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앵봉(鶯峰) 2020. 10. 19. 04:11

박동형 초상(朴東亨 肖像) - 보물 제1927호

 

박동형(朴東亨, 1695∼1739)은 1728년 이인좌, 정희량 등이 주도하여 일으킨 무신란 발발 당시

반란 주동자의 한 사람인 박필현을 포획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함으로써

공신의 반열에 올라 충주박씨 가문을 공신 가문으로 격상시키는 데 크게 기여한 인물이다.

1728년에 그려진 <전신좌상본>과 1751년에 그려진 <반신상본>은 한 인물에 대해

동일초본에서 비롯한 것으로 전신좌상은 유소를 비롯해 옛 장황을 간직한 반면,

반신상은 후대 장황으로 바꾼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각 초상의 보관함은 초상화가 제작될 때 함께 제작된 것으로 사료된다.

오사모에 단령, 소매 안으로 처리한 두 손, 배경 없이 교의에 앉아 있는 전신좌상,

쌍학흉배와 학정금대, 표피가 덮인 교의, 족좌 위에 놓인 두 발 등

일반 공신상의 전형적인 형태로 그린 화가의 기량을 알려주는

섬세한 필치에 사실적인 묘사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두 형태의 초상화 – 전신상과 반신상

박동형의 전신상과 반신상으로 공신에 오른 34세 때 모습이다.

금 테두리 가운데 붉은 장식을 붙인 허리띠 학정금대(鶴頂金帶)를 착용하였다.

이것은 박동형이 종2품 가선대부(嘉善大夫)의 품계에 올랐던 것을 알려준다.

그의 초상화는 대대로 전해져 가문의 영예를 자랑하는 보물이 되었다.

 

지정 가치

18세기 공신초상의 전형을 보여준다.

전신상의 족자 장황(粧䌙)과 유소(流蘇, 술 장식)는 제작 당시의 원형을 간직하고 있다.

얼굴의 입체감, 관복의 운문단(雲紋緞) 무늬와 표범 가죽의 털 표현에

18세기 초상화가 점차 사실적으로 변모하는 과정이 잘 나타난다.

 

공신제도와 초상 하사

조선시대에는 나라와 왕실에 공적을 세운 인물을 공신으로 봉했다.

공로의 크고 작음에 따라 1~3등으로 나누어 봉했고 초상화를 비롯한 포상을 함께 내렸다.

공신제도는 국가에 충성을 다하면 보답받는다는 것을 널리 알리려는 목적으로 계속되었다.

박동형은 1723년 이인좌(李麟佐)의 난 주동자 박필현(朴弼顯, 1680~1728)을 체포한 공적으로

분무공신(奮武功臣) 3등에 봉해졌다.

이전까지 관직에 나서지 못했던 박동형은 공신이 되어 단번에 당상관의 지위에 올랐다.

공신 예우를 담당한 관청 충훈부(忠勳府)에서도 공신초상을 보관했다.

1751년 분무공신의 초상화를 다시 그려 충훈부에 보관할 당시 박동형은 이미 운명한 뒤였다.

박동형 초상 반신상은 생전의 전신상을 옮겨 그린 것으로 추정되며,

원본은 충훈부에 보관하고 옮겨 그린 부본을 가문에 하사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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