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oly Bible■/성경신학

yeahjigi 2013. 1. 14. 16:39

 

 

 

다윗의 인구조사 무엇이 문제인가| 神學의 場

月悟 2010.09.19. 22:06

사무엘하 24장과 대상 21장에는 다윗이 이스라엘 백성을 계수하므로 하나님께 범죄하는 사건이 기록되어 있다. 이들 기록과 관련하여 간혹 사람들은 왜 다윗의 이스라엘 백성 계수가 하나님께 죄가 되었느냐 하는 것을 물어 오는 경우가 있다. 또 한가지는 사무엘하24:1의 기록에서는 '여호와'께서 다윗의 마음을 감동하여 백성을 계수하도록 하셨다고 했는데, 대상21:1에서는 같은 사건을 두고 '사단'이 다윗의 마음을 격동하여 범죄하도록 유도했다는 기록이다.

후자를 먼저 생각해 보고, 다윗의 계수사건에 담긴 진실에 대해서 논해 보도록 하겠다. 먼저 삼하24:1의 기록에 따르면 "여호와께서 다시 이스라엘을 향하여 진노하사 저희를 치시려고 다윗을 감동시키사 가서 이스라엘과 유다의 인구를 조사하게 하신지라"라고 기록된데 반해 대상21:1에서는 "사단이 일어나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다윗을 격동하여 이스라엘을 계수하게 하니라"는 기록으로 같은 한 사건을 두고 분명히 다윗의 마음을 격동케 한 주체를 각각 다르게 기록하고 있다. 여러분들은 누가 다윗의 마음을 격동케 해서 범죄하게 했다고 생각하는가?

사실 이러한 문제는 잘못된 신관을 가지고 있는 자들에게나 난제가 될 뿐 의외로 간단할 수도 있다. 곧 "여호와의 영이 사울에게서 떠나고 여호와의 악한 영이 그를 번뇌케 한지라 사울의 신하들이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하나님의 악한 영이 왕을 번뇌케 하온즉...수금을 잘 탈줄 아는 사람을 구하게 하소서 하나님의 악한 영이 왕에게 이를 때에 그가 손으로 타면 왕이 나으시리이다"라는 삼상16:14-16의 기록에서 알 수 있듯이, 다윗의 계수사건 역시 여호와께서 악한 영들의 수장인 사단을 보내셔서 다윗으로 백성들을 계수하게 하신 사건이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하여 기록 내용에 따라 사무엘서 기자는 그 주체를 '여호와'로, 역대상 기록자는 '사단'이 각각 다윗의 마음을 격동케 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는 것 뿐이다.

이러한 예가 또 있는데, 곧 이스라엘의 사사로서 40년을 다스렸던 기드온이 죽고나서, 그의 아들 70명을 모두 죽이고 스스로 왕이 된 기드온의 서자 아비멜렉을 징계하실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악한 영을 보내셔서, 아비멜렉은 물론 그와 동역했던 자들을 처벌하신 예가 있으시다. 곧 "아비멜렉이 이스라엘을 다스린지 3년에 하나님이 아비멜렉과 세겜 사람들 사이에 악한 영을 보내시매 세겜 사람들이 아비멜렉을 배반하였으니 이는 여룹바알의 아들 70인에게 행한 포학한 일을 갚되 그 형제를 죽여 피 흘린 죄를 아비멜렉과 아비멜렉의 손을 도와서 그 형제를 죽이게 한 세겜 사람에게로 돌아가게 하심이라"는 삿9:22-24의 기록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잘못된 신관을 가지고 있는 자들 중에는, 이러한 성경 기록을 처음 대하는 자들도 있을 것으로 본다. 그러니까 20년 전의 일인 것으로 기억되는데, 필자가 이러한 기록을 읽고 처음 다니던 교회의 전도사에게 말했더니, 대뜸 하는 말이 '그러면 하나님이 병주고 약주는 분이냐'며 필자에게 화를 버럭 내며 당시 신학교 1학년에 재학중이던 필자를 이상한 사람으로 몰아 세운 적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도 필자는 하나님은 병주고 약주시는 분이심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여러분들은 어떤가? 필자를 이상한 사람으로 또 몰아 세울 것인가?

