"아니오, 채모가 손을 쓰려고 합니다. 지금 채모가 장군부에서 병사들을 점고하고 있습니다. 황숙, 이곳은 극히 위험하니 지금 곧 신야로 출발하십시오."

 

유기는 이렇게 말하면서 유비의 결심을 재촉했다. 유비가 잠시 생각을 고르고, 유기에게 고개를 숙이며 말한다.

"고맙소, 공자, 하지만 경승형이 초청해 온 것이니, 인사를 드리고 가야 실례가 되지 않을 거요."

 

유기가 고개를 흔들며 대답한다.

"생사가 달린 마당입니다. 먼저 몸을 피하세요."

"알았소."

 

얼마후, 채모의 군사 오백명이 객사로 몰려 왔다. 그러나 이미 유비는 몸을 피한 뒤였다.

 

이들은 객사를 샅샅이 뒤져보고,

"장군 ! 전부 뒤져봤는데 유비는 그림자도 안 보입니다."

하고, 채모에게 고하니, 채모가,

"분명히 여기 머물 터인데 왜 안 보인다는 말이냐 ? 관주를 불러오라 !" 

 

불려온 관주(館主)가 채모앞에 대령하자,

"유비는 어디 갔느냐 ?"

하고, 채모가 다그쳐 물었다. 그러자 불려온 관주는,

"황숙께선 이경(二更: 밤 9~11시)쯤 되었을 때, 아무 말도 없이 말을 타고 나갔습니다."

하고, 대답한다. 그 말을 듣고 채모가 황급히 유비가 머물던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온 방안을 샅샅이 살펴 보았다. 과연 유비는 종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

 

절치부심하던 채모는 망연히 객사안을 바라보다가, 객사 바람벽에 시(時) 한 수를 써놓고 방을 나왔다.

 

잠시후, 유표가 호위 병사를 거느리고 객사에 나타났다.

 

"야심한 시간에 웬 수선인가 ?"

 

그러자 채모가 앞으로 나서며,

"주공, 관주의 보고를 받았습니다. 유비가 이경 쯤 갑자기 객관에서 도망쳤다 합니다. 저는 형주성의 치안을 담당하는 터이라, 손님인 유비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그 죄를 어찌하겠습니까. 그래서 직접 조사하러 왔습니다."

하고, 둘러대었다.

"그런가 ?"

 

유표는 짧게 대답하고 유비가 머물던 방으로 갔다. 그리고 방안을 천천히 살펴 보았다.

 

그런데 바람벽에는 못 보던 시 하나 씌여있는 것이 아닌가 ? 그 시는 이런 내용이었다.

 

數年徒守困 (수년도수곤)

 

空對舊山川 (공대구산천)

 

龍豈池中物 (용기지중물)

 

乘雷欲上天 (승뇌욕상천)

 

세월을 부질없이 보내길 몇 해 런가.

 

옛 산천을 헛되이 대하고 있네

 

용이 어찌 늪속에 살 수 있으랴

 

우뢰를 타고 하늘에 오르려하네

 

유표는 그 시를 읽고,

 

"내 유비에게 섭섭하게 대한 바 없거늘 다른 마음을 품다니,"

 

하고, 말하며 크게 노했다. 더구나 채모는,

 

"주공 ! 이 시는 유비가 형주라는 연못에 머물지 않고 천하로 나서겠다는 뜻이 아니고 뭐겠습니까 !"

 

하고, 외치며 유표의 노기 충천을 부축였다. 그 말을 듣고, 유표가 말한다.

 

"이 시를 보니, 유비가 정말 형주를 차지할 속셈을 가지고 있었군."

"그렇습니다."

"내 이 자를 반드시 제거하리라."

 

유표는 바람벽에 쓰인 시가 유비라도 된 것처럼 손가락질을 하며 다짐하듯 외쳤다.

 

그러자 채모가 즉각 대답한다.

 

"주공 ! 군사는 이미 준비되어 있습니다. 결심이 그러하시다면 지금 곧 신야로 군사를 몰고가겠습니다."

 

유표는 그 말에 대답하지 아니하고 발길을 돌리다가,

 

(혹시 이 시는 누가, 나와 유비를 이간(離間)하기 위해서 일부러 써 놓은 것이 아닐까 ? 유비가 시를 잘 짓는 다는 소리를 들은 바 없으니...)

 

퍼뜩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명을 재촉하는 채모에게,

"이 시는 너무 조잡해서 현덕이 쓴 것 같지 않다 ! 게다가 현덕이 시를 쓰는 걸 본 적도 없어 !"

