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앵봉(鶯峰) 2020. 9. 30. 22:51

국장(國葬)이란

 

국상(國喪)이 왕과 왕비,왕세자와 왕세빈 등의 장례라면

국장(國葬)은 왕과 왕비의 장례를 가르키며 5개월장을 행했다.

국상이 나면, 예조(禮曹)는 그날로 왕을 뵙는 조회를 폐하고 시장을 5일 동안 철시한다.

국장을 마칠 때까지 크고 작은 제사와 서울과 지방에서 음악을 정지시키며,

백성들의 혼인과 도살을 금지한다.

병조(兵曹)는 궁궐 수비대를 통솔하여 궁 밖과 궁내의 경비를 강화한다.

이조(吏曹)는 의정부에 보고하고 장례에 필요한 임시 관청인

빈전도감, 국장도감, 산릉도감을 설치한다.

빈전도감(殯殿都監)은 염습, 관 및 재궁을 안치할 찬궁, 성복을 비롯해

국장 이후 혼전에서 3년 동안 소용되는 물품 등의 준비를 담당한다.

국장도감(國葬都監)은 연(輦), 소여 및 대여(큰 상여), 옥책과 어보, 의복과 노리개 등의 복완,

능지 선정, 명기, 의장, 제기, 제사 금지, 반우 등의 일을 맡는다.

산릉도감(山陵都監)은 왕릉을 조성하는 일을 맡는다.

즉 무덤 속의 현실을 비롯해 석물, 정자각, 재실 등의 조영을 맡아본다,

3도감의 총책임자는 총호사(總護使)라 하며, 영의정이나 좌의정이 맡으며,

서울시장격인 한성부 판윤은 교도돈체사(橋道頓遞使)로 임명하여

국장 행렬이 지나갈 교량과 도로를 닦는 일을 맡는다.

 

왕릉 조성에 들어가는 인력은 얼마나 될까?

조선시대 왕릉 제도는 “죽으면 속히 썩어야 하니 석실과 석곽을 마련하지 말라.

또 석실은 유명무실하니 쓰지 말라.”는 세조의 유언으로 석실분에서 회격묘로 바뀌었다.

세조의 광릉부터 무덤 내부는 모두 석실이 아닌 회격으로 조성되었고,

묘 광중의 작업 인부도 석실로 할 때는 6000명이 들어갔으나,

회격으로 바뀌면서 3000명으로 절반이 줄었다.

왕릉 공사기간은 대개 4개월 정도 걸린다.

태조의 건원릉에 들어간 역군은 충청도 3500명, 황해도 2000명,

강원도 500명 등 모두 6000명이 들어갔다.

세종의 어머니 태종비 원경왕후의 헌릉 조성 때는 모두 14000명을 징발했는데,

경기. 충청도에서 각각 3000명, 강원. 황해도에서 각각 2000명, 수군이 4000명이었다.

세종의 왕비 소헌왕후 영릉 조성 때 공사 중에 죽은 사람만 무려 100명이나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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