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005, 중국 백두산여행, 장수왕릉과 고구려 28대왕 박물관 -길림성 집안시(국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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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외여행 */13년 China 백두산

2013. 10. 8.


2013년 10월 05일 토요일 맑음


백두산 여행 3일째 여전히 날씨는 쾌청한게 여행에 도움을 준다.

통화시의 만통호텔을 체크아웃 하고 고구려의 유적이 있는 국내성(길림성 집안시)로 이동 고구려 벽화가 있는

사신총을 관람하고 광개토태왕릉과 광개토태왕비, 장수왕릉을 둘러 보고 북한땅과 경계가 되는 압록강변을 트래킹한다.

집안시에서 점심을 해결하고 심양으로 이동하여 발맛사지로 피로를 풀고 예스인 호텔까지가 오늘의 여정이다.


 

장수왕릉으로 이동 장수왕릉을 관람합니다.



 

 

 

 

 

 

 

 

 

장수왕릉 장군총

중국 지린성[吉林省] 지안현[集安縣]에 있는 고구려의 석릉(石陵).

3세기 초부터 427년까지 고구려가 도읍한 지안현 퉁거우평야[通溝平野]에는 광개토왕릉비(廣開土王陵碑)와 

고구려 최대형 무덤인 태왕릉(太王陵사신총(四神塚) 등 석릉과 토분(土墳) 1만 기()가 있으나 외형이 거의 

완존(完存)한 석릉은 이것뿐이다화강암 표면을 정성들여 가공한 절석(切石)7단의 스텝 피라미드형으로 쌓았는데

기단(基壇)의 한 변 길이 33m, 높이 약 13m 이다. 기단의 둘레에는 너비 4m로 돌을 깔았으며, 그 바깥둘레에 

너비 30m 의 역석(礫石)을 깔아 능역(陵域)을 표시하였다. 널방[墓室]은 화강암의 절석을 쌓아 지었는데

천장석(天障石)이 있는 굴식[橫穴式]이며, 2개의 널받침[棺臺]이 있다.

1905년 일본인 학자 도리이[鳥居龍藏]가 처음으로 현지조사하고, 프랑스 학자 E.샤반과 일본인 

세키노 다다시[關野貞등이 조사하여 남만주조사보고(南滿洲調査報告)등에 발표한 뒤부터 학계에 알려졌다.

돌무지돌방무덤[積石石室墓]은 대체로 3세기 말4세기 초로부터 5세기에 나타나며, 기와를 통해서는 4세기 중엽 

이후 5세기 전반으로 추정되므로 이 장군총의 연대는 4세기 후반에서 5세기 전반일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무덤의 주인공으로는 광개토대왕과 그 아들인 장수왕(長壽王)의 것이라는 두 설이 있는데

중국측에서는 태왕릉을 광개토대왕릉으로, 장군총을 장수왕릉으로 보고 있으나 

고분의 유품이 모두 도굴당하였기 때문에 추측에 의존하고 있다

태왕릉과 마찬가지로 장군총 역시 정사각형 피라미드 형식으로 모두 7층으로 축조되었다

여기서 7층이란 이집트의 피라미드와는 달리 계단식으로 축조되어 7개의 단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사진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서 있는 곳은 4층이다. 모두 1,100여 개에 달하는 석재는 화강암을 

규격에 맞게 자른 다음 표면을 정성스럽게 갈아서 만들었다. 또한 적석이 밖으로 밀려 나가지 않도록 

높이 약 5m가량의 거대한 호분석(護墳石)을 각 면에 3개씩 기대어 세웠다. 사진에서는 장군총의 

계단 형상과 거대한 호분석을 효과적으로 담으려 했다.

[네이버 지식백과] 장수왕릉 [長壽王陵] (두산백과)



 

 

 

 

 




 

 

 

밖으로 밀려나가지 않도록 거대한 바위로 바닥부위에 놓아 허물어지는 것을 방지하고 있다.



 

돌이 밖으로 밀려나가지 않도록 단차를 주어서 포개 쌓아 놨는데 고구려인들의 지혜가 엿보인다.



 

이곳은 누군가 기대어 놓은 바위를 1개 없어져 버린 관계로 하부부분이 밖으로 밀려 나오고 있는 모습이다.



 

 

 

장수왕의 후궁묘라고 합니다.


 


 

 

 

 

 

 

 

 

 

 

고구려유적지를 관람을 마치니 배가 출출합니다. 점심식사를 해야지요.


 


오늘의 메뉴, 소고기도 있고 삼겹살도 있습니다. 집안백주 상당히 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