하고, 잘라 말했다. 그러자 애가 타게 명을 기다리던 채모가,

"주공, 유비는 분명 다른 마음을 품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왜 한방중에 떠났겠습니까 ?"

하고, 명을 채촉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유표는 채모의 말을 듣고, 그의 말의 진위(眞僞)에 의문의 눈길을 보냈다. 

 

순간 채모는 주군이 보내는 의심의 눈길을 알아 채고,

 

"주공, 이 일의 진위가 의심스럽다면 우선 유비를 잡아다가 직접 물어보시면 되지않겠습니까 ?"

 

채모는 어떻하든지 군사를 몰고 유비를 쫒고 싶었다. 그러나 유표는,

"신야로 가서 유비를 잡으러 가면 관우와 장비가 가만 있겠는가 ?  게다가 조자룡도 있어. 그럼 당장 전쟁이 날 게 아닌가 ! "

 

유표가 언성을 높여 말하자 채모는 머쓱해졌다. 

 

유표가 손을 내저으며 명한다.

"모두 물러가라 ! 이 일은 나중에 조사하겠다 !"

 

그리고 숙소로 돌아가다 말고 명에 따르지 아니하고 주춤거리고 서있는 군사들을 보고 다시 돌아서며 화를 낸다.

 

"철수하여 군영으로 돌아가란 소리 못 들었느냐 !"

 

순간, 눈치를 살피던 채모가 얼른 군사들을 향해, 유표의 뒤이은 명을 내린다.

"주공의 군령을 못 들었느냐 ! 어서 군영으로 돌아가라 !"

"예 !"

 

군사들은 일제히 복명하고 흩어졌다.

 

다음 날, 채모가 채씨 부인 앞에 복명한다.

"어젯밤 객관을 덮쳤지만, 유비놈이 이미 줄행랑을 놓아 허탕을 쳤습니다. 게다가 주공께 신야를 공격하자고 청했는데, 허락하지 않으셨소. 주공이 날 의심하진 않겠죠 ?"

 

"당연히 의심하지, 주공께서 밤중에 들어오시자마자, 형주성 안팎에 첩자가 있다 욕하셨어. 피를 토할 것 처럼 화가 단단히 나셨지.."

"그럼 우린 어떡하오 ?"

"걱정하지마라. 그렇게 욕하시더니 다행히도 고질병이 도지셨거든, 아마 당분간은 정사를 돌보지 못할 거야." 

"그렇지만 병이 나으시면 다시 추궁하실 텐데..."

"당연하지, 그렇지만... 주공께서 병이 빨리 낫지 않도록 조절할 수도 있거든...그러니 너는 그 쯤만 알고 있거라."

"알겠습니다. 누님이 만약 남자였다면 가히 군사감이오."

"여자라면 어떠냐, 여자는 형주의 주인이 될 수 없단 말이냐 ?"

"네,네 !..."

 

채모는 누이에게 경의를 표하며 물러갔다.

 

한편, 형주성을 빠져 나온 유비는 밤새 말을 달려 새벽 무렵에 이르러서야 신야성에 도착하였다.

 

신야성은 형주성에서 백여 리 떨어진 조그만 성이었는데 유비는 이 고을에 와서 백성들을 잘 다스린 까닭에, 모두가 그를 우러러 모셨다.

 

이곳에 와서 유비에게는 경사가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정실(正室) 부인인 감(甘)부인이 아들을 낳은 것이었다.

 

해산하는 날 새벽에 학 한 마리가 지붕에 내려앉아 사십 번을 울었고, 임심중에는 감 부인이 북두칠성을 삼킨 꿈을 꾸었다 하여 아기의 아명(兒名)을 아두(阿斗)라 부르고, 본명은 유선(劉禪)으로 지었다.

 

유비는 오십이 다 되어 얻은 아이를 보는 재미에 푹 빠져 버렸다.

 

그리하여 신야에서 지내는 나날이 한편으로 즐겁기까지 하였다.

 

그리하여 별다른 움직임이 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형주의 채모도 외견상 더 이상 유비를 견제하지 않고, 간간이 들리는 소식에 의하면 유표는 건강이 좋지않아 정사를 직접 관장하지 못하고 있다는 소리외에는 이렇다 할 사안이 없이 봄이 가고 여름이 가고 가을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형주에서 유표의 맏아들 유기가 온다는 소식이 당도하였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