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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갈밭 姜顯俊 2012. 5. 30. 09:32

'이종범이라고 쓰고 신이라고 읽는다.'


'투수는 선동열, 타자는 이승엽, 그러나 야구는 이종범'

'한국프로야구 사상 가장 완전무결한 5툴 플레이어'

[야구타임스 | 이준목] 모두 한 명의 선수에게 쏟아진 수식어들이다.

어느덧 30년을 넘긴 한국 프로야구사에서 이 정도로 일괄된 찬사가 허용된 것은 오로지 이종범 한 명뿐이었다.

영원한 타이거즈의 프랜차이즈 스타이면서도, 그가 남긴 업적은 단지 타이거즈라는 한 팀을 넘어 한국야구사에 영원히 기억될 전국구 스타였다.

▲ 사실이라서 더욱 믿기 힘든 이종범의 '만화야구' 
   

 

화려한 은퇴식과 함께 그라운드를 떠난 이종범, 더불어 그가 남긴 불멸의 기록들도 다시 주목받고 있다.

이종범이 타이거즈 유니폼을 입고 16시즌을 활약하며 남긴 성적은 타율 2할9푼7리(6,060타수 1,797안타)에 194홈런 730타점 510도루 2,777루타.

통산기록 면에서는 라이벌로 꼽혔던 양준혁(전 삼성)과 전준호(전 현대) 등에 뒤진다.

이종범이 전성기 시절이던 98년부터 약 3년 반을 일본에서 보냈기 때문이다.

그리 성공적이라고 할 수 없는 일본 시절의 공백기 없이 국내무대에서만 계속 활약했더라면, 타격과 도루 부문의 통산기록을 대부분 갈아치웠을 것이 유력하다.

하지만 단일시즌 기록으로는 여전히 깨지지 않는, 아니 어쩌면 앞으로도 깨지지 않을 것 같은 불멸의 기록들은 여전히 상당수 이종범의 차지다.

첫 번째는 타격. 이종범의 최고 전성기로 꼽히던 1994년 이종범은 124경기에서 타율 3할9푼3리(499타수 196안타)를 기록했다.

단일 시즌 최고타율은 프로 원년 백인천이 기록한 4할1푼2리지만, 경기수와 리그 수준차이를 감안하면 실질적으로 이종범의 기록이 역대 최고라는 찬사를 받을만하다.

 이종범이 같은 해 기록한 196안타와 84도루 역시 여전히 깨지지 않고 있는 역대 최고기록이다.

'바람의 아들'이라는 별명답게 이종범은 도루 부문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기록을 대거 보유하고 있다.

통산 기록은 510개로 전준호(550개)에 뒤지지만, 도루 성공률은 81.9%로 통산 100개 이상의 도루를 성공시킨 선수들 중 부동의 1위를 고수하고 있다.

 앞서 이야기한 단일 시즌 최다도루 이외에도. 1경기 최다 도루(6개 1993년 9월 26일 쌍방울전), 최다 연속 도루 성공(29회) 등도 이종범의 차지다. 

 

 

또한 이종범의 기록을 설명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의외의 기록이 바로 홈런이다.

97년 이종범은 3할대 타율에 30홈런 64도루를 기록하며 한국프로야구사에 전대미문의 3할-30홈런-60도루 기록을 수립했다.

톱타자였고 자그마한 체구의 이종범이 타율과 도루는 몰라도 홈런마저 무려 30개를 넘겼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현대야구에서 30-30은 고사하고 20-20도 나오기 힘들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종범의 가치는 더욱 돋보인다.

이종범의 30홈런은 역대 유격수 포지션의 한 시즌 최고홈런 기록으로도 남아있다.

또한 1회 선두타자 홈런만 44개를 기록하며 이 부문에서도 독보적인 기록 보유자로 남아있다.

전성기 시절 체구는 작지만 타고난 강골에 놀라운 허리와 손목힘을 바탕으로 한 폭발적인 배트스피드는,

거포처럼 힘으로 밀어붙이지 않고도 '타이밍'으로 홈런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이종범의 순발력을 보여준다.