욥기의 예에서처럼 다윗의 마음을 직접적으로 격동케 한 것은 사단이었지만 이 사단을 주장하신 이는 하늘에 계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이시며, 또 오늘 우리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이시다. 이와 관련하여 또 하나 흥미있는 기록이 있다. 곧 그것은 이 악한 영들이 하나님의 아들은 물론 그의 사도들에 대해서 이미 알고 있다는 것이다. 사도도 아닐 뿐만 아니라 믿음조차 없는 유대인 마술사들이, 사도들의 행사를 따라하다가 악한 영으로부터 봉변을 당할 때, 악한 영이 하는 말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이에 돌아다니며 마술하는 어떤 유대인들이 시험적으로 악한 영 들린 자들에게 대하여 주 예수의 이름을 불러 말하되 내가 바울의 전파하는 예수를 빙자하여 너희를 명하노라 하더라 유대의 한 제사장 스게와의 일곱 아들도 이 일을 행하더니 악령이 대답하여 가로되 예수도 내가 알고 바울도 내가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 하며 악령들린 사람이 그 두 사람에게 뛰어 올라 억제 하여 이기니 저희가 상하여 벗은 몸으로 그 집에서 도망하는지라"는 행19:13-16의 기록을 통해 악한 영들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물론 그의 사도였던 바울도 알고 있음을 본다.

이를 통해서 우리는 현재 우리 인식의 범주를 벗어난 세계에서의 하나님의 일들이 참으로 신묘막측함을 염두에 두고 살아갈 필요가 있을 듯 싶다. 이는 보이는 세계가 전부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세계가 존재하며 또한 그 보이지 않는 세계가 현 세계의 원인과 결과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된 성경을 통해 보이지 않는 세계까지 그 인식의 범주를 넓혀갈 수 있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다윗의 계수 사건의 주체는 해결되었을 것이다.

그러면 왜 다윗의 계수 사건이 하나님께 범죄가 되었느냐 하는 문제를 생각해 보자. 분명 다윗은 스스로 자신의 과오를 깨달았고(대상21:7-8; 삼상24:10), 그로 인해 3년기근, 3개월 쫓김, 3일 온역 중 하나를 택하게 하시므로 다윗이 3일 온역을 택하자 이스라엘 전역에서 7만명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죽임을 당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그러나 민수기를 보면 모세가 백성들을 계수하는 기록이 있는데, 왜 다윗의 백성 계수가 하나님께 중죄가 되었는가가 궁금할 것이다. 필자 역시 이를 궁금해 하다가, 며칠 전 정명숙 집사님으로부터 전화 한 통화를 받고 이를 깨닫고 이 글을 쓰게 된 것이다. 전화 통화 내역을 잠시 들어보도록 하자.

김목사: (윙~, 갑자기 휴대폰 진동이 울리며, 도서관에 앉아있던 김목사가 휴대폰을 들고 밖으로 나간다) 여보세요?

정집사:뭐하시나요?

김목사:뭐하긴요, 학생이 공부를 하지요.

정집사:제가 중요한 거 하나를 가르쳐 주려고 하는데 들어 보시렵니까?

김목사:(약간 장난기 섞인 목소리로)뭔데요? 모충동에서 선한게 날수 있을까요? 허허허...

정집사:제가 가끔 중요한 힌트를 준적이 한 두번이 아닌데 왜 이러시나요. ㅎㅎㅎㅎ

김목사:(정색을 하며)그렇군요, 죄송합니다. 세이경청하겠습니다.허허허..

