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나들이/영(嶺)현(峴)치(峙)천(遷) 재,고개

앵봉(鶯峰) 2019. 3. 16. 04:30

무악재(母岳峴)


모아재·안현(鞍峴길마재·무학재·모래재·추모현(追慕峴사현(沙峴)이라고도 부른다.

무악재는 안산(鞍山, 296m)과 인왕산(仁王山, 338m) 사이의 나지막한 고개로,

의주가도(義州街道)인 국도 1호선이 지나고 있다.

안산과 인왕산은 화강암 산지이고, 무악재는 두 산 사이에 형성된 안부(鞍部)이다.

무악재는 여러 번에 걸쳐 깎여 고개가 점점 낮아졌다.

무악재는 조선 태조 이성계가 개성에서 한양으로 도읍을 옮기기 전에는 모래재 또는 사현(沙峴)이라고 불렸다.

 말안장 같은 안산 기슭을 따라 넘는 고개라고 하여 길마재라고도 불렸다.

무악재라고 불리게 된 것은 조선 초기에 도읍을 정하면서 풍수지리설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 삼각산(三角山)의 인수봉이 어린 아이를 업고 나가는 모양이라고 하여 이것을 막기 위한 방편으로

안산을 어머니의 산으로 삼아 무악(毋岳)이라 하고, 이 고개를 무악재라고 하였던 것이다.

또한 별칭으로 무학재 또는 무학현이라고도 한다.

이는 이성계가 하륜(河崙)의 건의에 따라 무악의 남쪽을 도읍으로 정하려고 하였으나

일부에서 명당이 좁다고 반대를 하였고, 결국 무학대사(無學大師)의 의견에 따라 북악산 밑으로 결정되었기 때문이다.

한편 영조는 부왕 숙종의 능인 명릉(明陵)의 역사를 시작하고,

이 고개에 올라서서 명릉을 바라보며 고개의 이름을 추모현(追慕峴)이라고 하였다.

명릉은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용두동의 서오릉 안에 자리잡고 있다.

무악의 정상에는 조선시대의 봉화터가 두 군데 있다.

이곳의 봉화대는 평안도·황해도는 물론, 부산·회령까지 급보를 전하였다.

무악재는 조선시대에 의주와 통하는 주요 교통로였고, 지금도 서울 시내와 서대문 외곽을 연결하는 주요 고개이다.

고개 북쪽으로는 홍제동과 불광동 구파발을 지나 고양시 삼송리를 지나 벽제로 멀리 평양까지 이어지는 길이고,

고개 남쪽으로는 종로구 무악동과 독립문. 옛날 서대문 형무소 자리가 있었던 독립문 공원을 지나 서대문 로타리와

서울역을 지나 용산 노량진 영등포 안양을 거처 대전 익산 광주 목포로 이어져 반도의 끝에 이르게 된다.

옛날에는 이 무악재 고개를 넘기가 어려웠다고 한다.

도적패들도 있고 사나운 호랑이도 출몰하여 여럿이서 무리를 이루어 고개를 넘었다고 한다,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현저동, 홍제동





무악재 표지석 비문 내용


이 고개는 한양 천도이래 의주대로상의 좁고 험한 서울 서쪽 관문이었다.

인왕산 건너편 산은 무악(毋岳)이요, 그 생김새가 길마 같다 해서 일명은 안산(鞍山)으로,

고개 이름을 때로는 길마재라고도 하였지만 오랜동안 산 이름을 따라서 무악재라 불러 내려온다.

이제 이 고개길을 35미터 폭으로 확장하였기에 이를 기념하며 옛 이름을 새겨 두고자

이 자리에 박정희 대통령의 친필로 "무악재" 비를 세운다.


김영상 짓고 김충현 쓰다

19661118일 서울특별시장 김현욱














무악재 하늘다리


이곳은 도로개설로 인해 단절된 인왕산과 안산을 생태적으로 연결하여

생물종 다양성을 증진하고 야생동물의 이동을 위하여 조성하였다.

(서울 서대문구 현저동과 종로구 무악동 사이, 길이 80m, 폭원 11.7m)







인왕산(仁王山, 338m)


조선 개국 초기에 서산(西山)이라고 하다가 세종 때부터 인왕산이라 불렀다.

인왕이란 불법을 수호하는 금강신(金剛神)의 이름인데, 조선왕조를 수호하려는 뜻에서 산의 이름을 개칭하였다고 한다.

일제강점기에 인왕산의 표기를 인왕산(仁旺山)이라 하였으나, 1995년 본래 지명인 인왕산(仁王山)으로 환원되었다.

인왕산은 조선시대의 명산으로 숭앙되었으며, 조선 초기에 도성을 세울 때

북악(北岳)을 주산(主山), 남산(南山)을 안산(案山), 낙산(駱山)과 인왕산을 좌우 용호(龍虎)로 삼아 궁궐을 조성하였다.

