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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면 송계리 사자빈신사지사사자구층석탑(寒水面 松溪里 獅子頻迅寺址四獅子九層石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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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고넘는박달재/제천시

2018. 12. 12.



충청북도 제천시 한수면 송계리 사자빈신사지에 있는 고려 전기의 석탑.


제천 사자빈신사지 사사자 구층석탑은 상층 기단에 네 마리의 사자를 배치하여 상대갑석을 받치게 한 특이한 형태의 특수형 석탑[이형 석탑]이다. 우리나라에서 이형 석탑의 대표적인 예로는 불국사 다보탑과 화엄사 사사자 삼층석탑(華嚴寺四獅子三層石塔)이 있다. 화엄사 사사자 삼층석탑은 제천 사자빈신사지 사사자 구층석탑의 선례(先例)로 파악된다.

석탑은 현재 4층 옥개석과 5층 탑신석까지 남아 있고, 그 이상은 결실되었다. 석탑의 하층 기단석 남쪽 면에 10행 79자의 조탑 연기문(造塔緣記文)이 새겨져 있어 탑이 1022년(현종 3)에 원한이 있는 적을 소멸하기 위해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명문 내용 중 ‘경조구층(敬造九層)’이라는 글귀가 있어 석탑이 본래 9층탑으로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하층 기단석의 남쪽 면에 새겨진 조탑 연기문에 따르면, 1022년(현종 13)에 당시 거란족의 두 번째 침입을 받은 이후 부처의 힘으로 적을 물리치고자 하는 기원에서 석탑을 건립하였음을 밝히고 있다.


월악산 미륵사지에서 송계계곡을 따라 난 도로를 타고 제천 덕주산성 쪽을 내려가다 보면 와룡교를 지나 제천 덕주산성 못 미쳐 송계교 있는 곳에서 오른쪽으로 절골이라 불리는 계곡이 나온다. 이 길을 따라 조금만 올라가면 오른편으로 사자빈신사지가 나오고, 이곳에 제천 사자빈신사지 사사자 구층석탑이 있다.


기단부의 하대석은 하나의 돌로 되어 있는데, 각 면에 액을 만들어 각각 3개씩의 안상을 새겼다. 하대석 위의 중대석 역시 한 돌로 되어 있으며, 각 면에는 넓은 모서리 기둥을 새겼다. 상대석은 하나의 돌 대신 네 모서리에 각각 사자를 한 마리씩 앉히고 그 위에 갑석을 얹고 있다.

넓은 몇 장의 판석을 깔아 지대석(地臺石)으로 삼고, 하대석의 각 면에는 3구씩 안상을 조식하였다. 안상의 가운데에는 큼직한 꽃 모양의 장식이 있어 고려 시대 향식의 수법을 보인다.

하층 기단 각 면석에는 우주(隅柱)를 조각하였고, 남쪽 면에는 조탑 연기문을 새겼다.

상층 기단은 제천 사자빈신사지 사사자 구층석탑에서 가장 특징적인 부분으로, 네 마리의 사자를 각 모서리에 배치하여 상대갑석을 받들도록 하고 있다. 사자상은 앞다리 부분이 우뚝하지 않고 크게 약식화되어 있다. 석탑의 정면인 남쪽에서 바라볼 때 앞쪽에 배치된 사자는 각각 고개를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고 있고, 뒤쪽에 배치된 두 마리 사자는 북쪽을 바라보고 있다.

갑석의 중앙에는 지권인(智拳印)을 취한 불좌상이 안치되어 있다. 이 불상은 머리에 두건을 착용하여 머리 뒤에서 매듭을 지어 묶었는데, ‘Ω’자형으로 등의 중간까지 내려간다. 불상의 이마에는 백호(白毫)가 있고, 눈썹은 가늘고 긴 초승달 모양이다. 두 눈은 치켜올렸고, 코는 납작하며 입술은 도톰하다. 볼에 살이 올라 풍만하고 턱 아래로는 반원형의 턱 주름선이 있으며 목에는 삼도(三道)가 있다. 법의(法衣)는 두꺼운 통견(通肩)으로, 양 손목을 덮으며 무릎 위로 흐른다. 무릎에서는 옷 주름이 좌우 대칭을 이루고 있다. 이 불상은 수인(手印)으로 볼 때는 비로자나불이지만, 머리에 쓴 관모(冠帽)를 볼 때는 보살상의 형식이다.

기단 상대석 밑면의 중앙, 즉 비로자나불의 머리 위에는 원좌(圓座)가 있고, 그 주변에 화려한 연꽃을 조각하였다. 이러한 장식은 다른 석탑에서는 보기 힘든 것으로, 불상의 광배(光背)를 만들 공간이 없기 때문에 착용된 연화 장식으로 생각된다. 탑신부는 탑신과 옥개석이 1석으로 조성되었으며, 1층 탑신에 비해 2층 탑신부터는 급격히 규모가 체감되고 있어 고려 시대의 석탑 양식을 보이고 있다. 옥개석은 4층까지만 남아 있는데, 각층 옥개받침은 각 3단으로 매우 낮게 표현되었다.


하층 기단석의 남쪽 면에 10행 79자의 조탑 연기문이 새겨져 있다. 조탑 연기문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불제자고려국중주월악사자빈신사동양봉위대대성왕항거만세천하대평법윤상전차계타방영소원적후우생파사즉지화장술생즉오정각경조구층석탑일좌영충공양대평이년사월일근기(佛弟子高麗國中州月岳師子頻迅寺棟梁奉爲代代聖王恒居万歲天下大平法輪常傳此界他方永消怨敵後愚生婆娑卽知花藏述生卽悟正覺敬造九層石塔一坐永充供養 大平二年四月日謹記)[불제자인 고려국의 중주 월악 사자빈신사에서 동량들은 받든다. 대대로 성왕들이 영원히 만세를 거하고, 천하가 태평하며, 법륜이 이 세계에서 항상 이어지기를 바란다. 영원히 원한이 있는 적을 물리치고, 후에 이 몸이 파사에 나기를 바라며 곧 화장 세계를 알아 정각을 깨닫기를 원한다. 삼가 구층석탑 하나를 만드니 영원히 공양할 것이다. 대평 2년 4월일 삼가 쓴다].’


제천 사자빈신사지 사사자 구층석탑은 1963년 1월 21일 보물 제94호로 지정되었다. 현재는 석탑의 상륜부가 없어진 채 기단부와 탑 몸돌 부분으로만 구성되어 있다. 사역은 펜스를 설치하여 보호하고 있고 석탑 앞에는 설명문을 배치하였다.


제천 사자빈신사지 사사자 구층석탑은 지리산 화엄사 사사자 삼층석탑의 양식을 계승한 고려 시대 사자탑이다. 사자탑이라는 특수한 양식과 조탑 연기문이 있어 중요할 뿐만 아니라, 경주 황룡사 구층목탑과 용두사지 칠층탑, 진관사 구층탑과 같이 국가의 안녕과 평화를 위하여 발원한 호국적 성격의 탑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조탑 연기문 1행의 ‘고려국중주(高麗國中州)’는 고려 시대에도 이 지역이 국토의 중앙이었음을 의미하고 있으며, 6행의 ‘영소원적(永消怨敵)’은 영원히 적을 소멸시키고자 하는 발원으로 탑을 세웠음을 알 수 있다.[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