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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이면 갑산리 갑산리석탑(蘇伊面 甲山里 甲山里石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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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의 바람소리/음성군

2020. 2. 12.

갑산리사지는 국사산 북동쪽 골짜기 입구에 위치한다. 이곳은 봉저수지 옆 탑촌 마을에서 남쪽으로 150m정도 떨어진 도로변에 있는 경작지 일원이다. 경작지 서쪽은 국사산 줄기에 접해 있고, 동쪽은 남-북 방향으로 형성된 마을 소하천에 인접해 있다. 사역으로 알려진 곳은 573-1, 577번지 일원으로 석탑재가 남아 있다.
『朝鮮寶物古蹟調査資料』에는 사지가 논밭으로 변했고,기와편이 산재하며 석탑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후 1982년 보고서에 의하면 이곳에는 오층석탑과 머리가 결실된 석조여래좌상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 불상은 확인되지 않고, 석탑은 탑신석과 옥개석을 도난당해 기존의 기단석과 지대석 위에 과거의 모습을 재현해 놓았다.

사라진 석탑은 2001년에 도난 신고되었다. 탐문에 의하면 탑재는 대략 15년 전에 도난당한 후 되찾기 위해노력했으나 찾지 못하고 결국 과거의 모습을 본떠서 재현했다고 한다.사지는 민가가 들어서 있고 경작지로 이용되고 있어 원지형을 정확히 알 수 없다. 사지와 관련된 유구는 보이지 않으며, 유물은 612-5번지 일대에서 확인되었다. 기조사에서는 고려시대 기와편이 소량 확인된다고 기록되었으나, 본 조사에서는 조선전기에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두께 2㎝ 내외의 집선문, 무문 와편이 확인되었다.

 

 

석탑은 ‘음성 갑산리 석탑’으로 알려졌으며, 『朝鮮寶物古蹟調査資料』에는 높이가 7척인 7층의 석탑으로 보고되었다. 그러나 1977년 조사 자료에 의하면 4층만 남아 있다고 기술되어 있어 석탑재는 지속해서 훼손·분실된 것으로 판단된다. 지금은 지대석과 기단석만 남아있고, 나머지 부분은 신부재로 조성해 놓았다.

 

 

기조사에 의하면 도난 전 석탑은 지대석 위에 각각 한돌로 조성된 기단면석과 갑석, 1층 탑신석과 4매의 옥개석이 중첩되어 있고, 2층 옥개석과 2층 이상의 탑신석이 모두 결실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기조사에 수록된 사진이나 기록된 부재의 치수로 볼 때 1층 탑신석으로 본 탑신석은 너비 37㎝로 갑석 상면의 탑신괴임 너비(55㎝)와 차이가 커서 1층 탑신석으로 단정짓기 어렵다. 또한 기존조사에서 탑신석 위에 놓인 부재 중 1층 옥개석과 3층 옥개석으로 추정하고 있는 석재는 낙수면의 형태가 다른 옥개석에 비해 매우 완만하고, 형태가 다른 것으로 보아 1층 옥개석은 갑석으로, 3층 옥개석은 기단부와 관련된 석재로 보인다. 따라서 이 석탑은 이중 기단을 갖춘 3층 석탑이거나, 최소 2기 이상의 석탑재가 섞여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지금은 도난되기 전의 형태를 복원한 것으로 전체 높이 2.44m이다. 지대석은 치석된 장대석으로 ‘H’자 형태로 결구되었으나, 서쪽 면의 장대석은 결실되었다. 남북쪽에 놓인 장대석은 안쪽을 ‘┣’자형으로 돌출되게 치석하여 그 사이에 장대석을 끼워 넣을 수 있게 하였고 빈곳에는 잡석을 채워 넣었다. 북쪽 장대석은 크기 165×29×24.5㎝이며 안쪽으로 돌출된 부분은 31㎝이다.

 

남쪽 장대석은 크기 168×36×24.5㎝로 안쪽으로 돌출된 부분은 11㎝이다. 동쪽 장대석은 돌출된 부분이 없는 장방형으로 크기 68×36×24.5㎝이고 지대석 곳곳에는 직경 10㎝정도의 홈이 있다. 기단석 각 면의 크기는 84×21㎝로 우주와 탱주가 새겨져 있다. 우주의 너비는 6.5~9㎝이고, 각면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으며, 탱주 역시 9.5~11㎝이다.
조성 시기는 이미 많은 부분이 결실되어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고려후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후세에 민초들에 의한 성혈의 모습이 보입니다.

 

 

갑산리사지는 창건과 폐사에 관한 기록을 찾을 수 없다. 추정 사역은 유물이 수습되는 민가와 경작지 그리고 석탑이 위치한 주변지역으로 판단된다. 유구는 확인되지 않지만, 주변 지형으로 볼 때 사찰은 동쪽이나 북동쪽을 바라보고 조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석탑과 산포유물을 통해서 볼 때 사찰의 운영시기는 고려후기에서 조선전기 경으로 판단된다.