정집사:다름이 아니라, 다윗의 백성 계수와 관련된 것인데, 다윗의 백성 계수가 문제가 되었던 것은, 출30:11-16의 기록을 통해서 보면 그것은 백성을 계수 했으면 성소의 반세겔을 거두어야 하는데 이를 거두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네요.

김목사:성전도 없는데 성소의 세겔을 거둘 수가 있나요? 그리고 다윗 스스로 백성의 계수한 것에 대한 죄책을 의식했던 것으로 보이는데요?

정집사:그런데 출30:12에 보면 계수할 때에 이스라엘은 생명의 속전을 드리지 않으면 '온역'이 임할 것이라 하셨는데, 실제로 역대상이나 삼하 기록에 따르면 '온역'으로 이스라엘 7만이 죽임을 당하지 않습니까? 히브리어로 '온역'이라는 말이 혹 같지 않습니까? 제가 히브리어를 잘 모르니 한번 확인해 보시지요.

김목사:(다시 도서관으로 들어가면서)잠깐만 기다려 주세요. 제가 확인해 보겠습니다. (부리나케 도서관으로 들어가 BHS를 펴서 이 곳 저 곳을 확인하더니)이거 미안해서 어쩌지요. 히브리어가 다른데요?

정집사:다르다구요.

김목사:예, 출애굽기30:12에서의 '온역'이라는 말은 '네게프'이지만, 역대상21:14이나 삼하24:15에서 '온역'은 출9:15절과 같은 '데벨'이네요. 물론 '네게프'라는 말은 '질병을 내리다'는 '나가프'에서 온 것으로, 비록 네게프와 데벨이라는 단어가 차이는 있지만, '질병을 내리다'는 나가프라는 단어가 주는 의미를 고려한다면 어떤 연관성은 있어 보이네요.

정집사: 거봐요.

김목사:허허허. 그렇다고 다윗이 백성을 계수하고 성소의 세겔을 거두어 들이지 않은 것으로 자신이 범죄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논리의 비약인듯 싶네요.

정집사:물론 그거는 맞지만, 그렇다고 다윗의 백성 계수와 관련해서 출30:11-16의 기록과 무관하다고는 볼 수 없을 듯 싶네요. 목사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김목사:그렇기는 합니다만, 문제는 어떤 연관성이 있느냐 하는 것이겠지요. 어쨌든 중요한 단서를 발견한 것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정집사:그동안 목사님께서 다윗의 계수범죄 사건은 하나님께서 '성전'의 초석을 놓기 위한 것이라 말씀은 하셨지만, 출30:11-16의 내용을 통해 보다 구체화 되는 것만은 확실하네요. 그렇다면 제가 또 일조를 하지 않았나요?

김목사:허허허. 제가 듣기로는 功致辭를 하시는 것 같군요.

정집사:功致辭가 아니라, 사실이 그렇지 않은가요? ㅎㅎㅎ. 어쨌든 이와 관련해 글을 좀 써주시지요. 그동안 궁금했던 주제인데 말입니다.

김목사:허허허. 집사님께서 친히 쓰시면 어떨까요?

정집사:저도 얼마든지 쓸 수 있으나 (정집사님의 타자실력은 소위 말하는 독수리타법임) 제가 쓰면 사람들이 목사님보다 저를 더 우선시 하면 안되잖아요. 그래서 모든 공을 목사님께 돌리려고 제가 참는 것입니다.ㅎㅎㅎ.

김목사:허허허...집사님 말씀을 들으니 참으로 눈물납니다.

위 내용은 지난 주 그러니까 2010년 9월 14일 경 청주 광야의 교회 정집사님과와의 전화대화 내용이다. 사실 이 글을 쓰게 된 경위도 정집사님으로부터 다윗의 백성 계수 사건과 관련된 위와 같은 단초를 제공받고 난 후에 된 것이다. 필자는 물론 주변의 많은 성도들은 청주 광야의 교회 운영위원회 대표로서 모든 수고를 아끼지 않으시고 또한 늘 하나님을 생각하며 사시는 그 분께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 분의 마음과 정성을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도 흐뭇해 하실 것으로 생각한다.

