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미양요의 격전지, 손돌목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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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

2020. 5. 7.

 

인천시 강화군 불은면 덕성리에 위치한 손돌목돈대는 강화해협을 지키는 해안가의 중요한 방어시설 중 하나로, 현재 광성보(廣城堡)에 속해있는 3개의 돈대 중 하나이다.

 

손돌목돈대는 1679(숙종 5)에 축조된 돈대로, 원래 덕진돈대와 함께 덕진진에 소속되어 있었으나 현재는 광성보 내에 위치해 있다.

 

 

 

 

손돌목돈대는 구릉 정상부에 위치해 있으며, 다른 돈대와는 달리 둥그렇게 쌓인 돈대이며 돈대 중앙에 3칸의 무기고가 있었고 포좌 3개가 있었다고 한다.

 

손돌목돈대는 성곽 길이 108m 넓이 778규모이며, 1871(고종 8) 신미양요 때에는 미국 해군과 치열한 백병전이 벌어졌던 현장이기도 하다.

 

 

 

 

 

손돌목돈대는 특히, 신미양요 전투 때 조선군 사령관인 어재연 장군이 직접 지휘하며 격렬하게 반격을 가하던 요새였으며, 이 전투에서 미군 측에서는 맥기(Hugh Mckee)해군 중위와 두 명의 수병이 전사하고 조선 측에서는 어재연 장군을 비롯한 대부분의 조선군들이 장렬히 전사한 곳이다.

 

 

 

 

 

 

 

 

 

 

손돌목 지명은 뱃사공이었던 손돌에서 유래된 이름으로 애잔한 전설이 전해진다.

옛날 몽고 침입 때 고려 왕이 강화도로 피신할 때, 경험이 많은 뱃사공이었던 손돌이 왕의 배를 젓게 되었다고 한다.

 

강화도로 가는 바다에서 손돌이 위험한 여울 쪽으로 노를 젓고 있다고 여긴 왕이 여울물 쪽으로 가지 말라.’고 하였지만, 손돌은 계속하여 위험한 여울 쪽으로 노를 저었다고 한다.

 

이에 자신을 함정에 빠트릴 것이라고 오해한 왕은 손돌을 참수하라 명하였고, 손돌은 죽어가면서도 여울은 위험해 보이지만 그 길이 강화도로 가는 안전한 길이라며 바가지를 물에 띄우고 그 바가지를 따라 갈 것을 왕에게 간언하며 죽임을 당했다고 한다.

 

 

 

잠시 후 초겨울의 북서풍이 세차게 불고 배를 가눌 수 없게 되어 침몰 직전에 이르게 되었을 때, 손돌이 남긴 바가지를 배 앞에 던지니 바가지는 배 앞에서 떠가므로 왕이 탄 배는 바가지가 떠가는 대로 뱃길을 잡아 강화도에 무사히 도착하였다고 한다.

 

그 후 왕은 오해로 억울하게 죽은 손돌의 혼을 위로하기 위해 묘를 만들고 제사를 드렸으며, 그곳을 손돌목이라는 지명으로 후세에 알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손돌목돈대 아래 해안가에 자리한 광성포대(廣城砲臺)는 손돌목돈대 주변 3곳에 설치되어 각각 943좌의 포좌를 갖추고 있었으며, 이중 규모가 가장 큰 중앙 포좌는 길이 80m 포좌 크기 약 6m로 추정된다고 한다.

 

1875년 운양호 사건을 계기로 외세에 문호를 개항함에 따라 파괴되었던 것을 2004년 발굴조사를 실시하여 유적이 확인되어 복원정비를 하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