▲ 2% 아쉬웠던, 어쩌면 그래서 더욱 인간적인

천하의 이종범도 완벽한 선수는 아니었다.

때로는 부상과 슬럼프에 허덕이기도 했으며, 인간적인 고뇌와 회한의 시간 속에서 방황하기도 했다.

역사에 '만약'이라는 가정은 부질없다지만, 시간을 돌려서 한번의 기회가 더 주어진다면 어땠을까 싶은 순간도 분명히 있었다.

많은 팬들이 기억하는 94년 '황금시즌' 당시 이종범은 4할과 200안타의 고지를 눈앞에 두고 아쉽게 좌절했다. 

 

 

이종범이 시즌중반 마지막 4할 고지에 오른 것은 94년 8월 21일 광주에서 열린 쌍방울 전이었다.

이종범은 여기서 4타수 4안타를 기록하며 정확히 타율을 4할(340타수 136안타)로 끌어올렸다.

하지만 이종범은 이때 갑작스럽게 배탈에 시달렸고, 이후 벌어진 3경기에서 12타수 1안타에 그치고 말았다.

7월에 정확히 5할(62타수 31안타)을 기록하며 정점을 찍었던 타율은 8월 들어 .358(95타수 34안타)에 그치며 순식간에 3할8푼 대까지 추락했다.

요즘 같으면 소속팀에서 잠시 엔트리에서 제외하거나 페이스 조절을 시켜주었어야 할 시기였지만,

당시의 해태는 치열한 플레이오프 싸움을 펼치고 있던 터라 팀 전력의 핵심이자 톱타자인 이종범을 쉬게 할 수 있는 여유가 없었다.  

 

 

 

두 번째는 역시 일본진출이다.

이종범 스스로도 야구인생에서 가장 아픈 기억으로 떠올리는 일본 주니치 시절은 초반에는 선전했으나

 98년 6월 23일 상대투수의 사구로 인한 불의의 팔꿈치 골절 부상을 당하면서 모든 것이 꼬여버렸다.

시작은 부상이었지만, 알고 보면 이종범의 일본생활을 더욱 힘들게 했던 것은 당시 소속팀 감독이었던 호시노 센이치 감독과의 불화였다.

결국 이종범은 일본에서의 3년 반이라는 시간 동안 방황을 거듭하다가 별 소득 없이 돌아와야 했다.

당시의 이종범이 신체적으로 한창 전성기를 호령할 시점이라 아쉬움은 더 컸다.

결국 아무리 뛰어난 선수라고 할지라도 자신의 능력을 알아주고 믿어주는 감독과 함께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 사건이었다.

마지막 아쉬움은 역시 세월과의 싸움이었다.

이종범은 2000년대 중반부터 슬럼프에 시달리며 끊임없는 은퇴압박에 시달려왔다.

그때마다 오뚝이처럼 일어나며 재기하곤 했지만, 천하의 이종범도 세월의 흐름 앞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팬들도 이종범이 언제까지나 선수로만 뛸 수 없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적어도 이종범 정도 되는 선수라면 자신이 은퇴할 시기를 스스로 정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실제로 이종범은 그 정도의 실력과 믿음을 보여줬다. 하지만 이종범 역시 떠나는 순간에는 자신의 의지대로 떠날 시기를 선택하지 못했다.

성대한 은퇴식에 가려지기는 했지만, 팬들에게는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는 작별이었다.

물론 그의 경력 동안 남아있는 작은 흠이나 아쉬움이 위대했던 이종범의 야구인생 자체를 가리지는 못한다.

오히려 그러한 시련들이야말로 이종범의 야구인생을 타고난 천재의 특별한 스토리가 아니라,

그도 우리와 같이 고뇌하고 극복하는 평범한 사람이었다는 인간미를 더해주는 부분일지도 모른다.

때로는 청춘의 빛나는 젊음보다, 세월의 연륜을 담아낸 주름이 더 아름답듯,

이종범의 야구인생도 숱한 역경과 고난의 흔적들이 더해져 더 극적인 스토리를 완성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야구가 다시 이런 선수를 가질 수 있는 날이 돌아올까. 

야구타임스 이준목 [사진제공=KIA 타이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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