어쨌든 다윗의 계수 사건이 왜 문제가 되었는지를 생각해 보도록 하겠다. 다윗의 백성 계수 사건은 다윗의 오만에서 시작된 것은 분명하다. 이에 대한 근거로는 이스라엘의 총사령관이었던 요압장군의 말에서 확인할 수 있다. 곧 "요압이 왕께 고하되 이 백성은 얼마든지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백배나 더하게 하사 내 주 왕의 눈으로 보게하시기를 원하나이다 그런데 내 주 왕은 어찌하여 이런 일을 기뻐하시나이까"라는 삼하24:3의 기록에서, 요압은 다윗의 백성 계수가 옳지 않은 것을 알고 다윗의 시도를 막아보려 했지만, "왕의 명령이 요압과 군대장관을 재촉한지라 요압과 장관들이 이스라엘 인구를 조사하려고 왕의 앞에서 물러나서 요단을 건너 갓 골짜기 가운데 성읍 아로엘과 우편 곧 야셀 맞은편에 이르러 장막을 치고..."(삼하24:4-5)의 기록에서 알 수 있듯이 다윗의 신하들은 너무도 강경한 다윗의 명을 거부하지 못하고 전국을 돌며 9개월 20일 만에 예루살렘이 돌아와 이스라엘에서 칼을 빼는 담대한 자가 80만이고, 유다 사람이 50만이라 보고 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다른 기록과 달리 다윗의 계수를 유발한 주체에 대해서 사무엘 기자나 역대기 기자가 명백히 밝히고 있는 것은 분명한 이유가 있음을 알려 주고 있는 것이다. 특히 사무엘 기록에 따르면 위에서 이미 언급한 바 있지만, "여호와께서 다시 이스라엘을 향하여 진노하사 저희를 치시려고 다윗을 감동시키사 가서 이스라엘과 유다의 인구를 조사하게 하신지라"는 기록과 같이 하나님께서는 명백한 의도를 가지고 그로하여금 백성을 계수하게 하신 것이 분명하다. 그 이유를 아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리하여 천사가 예루살렘을 치려하다가 여부스 사람 아라우나의 타작 마당 곁에 멈추어 선 것(삼하24:16)이나, 다윗이 이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을 매입하고 그곳에 단을 쌓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므로 이후에 다윗이 죽고 솔로몬이 이 곳에 성전터를 삼는 것을 종합적으로 생각해 볼 때, 분명 다윗의 오만을 격동케 하여 백성을 계수케 하신 사건은 성전 건축관련 사건이었던 것으로 무리 없이 짐작해 볼 수 있다. 그리고 사무엘서 기자가 이 사건을 끝으로 그의 기록을 종결짓고 있는 것을 볼 때 더더욱 그렇다.

이러한 여러가지 정황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보아도, 다윗은 삼하 7장 1-2에서의 순수한 마음 곧 "여호와께서 사방의 모든 대적을 파하사 왕으로 궁에 평안히 거하게 하신 때에 왕이 대언자 나단에게 이르되 볼지어다 나는 백향목 궁에 거하거늘 하나님의 궤는 휘장 가운데 있도다"라는 하나님께 향한 순수했던 열정을 잃고 삼하 24장에 이르러 모든 전쟁에서 승승장구하여 다윗을 비롯한 백성들의 마음이 교만함에 젖어 있을 무렵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치시고자 그의 악한 종 사단으로 다윗의 마음을 격동케 하시고 그의 교만함을 표출하여 징계하셨던 것이다.

