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잴리 2016. 3. 15. 14:15

 “귀향”을 보고
                                                                                                      -김견남-

“여기가 지옥이다 야"
개봉하기 전부터 화재를 불러 모았던 영화 ‘귀향’ 을 보았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강일출 할머니의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이 영화는 제목부터
가슴을 아프게 한다.
단순히 고향에 돌아온다는 뜻이 아닌 귀신귀 자를 써서 살아서는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었던 소녀들의 아픔을 담았다는 것이다.
‘여기가 어디예요’
시골에서 순박하게 술래잡기를 하며 놀던 14살 소녀 정민은 어느 날 영문도 모르는 채 또 다른 수많은 또래 소녀들과 함께 일본군 위안소로 끌려간다.
그곳에서 소녀들을 기다리는 것은 무섭고 사나운 일본군인들이었다.
그날부터 소녀들은 눈만 뜨면 혹독한 매질과 채찍질. 고통과 아픔만 계속되는 위안부 생활이 시작됐다.
평균나이 16세. 내가 하지 않으면 동료가 죽어나가거나 미치거나 기절하거나 하는 잔혹한 현실이 계속됐다.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장면들이 많았지만 영화에서는 증언의 100분의 1정도만 표현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 현실은 얼마나 더 잔인하고 험악했을까. 자신의 이름을 묻자 차마 밝히지 못하고 뚝뚝 떨어지는 굵은 눈물방울이 보는 이의 숨을 멎게 한다.
약소국가의 비애를 뼈저리게 느끼게 해준 일제시대 범죄만 있고 인권은 없었던 그 시대.
부모가 끌려가는 자식을 잡아주지 못하고 나라가 백성을 지켜주지 못하고 자식이 부모한테 의지하지 못했던 시대. 수십년의 세월이 지났어도 치욕의 과거는 한순간의 생생한 현실이 되어 커다란 스크린 속에서 우리의 가슴에 날카로운 비수를 꽂는다.
아무리 전쟁터라는 상황이 사람의 감정을 소멸시킨다 해도 인간의 욕구라는 것이 그토록 소름끼치고 잔혹할 수 있을까
‘언니야 이제 집에 가자’
미신을 믿지 않는 사람도 많겠지만 귀향을 보면 신들린 무당이 굿을 하는데 노인이 된 영희에게 위안부시절 친자매처럼 지냈던 14살 정민의 목소리가 들린다.
정말 귀신이 되어 무당의 몸을 빌려 돌아온 것처럼 그리운 영희언니에게 불러줘서 고맙다고 말한다.
한풀이 굿이 시작되고 차가운 이국 땅 속에 묻혀있던 어린 소녀들의 시신에서 하나씩....
둘씩...혼령들이 나비가 되어 날아 오른다.
그러더니 어느 순간 수많은 시신에서 나비 떼가 무리지어 날아 오르더니 셀수도 없이 많은 나비 떼가 되어 멀고 먼 산을 넘고, 넘고, 또 넘어 마침내 고향까지 날아서 온다.
그 모습은 마치 소녀들이 정말 살아서 집으로 돌아오는 것 같은 따스함이 느껴지면서 가슴이 뭉클해지게 했다.
극장 내 여기 저기서 훌쩍이는 소리들 한숨 소리들이 들렸다. .
소녀들은 혼령으로나마 찾아온 고향에서 그리운 엄마를 만나고 아버지를 만나고 사랑하는 고향의 향기를 맡으며 수십 년 전의 어린 시절 소녀로 돌아간다.
이 영화는 2002년 조정래 감독이 나눔의 집에서 봉사활동 중에 만난 강일출 할머니의 그림 '태워지는 처녀들'을 보고 영화화 했다고 한다. 그러나 투자자가 없어 14년 동안 전 세계 각지에서 후원금으로 제작비를 모금했고 연기자들의 재능기부로 완성이 되었다고 한다.
나도 인터넷 검색에서 그림을 보았는데 정말 충격적이었다.
주변은 산인 듯 하고 여성들이 트럭에 실려 있고 구덩이 속에서는 불에 태워지고 있는 처녀들이 있고 총을 든 일본군들이 있는 그림이었다.



강할머니는 그때 일은 죽어서도 못 잊을 것 같다고 말했다고 한다.
16살 때 보았던 그 모습들을 90살이 다 되도록 잊지 못하고 생생하게 그림으로 그려낸 강할머니의 한을 누가 풀어줄 것인가.
어려운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영화를 만들어준 조정래 감독, 노 개런티 재능기부 연기자들의 뜨거운 열정은 분명 우리들에게 돈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다시는 이 땅에 전쟁이라는 비극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면서 돌아오지 못한 20여만 명의 소녀들에 명복을 빕니다.

 
 
 

취중 여유....

잴리 2010. 9. 1. 21:30

저녁하면서 린한병 ~

태풍이 온다고 했는데 지금은 별 느낌 없이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린다

비를 맞으며 걷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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잴리 2010. 6. 21. 11:57

죽녹원을 다녀와서

 

목포 톨게이트 빠져나가고 있다.

홀로이 목포여행을 떠났다는 친구 목소리가 유혹으로 들려온 토요일 오후, 네이버 검색의 206km 유류비 28,000원 도로비 7,000원이라는 검색결과에 퇴근 후 모닝~을 타고 나도 뒤따라 출발했다.