인왕산은 산 전체가 화강암으로 되어 있고, 암반이 노출된 것이 특징이다.

서울의 성곽은 이 산의 능선을 따라 지나며 동쪽 산허리에 북악산길과 연결되는 인왕산길이 지난다.

인왕산에는 타포니(Tafoni)가 발달한 토르(Tor)가 많다. 주로 서울시 무악동 남쪽기슭 135m 고도에 위치한다.

인왕산의 토르는 주빙하 기후에 의해 화학적 풍화가 진행되어 생성된 것과

후빙기에 절리 발달에 따른 차별침식으로 생성된 것이 있다고 한다.

흔히 타포니는 토르와 관련되어 발달한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는 대부분 화강암 토르에서 관찰되는데 인왕산 또한 그에 해당한다.

토르에서 타포니가 발달한 부분은 다른 부위보다 풍화가 더욱 진전되어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주거환경개선사업 중인 현저동(峴底洞)


서울 서대문구 현저동은 안산 비탈길에 위치하여 오르내리기도 숨 가쁜 산등성이에 있던 달동네였다.

예전에는 이곳을 똥골이라 불렀다.

 

똥 골 (최상용)

 

무악재 언덕배기 한자락

현저동 산1번지에 똥골이 있다

아침산책길에 물컹한 ,똥 한 무더기 밟았다

밟힌 똥에서 모락모락 나는 김,

누가 어스름한 새벽에 뜨끈한 볼일을 보았을까

갑자기 똥파리 떼가 떼거지로 날아오른다

윙윙거리며 시위 한다

 

그때 똥 골은 온 산이 똥 천지였다

아무데고 배설해놓은 무더기들

까발린 엉덩이를 보고

하얀 보름달이 놀란 토끼눈을 뜨기도 했다

산, 풀 섶, 어디를 가도 똥 무더기였다

어스름한 새벽이 되면

똥퍼! 하고 외치는 소리,

냄새나는 똥차들이 줄을 섰고,

밤새 몰래 똥을 퍼다 산자락 아무데나 퍼다 버리던 곳

그 똥골이 사라져간다

 

똥내 나는 곳이면 어떠리

마음속에 있는 똥은 버리지 못한 우리들

어차피 우리는 똥을 차고 사는 인생 아닌가






인왕산공원 경관 조망장소





인왕정





안산(鞍山)


안산(鞍山)'()'은 말안장이란 뜻이다.

''이란 글자는 두 글자가 합쳐져 만들어졌는데 '가죽 혁()' 또는 '고칠 혁''편안할 안()'이다.

도성 서쪽의 산인 안산은 서인들이 혁명을 일으켜 정권을 잡아야 편안하다고 해서 안산이라고 한다.

인조반정으로 혁명을 일으킨 서인 세력은 정권을 잡은 후 노론으로 이어져 조선 후기까지 정권을 놓치지 않았다.

반면 동인 세력들의 근거지인 낙산(駱山)은 어떤가?

'()'이란 글자는 낙타를 뜻한다. '말 마()''각각 각()'이 합쳐져 만들어진 글자로 각각 말을 타고 간다는 의미다.

이는 곧 동인 세력의 분열을 뜻한다. 실제로 동인은 남인과 북인으로 갈렸으며

그 때문에 이들은 한때 정권을 쟁취하기도 하나 분열을 거듭하다 결국 탄압받는 정치 세력으로 남는다.

안산은 산의 생김새가 말이나 소의 등에 짐을 실을 때 사용한 길마와 같이 생겼다 하여

길마재라고도 하며 모래재, 추모련이라고도 불렀다.

정상에 봉수대가 있어 봉우재라고도 한다.

역사적으로는 조선 시대 이괄(李适)이 반란을 일으켜 전투를 벌였던 곳으로 유명하다.

또 안산은 무악산(毋岳山)이라 불리기도 한다.

무악이라는 명칭은 한양 천도를 위해 지금의 청와대 뒤에 있는 북악산, 인왕산 등과 함께

도읍의 주산을 다투는 과정에서 태조 이성계가 안산을 무악산이라 부른 데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실학자 이수광이 쓴 지봉유설(芝峰類說)에는 아이가 어머니의 등에 업힌 것 같은

한성의 부아암(負兒岩: 북한산 인수봉)이 마치 밖으로 뛰쳐나가려는 듯한 형상이므로

이를 막기 위해 안산을 어미 산, 즉 모악(母岳)"이라고 한 데서 유래했다고 적고 있다.















보호수


고유번호 : 서13-8

수종 : 위성류(渭城柳)

지정일자 : 2010. 12. 2.

수령 : 60년(지정일 기준)

수고 : 10m

나무둘레 : 260cm




 서대문구의회 청사 자리

이곳은 국가보훈처에서 국립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을 건립할 예정이다.





서울지하철 3호선 무악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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