사무엘서 기자는 다윗이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을 사서 그 곳에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므로 여호와께서 그 재앙을 그치게 하셨다는 것으로 그의 글이 끝나지만, 이후의 열왕기서를 통해서 그 내용이 계속되고 있는 것을 볼 때 독자는 다윗의 계수 사건은 솔로몬의 성전 건축을 통해 완결되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을 것이다. 사무엘의 탄생기사로 시작해서 다윗이 하나님께 득죄한 이후 속죄제사를 드리는 것으로 글을 마무리하는 사무엘서의 기록만으로는, 다윗의 마음을 격동하여 백성을 계수케 하신 하나님의 일의 궁극적인 내용을 다 알 수 없지만, 사무엘서 이전의 룻기와 사무엘서 이후의 기록인 열왕기를 연속해서 읽어가게 되면 다윗의 범죄 사건의 배경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하나님의 대언자로 불리었던 다윗은 잘 알다시피 두 가지 큰 죄를 저질렀는데 그 중에 하나는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를 취하고 무고한 그의 남편을 죽게 한 것이며, 또 하나는 위에서 언급한, 백성들을 계수하므로 70,000명의 목숨을 잃게 한 것이다. 그러나 열왕기 기록자에 따르면 다윗의 범죄는 밧세바 사건만 부각되고, 나머지 백성 계수 범죄는 언급되지 않는다. 곧 "그 하나님 여호와께서 다윗을 위하여 예루살렘에서 저에게 횃불을 주시되 그 아들을 세워 후사가 되게 하사 예루살렘을 견고케 하셨으니 이는 다윗이 헷 사람 우리아의 일 외에는 평생에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고 자기에게 명하신 모든 일을 어기지 아니하였음이라"는 왕하15:4-5의 기록과 같이, 다윗이 자신의 욕정을 충족시키고자 자발적으로 살인과 간음을 저질렀던 밧세바의 사건만 부각되었던 것은, 다윗의 계수 사건은 다른 범죄와 달리 하나님께서 분명한 목적을 가지시고 그를 깨우치고자 하셨던 의도적인 격동이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사무엘서 마지막 24장의 기록에는 나타나지 않지만, 역대기 기자는 다윗의 화목제와 번제를 드리고 난 이후, 다윗은 성전 건축재료를 모으기에 여념이 없는 것을 보여준다. 곧 "이 때에 다윗이 여호와께서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 마당에 응답하심을 보고 거기서 제사를 드렸으니 옛적에 모세가 광야에서 지은 여호와의 장막과 번제단이 그 때에 기브온 산당에 있으나 다윗이 여호와의 천사의 칼을 두려워하여 감히 그 앞에 가서 하나님께 묻지 못함이라, 다윗이 가로되 이는 여호와 하나님의 전이요 이는 이스라엘의 번제단이라 하였더라 다윗이 명하여 이스라엘 땅에 우거하는 이방 사람을 모으고 석수를 시켜 하나님의 전을 건축할 돌을 다듬게 하고 다윗이 또 문제 못과 거몰못에 쓸 철을 한 없이 준비하고 또 심히 많아서 중수를 셀 수 없는 놋을 준비하고 또 백향목을 무수히 준비하였으니 이는 시돈 사람과 두로 사람이 백향목을 다윗에게로 많이 수운하여 왔음이라"는 대상 21:28-22:4의 기록과 같이, 다윗은 그 계수 사건 이후 본격적으로 22장에서 성전 건축 자재를 준비하여 실로 엄청난 금은동철을 비롯하여 다양한 석재와 목재를 구비하는 다윗의 사역을 그리고 있다.

따라서 다윗의 이스라엘 백성 계수 사건은, 다윗과 이스라엘 백성들의 오만에서 비롯된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그의 악한 종 사단을 통해 오만한 다윗의 마음을 격동하여 다른 범죄가 아닌, 오만한 백성들을 계수케 하시므로 다윗과 그의 백성을 징계하시고 다윗으로 하여금 성전 건축을 위한 토대를 마련케 하시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여호와께서 그의 천사로 이스라엘에게 내리신 징벌인 '데벨'은 정집사님께서 지적하신대로 출애굽기 30:11-16에 나타난 '네게프'의 일종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모두가 성전건축을 위한 여정에서 직면했던 사건들이기 때문이다.