혼자 나서긴 망설여지기도 하는 여행이 마음이 통하는 절친한 친구가 먼저 바람을 맞고 있다고 하니 망설임이 없었다. 워낙 여행을 좋아하는 친구라서 혼자 다니는 여행의 재미를 즐기고 있을 친구 생각에 서서히 패달을 밟았는데 목적지에 다다를수록 가속 패달을 밟아댄 바람에 결국 세금딱지 하나 추가했다.

마지막 휴계소에서 친구에게 깜짝~전화를 하고 30분 후 도착해 친구를 만났는데 의외로 친구는 놀라지도 않았고 그리 기뻐하지도 않았다. 아마도 혼자 여행하고 싶었는데 내가 와서 방해가 됐는가 보다. 친구를 만났지만 왠지 낯선 느낌이랄까? 미안함에 순간 괜히왔나? 하는 생각까지 하면서 조금 서먹한 분위기가 됐다. 반갑지만 반갑지 않은 오묘한 기분?

여태까지 (15년?) 한번도 보지 못했던 그녀의 치마 입은 모습에 놀라지 않았던 것도 그런 오묘한 기분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뒤늦게 희가 치마 입은 모습이 처음이란 걸 알았고 보라색원피스에 흰색 가디건을 걸친 그녀의 여성스런 모습이 처음이지만 너무 익숙하게 잘 어울림에 나도 치마를 입어볼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여행 중에 왠 치마야? 하는 내 생각을 대변하듯 희는 목포거리를 다니는데 참 예쁘게 걸려있는 원피스가 순간 마음에 들어 들어가서 바로 금액 지불하고 입고 나왔다고 했다. 역시 희답다.

여행길 뒤쫒아 온 것도 모자라 이젠 의상까지 친구를 닮아가고 싶었던 건지 결혼 후 한번도 치마를 내돈 주고 사입어 본적이 없을 정도로 바지만 입었던 나도 치마를 입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친구는 내가 와준 것이 고맙다고 하면서도 혼자 여행을 하고 싶었는데 왜 왔냐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얄민뇬!!

나도 지금 그걸 후회하고 있다 이뇨나!!!

목포-담양소쇄원-죽녹원-광주시내 ... 내 상상의 광주시내는 강하고 활기차고 복잡할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너무 조용하고 뿌옇다는 느낌이었다.

양쪽으로 가로수가 길게 늘어져있어 마치 터널을 지나는 듯한 담양의 가로수 거리와 차안에서의 소소한 대화는 여행의 감칠맛을 더해줬다.

정말 운치 있는 숙소를 잡아서 폼나게 하룻밤을 보내려고 했지만 만만한 숙소를 잡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사전예약이란 게 필요한 것 같다.

숙소를 잡고 담양에서 유명하다는 떡갈비를 먹으러 갔는데 티브이에도 방송됐다는 선전문구와 일박이일 팀의 사진이 커다랗게 걸려있는 집이었다. 9시 반까지 영업한다는 그곳에 8시 40분에 도착한 우리는 급하게 주문한 음식을 먹었다.

안주발인지 자유로움 때문인지 모르게 넘어가는 소맥이 기맥히게 시원했고 둘의 잠시나마 서먹했던 맘을 풀어줬다.

1인분에 2만5천원인 떡갈비는 딱 세쪽 이었다. 먼 미니돈가스 조각도 아니고...살짝 본전생각이 나기도 했지만 맥주 세병과 소주 1병을 나눠마시는데 전혀 손색이 없는 안주였다.

그 유명한 떡갈비 맛보다 소맥의 맛이 더한 맛을 냈고 맛을 알고 먹었는지 술맛이 기맥히다는 생각만 하고 먹었는지 모르는 사이에 종업원의 문 닫을 시간이란 말이 들렸고 우린 약속이나 한 듯 동시에 벌떡 일어났다.

그냥 들어가기 아쉬워 바로 옆 생맥주집에 들러 맥주를 마시며 수다를 떨다가 숙소를 찾아가려는데 어쩌라는 것인지 우리가 짐을 풀었던 숙소의 위치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 거다.밤길을 헤메고 헤멘 우리는 끝내는 걸어서 5분거리를 못찾고 택시를 타고 들어가는 우수운 결과를 냈다.

세수를 하고 왔는데 치마는 불편해라는 말을 기회 있을 때 마다 해대던 희~는 어느새 잠들어 있었다.

이른 새벽부터 잠이 깨었지만 딱히 할일도 없는 나는 계속 친구를 꼬집고 때리고 밀고....

드디어 일어난 친구와 죽녹원을 향했다. 멀리 보이는 작은 동산 같은 그곳은 그저 평범해 보였다. 별 기대하지 않고 오르막길을 막 오르니 내가 좋아하는 귀여운 팬더들이 주변 곳곳에 동상으로 앉아있고 서있고 공놀이도 하고 있는 모형으로 있어서 이내 기분이 좋아졌다.

기분 좋음은 계속 이어졌다.

대나무를 갈아 넣어 만들었다는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죽림욕을 즐겼다.

오를수록 너무 마음이 평화로워지고 기분이 좋아졌다. 목소리 톤도 고정적이고 말도 차분하게 나왔다. 맘도 여유로워지는 것 같은 나를 느꼈다.

나뿐만이 아닌 것 같았다. 주변사람 모두 차분한 분위였고 일행들끼리 도란도란 나누는 대화의 소리도 마치 꿈을 꾸는 듯한 속삭임처럼 들렸다.

참 이색적인 경험이었다. 그런 곳을 걸을 수 있게 해준 친구에게 새삼 감사했고 마음이 복잡할 때 혼자 여행하고 싶을 때 꼭 다시 찾고 싶은 곳 중의 한 곳으로 기억되는 곳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