출38:24-31에서 실제로 모세는 20세 이상을 계수하여 20세 이상 603,550명으로부터 성소의 세겔대로 성소 건축비용으로 거둔, 금 29달란트, 730세겔과 은 100달란트와 1775세겔로 성소의 기구들을 만들었다. 다윗 역시 계수 사건 이후의 기록에 따르면, 모세를 능가하는 대규모의 성전건축을 위해 금은동을 모았다. 곧 "내가 이미 내 하나님의 전을 위하여 힘을 다하여 예비하였나니 곧 기구를 만들 금과 은과 놋과 철과 나무며 또 노마와 박을 보석과 꾸밀 보석과 채석과 다른 보석들과 화반석이 매우 많으며 성전을 위하여 예비한 이 모든 것 외에도 내 마음에 내 하나님의 전을 사모하므로 나의 사유의 금은으로 내 하나님의 전을 위하여 드렸으니 곧 오빌의 금 3000 달란트(약100톤)와 天銀 7000달란트(약240톤)라"는 대상29:2-4의 기록과 같다.

더우기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이 드린 金과 銀은 대단했다. 곧 "이에 모든 족장과 이스라엘 모든 지파 어른과 천부장과 백부장과 왕의 사무감독이 다 즐거이 드리되 하나님의 전 역사를 위하여 금5000달란트(170톤)와 금 다릭(130g정도의 금전) 1만과 은 1만 달란트(340톤)와 놋 18000달란트(613톤)와 철 10만 달란트(3400톤)을 드리고 무릇 보이 있는 자는 게르손 사람 여히엘의 손에 부쳐 여호와의 전 곳간에 드렸더라"는 대상29:6-8의 기록과 같이 실로 상상하기 힘들 정도의 귀금속을 성전 건축을 위한 재원으로 충당했다. 2009 현재 한국 금보유량이 14. 4톤에 불과할 것을 감안하면 실로 엄청나다 아니할 수 없다. 물론 2009년 세계 1위의 금 보유국인 미국의 8100톤과 제2위인 독일의 3400톤에 비하면 성전건축시 다윗과 이스라엘이 드린 270톤은 그리 많지 않은 양이라 하겠지만, 당시 세계 질서 속에서 성전건축을 위해 드린 이스라엘의 금은 실로 엄청나다 아니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다윗과 이스라엘의 오만으로 인해 하나님께서 그의 악한 종 사단으로 다윗의 마음을 격동하여 이스라엘을 계수하게 하신 이 사건은, 다윗은 물론 전 이스라엘이 비록 70,000인이 죽임을 당하는 변고가 있었음에두 불구하고 그로 인해 다윗은 물론 이스라엘로 마음을 낮추고 금은 보석은 물론 철과 구리 등을 자원하여 드리게 하시므로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는 계기로 삼으셨던 것이다. 이것이 다윗의 백성 계수 사건의 전말이다.

끝으로 老婆心때문에 하는 말인데, 일부 극단주의자들 중에는 다윗의 계수 사건을 통해 자신의 범죄 역시 하나님께서 작정하신 것이라 간혹 말하는 자들이 있음을 안다. 그러나 자신의 범죄에 대해 하나님께서 작정하신 것이니, 하나님께서 죄를 짓게 하신 것이니 등의 잘못된 언행를 보이는 것은 이 역시 또 다른 범죄 행위임을 알아야 한다. 다윗의 계수 사건을 공론화해서 모든 범죄에 하나님께서 직간접적으로 관여하시는 것으로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해야 할 것이나, 이를 자신들의 범죄를 정당화하는 자들은 혹독한 하나님의 가중처벌을 면치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